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9화 2. 던전 파괴자 (3) >
* * *
“이봐, 정말 이안 파티가 던전에 들어갔다니까?”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라고?”
“못 믿을 건 뭔데?”
“생각해 봐. 밝혀진 이안의 초월 레벨이, 최소 70이야. 이 던전은 50레벨대 유저들한테나 의미 있는 던전이고.”
“그건 그렇지.”
“지금 상위 콘텐츠 진행하기도 바쁠 이안이 여길 왜 오겠어?”
“그야 모르지. 어떤 히든피스를 발견했을지도 모르고.”
“흐음…….”
“하지만 확실한 건, 우리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거야.”
호루스 지하기지 던전 앞 공터는 아까보다 조금 더 소란스러운 상태였다.
시스템 메시지로 ‘이안’이라는 이름을 본 사람들이 그에 대한 이야기로 수근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전 세계 어떤 서버의 유저든 ‘이안’이라는 유저 네임을 알고 있었고.
특히 인간계 진영의 유저라면, 그의 팬이 아닌 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직 이안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외부에까지 퍼져 나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해당 던전을 공략 중이던 랭커들은 전부 그 사실을 알게 된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이안이 맞다면, 헤리스의 말처럼 던전 안에서 어떤 히든 피스를 찾아낸 게 아닐까?”
“그, 그런가?”
“생각해 봐. 던전 안에 숨겨져 있는 상위 등급의 히든 던전이라든가, 어떤 다른 고급 연계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단서라든가…….”
“……!”
“사실 이유는, 있으려면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다고.”
“그것도 맞는 말이네.”
호루스 기지의 공터에 모인 유저들은, 옹기종기 던전 입구로 다가가 던전의 정보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하였다.
어떤 특별한 요소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하지만 너무 당연히도, 그들은 던전의 정보 안에서 특별한 부분을 찾아낼 수 없었다.
애초에 이안에게 이 던전이 특별한 이유는, 평범한 유저라면 ‘동력장치’의 존재를 알더라도 찾아내기 힘든 것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서 유저들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50레벨대의 파티가 공략해도 2시간 이상 걸리지 않을 인던 안에, 이안 일행이 몇 시간째 틀어박혀 있었으니 말이다.
“야, 셀런, 이안 파티는 아직도 밖으로 안 나왔어?”
“그렇다니까.”
“지금 벌써 몇 시간째지?”
“5시간은 지난 것 같아.”
“미친. 무슨 인던 안에서 잠이라도 늘어지게 자는 건가? 대체 5시간 동안 뭘 하고 있는 거야?”
호루스 지하 기지 던전은, 던전을 클리어할 시 자동으로 공터에 소환된다.
게다가 한 팀이 입장해 있으면 해당 층에는 다른 팀이 입장할 수 없었고, 때문에 그들은 이안이 몇 시간 동안 지하 기지의 마지막 층에 죽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대체 뭘까?”
“궁금해 미치겠어.”
“이안 파티가 여기서 히든 피스라도 찾아 나가면 너무 배 아플 것 같은데…….”
“그러게. 이 던전에서만 한 달째 살고 있는 우리조차 모르는 어떤 히든피스가 정말 존재하는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유저들의 궁금증은 더욱 크게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5~6시간이 지나는 동안 지루해질 법도 하건만, 로터스와 이안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쉽사리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안 파티가 입장한 지 대략 7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그긍- 그그긍-!
던전의 주변에 있던 유저들의 눈앞에 뜬금없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특수한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지금부터 3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호루스 지하기지’ 인스턴트 던전이 폐쇄됩니다.
-던전을 진행 중이라면 해당 도전까지는 정상적으로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카일란을 플레이하며 듣도 보도 못했던 기이한 상황에, 당황한 유저들은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 * *
콰아아아!
이안과 훈이가 가진 온갖 광역 마법이 포효하듯 공터 안을 휘감으며 광포하게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 강렬한 소용돌이 안에서, 작은 기계 괴수 ‘크랏’들은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바스라졌다.
콰쾅- 그그극-!
퍼어엉-! 텅- 터엉-!
폭발음과 함께, 듣기 거북한 쇳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수백 마리의 크랏들이 한 번에 파괴되면서, 그 쇳조각들끼리 부딪쳐 시끄러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유신과 이안은 침착한 표정으로 사위를 살피고 있었다.
“집중해서 살펴야 해, 유신. 한 놈이라도 살아 있으면 그대로 숨통을 끊어 버려!”
“알겠어, 형!”
이안의 계산대로라면 본래의 생명력의 10% 수준인 160레벨대의 크랏들은, 방금 전의 공격으로 전부 몰살당해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는 존재할 수 있는 법.
이안 일행이 수백 마리의 크랏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개중에 한둘 정도는 증식이 덜 된 개체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살아남은 녀석들은 어마어마하게 위협적인 존재들이었다.
160레벨인 데다 공격력까지 몇 배로 뻥튀기된 놈들이다 보니 그런 녀석에게 스치듯 한 대만 맞아도 그대로 사망할 수 있었다.
“저기!”
파앗-!
훈이의 외침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유신이, 어둠속으로 뛰어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그리고 그 한 방에 덜컹거리며 움직이던 크랏 하나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좋아! 깔끔했어!”
소란 속에서도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팀워크에, 기분 좋은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는 훈이.
그렇게 극도의 긴장 속에서 몰아치던 폭풍은 점점 잦아들기 시작하였고, 쇳소리로 인해 어지러웠던 장내에는 소란스러움 대신 고요가 깔리기 시작하였다.
정말 이 공터 안을 가득 메울 정도로 바글거리던 크랏들이 한 녀석도 남김없이 전멸해 버린 것이다.
다만 공터에는, 반쯤 파괴된 동력장치 열 개만이 어지럽게 놓여 있을 뿐이었다.
꿀꺽-!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짧게 울려 퍼졌다.
생사의 위험 속에서 크랏들을 전멸시킬 때보다도, 더 긴장된 표정으로 굳어 있는 이안 일행들.
그들이 굳어 있는 이유는 간단하였다.
이제부터 떠오를 시스템 메시지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많은 경험치가 들어올지 기대에 가득 차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일련의 과정은 촌각처럼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진 것이었지만, 이안 파티에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거 감도 잘 안 오는데……. 잘하면 노엘이 형이 폭업했던 것처럼, 나도 2레벨 정도 오르려나? 아니면 3레벨?’
순간적으로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훈이.
하지만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띠링-!
익숙한 알림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훈이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하였다.
“……!”
그의 눈 앞에, 정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으니 말이다.
-기계 괴수 ‘크랏’을 처치했습니다. 8,798,091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기계 괴수 ‘크랏’을 처치했습니다. 10,017,201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기계 괴수 ‘크랏’을 처치했습니다. 9,871,232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중략……
-레벨이 올랐습니다. 76레벨이 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77레벨이 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78레벨이 되었습니다.
……중략……
-레벨이 올랐습니다. 81레벨이 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82레벨이 되었습니다.
레벨 업 시에만 느낄 수 있는 청량감이 온몸에 터질 듯 휘몰아치면서, 황금빛 물결로 인해 로브가 펄럭이기 시작했으니 말이었다.
“이, 이게 뭐야?”
“말도 안 돼!”
원래 레벨 업 이펙트로 인한 황금빛 바람은, 옷자락을 기분 좋게 훑고 지나갈 정도의 가벼운 바람이었다.
그런데 한 번에 7레벨이 올라 버리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보니 광풍이 몰아치듯 로브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것이다.
“…….”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직후, 멍한 표정이 되어 입을 쩍 벌린 이안의 일행.
한순간에 파티의 평균 레벨이 5레벨 이상 올라 버렸으니, 그들이 경악한 것은 사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네 사람의 눈은 파티원 정보 창에 약속이라도 한 듯 고정되어 있었다.
파티원 정보 창의 최상단에 표기되는 레벨 업 메시지가 너무도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안 Lv. 80 → Lv. 84
간지훈이 Lv. 75 → Lv. 82
레비아 Lv. 76 → Lv. 82
유신 Lv. 73 → Lv. 81
“도, 돌았다…….”
“이게 대체 뭐야?”
“초월 70레벨대에서 폭업이라니.”
“그냥 폭업도 아니야. 난 7레벨 올랐다고.”
“난 6레벨.”
“난 8레벨 올랐어.”
“…….”
당황한 것은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꿀이잖아?’
이안은 다른 파티원들과 달리 상상 이상의 폭업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80레벨인 자신마저 4레벨이나 올라 버릴 줄은 짐작하지 못했으니 말이었다.
‘게다가 경험치 게이지도 가득 찼어. 이정도면 거의 5업이나 마찬가지야.’
흥분으로 인해 이안의 동공이 지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안 또한 카일란을 지금까지 플레이하면서, 레벨업으로 인해 이만한 쾌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이 짓 며칠만 더 하면, 100레벨도 충분히 찍겠는데?’
이안 일행의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감당 가능한 ‘크랏’의 공격력 한도가 높아진다.
그 말인 즉 증식시킬 수 있는 횟수의 한도가 높아진다는 것.
증식을 더 여러 번 시킬 수 있으면 그만큼 더 많은 동력장치를 중첩시켜도 광역 한 방이 나올 것이고, 그럼 계속해서 점점 더 높은 레벨을 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무한 노다지인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안 일행이 놀랄 일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잠깐, 형!”
“왜?”
“이쪽으로 와 봐.”
“……?”
“바닥에 초월 장비들이 미친 듯이 깔려 있어!”
“어?”
훈이의 말에 멍한 표정이던 나머지 파티원들이, 분주히 아이템들을 수거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초월 장비들이, 무더기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으니 말이다.
이미 정신이 혼미했던 이안 일행은 또 한 번 당황하였지만, 사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방금 이안 일행이 몰살시킨 크랏의 숫자는 수백 단위를 아득히 넘기는 수준이었으니까.
게다가 이 호루스 지하기지 던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호루스 세트’ 장비들은, 그들을 또 한 번 놀라게 만들어 주었다.
“대박……. 호루스 세트만 모아도 열 피스는 되겠어.”
“정확히 여덟 피스네.”
“잠깐. 이거 왜 다 영웅 등급이야? 호루스 셋 원래 유일급 아니었어?”
“어? 여긴 전설도 하나 떨어져 있는데?”
“뭐라고?”
호루스 세트 장비들의 디폴트 등급은 유일 등급이다.
하지만 처치한 몬스터의 강함에 비례하여 확률적으로 더 높은 등급이 나오도록 설정되어 있었는데, 그렇게 나올 수 있는 리미트가 원래는 영웅 등급이었다.
이 던전의 최종 보스인 기계 괴수가 초월 65레벨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원래는 보스를 한 100회 정도 잡아야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것이, 바로 영웅 등급의 호루스 장비였던 것.
일반 유저들에게는 투구와 흉갑이 영웅 등급이고 나머지 부위가 유일 등급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 또한 잘못된 정보였다.
보스가 드롭하는 부위가 투구와 흉갑이기 때문에, 두 개의 부위만 영웅 등급이 드롭된 것이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지금 이안 일행은 어쩌다 보니(?) 160레벨대의 몬스터들을 몰살시켰고, 덕분에 디폴트값이 영웅 등급에 수렴했다.
그러니 낮은 확률로 전설 등급의 장비까지도, 드롭이 되게 되어 버린 것.
호루스 던전을 최초에 기획한 기획자들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호루스 신발에도 영웅 등급이 존재했었어?”
“그, 글쎄. 적어도 난 못 본 것 같은데…….”
“대박이다. 이거 팔면 한 파츠당 2천 코인은 나오겠어.”
“아무래도 그러겠지. 흉갑 말고는 매물도 없을 테니 말이야.”
“그럼 이 전설 등급 머리장식은?”
“이건 아마 안 팔고 우리가 쓰겠지만, 최소 1만 코인부터 시작 아닐까?”
“크으, 미쳤다!”
이안을 비롯한 네 사람은,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졌다.
그들의 눈앞에, 말 그대로 비단길이 펼쳐진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몇 시간 동안 노가다해야 하는 증식 작업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순간에 떨어진 경험치와 장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고통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자, 가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
“그래, 이안 형 말이 맞아. 빨리 클리어하고 나가서 리트라이 가자고.”
“좋았어!”
이안 일행은 한층 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음 페이즈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곳이 보스룸 바로 앞이었기 때문에, 던전 클리어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터.
60레벨대의 보스 정도는, 순식간에 삭제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타탓-!
하지만 잠시 후 이안 일행은, 이번엔 다른 의미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이게 뭐지?”
“잠깐. 마력원이 작동을 안 하는데?”
“줘 봐. 내가 끼워 볼게.”
보스를 소환하는 제단에 마력원을 꽂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제단이 환하게 빛나면서 던전이 진동하기 시작하고, 룸의 한가운데에서 보스가 등장해야 했던 것.
“뭐야, 버근가?”
“설마……?”
그런데 이안 일행이 당황하고 있던 바로 그때, 원래 보스가 등장해야 할 위치에서 환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이안 일행은 재빨리 전투태세로 전환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원래와 다른 패턴으로 던전이 작동했으니,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던전에 너무 오래 있어서 상위 보스라도 등장하는 건가?’
이어서 하얀 빛무리 속에서 걸어 나오는, 이질적인 외모의 한 남자.
당연히 보스라고 생각한 훈이는 곧바로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하였고, 반사적으로 그에 반응한 이안은 대검을 치켜들고 남자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공격을 쏟아부으려던 이안 일행은 그대로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으니 말이었다.
“자, 잠깐! 때리지 마!”
“……?”
“난 몬스터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