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1화 7.하드코어 레벨링 (1) >
펄럭.
호른 봉우리의 서쪽 능선에, 새카만 전갈 문양의 깃발이 펄럭이며 수많은 유저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중국 서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스콜피온 길드의 깃발.
바로 중국서버의 카일란 스타인 ‘왕 웨이’의 친위대가 등장한 것이었다.
호른 봉우리에 나타났다는 기계 군단을 사냥하기 위해 스콜피온 길드의 최정예가 전부 한자리에 모인 것.
능선의 고지대에 올라선 왕 웨이가 멀찍이 기계 군단을 내려다보며, 하윈의 설명을 듣기 시작하였다.
“흠, 그러니까 저기 저쪽에 보이는 녀석들이 네가 말한 그 경험치 보따리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마스터.”
탁 트인 고지대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기계군단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왕 웨이와 하윈.
왕 웨이는 아끼는 아티펙트인 ‘탐색 망원경’을 꺼내어, 기계몬스터들의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무려 전설등급의 초월 장비인 탐색 망원경은 멀리 있는 몬스터의 정보를 볼 수 있는 고급 아티팩트였다.
“하윈.”
“예, 마스터.”
“들었던 거랑 좀 다른데?”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왕 웨이를 향해 하윈이 곧바로 반문하였다.
“예?”
“분명 초월 70레벨대 사냥터라 했는데, 쟤들 레벨은 90레벨 초반이잖아?”
왕 웨이의 망원렌즈 안에 들어온 기계 몬스터들은 이안과 천룡기사단이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기계 군단과 비슷한 집단들이었던 것.
그의 예상했던 의문에, 하윈이 곧바로 설명을 시작하였다.
“아, 그게…… ‘레벨 버프’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레벨 버프? 그건 또 뭐야?”
“실제로는 70레벨 초중반대 몬스터들인데, 저쪽에 보이는 기계 구조물들로부터 레벨이 30퍼센트 뻥튀기되는 버프를 받은 겁니다.”
하윈의 설명에, 왕 웨이의 두 눈이 살짝 확대된다.
그 역시 레벨 버프라는 개념은 이번에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으음……?”
“물론 레벨이 뻥튀기된 만큼, 능력치도 상승했지만 말입니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그렇지 않으면 버프의 의미가 없을 테니 말이야.”
설명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는 왕 웨이.
“하지만 레벨 버프로 인해 뻥튀기된 스텟을 감안해도, 버프 없이 90레벨대인 초월 몬스터들이랑 비교하면 훨씬 약합니다.”
그러나 하윈의 설명이 조금 더 이어지자, 왕 웨이는 금방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유 능력이나 등급 수준이 향상되지 않아서겠지.”
“바로 그렇습니다, 마스터.”
“뻥튀기된 레벨을 가진 녀석들은, 90레벨대의 몬스터들과 똑같은 경험치를 드롭할 테고 말이야.”
“크, 역시 마스터! 이해가 빠르십니다.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여기가 경험치 노다지라는 겁니다.”
왕 웨이의 비위를 맞춰주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하윈.
그런 그의 모습에, 왕 웨이는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하윈의 능숙한 아부(?)가 좋아서 왕 웨이가 그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하윈은 스콜피온 길드의 훌륭한 머리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보력은 물론 판단력과 두뇌까지.
하윈은 스콜피온 길드의 뛰어난 재원이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계획을 짜서 빠르게 공략해 보자고.”
왕 웨이의 말에, 하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설명을 이어 갔다.
“저희가 사전 탐사해 본 바로는, 몬스터 리젠도 엄청 빠른 지역입니다.”
“아주 좋군.”
“해서, 잘만 공략한다면 막대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겠지만, 자칫 필드 안쪽에 고립되기라도 한다면 엄청 위험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애초에 사냥터 레벨대가 낮은 편도 아닌 데다, 스텟만 90레벨 대라 하더라도 위험한 녀석들인 것은 확실하니 말이야.”
하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대충 이 인근에 캠프가 10개 정도 있는데, 확인된 캠프만 싹 다 털고 복귀해도 경험치 량이 엄청날 겁니다, 마스터.”
하윈의 말에, 왕 웨이의 표정이 더욱 흡족해졌다.
70레벨 이후로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량이 어마어마하게 뻥튀기된 탓에, 더딘 레벨 업이 불만이었던 요즘.
이런 특별한 사냥터의 정보는 꿀 같이 달콤했으니 말이었다.
“그럼 정비하고 바로 시작해 보자고.”
“옙, 마스터!”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찾아 뒀던 10개의 캠프들 중 이미 절반 정도가 싹 다 폐허가 됐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경험치가 거의 라카토리움 수준이네? 아니, 그보다 더 높잖아?’
이안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작(?) 70레벨대의 기계 몬스터를 사냥했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막대한 양의 경험치가 쭉 빨려들어왔으니 말이다.
초월 80레벨대의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던 라카토리움의 오염된 대지에서도 본 적 없었던, 달콤한 경험치 폭탄.
게다가 라카토리움보다 훨씬 더 빠른 사냥이 가능했으며, 사냥터의 리스트도 훨씬 적었으니 이안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
‘크, 이거 미쳤는데?’
그리고 이안은,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버프로 뻥튀기된 레벨 기준으로 경험치가 들어오는 거였어!’
기획 팀의 실수인지, 아니면 본래의 기획 의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안이 그것까지 헤아려 줄 필요는 없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 꿀 같은 요소를 최대한 잘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70레벨 이후로 숨 막힐 정도로 많아진 필요 경험치 때문에 답답했던 상황에서 단숨에 80레벨대 위로 뚫고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파라켄의 기계 군단 ‘파머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성혼의 낙인으로 인해, 위력이 증폭됩니다.
-‘파머스’의 내구도가 121,102만큼 감소합니다!
-‘성혼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4Stack)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성령의 힘이 폭발합니다.
콰쾅 – 쾅-!
-‘파머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파머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후략……
이어서 길드원들과 협력하여 기계 괴수들을 몇 마리 더 처치해 본 이안은, 예상하고 있었던 한 가지 사실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나 버프를 받지 못한 몬스터를 처치하면, 역시나 70레벨대의 정상적인(?) 경험치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한 이안은, 파티 채팅으로 빠르게 오더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안 : 다들 공격 중지. 작전을 좀 변경해야겠어.
-레미르 :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간지훈이 : 무슨 문제라도 있어 형?
-이안 : 일단 원거리 딜러들, 전투 동력 증폭 장치 포킹하던 것부터 다들 중지해 봐.
-레미르 : 응? 저걸 부숴야 얘들 버프가 꺼질 텐데?
-레비아 : 그러게요. 굳이 힘들게 싸우려는 이유가……?
길드원들은 일단 곧바로 이안의 오더를 따랐지만, 그래도 궁금증은 풀어 줘야 할 터.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이 다시 채팅을 시작하였다.
일단 설명에 앞서 충격적인(?) 선언을 시작으로 말이다.
-이안 : 70레벨 미만 기사단원들, 싹 다 70레벨 찍을 때 까지 지금부터 무한사냥이다.
-피올란 : ……?
-간지훈이 : 퀘, 퀘스트는?
-카노엘 : 형, 잠깐. 난 고작 62레벨이라고……!
-유신 : 헉……! 노엘이 70레벨 찍으려면 아무리 빨라도 보름은 걸릴 텐데?
-간지훈이 : 보름이 뭐야? 이건 무리라고……!
그리고 혼란에 휩싸인 기사단원들에게, 이안의 설득력 넘치는(?) 설명이 시작되었다.
* * *
기사단은 까다로운 설립 조건을 가진 만큼 강력한 버프 효과를 동반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상위 티어의 기사단인 ‘천룡기사단’의 버프 효과는 강력하였다.
*천룡기사단 버프 효과
(모든 버프 효과는, 3인 이상의 기사단원이 범위 내에 모여 있을 때만 발동합니다.)
-‘천룡기사단’ 소속의 파티원 전원 모든 전투 능력치 +30퍼센트
-‘천룡기사단’ 소속 모든 드래곤의 공격력 45퍼센트만큼 상승.
-‘천룡기사단’ 소속 모든 드래곤의 ‘브레스’ 계열 고유 능력 재사용 대기 시간 50퍼센트 감소.
-‘수호신수로 등록된 드래곤’의 속성과 같은 속성의 마법을 사용할 시 위력 30퍼센트만큼 증가.
-천룡기사단의 모든 ‘일반 공격’에는 탑승한 드래곤의 공격력에 비례하는 고정 대미지가 추가된다.
……후략……
기본적인 스텟 펌핑도 엄청났지만, 적응하고 사용하기에 따라 더욱 강력한 시너지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사단 버프 효과.
때문에 전투에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로터스의 랭커들은 신바람이 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다소 버거웠던 사냥터의 몬스터들이 살살 녹아내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쥬르칸 형, 어그로 모아서 이쪽으로!”
“버프 범위 밖으로 한 마리도 빠져나가면 안 돼! 경험치 아깝단 말이야!”
“알겠어! 나만 믿으라고!”
콰아아아!
쥬르칸과 이안의 어그로에 모여든 수많은 기계 괴수들이 어마어마한 브레스의 세례에 순식간에 까만 잿더미로 산화했다.
-기계 괴수 ‘프루탈’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기계 괴수 ‘프루탈’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기계 괴수 ‘파머스’를…….
……후략……
드래곤의 상징과도 같은 고유 능력인 드래곤 브레스.
사실 이 브레스는 강력한 위력을 가진 만큼, 긴 재사용 대기 시간을 갖는 고유 능력이다.
마치 대전 게임의 ‘필살기’혹은 ‘궁극기’와 같은 콘셉트의 고유 능력인 것.
하지만 용기사단의 버프를 받은 드래곤 브레스는 더 이상 궁극기가 아니었다.
버프를 받기 위해서 어느 정도 수준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지만, 그것에 익숙해질수록 더욱 강력한 DPS를 뿜어내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탈랭커급 전투력을 가진 이안이 미친 듯이 전장을 휘저으니.
기사단의 사냥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캬, 미쳤다. 이런 식으로 사냥이 가능할 줄이야!”
“그거 알아? 나 벌써 레벨 올랐어, 훈아.”
“헐. 형 경험치 게이지 바닥이었잖아?”
“그러니까. 이거 진짜 미쳤다. 일주일 내로 정말 70레벨 찍을 수도 있겠어.”
“크으으! 이안갓!”
순식간에 1레벨이 상승한 카노엘의 옆에서 감탄을 거듭하는 훈이와 레미르.
마침 옆을 지나던 이안이 산통을 깨는 무식한 발언을 첨가했지만…….
“일주일이라니. 사흘 내로 노엘이 70 만들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마.”
“…….”
그 협박(?)마저도 즐겁게 느껴질 만큼, 기분 좋은 기사단원들이었다.
“자, 가자고! 마스터님, 빨리 마저 쓸어버리고 바로 다음 캠프로 넘어가시죠!”
특히 가장 의욕이 넘치는 쥬르칸이 이안을 재촉하였고, 이안은 그런 신입의 자세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쥬르칸 님, 저랑 동갑이라고 하셨죠?”
“넵, 마스터!”
“이제부터 말 놓으세요. 오더하려면 그게 서로 편하니까요.”
“좋아! 시원해서 좋구먼!”
앞으로 더욱 편하게 마구 굴려먹겠다는 속뜻을 파악하지 못한 쥬르칸은 더욱 신이 났으며, 그렇게 이안과 기사단원들은 캠프 하나를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쿠쿵-!
콰아아아-!
그리고 수많은 기계 몬스터들로 가득 차 있던 전장에는, 어느새 전투 능력 없는 버프 타워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자, 이제 저거 부수고, 전투 마무리하죠?”
“다음 사냥터 가기 전에 빠르게 정비하자고.”
그런데 길드원들이 타워를 향해 공격을 시작하려던 순간.
뭔가 재밌는(?) 생각이 난 이안이 그들을 잠시 만류하였다.
“잠깐만 기다려 봐.”
“응?”
“또 왜?”
“한 가지 실험해 볼 게 생겼으니 말이야.”
이어서 이안은, 전투 내내 소환하지 않았던 ‘토르’를 갑자기 소환하였다.
그워어!
타워보다도 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오랜만에 이안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토르.
그런 토르를 향해 이안이 신박한 명령을 내렸다.
“토르, 저 타워 들어올릴 수 있어?”
그워어?
“땅 파서 저 타워 옮겨 보자.”
그리고 그 생각지도 못했던 명령에, 옆에 있던 레미르가 당황하여 물었다.
“응? 저걸 옮긴다고?”
물론 이안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고 말이다.
“응, 누나. 다음 캠프에 타워 한 개 더 박아서, 기계 몬스터들 버프 이중으로 먹여 보게.”
“그, 그게 가능할까?”
항상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이고 하드코어한 사냥을 하기 위해, 잔머리 굴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이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