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800화 (28/1,027)

< 800화 7. 성령의 유적 (3) >

* * *

“뭐? 이안이 차르타를 잡았다고?”

기획 1팀의 사무실에, 또 한 번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정령계의 콘텐츠 업데이트 기획을 3팀에서 넘겨받은 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흔하게 벌어지는 상황.

기획 1팀의 팀장 김의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유대리를 향해 재차 물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경악에 가까운 김의환의 표정.

“다른 정령수가 아니라 확실히 ‘차르타’를 잡았다는 거지?”

하지만 그 물음에 돌아온 것은 아주 확실한 확인사살일 뿐이었다.

“예, 팀장님. 저도 모니터링 팀이 올려 보낸 리포팅 방금 봐서 알았는데, 오전에 발생한 사고라고 합니다.”

유대리의 입에서 나온 ‘사고’라는 단어에, 김의환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고? 하, 그래, 사고지. 생각해 보니 그냥 사고도 아니고 대형 사고네. 대형 사고야.”

“죄송……합니다.”

“아니, 뭐 자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나. 차르타는 원래 포획이 아예 안 되도록 의도된 녀석은 아니었는걸.”

라카도르의 경우 누군가 포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 자체를 하지 않았던 몬스터였던 반면, 이번에 잡혔다는 차르타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유저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이 배제되어 있는 녀석은 아니었었다.

물론 생명의 샘에서 포획하라고 만들어 놓은 녀석도 아니었지만, 컨텐츠를 더 진행하다 보면 차르타의 알을 얻을 수 있는 다른 경로의 퀘스트가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김의환이 ‘대형사고’라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안의 이번 행보 역시, 기획 팀의 의도를 완전히 박살 내 버린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치는 무슨 조치? 우리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있나?”

“…….”

순식간에 십 년은 늙어 버린 얼굴이 된 김의환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 앉았다.

간만에 맛있게 먹은 점심이 사레가 들려 소화가 안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후, 이안 이 미친놈은 뭐 이렇게 급진적으로 움직여?’

이안이 용암의 대지에서 벌려놓은 사고조차도, 아직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상황.

게다가 포획된 차르타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이대로 이안이 성령의 유적을 찾아내기라도 한다면, 또 다른 초월 장비 세트가 추가로 풀려 버릴 터.

그것이 전부 이안의 손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사실부터가 무척이나 가슴 아픈 데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콘텐츠 소모가 너무 빨라진다는 거지…….’

이안이 이렇게 강제로 정령계의 시나리오를 진행시켜 버리면, 메인 시나리오와 연결된 서브 퀘스트들이 자연스레 다른 유저들에게 풀려 나갈 것이고, 그것이 바로 콘텐츠 소모 속도를 가속하는 트리거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콘텐츠 소모 속도의 가속화는 곧, 기획 팀의 야근 횟수 증가를 의미하는 것.

‘대체 그 미친 소환수를 무슨 수로 잡은 거야? 운 좋게 한 번에 잡혔을 리는 없고……. 생명의 샘을 수백 번 뛰어다니면서 쫓아다니기라도 한 거야 뭐야?’

기억을 더듬어 생명의 샘 콘텐츠를 떠올린 김의환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김의환은 생각할수록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정을 되찾기 위해 한차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

하지만 한숨 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거니와, 그럴 시간에 더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할 터.

김의환은 자신의 머릿속을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었고,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해 보아야 했으니 말이었다.

‘차르타를 잡을 정도로 계속해서 생명의 계곡을 쫓아 다녔다면, 지금쯤 분명 엘프 NPC 아렌도 만났겠고…….’

급기야 김의환은, 서류 파일 안에 보관되어 있던 성령의 유적 연계 퀘스트 기획 문서를 펼쳐 읽기 시작하였다.

* * *

생명의 샘과 생명의 계곡. 그리고 이어진 성령의 유적지까지, 그 숨겨진 연계 퀘스트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차르타’였다.

그리고 퀘스트의 열쇠나 다름없는 차르타를 유저와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바로, ‘아렌’이라는 이름을 가진 엘프 소녀 NPC였다.

원래 생명의 샘을 쫓아다니다 보면 낮은 확률로 만나게 되어 있는 NPC가 아렌이었고, 아렌을 만나고 나서 ‘차르타’라는 희귀한 정령수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올바른(?) 순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상적인 루트로 이안이 움직였다면, 아마 이안은 차르타를 포획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포획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르타는 사실 포획해야 할 대상이 아닌, 생명의 계곡 안쪽으로 인도해 줄 NPC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였으니 말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의환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잠깐. 차르타를 포획해 버린 거면, 이안은 녀석으로부터 퀘스트를 받지는 못한 건가?’

차르타의 포획과 ‘차르타의 도움’ 퀘스트 수령이,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퀘스트를 먼저 수령했다면 녀석을 포획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녀석을 먼저 포획했다면 퀘스트 자체가 발동하지 않았을 테니, 이것은 완벽한 모순인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자, 곧바로 다음 문제가 김의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차르타로부터 이안이 퀘스트를 받지 못했더라도, 시나리오 설정상 아렌은 생명의 계곡을 찾으려 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차르타를 포획한 이안을 발견했다면, 아렌은 분명 이안과 함께 생명의 계곡을 찾으러 움직일 텐데…….’

이것이야말로 연계 퀘스트의 중간단계 하나가 빠진 채 다음 퀘스트가 진행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설마 버그라도 생기는 건 아니겠지?’

자칫하면 퀘스트 구조 상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음을 인지한 김의환의 표정은, 다시 사색이 되어 버렸다.

버그가 생긴다는 것은, 콘텐츠 소모가 빨라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크리티컬한 문제였으니 말이다.

다급해진 김의환이, 다시 유대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유대리.”

“옛, 팀장님.”

“이안 지금 NPC 아렌은 만난 거지?”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진행되는 거야? 아렌은 분명 생명의 계곡을 찾고 싶어 할 텐데.”

이어서 김의환의 질문을 받은 유 대리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물음에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 대답은, 또 한 번 김의환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미 아렌이랑 같이 생명의 계곡을 찾아서, 결계를 뚫고 있다고…….”

유대리의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반사적으로 커지는 김의환의 목소리.

“뭐?”

‘아니, 퀘스트 진행해 줄 NPC가 없어졌는데, 대체 어떻게 결계를 뚫고 있다는 거야?’

김의환이 당황한 것은 사실 너무도 당연하였다.

원래대로라면 차르타는 스토리 진행상 계곡의 결계를 뚫어주는 역할을 해야 했지만, 이안의 소환수가 되어 버린 지금은 NPC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을 테니 말이었다.

‘차르타가 태워 주지 않는다면 결계를 뚫는 게 거의 불가능할 텐데?’

여기서 ‘태워 준다’는 말은, 말 그대로의 ‘탑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차르타가 유저를 태운 뒤, 알아서 결계를 뚫고 내부로 들어가 주는 것 까지를 의미하는 것.

하지만 개인의 소환수가 되는 순간 그런 능력은 사라져 버릴 것이었고, 때문에 김의환은 그 부분이 의문스러웠던 것이었다.

‘설마, 성령의 결계에…… 그냥 헤딩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뭔가 의아함과 불길함을 동시에 느낀 김의환은 다시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유 대리가 그를 불렀지만, 그에게 설명해 줄 여유 같은 것은 없는 김의환이었다.

“팀장님, 어디 가십니까?”

“모니터링실.”

타타탁-!

그리고 금방 기획 팀 모니터링실에 도착한 김의환은, 벌컥 문을 열고 대형 스크린을 향해 시선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예상대로 모니터링실의 1번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는 것은 이안의 라이브 플레이 영상.

김의환의 시선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이안의 영상에 고정되었고, 잠시 후 의문점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

화면 안의 이안은, 정말 차르타를 컨트롤해서 결계를 뚫는 노가다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저, 무식한 놈이……!”

뭐 하나 예상대로 움직이는 법이 없는 이안의 행보에, 또 다시 현기증이 나기 시작하는 김의환.

하지만 당황은 잠시뿐.

그 화면을 응시하던 김의환은, 문득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가만. 이거 생각해 보니까 오히려 괜찮은 상황이잖아?’

원래 성령의 결계는 차르타와 친밀도를 쌓기만 하면 단숨에 통과할 수 있는 결계를, 이안이 자발적으로 힘들게 헤딩하고 있었으니 묘한 쾌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생각해볼수록 자승자박이 따로 없었던 것.

‘그래, 이안, 이 괴물 같은 놈. 이번에는 어디 골탕 한번 제대로 먹어 봐라.’

마치 조증이라도 온 사람처럼 순식간에 기분 좋은 표정이 된 김의환은, 다시 기획 사무실로 걸음을 돌렸다.

“후후, 으흐흐!”

그 광경을 목격한 부하 직원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수근 거렸지만…….

“티, 팀장님, 왜 저러시지?”

“혹시 너무 큰 충격에 실성하신 건 아닐까?”

김의환은 마냥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이안을 상대로 처음 느껴 보는 승리의 쾌감(?) 덕에, 야근으로 인한 우울감이 싹 날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승리(?)한 것이 기획 팀인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 * *

계곡을 감싸는 결계는,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두터웠다.

차르타를 탑승하지 않고 돌파했던 수준에서 조금만 더 뚫으면 계곡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한참을 더 들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덕분에 이안은, 차르타를 탑승한 뒤에도 두 번이나 더 실패를 맛봐야 했다.

‘이거, 생각보다 어려운데?’

그러나 이안이 어렵게 느끼는 것은, 사실 너무도 당연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유저가 플레이하라고 만들어 놓은 결계가 아닌 곳에 헤딩하는 중이었으니, 어렵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안과 아렌은, 그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었지만 말이다.

“와아, 아쉬워요. 이번엔 정말 통과하는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마지막에 그렇게 변칙 결계가 만들어질 줄은 몰랐어.”

“그래도 이안 님 정말 대단해요. 아마 이안 님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까지 올 수 있는 사람도 없었을 거예요.”

두 눈을 반짝이며 진심으로 감탄하는 아렌을 보며, 이안은 나쁘지 않은 기분에 피식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결계의 난이도에 머리가 아픈 것은 사실이었다.

‘용암의 대지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최근에 갑자기 왜 이렇게 게임이 어려워진 느낌이지?’

본인이 게임사의 기획 의도를 파괴해 버린 것이 원인이었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이안.

더욱 마음을 다잡은 이안은, 차르타가 가진 고유능력들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뒤 다시 도전을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까지 차르타의 고유 능력을 아껴야겠어. 특히 공령체나 공간 왜곡은, 외통수에 가까운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로 사용하지 말아야지.’

머릿속으로 경우의 수들을 한 번씩 떠올려 본 뒤, 거침없이 다시 결계를 향해 뛰어드는 이안.

-크허엉-!

하지만 그렇게 4~5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간 뒤에도.

‘이번에는 꼭……!’

십 수 번이 넘는 도전에 실패한 이안은, 오기로 가득 찬 얼굴로 또다시 결계 안을 뚫고 있었다.

“차핫……!”

-‘성령의 결계’에 부딪쳤습니다.

-10초 동안 이동속도가 20퍼센트만큼 느려집니다.

-현재까지 결계에 2회 부딪쳤습니다.

-결계에 3회 이상 부딪칠 경우, 계곡의 진입로로 강제 소환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낙오의 위기에 빠진 이안은, 바짝 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깨물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침착하자, 아직 한 번 남았어!’

그러나 잠시 후, 또다시 이안을 찾아온 외통수나 다름없는 결계 패턴.

“……!”

그것을 확인한 이안은 아껴 두었던 ‘공령체’ 고유 능력을 곧바로 발동시켰고…….

-소환수 ‘차르타’가 ‘공령체’ 고유 능력을 발동합니다.

-정신을 집중하여,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공령체’ 상태가 됩니다.

파앗-!

가까스로 충돌을 피해, 낙오를 면하는 데 성공하였다.

‘젠장, 벌써 이걸 써 버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이안의 위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령체를 사용하여 결계를 통과하던 그 찰나의 순간.

“……!”

차르타의 도약 경로에 또다시 나타난 세 개의 푸른 불빛이 이안의 시야에 들어왔다.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충돌 패턴이, 연달아 2회 발동한 것이다.

그야말로 외통수의 상황이 따로 없는 것.

“젠장……!”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은 이안은, 순간적으로 번개처럼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공령체의 지속 시간이 좀 더 길었다면 다음 충돌 패턴까지 통과해 버리면 그만이었지만, 분명히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크윽, 공간 왜곡이라도 쓸 수 있었다면…….’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한 가지 엉뚱한 생각이 이안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어차피 낙오할 바에야……!’

이안은 망설임 없이 떠오른 대로 차르타를 컨트롤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대로 결계에 충돌할 것처럼 보였던 이안 일행의 그림자가, 순간적으로 측면을 향해 급선회하였다.

타앗-!

이어서 이안과 아렌을 태운 차르타는…….

-크허엉-!

‘공령체’ 상태가 풀리기 직전, 측방에 있던 커다란 바위벽을 향해 그대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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