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2화 7. 하드코어 레벨링 (2) >
* * *
처음 호른 봉우리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안 일행이 일순위로 둔 것은 ‘기계 괴수 파라켄’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퀘스트를 빨리 클리어하고 다음 퀘스트로 쭉쭉 치고 나가는 것이 경험치나 보상, 길드 공헌도 면에서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콘텐츠(?)의 발견으로, 기사단의 모든 일정은 완벽히 바뀌어 버렸다.
사냥과 사냥, 그리고 또 사냥.
이안의 창의성은 그렇게, 모두를 행복한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와, 미쳤다. 경험치 엄청나!”
훈이의 탄성에, 레미르가 옆에서 핀잔을 주었다.
“당연한 거 아니냐? 초월 레벨 114짜릴 잡았는데.”
“크, 역시 이안 형 잔머리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레벨 70 정도의 기계 몬스터에게 레벨 버프가 1회 덧씌워지면, 21 정도의 추가 레벨이 가산된다.
거기에 이안의 실험(?)이 성공하여 버프 중첩까지 되었으니.
구조물이 하나 추가될 때마다 몬스터들의 레벨이 21씩 증가하는 것이다.
하여 지금 이안 일행이 사냥 중인 두 번째 캠프의 기계몬스터들은, 무려 110이 훌쩍 넘는 레벨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
때문에 레벨 버프가 곱연산이 아니라 덧연산임을 아쉬워하는 이안 말고는, 모두가 고통과 행복을 동시에 겪고 있었다.
“으, 그나저나 여기서 하루 종일 사냥해야 하는 게 사실이야?”
“헉, 헉. 얘네 깡 스텟이 너무 높아. 실수 한 번에 골로 갈 뻔했다고 방금.”
“이제 몰이사냥은 무리야. 두세 마리 정도씩 몰아서 따로 잡아야겠어!”
“후우, 당장이라도 탈주하고 싶지만, 경험치를 보면…….”
길드원들은 차오르는 경험치 게이지를 보면서 행복함과 동시에, 사냥터의 난이도에 고통받고 있었다.
평균 레벨이 70 언저리인 기사단원들에게 110레벨이 넘는 몬스터들은 아무리 일반 몬스터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재앙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와중에도 이안만큼은 아직까지 여유롭게 전장을 휘젓고 있었지만 말이다.
‘흠, 확실히 아까보다 힘들어지긴 했는데. 아직까진 그래도 할 만해.’
외곽에서 협력하며 하나하나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는 다른 기사단원들과 달리, 이안은 혼자서 전장의 한복판에 있었다.
성령의 장비들이 가진 패시브를 이용하여, 생명력을 계속 회복하면서 말이다.
물론 몬스터들은 110레벨답게 일반 공격 한 방 한 방으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여 주었지만, 이안의 맷집과 회복 속도가 상식을 벗어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순식간에 30~50%가 깎여 나갔다가 곧바로 다시 차오르는 이안의 생명력 게이지를 보고 있자면, 보는 이들이 살 떨릴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안 본인은, 아직 여유 넘쳤지만 말이다.
‘이거, 최대 생명력 비례 고정 대미지가 진정한 사기 옵션이었어. 몬스터 방어력이 아무리 높아도, 딜이 그대로 박혀 버리니 말이야.’
콰쾅- 콰앙-!
새하얀 이안의 심판검이 번쩍일 때마다 기계 몬스터들의 생명력은 뭉텅이로 잘려 나간다.
그리고 그런 그의 활약을 뒤에서 보며, 감동 중인 사내가 한 명 있었다.
‘와, 저래서 이안갓 이안갓 하는구나…….’
남자의 정체는 바로, 로터스 신입에 속하는 기사단원 중 하나였던 카르밀.
기사단원 중 유일한 궁수 랭커인 카르밀은, 이안의 보여주는 말도 안 되는 활약에 쉴 새 없이 감탄 중이었다.
‘이안갓 싸우는 걸 보면, 누가 소환술사인 줄 알겠어? 저건 기사도 아닌 것이 전사도 아닌 것이, 그냥 새로운 이안만의 히든 클래스 같아.’
카르밀은 궁사 클래스 중에서도, 폭발적인 단일 딜에 특화된 특별한 클래스였다.
단일 DPS만 놓고 본다면, 한국 서버 내에서도 충분히 손에 꼽을 정도의 원거리 딜러였던 것.
웹 서핑을 하다 보면 자신의 폭딜 영상이 심심치 않게 돌아다니곤 했었으니, 카르밀 본인 또한 그에 대한 자부심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안을 처음 만난 순간 카르밀은 신세계를 보고 말았다.
이안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터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딜량은 풀 버프를 장착한 카르밀의 저격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강력한 공격력 대신 공격 속도가 느린 카르밀의 저격에 비교했을 때, 이안의 칼질은 신들린 수준이었다.
남들 장검 휘두르는 느낌으로 대검을 휘둘러 대고 있었으니, DPS로 따지자면 카르밀이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쿠쿠쿵-!
-기사단장 ‘이안’ 유저가, ‘파머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기사단장 ‘이안’ 유저가, ‘파머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후략……
그리고 그렇게 이안의 활약에 힘입어 로터스의 천룡기사단은, 두 번째 캠프까지도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였다.
띠링-!
-모든 기계 괴수를 처치하였습니다!
-‘호른’ 봉우리의 기계 괴수를 100마리 이상 처치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기계 괴수 ‘파라켄’의 주둔지역에 대한 단서를 획득하셨습니다!
-기계 괴수 주둔지의 좌표가, 기사단 미니 맵에 표시됩니다.
-좌표 : 1,098, 3,991, 298
……후략……
오직 경험치를 위해 열심히 사냥하다 보니, 퀘스트에 대한 단서까지 덤으로 획득한 이안과 일행.
하지만 너무 당연히도, 이안은 퀘스트 메시지에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순식간에 절반 넘게 쌓인 경험치 게이지를 보고 있노라면, 기계 괴수를 어서 한 마리라도 더 잡고 싶었으니 말이었다.
이 호른 산맥에 더 이상 잡을 기계 괴수가 없어질 때까지, 퀘스트는 뒷전이라 할 수 있었다.
“카카, 다음 캠프는 어디지?”
-여기서 북동쪽으로 100미터 정도 가면 나온다, 주인.
“좋아. 토르는 동력장치 챙겨.”
-그르릉-!
“두개 다 챙겨야 돼. 들 수 있지?”
-그륵- 그륵-!
물론 그런 이안의 의욕적인 움직임이, 그를 따르는 기사단원들에게는 부담스러웠지만 말이었다.
“이안 형.”
“왜?”
“설마 레벨 버프를 3중첩으로 만들려는 건 아니지?”
“맞는데?”
“……?”
“110레벨대나 130레벨대나, 거기서 거기지 뭐.”
“그, 그럴 리가 없잖아!”
“훈아, 쌓여 올라갈 경험치를 생각해.”
“그래도…….”
“너 벌써 레벨 한 개 오른 것 같은데?”
“그건 맞지만…….”
“잔말 말고 따라와. 3중첩까진 충분히 해 볼 만하니까.”
훈이와 이안의 대화를 듣던 다른 길드원들은 당연히 질린 표정이 되었지만, 그렇다 해도 반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냥 난이도로 인한 고통과 별개로, 그 이상의 경험치가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기 때문이었다.
‘그, 그래. 죽지만 않고 버티면 돼.’
‘이안갓만 잘 따라다니면, 초월 80레벨까지도 순식간일 거라고.’
‘후우, 이런 기회가 항상 오는 건 아니니까. 좀만 더 힘내보지 뭐.’
언제나 그랬듯. 달콤한 당근에 판단력이 흐려져, 채찍의 고통을 생각지 못하는 로터스의 길드원들.
그렇게 아침부터 시작된 그들의 사냥은, 해가 질 때까지 이어질 운명이었다.
* * *
“후우, 힘들었습니다, 마스터.”
“다들 고생했다. 정비를 시작하도록 하지.”
“예, 마스터!”
사냥이 시작된 지 3시간쯤 지났을까?
겨우 첫 번째 캠프를 전부 정리한 스콜피온길드의 길드원들은, 텅 빈 공터의 가운데 앉아 정비를 시작하였다.
근래 들어 최고 난이도로 인해, 긴장감 넘치는 사냥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길드원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시간 대비 어마어마한 양의 경험치가, 게이지에 가득 차올랐으니 말이었다.
“아쉬운 대로 신성기사단이라도 만들어서 오길 잘했습니다, 마스터.”
“그러게 말이야. 기사단 버프 없이 왔다가는, 아직까지 절반도 사냥해 내지 못했겠지.”
“확실히 그렇습니다.”
“천룡기사단을 못 만든 게 조금 아쉽긴 한데, 그건 다음 티어에서 만들면 되니까.”
“그렇습니다. 로터스에서 천룡기사단을 만드느라 길드 재정을 탈탈 털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후후, 하윈, 네 말이 맞겠지.”
“그리고 이런 난이도 높은 필드에서는, 오히려 천룡기사단보다 신성기사단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맞아. 유지력만큼은 신성기사단 버프를 따라올 수 없을 테니 말이야.”
전반적인 전투 능력과 위력적인 광역 버프에 초점이 맞춰진 용기사단과 달리, 신성기사단의 버프들은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회복 효과 증가 버프에 ‘빛의 부활’이라는 패널티 적은 부활 스킬이 주어지다 보니 사냥시의 리스크가 엄청나게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버프의 도움이 있었기에, 평균 60레벨대의 스콜피온 길드가 무려 90레벨대의 필드 사냥이 가능했던 것이고 말이다.
“대충 정비는 끝나가는 것 같으니, 정찰조가 돌아오는 대로, 다음 필드로 이동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마스터. 이 속도라면, 캠프 전부 도는 데 이삼일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아. 역시 하윈이야.”
흡족한 표정이 된 왕 웨이는 정비가 끝난 길드원들을 추스른 뒤 말에 올랐다.
다음 캠프를 돌고 나면 레벨도 하나 오를 것 같았으니,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마스터, 다음 캠프까지 루트 확보했습니다!”
“좋아, 그럼 출발하자고!”
왕 웨이와 하윈을 선두로 한 스콜피온 길드의 신성기사단.
기사단은 빠르게 두 번째 캠프까지 이동하였고, 이전보다 더욱 수월하게 몬스터들을 사냥해 나갔다.
몬스터들의 공격 패턴에 더 익숙해지다 보니 사냥 속도도 더 빨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냥은 아쉽게도 두 번째 캠프까지가 끝이었다.
“하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저, 저도 잘…….”
“어째서 기계 몬스터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건가!”
“누군가 사냥의 흔적이 보입니다, 마스터.”
“그새 정보가 새어 나간 것인가!”
세 번째 사냥터로 예정되어 있던 캠프에 도착한 스콜피온 길드의 앞에는, 황량한 벌판만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후우.”
연이어 막대한 경험치를 파밍할 생각에 설레 있던 왕 웨이의 표정은 실망감으로 가득 차 버렸고, 지금껏 자신만만하던 하윈은 안절부절못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어찌 된 일인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스터.”
“아니다 그럴 것 없어. 곧바로 다음 필드로 이동하도록 하지. 다른 사냥터들까지, 다른 녀석들에게 빼앗길 순 없으니 말이야.”
“옙!”
하지만 그들의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의 네 번째 목적지였던 캠프에는 꿀 같은 경험치 대신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고, 스콜피온 길드는 그것이 재앙임을 알아채지 못했으니 말이었다.
“저쪽입니다, 마스터!”
“오, 이쪽 캠프에는 사냥감들이 남아 있군!”
“그런데 뭔가 이전 캠프들보다 숫자가 적어 보입니다.”
“흠,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일단 눈에 보이는 녀석들부터 다 쓸어 놓고 생각하도록 하지.”
대략 한 캠프당 50마리 정도 있어야 하는 기계 괴수들이 서른 마리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스콜피온 길드원들은 의심 없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이 경험치 덩어리들을 한 녀석이라도 많이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사단원 ‘라오퉁’이 사망하였습니다!
-기사단 고유 능력 ‘빛의 부활’이 발동합니다!
-기사단원 ‘포르탄’이 사망하였습니다!
-기사단원…….
“뭐, 뭐야! 이게 무슨……!”
전장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기사단원 하나가 돌연사(?)한 것을 시작으로, 파티원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으니 말이었다.
“미친……!”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왕 웨이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파머스(파라켄의 기계군단)(희귀) Lv. 134(71+63)
전장의 한복판에 정확히 한 개 박혀 있어야 할 동력장치가 무려 세 개나 옹기종기 모여 박혀 있었으니 말이다.
“으아아! 후퇴, 후퇴하라!”
하윈과 왕 웨이는 뒤늦게 후퇴 명령을 내렸으나,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처음부터 녀석들의 레벨을 알고 대비했다면 이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미 진영이 무너져 버린 지금, 전멸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으니 말이다.
“크윽, 이게 무슨……!”
134레벨의 스텟을 가진 파머스는 비호와 같은 몸놀림으로 왕 웨이의 머리통에 쇠망치를 꽂아 넣었고…….
“커헉!”
그렇게 왕 웨이는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까만 잿더미로 산화할 수밖에 없었다.
-사망하였습니다.
-사망 페널티로 인해 레벨이 감소됩니다.
하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도 왕웨이는 알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전장에 박혀 있던 세 개의 동력장치가 원래부터 그곳에 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