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4화 4. 고대 성령의 유적 (3) >
* * *
마치 수많은 반딧불이 무리 짓는 모습을 연상케 할 정도로, 작고 반짝이는 빛무리들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어서 그것들은 각자의 위치로 제각각 날아가 자리를 잡았으며, 그렇지 않아도 밝았던 공간을 더욱 환하게 빛내기 시작하였다.
우우웅-
그리고 작은 빛의 방울 같은 생김새를 갖고 있던 그 빛무리들은, 제 자리를 찾아간 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하였다.
파앗-!
그것을 지켜보던 이안 일행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와……!”
-이것들이 성령의 유물.
그런 그들을 향해, 관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하, 어떤가. 다들 제법 놀란 표정이로군.
관리자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네. 정말 대단하네요. 이 많은 물건들이 전부 고대의 유물들이라는 거죠?”
-그렇다네. 고대의 초월적인 기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엄청난 물건들이라 할 수 있지.
이안의 눈이 반짝였다.
자부심 넘치는 관리자의 대사가 아니라 해도, 눈앞에 펼쳐진 아이템들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이템의 등급이나 이름이 메시지 박스로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외형만으로도 군침을 흘리게 할, 그런 비주얼을 가진 아이템들이었을 뿐이다.
‘이 유물들을 전부 가질 수 있는 건 아닐 테고…… 이제 어떻게 진행되려나?’
흥미진진한 표정이 된 이안이, 다시 관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관리자님.”
-말씀하시게, 도전자여.
“혹시 이 유물들 중, 제가 가질 수 있는 유물은 어떤 겁니까?”
-후후, 역시 안달이 난 게로군.
이안은 숨김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당연합니다. 이런 대단한 물건들이 눈앞에 있는데, 어느 누가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맞네. 맞는 말일세. 솔직해서 좋군.
고개를 끄덕인 관리자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고대 성령의 전당’에 등록된 자여.
“…….”
-자네에겐 여기 있는 이 모든 유물들 중 어떤 유물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다네.
“……그게 정말입니까?”
-단…….
잠시 뜸을 들인 관리자가 씨익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모든 유물을 가질 수는 없을 걸세.
“……?”
마치 선문답같은 관리자의 대사에, 잠시 당황한 이안.
하지만 그 당황도 잠시일 뿐, 이안은 금방 관리자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결국 이 유물들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 말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한담.’
관리자의 낚시(?)에 잠시 설렌 것이 기분 나빴는지, 속으로 툴툴대는 이안.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네, 이곳에 오기까지 관문들을 통과했었지?
“그랬죠.”
-그리고 아마 그 관문들에서, ‘성령의 빛’ 아이템을 얻었을 게야.
“맞습니다.”
-자네에게 몇 개의 성령의 빛이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바로 자네가 이 유물들을 갖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일세.
“재화…… 같은 건가요?”
-뭐,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지.
관리자의 말에, 이안의 두 눈이 다시 크게 확대되었다.
‘성령의 빛이라면, 쉰 개도 넘게 있을 텐데?’
이곳에 입장하면서 세 개를 사용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쉰한 개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유물과의 교환 비율이 몇 대 몇일지는 알 수 없었으나, 뭔가 대박의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했던 것.
그리고 이안의 그 ‘감’은, 관리자의 다음 대사로 인해 확신으로 바뀔 수 있었다.
-아마 이곳까지 편법을 쓰지 않고 정당하게 모든 관문을 통과했다면, 자네에겐 최소 세 개 정도의 성령의 빛이 남아 있을 게야. 그렇지?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실히 세 개 이상은 가지고 있죠.”
그리고 이안의 속내를 알 리 없는 관리자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한마디를 건네었다.
-그 정도라면 괜찮은 등급의 유물 하나는 가져갈 수 있을 걸세. 자네가 부디 좋은 유물을 얻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군.
신바람이 난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감사합니다, 관리자님.”
관리자에게 대답을 하면서도, 시선은 다른 곳에 고정되어있는 이안.
이미 그의 온 관심은, 유물들에 꽂혀 있었다.
* * *
최근까지 강도 높은 노가다로 인해, 항상 퀭한 표정의 길드원들로 가득했던 로터스의 중간계 거점.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 로터스 길드 거점은 무척이나 한산하였다.
길드 마스터인 헤르스와 부길마인 피올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 길드에서 고용한 NPC용병들을 제외하면, 정말 유저라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로터스가 평화로운(?) 이유는, 오랜만에 길드 일정이 비었기 때문이었다.
일년 365일 빼곡하게 들어차 있을 것만 같던 길드 플랜이.
어제, 오늘. 무려 이틀 동안이나 비는 초유의 사태(?) 가 벌어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에는 그간 고생한 길드원들에 대한 헤르스의 배려(?)가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로터스 길드의 다음 플랜은 완성된 용기사단과 함께 진행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길드 퀘스트들이었는데, 기사단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된 지금, 이안이 아직까지도 연락두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퀘스트들을 진행하며 길드원을 굴리는 것도 가능하였지만, 헤르스와 피올란은 그런 무식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안이 복귀한 뒤에 펼쳐질 강행군 속에서 길드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며칠 정도 푹 쉬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분명 진성이 녀석이 길드 퀘스트 목록을 확인하면, S 등급 퀘스트부터 아주 끝장을 보려고 하겠지. 그 전에 체력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어.’
하지만 길드거점을 아예 비워 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헤르스와 피올란이 거점에 남아 있었던 것.
두 사람은 거점 회의실에 마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헤르스 님.”
“말씀하세요.”
“아마 한동안은 용기사단 위주로 길드에서 밀어줘야겠죠?”
“아무래도요. 그렇지 않아도 이번 달 예산은 이쪽에 많이 집중해 뒀습니다.”
“기사단원 장비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맞추실 생각이세요?”
“흠, 글쎄요. 최소 영웅 등급 이상의 초월 장비로는, 싹 다 갖춰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예산이 어지간히 깨지겠네요.”
“어쩔 수 없죠, 뭐. 앞으로 용기사단이 상위 콘텐츠를 계속 뚫어 줄 텐데, 그 정도 투자는 사실 아까운 것도 아니고요.”
이안이 돌아오고 용기사단이 완성된 뒤.
앞으로의 컨텐츠 진행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헤르스와 피올란.
하지만 헤르스는 계획을 짜는 중에도, 한 가지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계획을 짜 놔도, 진성이가 오면 싹 다 의미 없어질 것 같긴 한데…….’
지금까지의 행보를 봤을 때.
며칠 연락이 두절된 다음이면, 언제나 상상 이상의 결과물을 가지고 나타나던 이안.
이안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린 헤르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 * *
“흐흐,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
관리자와의 대화를 마친 뒤 이안은 진열된 유물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느라 정신없이 유적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쉽게도 선택하기 전까지 구체적인 장비의 능력치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아이템들을 한 번씩은 살펴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안은 가지고 있는 성령의 빛을 최고의 효율로 사용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계산을 두들기는 중이었다.
-성령의 수호 투구
분류 : 투구
등급 : ???
성령의 힘으로 만들어진, 고대의 장비입니다.
강력한 힘을 내재하고 있는 장비이지만, 성령의 힘을 부여받기 전에는 그 능력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옵션
??? (초월)
??? (초월)
??? (초월)
*고유 능력
???
*해당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선, 아이템의 봉인을 해제해야 합니다.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 필요한 ‘성령의 빛’은 총 두 개입니다.
(한 번 봉인을 해제한 뒤에는, 사용된 성령의 빛을 회수할 수 없습니다.)
봉인된 정보 창에서 이안이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는, 해당 유물을 얻기 위해 필요한 성령의 빛 개수와 해당 아이템이 가지고 있는 옵션의 개수 정도.
이안은 이 정보들을 가지고, 최대한 짱구를 굴려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멀찍이서 그런 그를 지켜보는 관리자는, 아직까지도 오해하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후후. 성령의 빛 세 개로는 두 가지 이상의 유물을 가져가기 힘들 테니, 고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겠지.’
선택지가 많지 않은 이안이 최대한 좋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서, 신중히 유물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판단한 관리자.
아마 그가 실상을 알았더라면, 지금쯤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러한 관리자의 오해와는 별개로, 이안은 더욱 더 깊은 고민에 빠지고 있었다.
‘성령의 빛 쉰한 개를 어떻게 써야 최대한 효율적으로 잘 사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관리자와 달리, 불안한 눈빛으로 그런 이안을 지켜보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이안, 내 부탁을 잊은 건 아니지?
“당연하지. 걱정하지 마.”
-유물들이 당연히 탐나겠지만, 그래도 성령의 빛 하나는 나를 위해서 써 줘야 해.
그녀의 정체는 바로 이안의 어깨에 앉아 있는 미루.
미루를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유물 또한 당연히 성령의 빛을 사용해야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었고, 때문에 이안이 몇 개의 성령의 빛을 가진지 모르는 미루의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안이 충분한 성령의 빛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퀘스트를 버리고 유물을 선택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읏차! 이쪽에 있는 유적들만 확인하면 끝인가?”
그렇게 20분 정도가 더 지났을 즈음.
이안은 백 개도 훨씬 넘는 유적들의 정보 창을 한 번씩 다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유적을 확인하고 나자, 의외로 선택하는 데에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 이정도면 얼추 다 확인한 것 같네. 방금 생각한 대로 유물을 고르면, 쉰한 개를 정확히 다 쓸 수 있겠어.’
이어서 머릿속을 꼼꼼히 정리한 이안은 관리자에게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관리자님.”
-오오, 유물들은 다 구경하였는가?
“네. 방금 다 봤습니다.”
-그래. 어떤 유물을 고를지 선택은 하였고?
“넵.”
-신중하게 골랐으리라 믿겠네. 한 번 선택하면 다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니 말일세.
“물론입니다.”
관리자의 마지막 설명에, 기분 좋게 대답한 이안.
그런 그를 향해, 관리자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골라 보시게. 자네가 원하는 유물의 앞에 있는 원판에, 유물의 힘을 깨우기 위해 필요한 성령의 빛을 올려놓으면 된다네.
“옙!”
힘차게 대답한 이안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고, 관리자 NPC는 미소 지은 채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시종일관 인자한 표정이던 관리자의 얼굴이 굳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 잠깐. 자네 왜 그쪽으로 가는 겐가?
“네?”
-그쪽에 있는 유물들은 최소 다섯 개 이상의 성령의 빛이 필요한 물건들이라네.
“알고 있습니다.”
-뭐라고?
이안이 첫 번째로 선택한 유물이 바로, 이 유적 안에서 가장 비싼(?) 녀석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