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3화 1. 고대의 요정, 미루 (2) >
* * *
루루의 목소리를 들은 이안은, 반사적으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고대의 유적이라는 이 녀석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보였고, 정보는 많을수록 좋았으니 말이다.
“미루가 뭐야?”
단도직입적인 이안의 물음에 루루가 간결하게 대답하였다.
-내 친구야.
“네 친구라면……. 정령?”
-맞아. 하지만 녀석은 나처럼 완전한 정령은 아니지.
“그럼?”
-반은 요정이고 반은 정령인 존재.
“……?”
순간 당황하여 멍한 표정이 된 이안을 향해, 루루의 말이 이어졌다.
-네 소환수 차르타랑 비슷한 느낌의 존재라고 생각하면 돼.
“정령수랑 비슷한 개념이라는 거야?”
-맞아. 미루는 고대의 ‘정령 연성술’에 의해 만들어졌던, 특별한 존재였거든.
“오호?”
루루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루루와 미루가 친구라는 부분이야 이안에게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지만, ‘정령 연성술’이라는 단어를 여기서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으니 말이었다.
‘정령 연성술이라면, 파프마 일족이 타락하면서 금기시 됐다던 그 금단의 비술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
이 얼음 안에 웅크린 채 갇혀 있는 작은 존재가 루루의 말처럼 정령 연성술로 인해 탄생한 존재라면, 이안은 한 가지 가정을 더 해 볼 수 있었다.
‘혹시 차르타 같은 정령수도, 최초에는 연성술에 의해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루루의 말처럼 저 얼음 안에 갇혀 있는 녀석과 마찬가지로, 차르타 또한 하프 정령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안의 느낌상, 이 하프들을 만들어 낸 근원이 바로 고대의 정령 연성술인 것 같았다.
‘어쩌면 여기서 유적을 뒤지다가 연성술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정령계의 메인 퀘스트를 공략하면서 언젠가는 꼭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했던 ‘정령 연성술’ 콘텐츠.
생각지도 못했던 타이밍에 그 실마리를 발견한 이안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기분이 되었다.
‘일단 이 녀석을 꺼내 놓고 한번 얘기해 보자. 그럼 뭐라도 나오지 않겠어?’
더욱 의욕적인 표정이 된 이안은, 물 밖으로 꺼내어 나온 얼음덩이를 천천히 녹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일단 뭍으로 나오자, 그 안에 갇혀 있던 유적(?)을 발굴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안이 두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진 얼음 덩어리는 라카도르의 용암까지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녹여내는 것이 가능했으니 말이었다.
아렌이 구사하는 화염의 정령 마법에 이안의 마그번까지 가세하여 불을 살살 지피니, 얼음은 금새 녹아 버리고 그 안쪽에 갇혀 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화르륵-
그리고 잠시 후.
쩌정- 쩡-!
쩍쩍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얼음 속의 존재가 바깥으로 벌떡 하고 튀어나왔다.
-아뜨뜨……! 뜨겁잖아!
얼음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촐싹 맞은 목소리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특이한 존재.
녀석과 눈이 마주친 이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 얼음이 다 녹지도 않았는데, 대체 뭐가 뜨겁다는 거야?”
그리고 이안의 목소리를 들은 녀석은 곧바로 찬물에 몸을 풍덩 담구며 인삭을 팍 구겨 보였다.
-난 얼음의 정령이야.
“……?”
-정말 약간의 열기만 느껴도 엄청 뜨겁다고.
“그래?”
-너 때문에 완전 녹아 버리는 줄 알았잖아.
잠시 차가운 생명수 안으로 잠수했던 녀석은 곧 다시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이어서 그녀는 몸에 남은 물기를 털어 낸 뒤, 등에 접혀 있던 작은 날개를 펼치고 허공으로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유심히 그의 모습을 살피던 이안의 눈에는, 살짝 이채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날개도 정말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잖아?’
신비하게 빛나는 푸른 빛깔의 실크를 몸에 두른, 예쁘고 작은 얼음의 정령.
허공에서 한 차례 빙글 회전한 ‘미루’는 이안 일행을 슬쩍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응……?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 미루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어? 뭐야. 루루, 네가 왜 여기 있어?
* * *
아렌이 이곳 생명의 계곡 안의 유적과 관계 있을 것이라는 이안의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정확히는 아렌이 아닌, 아렌의 정령인 루루가 이 생명의 계곡 컨텐츠와 관련이 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연계퀘스트를 통해 생명의 계곡에 도착한 유저를, 유적으로 안내해 줄 열쇠인 ‘미루’와 연결시켜주는 것이 바로 루루의 역할이었던 것.
그리고 이름에서부터 어느 정도 느껴지지만, 두 정령은 한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 같은 정령이었다.
정령들에겐 사람이나 동물처럼 형제자매의 개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따지자면 자매와 다름없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대체 쌍둥이나 다름없다는 두 정령의 생김새는 어째서 이렇게도 다른 것일까?
‘요정’이라는 수식어가 완벽히 어울리는 작은 소녀의 모습을 한 미루와 달리, 루루의 외모는 인간과 거리가 멀었다.
루루의 외형은 마치 형체가 없는 유령같은 느낌이었고, 때문에 겉으로만 보아서는 둘의 공통점을 찾기 힘들었으니 쌍둥이라기에는 너무도 이질적인 외모를 가진 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정령의 외형이 다른 이유는 사실 간단하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퓨어한 정령으로만 살아온 루루와 달리, 미루는 ‘정령연성술’에 의해 한 번 다시 태어난 적이 있었으니까.
-성령의 기운을 찾아 떠난다더니. 그동안 여기 얼음 속에 갇혀 있었던 거야?
루루의 말에, 미루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하였다.
-운이 나빴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계곡 사방에서 돌풍이 일어났거든.
-돌풍……?
-응. 그 때문에 눈사태가 일어나 사방에서 날 덮쳤고, 난 살아남기 위해 얼음이 될 수 밖에 없었어.
-스스로 얼렸던 거였어?
-뭐, 그런 셈이지.
두 작은 정령들의 대화를,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집중하여 들었다.
이들의 대화 안에 있을, 작은 단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대체 이 위험한 계곡에는 어쩌다 오게 된 건데?
루루의 물음에, 미루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였다.
-말했었잖아. 성령의 기운을 찾으러 떠난다고.
-응? 설마 성령의 기운을 찾아 도착한 곳이…… 이 계곡이었던 거야?
미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지금도 이곳 어딘가에서, 분명한 성령의 기운이 느껴져.
정령들의 대화를 듣던 이안은 호기심에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성령의 기운이라는 건 또 뭔데?’
마치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처럼, 궁금하기 그지없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둘의 대화가 끝난 다음에, 궁금증을 풀어도 늦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다행이야.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난 이곳에 영원히 갇혀 있어야 했을지도 몰랐어.
-왜?
-자연적으로 얼음이 녹기 전엔 나올 수 없었을 텐데……. 또 다른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곳 샤이야 봉우리가 녹을 일은 없을 테니 말이야.
미루의 말에, 루루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아니, 그렇지 않아, 미루.
-응?
-우리가 어쩌다가 이 샤이야 봉우리에 오게 됐을 거라고 생각해?
-으음……?
-얼마 전부터 샤이야 봉우리가 녹기 시작했어.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야.
루루의 말에 두 눈이 크게 확대된 미루가, 주변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어어, 그러고 보니……!
그리고 그와 동시에.
띠링-!
이안의 눈 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고대의 정령 미루 Ⅰ(히든)(에픽)’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고대의 정령 미루 Ⅰ(히든)(에픽)’
성공적으로 생명의 계곡을 찾아낸 당신은, 계곡의 호수 안에 잠겨 있던 고대의 정령 ‘미루’를 발견하였다.
고대의 정령이자 마력의 요정.
그리고 신비한 유적의 힘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존재인 미루.
하지만 이렇게 신비한 존재인 미루에게는, 오래전부터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그녀를 이렇게 특별한 정령으로 만들어 낸 ‘정령 연성술’이 미완성된 금단의 비술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고통받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불안정한 영혼으로 인해 항상 정신이 피폐하였던 그녀는, 결국 그녀를 만들어 낸 ‘파프마 일족’으로부터 탈출하여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루는, ‘성령의 유적지’에 묻혀 있다는 고대의 정령 연성술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여 완전한 고대의 연성술만 찾아낸다면,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던 것.
미루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그녀를 돕도록 하자.
그녀를 도와 성령의 유적을 찾아낸다면, 강력한 고대의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퀘스트 난이도 : A+ (초월)
퀘스트 조건 : ‘생명의 계곡’을 최초로 발견한 자.
NPC ‘아렌’과의 친밀도 80 이상.
‘엘프 정령술사, 아렌의 부탁 Ⅲ(히든)’퀘스트를 진행 중인 자.
클리어 조건 : 생명의 결정 채집 (0/20)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고대의 정령 ‘미루’와의 친밀도 +25
-정령수 ‘차르타’의 소환석.
최종 보상
-명성(초월) +45,000
-NPC 아렌과의 친밀도 +50
-???
* 거절하거나 포기할 시, 아렌과의 친밀도가 감소합니다.
미루의 이야기는 제법 길었다.
지금은 정령계에서 추방당한 파프마 일족의 정령술사와 계약하게 되었던 일부터 시작하여, 금단의 연성술에 의해 하프 정령이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스토리였기 때문에, 이안은 빨려 들어가듯 미루의 목소리에 집중하였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 미루라는 정령은 파프마 일족의 실험에 의해 희생된, 실패작 비슷한 녀석이었던 거네.’
그런데 한참 말을 하다 성령의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던 미루는, 갑자기 이야기를 멈추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당황한 이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미루를 향해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미루?”
-어딘지 모르겠지만 가까운 곳에서 성령의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래.
“성령의 힘……?”
그리고 이안이 미루에게 되물은 바로 그 순간.
촤아아-!
생명의 계곡 안에 들어가 있던 이안의 소환수 차르타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 이안의 옆에 착지하였다.
그리고 미루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 녀석……. 차르타 아니야?
차르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놀란 표정으로 이안에게 묻는 미루.
그런 그녀를 향해,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맞아. 정령수 차르타야. 이 녀석을 알고 있네?”
미루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모를 리가. 그렇지 않아도 얼음 속에서 빠져나오면, 가장 먼저 이 녀석을 찾으려고 했었는데 말이지.
“차르타를……?”
갑자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파악하지 못한 탓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이안.
그런 이안의 눈앞에 그의 궁금증을 풀어줄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연계 퀘스트 진행에 변수가 발생하였습니다.
-특수한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고대의 정령 미루 Ⅰ(히든)(에픽)’ 퀘스트가 강제로 완료됩니다.
-고대의 정령 ‘미루’와의 친밀도 가 +25만큼 증가합니다.
-‘정령수 차르타의 소환석’ 보상이 삭제되었습니다.
‘뭐, 뭔데?’
갑작스런 메시지에, 더더욱 혼란스런 표정이 된 이안.
하지만 메시지가 이어질수록, 이안의 표정은 점점 더 밝아질 수밖에 없었다.
-‘고대의 정령 미루 Ⅱ(히든)(에픽)’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특수한 조건으로 인해 퀘스트의 등급이 강화됩니다.
-모든 연계 퀘스트 클리어 최종 보상이 한 등급 강화되었습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