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9화 3. 고대의 가디언 (2) >
* * *
지금까지 이안이 통과해 온 관문들은, 분명 최상급의 보상을 기대해 볼 수 있을 만큼 난이도 높은 콘텐츠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벌써 어떤 최종 보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많이 이른 시점이었다.
느낌상 이제 막 본격적인 콘텐츠에 진입한, 그런 시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안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집어다가 인벤토리에 쓸어 담고 싶게 생긴 아이템들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움직인 것이다.
‘한눈에 봐도 최소 신화 등급 장비들인데……. 정말 그냥 보상인 걸까?’
세 자루의 검 앞에 다가간 이안은, 검을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검병의 가운데에 박혀 있는 원형의 문양……. 이거 성탑의 외관에 박혀 있던 문양이랑 같은 건데.’
이안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내밀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좀 더 자세히 문양의 생김새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안은 화들짝 놀라며 한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띠링-!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으니 말이었다.
-잠시 후, 심연의 시험관이 등장합니다.
-고대의 힘에 의해, 소환수 ‘차르타’가 소환 해제되었습니다.
……후략……
위이잉-!
메시지가 주르륵 떠오름과 동시에, 함께 전당에 들어왔던 모든 일행들이 신기루처럼 허공으로 사라졌다.
아렌과 미루는 물론, 이안의 소환수인 차르타까지.
아직 어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안은 동요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이든 결국 이 ‘전당’이란 곳에서 인정받기 위한 과정일 것이었고, 그렇다면 메시지가 이끄는 대로 침착하게 움직이는 것이 최선일 테니 말이었다.
이안은 사라진 일행을 찾는 대신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그와 동시에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
-전당에 놓여 있는 심판 검을 선택하십시오.
-단 한 자루의 검만을 선택하여, ‘심연의 시험’을 치를 수 있습니다.
-‘빛의 도전자’ 자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성령의 심판 검’을 사용할 시 무기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시험관의 등장까지 남은 시간 : 60초
-59, 58, 57 …….
검들의 명칭은, 미루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대의 심판 검’.
시스템 메시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검을 선택하는 것은 ‘시험’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았다.
‘역시 이 검들은, 단순 보상으로 나타난 것들이 아니었어.’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이 정리된 이안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만약 이안이 세 자루의 검들을 발견하자마자 한 자루를 덥석 쥐기라도 했더라면, 아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강제로 그 검이 선택되어 버렸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 선택은 좋지 못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잘 선택하지 못한다면, 뒤가 더 고달파지겠지.’
60초라는 시간은 어떤 판단을 하기에 무척이나 짧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안은 오히려 더 침착해졌다.
머릿속의 정보들이 하나하나 정리될수록,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이안이 눈에 다시 들어온 첫 번째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빛의 도전자’ 자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성령의 심판 검’을 사용할 시 무기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는, 수험자가 선택지를 고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성령의 심판 검’이 저 세 자루의 검 중 어떤 녀석인지 정도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빛의 도전자’와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만 생각해 보더라도, 당연히 하얗게 빛나는 가장 오른쪽의 검이 성령의 심판 검일 터였으니까.
‘위력 버프를 받을 수 있다는 성령의 심판 검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하지만 이안은 백색의 검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것이 차선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절대 ‘정답’은 아닐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느꼈으니 말이다.
백색의 검을 뽑아 드는 대신 이안은 다시 한번 침착하게 메시지를 정독하였고, 빠르게 반복해서 읽던 이안의 눈에 ‘심연의 시험관’이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심연’이라는 부분에서, 이안은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탑의 바깥에서 만났던 세 마리의 가디언들. 그리고 성탑의 외관에 각인되어 있던 고대의 문양…….’
시간이 째깍째깍 흐름과 동시에, 이안의 머릿속에 어질러져 있던 남은 정보들이 빠르게 정리되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세 자루의 검들…….’
이어서 제한 시간을 5초가량 남겨 둔 시점.
“그래. 틀림없어……!”
뭔가 확신에 찬 표정이 된 이안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어서 이안은, 제단의 가장 왼쪽에서 부유하고 있던 시커먼 대검의 검병을 망설임 없이 쥐어 들었다.
스르릉- 철컹-!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모습과 달리, 과감하기 그지없는 선택!
그러자 그저 까맣기만 하던 검신에 기이한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띠링-!
-‘악마의 심판 검’ 아이템을 선택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첫 번째 성령의 시험이 끝날 때까지, 선택한 장비를 제외한 모든 착용 장비들의 성능이 봉인됩니다.
-고대의 힘에 의해 모든 스킬이 봉인됩니다.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악마의 심판 검’ 장비의 고유능력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안이 선택한 검은, 검병의 중앙에 흑요석같이 까만 문양이 새겨져 있는 악마의 심판 검.
그리고 이 검이야말로 심연의 힘을 상대하기에 가장 좋은 장비일 것이라고, 이안은 확신하고 있었다.
* * *
이안이 해답에 대한 힌트를 얻었던 부분은, 단순하게도 검의 색상이었다.
문양이 가진 색상과 검의 색상.
그리고 그 색상 간의 상성 관계.
그것이 속성인지, 아니면 특수한 어떤 세계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안은 결계를 통과하면서 체득했던 상성관계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얀 빛을 뿜어내던 가디언의 공격은 자색 빛깔의 결계로 막아 낼 수 있었고, 자색 빛의 회오리는 까만 빛깔의 결계로 막을 수 있었어.’
그리고 이안이 깨달은 것은, 여기서 ‘자색’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심연’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완벽한 근거에 의한 100퍼센트의 확신은 아니었지만, 정황 상 추론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비스’ 속성의 색상이 항상 자청색이었던 것을 떠올린 순간, 모든 퍼즐이 깔끔하게 맞춰졌으니 말이다.
‘지금껏 카일란을 플레이하면서, 어비스 속성에 상성이 좋은 속성은 본 적이 없었어. 그게 항상 의아했었지.’
사실 정령계에 오기 전까지, 이안은 어비스 속성이 그 어떤 상성 관계에도 영향받지 않는 ‘무속성’에 가까운 속성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령계에 오면서 ‘시온’이라는 속성을 알게 되었고, 어비스 속성이 시온 속성에 강력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역시, 기획자들이 그렇게 언밸런스하게 상성 관계를 만들어뒀을 리가 없지.’
그리고 지금.
이안은 어비스 속성을 잡아먹는 새로운 속성을 발견했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이 칠흑빛의 검이 뿜어내는 강렬한 기운.
어둠 속성과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다른 기운을 뿜어내는 이 속성이 바로, 어비스를 잡아먹을 수 있는 숨어 있던 속성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이 유적에서 말하는 성령이라는 개념이 어쩌면 시온 속성을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어비스에 상성이 좋지 않은 속성은, 내가 알기로 시온뿐이니까.’
새로운 사실을 깨달음과 함께 더욱 이 고대의 유적 콘텐츠에 흥미가 생긴 이안은, 점점 더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하였다.
‘이거, 재밌는데?’
그리고 검을 든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쿠우웅-!
모든 제한 시간이 지나가고, 장내에 커다란 공명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탑 전체가 진동하며, 이안이 서 있는 전당 안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하는 보랏빛 기운들.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낯익은 녀석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됩니다.
-‘심연의 시험관’이 나타났습니다!
키아아악 -!
사나운 녀석의 울음소리를 들은 이안은, 대검을 전면으로 치켜든 채 녀석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심연의 시험관 Lv. 99(초월)’
“시험관이라는 게 네 녀석이었냐.”
녀석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세르가의 성탑을 지키던 세 마리의 가디언 중 하나.
‘그래. 그렇게 액스트라처럼 지나가 버릴 퀄리티의 몬스터는 아니었지.’
그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기운에 살짝 긴장한 표정이 된 이안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심판 검의 정보 창을 빠르게 확인해 보았다.
-악마의 심판 검
분류 : 대검
등급 : 신화(초월)(봉인)
착용 제한 : 알 수 없음
공격력 : 999~999(봉인)
내구도 : 99,999/99,999
옵션 : ??? (봉인)
‘악마의 심판 검’으로 공격하는 모든 공격에, 추가로 ‘데몬Demon’ 속성이 부여됩니다.
*???(봉인)
봉인된 고유 능력입니다.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중략……
*악마의 낙인 (패시브)
적의 공격을 회피한 직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시, 피격된 대상에게 ‘악마의 낙인’이 각인됩니다.
‘악마의 낙인’은 5초 동안 지속되며, 낙인이 각인된 대상은 ‘데몬’ 속성의 공격에 한해 350퍼센트만큼 증폭된 피해를 입습니다.
‘악마의 낙인’은 최대 3회까지 중첩되며, 낙인이 3회 중첩된 대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시 해당 공격은 대상의 방어력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악마의 심판 검으로 공격 시에만 적용)
* 특수한 조건에 의해 한시적으로 생성된 아이템입니다.
이벤트가 종료되는 순간, 해당 아이템은 소멸됩니다.
고대의 악마들의 사악한 기운을 담은, 강력한 ‘악령의 유물’이다.
고대인들이 심연의 존재들을 상대하기 위해, 이 무기를 만들어 냈다고 전해진다.
‘쩝. 역시 이벤트성 아이템…….’
다행히 심판 검의 정보 창을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공격력이나 자잘한 옵션 같은 것들은 의미가 없었으며, 어떤 고유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봉인’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유능력은 패시브 하나였으니, 이해하기 어렵지도 않거니와 고민할 거리도 많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패시브를 터뜨리는 게, 제법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 말이지.’
-크르릉-!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자색 빛깔의 익룡을 향해, 이안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도약하였다.
타탓-!
이어서 커다란 이안의 검이, 녀석의 가슴팍을 향해 쏘아져 들어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