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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805화 (811/1,027)

< 805화 2. 세르가의 성탑 >

황금빛 아지랑이들로 만들어진 워프 게이트.

관문의 끝에 있는 그것을 통과하자마자 이안의 눈앞에는 익숙한 메시지들이 또다시 떠올랐다.

띠링-!

-모든 결계를 통과하였습니다.

-관문의 끝에 도달하셨습니다.

-남은 제한 시간 : 457초

-클리어 등급 : SSS+

-‘성령의 빛’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한계 이상의 기록을 달성하셨습니다!

-‘성령의 빛’ 아이템을 추가로 2개 획득합니다!

미루가 만들어 낸 얼음의 동굴을 따라 지하로 내려온 이안은, 이제까지 총 세 개의 관문을 돌파하였다.

세 개의 관문에 주어진 시간은 각각 10분.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이안이 걸린 시간을 전부 합하더라도, 10분이 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소모된 시간만 보더라도 이안이 얼마나 손쉽게 관문들을 클리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와……. 너 대체 뭐야? 전생에 차르타 라이더였어?

-우와, 정말 엄청나! 이런 실력이라면, 고대의 가디언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어!

이안의 어깨에 걸터앉은 채, 쉴 새 없이 감탄하며 쫑알거리는 미루.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이안은 으쓱하기 보단 오히려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이거 뭔가 불안한데? 절대로 이렇게 쉬울 리가 없잖아.’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당연히 모든 던전이나 연계 콘텐츠의 난이도는 처음에 가장 쉽고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도록 설계된다.

그리고 이안이 이곳 생명의 계곡에서 가장 처음 접했던 콘텐츠는, 바로 계곡의 안으로 진입하려면 통과해야만 하는 성령의 결계였다.

‘그건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려운 난이도였는데…….’

때문에 이안은 유적의 초입부터 등장한 결계 페이즈에 한껏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계곡 초입의 결계보다 조금만 더 어려워도, 충분히 실패 가능성이 있는 난이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안은 너무도 쉽게 세 개의 관문들을 통과해 버렸다.

난이도는 이안의 기준으로, 눈이 감기고 하품이 나올 수준.

이안은 뭔가 찜찜한 기분이 되었지만, 일단 첫 번째 관문 통과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을 한번 꼼꼼히 확인해 보기로 하였다.

초장에 쉽게 풀리는 듯하다가도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게 카일란의 콘텐츠들이었으니,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래. 긴장을 놓지 말자. 실수 한 번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하얗고 영롱한 빛이 흘러나오는 작은 구슬을 손에 쥔 이안은, 어둑어둑한 해저의 동굴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한 걸음 한 걸음 꼼꼼히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전진하는 이안 일행.

지금까지 쉼 없이 달린 이유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관문들이 전부 이어져 있기 때문이었고, 아직 새로운 관문이 나타나지 않은 시점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이제 수중水中은 벗어난 것 같은데…….”

이안의 중얼거림에 미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다.

-맞아, 이안. 이제 여기부터는 빠르게 움직일 필요 없어.

“오, 그래?”

-이제 내가 만든 얼음 터널이 녹는다고 해도 상관없거든.

“아하.”

미루는 방금 통과해 들어온 금빛 워프 게이트를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은 호수 바닥에서부터 연결된 지하 터널이지만, 저 황금빛 게이트를 물이 통과할 수는 없으니까.

미루의 설명을 전부 들은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휘유.”

아직까지 딱히 어려운 것이 없었음에도 긴장은 제법 하고 있었던 상태였지만, 시간제한이 더 이상 없다는 말을 듣자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이쯤 해서, 이 성령의 빛이라는 아이템을 한번 확인해 볼까?’

첫 관문부터 세 개씩 얻었지만, 정신없이 움직이느라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한 아이템.

여유가 생긴 이안은, 망설임 없이 ‘성령의 빛’ 아이템의 정보 창을 오픈해 보았다.

-성령의 빛

등급 : 전설(초월)

분류 : 잡화

성령의 힘이 담긴 유적의 파편입니다.

고대의 성판에 끼워 맞추면 ‘도전자’의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1회성 아이템입니다(사용하거나 필드에 드랍 하면, 소멸되는 아이템입니다).

*성령의 유적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면 아이템이 소멸됩니다.

*유저 ‘이안’ 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흠, 유적의 파편……. 그리고 도전자라…….’

시스템 창에 쓰인 정보들만으로는 정확한 판단이 쉽지 않은 특이한 퀘스트 아이템.

하지만 조금 머리를 굴려 보면 대략적인 용도 정도는 충분히 유추가 가능했다.

‘뭔가 추후에 이어질 콘텐츠에 입장하기 위한 티켓 같은 느낌이로군.’

지금까지 이안은 총 아홉 개의 구슬을 획득하였다.

만약 관문을 겨우 통과했더라면 세 개밖에 얻지 못했을 아이템을, 세 배수나 얻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콘텐츠 진행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리라.

저벅저벅.

꼼꼼히 정보 창 스캔을 마친 이안은, 구슬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조금 더 빠르게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두컴컴하고 울퉁불퉁하던 해저동굴의 지형이 조금씩 환해졌다.

* * *

어두운 통로를 지나 이안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울퉁불퉁하고 거친 바위들로 만들어진 협곡의 지하에, 황금빛으로 도배된 거대한 돔(Dome) 형태의 공간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돔 형태의 광장 가운데에는 화려한 문양들로 치장된 멋들어진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가운데로 높이 솟아 있는 원기둥 모양의 금탑과, 그 주변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세 개의 첨탑들.

첨탑들의 위에는 멋들어진 외형의 조각상들이 각각 세워져 있었고, 그것은 마치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굳이 녀석들의 모습을 표현하자면,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시조새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이안은 감탄스러운 을 숨길 수 없었다.

“와,이게 고대의 유적…….”

이안의 옆에 있던 미루가 친절히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나도 처음 와 는 곳이지만, 건물에 음각된 문양을 보니 성령의 유적이 확실하네.

“문양?”

미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다.

-응. 저기 보이는 저 육각형의 문양이 성령의 힘을 의미하는 모양이거든.

“아하.”

정육각형의 금빛 테두리 안에 역삼각형을 그리며 새겨져 있는 동그란 세 개의 문양들.

세 개의 동그라미들은 각각 하얀 빛깔과 까만 빛깔, 그리고 짙푸른 빛깔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그것은 무척이나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고 있었다.

그리고 미루의 설명을 들은 이안은, 문양을 더욱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이 육각형은 확실히 처음 보는 거지만, 저 안에 새겨진 세 개의 동그라미는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문양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천천히 건물을 향해 다가가는 이안.

하지만 잠시 후.

“컥……!”

이안은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건물의 가까이까지 접근하자,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것들도 시야에 들어왔으니 말이었다.

‘역시, 이렇게 쉽게 유적지 안으로 진입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멀리서 볼 때에는 그저 땅에 세워져 있는 줄 알았던 건물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이었고, 건물 주변의 대지는 정육각형의 모양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숙이 패여 있었던 것이다.

발을 헛디뎌 추락하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사망할 수 있을 정도의 까마득한 높이에, 한두 번의 도약 정도로는 절대 건너갈 수 없을 정도로 넓은 폭.

하지만 딱 여기서 끝이었다면, 이안의 표정이 구겨질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아무리 높고 멀찍한 곳에 떠있는 건물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비행 소환수를 탑승하면 접근이 가능했으니까.

다만 지금 이안의 입에서 한숨이 나오고 있는 것은, 유적의 주변으로 익숙한 푸른 불빛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결계가 있을 줄이야.’

유적의 주변에는 지금까지 이안이 공략해 왔던 성령의 결계들이 어지러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

이렇게 된 이상 이 현기증 나도록 까마득한 공간을 넘어 유적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역시 차르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저기 중간중간 결계 사이로 떠다니는 황금빛 발판을 밟으면서 여길 넘어가라는 얘기로군.’

순간 차르타를 탄 채 허공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상황을 상상하자 이안의 이마에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이안은 저 아래로 추락하느니 결계에 부딪쳐 알 수 없는 곳으로 튕겨나가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간제한이 없다는 정도인가?’

다시 침착한 표정이 된 이안은 차르타의 등에 탄 채 조금 더 가까운 곳까지 접근하였다.

어쨌든 카일란의 개발 팀이 공략 불가능한 컨텐츠를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띠링-!

이안의 눈앞에는 그를 더욱 당황시킬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추가로 떠오르고 말았다.

-성령의 유적, ‘세르가의 성탑’에 접근하였습니다.

-유적을 지키는 ‘고대의 가디언’들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메시지에 자신도 모르게 육성을 내뱉은 이안.

우웅- 우우웅-!

이안은 ‘고대의 가디언’이라는 녀석들을 찾기 위해 빠르게 시야를 옮기며 두리번거렸지만, 그것들을 먼저 찾은 것은 이안이 아닌 미루였다.

-이안, 저기……!

“……!”

시스템 메시지에 명시된 ‘고대의 가디언’이라는 녀석들은, 다름 아닌 첨탑 위에 조각되어 있던 조각상들이었던 것이다.

성령의 문양에 새겨진 세 개의 동그란 표식처럼, 황금빛 껍질을 벗어내고 각각 다른 빛깔을 뿜어내기 시작하는 조각상들.

뒤늦게 녀석들을 발견한 이안은, 빠르게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결계를 뚫기 이전에 저 녀석들을 먼저 처치해야 건물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안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

-끼요오오-!

-캬아아악-!

각자 커다란 날개를 허공으로 쫙 뻗친 세 마리의 가디언들은, 이안을 향해 날아오는 대신 다시 날개를 접고 자신들의 위치에 내려앉았다.

하여 멍한 표정이 된 이안이, 미루를 향해 물었다.

“저 녀석들, 왜 날 공격하지 않는 거지?”

그리고 이안의 물음에, 미루는 피식 웃으며 대답하였다.

-녀석들은 함부로 누굴 공격하지 않아.

“응?”

-다만 저 세르가의 성탑에 들어가려 하는 침입자를 공격할 뿐이지.

“그게 무슨……?”

-네가 저 결계 안으로 뛰어들기 전까지 녀석들은 너를 적으로 인식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야.

“…….”

미루의 설명을 들은 이안은, 더욱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그러니까 저 결계 안에서 저것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얘기잖아?’

과연 공략 자체가 가능한 페이즈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이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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