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830화 (29/1,027)

< 830화 3. 예정되어 있던 딜Deal >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안 일행은 반사적으로 공격을 멈췄다.

그리고 가장 그와 가까이 다가갔던 이안이 다시 한번 남자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흐음,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스르릉- 척-!

심판대검을 등에 꼽아 넣은 이안이, 묘한 표정으로 남자와 다시 눈을 마주쳤다.

어딘지 모르게, 분명히 낯이 익은 얼굴.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은 그를 어디서 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시스템 박스를 확인한 순간, 그의 정체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GM 철우 : Lv. 100(초월)

그는 이안이 마계 업데이트를 깽판 놓던(?) 시절,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나타났던 운영자.

‘GM철우’였으니 말이다.

저벅저벅.

이안을 비롯한 일행은 천천히 걸어 그의 앞으로 다가갔고, 그와 눈이 마주친 이안이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남자의 등장이 어쩐지 반가웠으니 말이다.

“오랜만입니다, 철우 님.”

“하……. 오랜만이군요, 이안 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혀 다른 감정이 실려 있는 두 사람의 목소리.

“몇 년 만에 이렇게 또 뵙게 되는군요.”

“후우, 그러게 말입니다. 이안 님을 또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이안의 목소리에 흥미가 가득한 것과 달리, 철우의 목소리에는 한숨이 가득했으니 말이었다.

문득 궁금한 것이 하나 생긴 이안이, 철우를 향해 물어보았다.

“그런데 철우 님.”

“네?”

“카일란에 GM이 철우 님 하나는 아니죠?”

“그럴 리가요.”

하필 그때 그 GM인 철우가 또다시 이안을 만나러 내려온 이유가 궁금했던 것.

‘그때야 어떤 직급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쯤 최소 팀장급은 되었을 텐데 말이지.’

그리고 이안의 작은 궁금증은, 철우의 대답으로 곧바로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GM 중 여기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왜요?”

“왜냐면…….”

씁쓸한 표정이 된 철우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때 이안 님 때문에 저 진급 밀리고 한 달 치 월급 감봉당할 뻔했거든요.”

“…….”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때 정말 아찔했었죠.”

“크, 크흠.”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약간 미안해진 이안은, 헛기침을 하며 그의 시선을 외면하였다.

철우가 그때 왜 그런 슬픈 일을 당할 뻔했는지, 알 것도 같았으니 말이다.

‘아마 내가 그냥 로그아웃 안 하고, 강화석을 싹 다 쓰고 나왔던 탓이겠지…….’

하지만 그때의 일이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고, 지금은 또 별개의 상황인 것.

철우는 아마 또 딜을 하려 이안의 앞에 나타난 것일 테지만, 이안은 양보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약 버그를 악용한 플레이로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라면 할 말이 없을 테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아주 정상적인 플레이를 한 것일 뿐이었으니까.

“흠흠.”

한차례 목청을 가다듬은 이안이 시치미를 떼며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철우 님.”

“예?”

“오늘은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

“제 플레이에, 딱히 문제가 있었던 것 같진 않은데 말이죠.”

놀라울 정도로 뻔뻔한 이안의 대사에, 평정심을 잃은 철우의 동공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 * *

사실 이안 일행의 플레이는, 이안의 말처럼 어떤 문제가 있는 플레이는 아니었다.

다만 기획 의도를 한참 벗어난 플레이로, 게임 내 밸런스를 혼탁하게 만들었을 뿐.

‘그래,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뒤에서 이안과 철우의 대화를 듣던 훈이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안이 이미 GM을 만난 전력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렇게 뻔뻔할 수 있다는 것에 더욱 놀란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흥미진진한걸.’

생각해 보면 이번 GM의 등장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남들은 일주일에 1업도 하기 힘든 극악의 레벨 업 구간을, 이안 일행은 고작 하루 만에 10레벨 가까이 폭업해 버렸으니.

LB사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일주일 내로 밸런스가 완벽히 붕괴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기획 팀과 개발 팀의 입장에선 아마, 야근을 넘어 폐관수련을 해야 할지도 모를 일.

하여 이안도 그렇겠지만 훈이를 비롯한 다른 파티원들 또한, GM이 이 사냥을 계속해서 묵인해 줄 것이라는 과도한 바람은 갖지 않았다.

다만 이안이 철우와의 딜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뜯어오길 응원할 뿐이었다.

‘그래, 저 악랄한 형이라면, 충분히 상상 이상으로 뜯어낼 수 있을 거야.’

훈이는 이안과 철우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얘기겠지만, 철우의 요구사항은 이 무자비한(?) 사냥을 멈춰 달라는 것이었다.

“일단 일시적으로 이곳 던전을 봉쇄해 뒀습니다.”

“흐음…….”

“하지만 계속해서 이곳을 막아둔다면 다른 많은 유저들이 피해를 볼 터.”

“아무래도 그렇겠죠.”

“해서 이안님께 부탁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부탁이라면?”

“다음 패치 때까지, 자발적으로 이 사냥을 좀 멈춰 주셨으면 해서 말이죠.”

“크음.”

“말씀하신 대로 버그는 아니지만, 거의 버그에 가깝게 기획의도가 파괴되어 버려서요.”

“…….”

“우선 사냥을 멈추시고, 동력장치에 대한 정보를…… 함구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철우의 이야기를 듣던 이안은 두 눈을 슬쩍 감고 뜸을 들이기 시작하였다.

지금의 상황에서 아쉬운 쪽은 당연히 GM과 LB사.

협상의 칼자루는 이안의 손에 쥐어져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제가 철우님의 부탁을 들어드리면 얻는 건 뭘까요?”

“으음…….”

“저로서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연구를 통해 알아낸 히든피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걸 통제하시겠다고 한다면…….”

“……!”

“그만한 어떤 보상이 있어야지 않을까요?”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사근사근 얘기하는 이안.

하지만 그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철우의 안색은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이안의 목소리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 데다, 그의 말 하나하나에 틀린 부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 이거 어쩌지…….’

물론 이안의 앞에 나타나기 전, 철우는 기획 팀으로부터 몇 가지 ‘카드’를 전달받았다.

이안을 설득하는 데 써도 되는, 각종 당근들을 제시받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안의 태도를 보니, 준비해 둔 보상들로 협상이 가능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일단 3번 카드까지는 싹 다 버려야겠어. 괜히 어쭙잖은 보상들 들이밀었다가 저 녀석의 핀트가 나가면……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까.’

철우가 준비해 온 보상들은, 단계별로 다양하였다.

이안과 이야기해 본 뒤 최소한의 보상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직접 대면해 보니, 그러한 계획들이 전부 무용하다는 것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철우는, 처음부터 강력한 보상을 꺼내 들기로 하였다.

이 정도라면 이안도 솔깃할 만하다 생각되는, 괜찮은 보상부터 말이다.

‘그래. 일단 들이밀어 보기나 하자.’

꿀꺽.

한차례 마른침을 삼킨 철우가 이안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년간 서비스직으로 단련된 베테랑답게, 다시 포커페이스를 회복한 철우였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이안 님.”

“흐음…….”

“당연히 그에 대한 보상까지 미리 준비해 왔죠.”

다시 이안과 눈이 마주친 철우는 침착하게 첫 번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척-!

가지고 있는 패에 대한 자신감인지, 이안 앞에 손을 내밀며 빙긋 웃는 철우.

그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손위에 새하얀 빛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그것은 잠시 후, 한 자루의 멋들어진 언월도가 되어 나타났다.

“어어……?”

철우의 손에 들린 언월도를 확인한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진 훈이와 유신.

두 사람이 동공이 확대된 것은 당연하였다.

황금빛 언월도의 위에는, 놀라운 시스템 박스가 떠올라 있었으니 말이었다.

-삭풍의 언월도(신화)(초월)

그리고 이안이 입을 떼기 전, 철우가 재빨리 다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신화 등급의 삭풍 장비입니다. 이안 님이라면 이 장비의 가치를 알고 계시겠죠.”

“오호.”

“여기 계신 네 분 모두에게, 신화 등급의 삭풍 장비를 하나씩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라면 괜찮은 보상이지 않습니까?”

훈이와 유신은, 삭풍의 언월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고작 영웅 등급의 무기를 착용 중인 그들에게 신화 등급의 초월 무기는, 침을 질질 흘리게 할 만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평소에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레비아까지도,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을 정도.

아마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이 이안이 아닌 세 사람 중 하나였더라면, 이미 도장 쾅쾅 찍고 헤벌쭉해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이안 일행의 표정을 슬쩍 확인한 철우는, 흡족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면 정말 후한 보상이지. 특히 이안 같은 경우는 삭풍의 절곡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일 테니, 충분히 메리트를 느낄 테고 말이야.’

철우는 기분 좋은 얼굴로 이안의 대답을 기다렸다.

기획 팀의 브레인(?) 나지찬에게 미리 조언을 들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만 철우의 표정이 다시 구겨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른 일행들과 달리 가만히 있던 이안이 곧 다시 입을 떼었으니 말이다.

“끝?”

“에……?”

“그러니까, 설마 이게 끝이냐고요.”

“그야…….”

“역시 그냥 한번 해 보신 말이었던 거죠?”

“네에?”

“고작 신화 등급 장비 한 개로, 경험치 수억을 퉁 치실 생각을 하신 건 아니었을 테니까요.”

“컥…….”

이안의 이야기에, 철우는 그대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처음부터 강력한 패를 꺼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막혀 버리니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진 것이었다.

하지만 말문이 막힌 것은 철우뿐만이 아니었다.

훈이를 비롯한 삼인방 또한, 설마 이안이 거절할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아니, 저 형은, 신화 등급 초월 장비를 거부하면 대체 뭘 받아 내려는 거지?’

‘신화 등급 위에 상위 등급이나 티어가 또 존재하는 건가?’

멍한 표정의 훈이와 당혹스런 표정의 유신.

그리고 두 사람과 비슷한 표정인 레비아는 혼란스러운 상태로 철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러다가 신화 등급 장비마저 날아가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말이다.

이어서 잠시 후.

가까스로 평정심을 찾은 철우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이안 님께선 원하시는 보상이 따로 있으신지요.”

“후후.”

“신화 등급의 초월 무기보다 더 괜찮은 보상이 제 머리로는 떠오르지 않아서 말입니다.”

철우의 말이 끝나자, 장내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이안의 입을 향해 모아졌다.

이안이 어떤 보상을 원할지, 모두가 너무 궁금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철우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이안의 입이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우선.”

“……?”

“비터스텔라에 존재하는 모든 유적의 위치를 싹 다 알려 주셔야겠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이안의 대답에, 또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철우.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안의 요구 사항이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