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827화 (833/1,027)

< 827화 2. 던전 파괴자 (1) >

정령산의 남부와 이어지는 프뉴마 마을의 북측 입구.

입구를 따라 나가면 정령산의 초입까지 구불구불한 숲길이 이어져 있었으며, 숲길을 살짝 벗어나면 곳곳에는 갓 중간계에 입문한 초보들을 위한 사냥터가 존재하였다.

처음 이안이 프뉴마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하더라도 기계 문명으로 인해 오염되어 있었던 프뉴마의 숲길.

하지만 이제 제법 많은 유저들이 유입된 프뉴마 마을의 주변은 어느새 예전의 아름다운 자연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오염된 정령이나 기계 괴수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타나는 족족 유저들의 손에 사냥당하니 자연이 오염될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숲길에는 저마다 다른 목적지를 가진 유저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걷고 있었다.

정말 5~10레벨 정도의 난이도인 초보 사냥터를 전전하는 저레벨의 유저들부터 시작해서, 정령산 깊숙한 곳의 인던을 목적으로 온, 제법 고레벨의 랭커들까지.

물론 초월 레벨을 떠나 중간계에 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카일란 상위 10퍼센트 이상의 실력을 가진 유저들일 테지만 말이었다.

“와, 중간계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명계의 칙칙한 어둠만 보다가 여기 오니까 정말 천국이 따로 없네.”

“그러게. 그냥 숲길 따라 산책만 해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야.”

“크. 진짜 그래.”

“하지만 언제까지 힐링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 마스터에게 잔소리 듣지 않으려면, 해 지기 전에 최소 인던 세 바퀴는 돌아야 하니까.”

영국 서버의 유저인 게일과 헤리스는, 오늘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길드의 방침 때문에 중간계로 넘어온 뒤 이제껏 명계에만 박혀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이렇게 정령계라는 새로운 차원의 콘텐츠를 플레이한다는 사실 자체가 설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레벨은 모두 초월 50레벨대 초반.

최상위 랭커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레벨이었으나 그렇다 해도 결코 흔하지 않은 높은 레벨의 랭커들이었다.

“흐흐, 기대된다. 정령계 인던도 제법 보상 짭짤하다던데.”

“명계랑 콘셉트가 달라서, 적응하기 힘들다는 길드원들도 있더라고.”

“하긴. 긴장해야겠어. 괜히 호루스 지하 기지가 개미지옥이라 불리는 게 아닐 테니 말이야.”

두 사람이 속해 있는 발리토어 길드는, 영국 서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높은 랭크를 가진 길드였다.

비록 영국 서버 자체가 카일란에서 그렇게 하이 레벨의 서버가 아니었기 때문에, 글로벌 기준으로 따지자면 발리토어 길드는 30위권에 겨우 턱걸이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첫 트라이에서 바로 A등급 띄우고 호루스 세트 하나 챙겨 가자고, 브로.”

“좋았어. 호루스 풀 세트 맞출 때까지 계속해서 인던만 돌아야지.”

“흐흐, 호루스 장비 중에 투구가 영웅 등급이었던가?”

“맞아. 투구랑 흉갑이 영웅등급이고, 나머지는 유일이라고 들었어.”

“크으, 유일만 해도 꿀인데 영웅이라니……. 진짜 내가 영웅장비 하나 먹을 때까진 오늘 잠 안 잔다.”

“두세 개 먹어서 경매장에 팔아야겠어. 특히 흉갑은 옵션이 좋아서 그런지, 한 파츠당 1천 코인에도 잘 팔리더라고.”

“캬아, 1천 코인이라니……!”

게일과 헤리스가 향하는 던전은 바로, 이제 제법 많은 유저들에게 알려진 인스턴트 던전인 ‘호루스 지하 기지’였다.

정령계의 ‘개미굴’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하 기지 던전은, 고성능의 초월 장비인 ‘호루스 세트’ 때문에 유명해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목적 또한 당연히 이 호루스 세트였다.

“엇, 저기인가 봐, 헤리스!”

“맞아. 저쪽이 던전 입구인 것 같네.”

구불구불 이어진 숲길을 따라 정령산의 깊숙한 곳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작은 공터에 모여 있는 인파들을 보고 대번에 던전 입구임을 알아차렸다.

이런 깊은 숲속에 유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은, 보통 던전 공략전에 파티를 구성하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와, 제법 사람들 많네?”

“그러게. 여기 공략하려면 못해도 50레벨은 찍어야 할 텐데, 초월 50레벨이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

“으, 더 분발해야겠어. 정령계에도 고레벨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걸.”

호루스 지하 기지에 입장하기 위한 레벨 제한은 사실 초월 35레벨에 불과하다.

던전 안에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평균 레벨이 40레벨 초반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던전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레벨대와 별개로 이곳은 극악한 난이도로 유명하였다.

던전을 진행하다보면 ‘크랏’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기계괴수들이 무한대로 증식하는 패턴이 있는데, 그 페이즈에서 실수를 한다거나 충분한 DPS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어지간한 스펙의 파티도 금세 전멸을 해 버리니 말이었다.

“우리도 파티를 구해 봐야겠지?”

“흠. 길드원들 도착하기 전에, 한 바퀴 정도는 미리 돌아보는 것도 좋겠지.”

호루스 지하기지에 파티로 입장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열 명이었다.

물론 파티원이 하나 늘어날 때마다 난이도가 조금씩 증가하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최소 예닐곱 명 정도의 인원으로는 파티를 구성해야 공략할 만할 터.

때문에 두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였다.

“내가 있으니 탱킹은 부족하지 않을 것 같고, 광역 딜러 하나에 힐러 하나 정돈 무조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런데 바로 그 때.

파티원을 구하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두 사람의 시야에, 지금 막 공터에 들어선 듯 보이는 새로운 인물들이 모습을 그러내었다.

그리고 그들을 발견한 순간, 게일은 두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오오……! 저들이라면……!”

딱 봐도 던전에 입장하려는 듯 보이는 네 사람의 클래스 구성이, 게일과 헤리스가 원하는 조합이기 때문이었다.

“사제 하나에 전사 하나. 마법사까지……. 나머지 한 명은 클래스를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정말 딱 인데?”

“걸치고 있는 장비들만 봐도, 어지간히 고레벨일 것 같고 말이지.”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일행을 향해 성큼 성큼 다가갔다.

네 사람은 곧장 던전의 입구를 향해 걷고 있었지만, 그들이 곧바로 던전에 입장해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최대 인원 열 명짜리 인스턴트 던전에, 굳이 네 명으로 들어가는 파티는 흔치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잠시 후.

“저, 저기요!”

조금 먼저 일행에게 다가간 헤리스는 그대로 얼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입장……!”

“저기요?”

우우웅-!

네 사람 중 가장 앞에 있던 남자가 성큼성큼 던전 앞으로 걸어 올라가더니, 그대로 던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말이다.

남자가 들어가자마자 파티원인 듯 보였던 나머지 세 사람은 자연스레 던전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위잉- 위이잉-!

게일과 헤리스는 마치 닭 쫓던 개처럼 멍한 표정으로 던전 입구를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굳이 넷이서 들어간다고?”

“탱커도 없어 보였는데, 우리랑 같이 가지…….”

그러나 두 사람의 어이없다는 표정도 잠시뿐.

“……!”

그들은 곧 놀람을 넘어, 경악스런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에, 생각지도 못 했던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띠링-!

-‘이안’ 유저의 파티가 호루스 지하 기지 최하층에 입장하였습니다.

-해당 파티의 공략이 끝날 때까지 최하층의 입장이 통제됩니다.

게일과 헤리스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미친! 이안갓이었어!”

“로터스였다니!”

* * *

기계 괴수들의 레벨을 버프시켜 주는 특별한 구조물인 ‘전투 동력 증폭 장치’.

이안은 이 구조물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굴려 보았다.

‘무작정 중첩을 많이 시킨다고 좋은 건 아니야. 레벨이 150이 넘어가면 아무리 잡몹이라 해도 괴물급이 되어 버리니까.’

이 동력장치를 이용하여 이안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사냥 가능한 난이도 안에서 최고의 경험치를 뽑아낼 사냥터를 세팅하는 것.

물론 무한 중첩에 따라 레벨이 수백대로 높아진 녀석들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게 최선이겠지만, 이안 일행이 사냥 가능한 레벨에도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였다.

때문에 이안은, 레벨대비 가장 약한 몬스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잔머리를 동원하였다.

‘최대한 레벨과 전투력에 비해 경험치를 많이 주는 녀석. 그리고 고유 능력이 까다롭지 않아 상대하기 수월한 몬스터를 찾아야 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안이 찾아낸 몬스터가 바로, 호루스 지하 기지에만 서식하는 ‘크랏’이라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특수한 고유능력 하나 외에는 어떤 고유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공격 패턴이 단순하고 낮은 생명력과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낮은 맷집에 대한 반대급부로 강력한 공격력과 머릿수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하였다.

많은 머릿수는 오히려 경험치가 목적인 이안의 입장에서, 더 좋은 요소였고 말이다.

‘인던이면서 시간제한이 없는 던전이라는 부분까지 너무 완벽하단 말이지.’

하지만 이안이 이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녀석이 가지고 있다는 그 하나의 고유 능력에 있었다.

몬스터 ‘크랏’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고유 능력인 ‘자가 증식’.

그것이야말로 이안의 사냥효율을 말도 안 되게 높여 줄, ‘히든 피스’같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자가 증식

‘크랏’은 생명력이 2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지면, 자신의 몸을 두세 조각으로 분리시켜 새로운 개체로 증식합니다.

증식에는 2초의 시간이 걸리며, 2초 안에 크랏을 처치한다면 녀석의 증식을 막을 수 있습니다.

*‘크랏’은 증식할 때마다 생명력이 20퍼센트만큼 감소하며, 공격력이 1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내가 분석한 대로라면, 정말 미친 속도로 레벨 업이 가능할 거야.’

이안은 던전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크랏의 전투 능력을 상세히 분석해 둔 상태였다.

어떤 스킬과 어떤 버프를 걸고, 어떤 광역 마법으로 딜을 넣었을 때 녀석을 한 방에 처치할 수 있는지 말이다.

‘크랏의 레벨은 40~42 정도. 동력장치 10중첩이면, 대략 160레벨대의 크랏들을 상대해야 할 테고, 160레벨대의 크랏이라면 대충 생명력이 500만 정도 되겠지.’

한 번도 증식하지 않은 크랏의 생명력이 500만 정도라면, 다섯 차례 증식된 크랏의 생명력은 160만 정도이다.

그러니 크랏이 열 번 이상 증식한다면, 녀석의 생명력은 50만 이하로 떨어지게 될 터.

이 정도의 생명력이라면, 이안 파티가 가진 어지간한 광역기로도 충분히 원킬이 날 것이었다.

물론 레비아의 버프를 풀로 차징하였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레벨 버프 받기 전의 크랏을 감당 가능한 범위까지 최대한 증식시키고, 그 시점에 차원의 봉인구를 한 번에 터뜨리면서, 동시에 광역기를 난사하는 거지.’

160레벨의 크랏을 10회 이상 증식시킨다면, 아마 이안 일행은 광역기조차 써 보지 못하고 전멸할 것이었다.

녀석들의 생명력이 낮아지는 대신, 공격력이 그만큼 강력해지니 말이다.

하지만 40레벨대의 크랏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녀석들이 10번 이상 증식하여 막강한 공격력을 가져 봐야, 이안 혼자서도 충분히 버틸 만한 수준일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작업을 다 해서 수백 마리의 크랏을 던전 안에 가득 채운 뒤 캡슐을 터뜨려 동력장치를 소환하여 160레벨로 만들어 버리고, 그와 동시에 훈이의 광역기와 소환수의 광역기들을 뿌린다면…….

‘크!’

한 번에 160레벨대의 크랏 수백 마리를 몰살시키는 장면을 떠올린 이안은, 순간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이 뭐야? 오늘 안에 세 사람 다 80레벨 찍고도 남겠어.’

아직 그의 계획을 모르는 탓에 멀뚱한 표정인 세 사람과 달리 음흉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실실 웃으며 던전의 안쪽으로 진입하는 이안.

그렇게 정령산의 깊숙한 어느 곳에서 재앙의 불씨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