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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96화 (803/1,027)

< 796화 6. 정령수 차르타 (2) >

* * *

늘씬하고 날렵하게 빠진 몸매.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어깻죽지를 타고 흐르는 아름다운 잔 근육들.

그 위를 덮고 있는 은은한 은청빛의 가죽과 진보랏빛의 줄무늬들까지.

생명의 샘에 커다란 물기둥이 생기며 녀석이 등장한 순간, 이안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할 수 있었다.

‘이놈이다……!’

눈앞에 나타난 이 생명의 수호자가 지금껏 이안이 찾고 있었던 바로 그 녀석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른 녀석들보다 좀 더 늘씬하고 길쭉하게 휘어진 이빨을 가진 녀석이니, 아마 주군도 본다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거다.

카이자르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본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날카롭게 아래쪽으로 휘어진 어금니까지……. 카이자르가 말했던 녀석이 확실해.’

카이자르의 외형 묘사는 다소 간결한(?) 감이 있었지만, 녀석이 가진 가장 확실한 특징을 이야기한 것이었고, 덕분에 녀석을 곧바로 알아본 이안의 두 눈은 포획도 하기 전에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 외형도 아주 최상급이고, 마을에서 타고 다니면 만족감이 아주 훌륭하겠어.’

한껏 기대감에 부푼 이안은, 녀석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런데 다음 순간, 이안은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녀석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시스템 박스가 저절로 눈에 들어왔고…….

-생명의 수호자 ??? (Lv. 78)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이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말이었다.

‘뭐지? 78레벨이라고?’

지금껏 이안이 신나게 두들겨 팬 생명의 수호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초월 58레벨이었다.

해서 이안은 당연히 이 녀석도 같거나 비슷한 레벨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20레벨이나 높았다니……. 만약 이 녀석이 도주가 아니라 공격을 택했으면 카이자르나 헬라임도 애 좀 먹었겠는데?’

이안은 경시하던 마음을 깔끔히 버리고, 더욱 신중히 녀석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78이라는 레벨은 며칠 전 어렵게 잡은 불용이(?)보다야 훨씬 낮은 레벨이었지만, 어쨌든 아직 이안 자신보다 높은 레벨이었으니 말이었다.

게다가 소환수들을 대부분 다른 생명의 샘 스팟에 보내 놓은 지금, 이안은 소환수나 가신 없이 정령들만으로 녀석과 싸워야 했다.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끼이익.

이안이 활시위를 천천히 잡아당기자, 적막 속에 작은 마찰음이 울려 퍼진다.

이어서 수호자의 미간을 정확히 조준한 이안이, 침착한 동작으로 활시위를 놓았다.

피잉- 쐐애앵-!

이안의 손을 떠나 포물선을 그리며, 빠르게 수호자를 향해 날아가는 한 자루의 화살.

이안의 시선은 시위를 떠난 화살에 고정되었고, 곧 생명의 수호자가 있는 곳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크허엉-!

날카로운 파공성에 반응한 것인지, 녀석이 돌연 허리를 틀며 허공으로 도약하였다.

타탓-!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이안은,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엇!”

화살을 피하려 한다면 당연히 사선으로 뛰어올랐어야 하건만, 녀석이 오히려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마주 도약했으니 말이었다.

이대로라면 분명히, 이안의 화살에 그대로 수호자의 미간이 꿰뚫려 버릴 상황.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안은 순간적으로 기분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같았더라면 녀석이 화살에 맞은 뒤의 상황을 예측하여 곧바로 다시 활시위를 당겼을 이안이었지만,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었다.

‘이거 설마……!’

이안은 자신의 본능을 믿었고, 때문에 활시위를 당기는 대신 곧바로 허리를 틀어 대각선으로 몸을 날렸다.

타탓-!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은 방금 느낀 불길함의 정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히 방금 허공으로 도약한 생명의 수호자가, 어느새 이안의 바로 옆에 나타나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캬하아오-!

물론 한 박자 빨리 몸을 날린 이안은 녀석의 이빨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미친, 위험했잖아!’

용암 세트 덕에 방어력도 이전에 비해 많이 향상된 이안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중갑을 두른 기사 클래스급의 방어력은 아니었다.

녀석은 거의 80레벨에 가까운 높은 레벨의 에픽 몬스터였고, 대충 생김새만 보더라도 암살에 특화된 느낌의 맹수.

모르긴 몰라도 방금 무방비 상태에서 녀석에게 물어 뜯겼더라면, 아마 빈사 상태에 이를 정도의 어마어마한 치명상을 입었을 게 분명하였다.

‘미리 카이자르에게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방금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당할 수밖에 없었겠어.’

빠르게 창으로 무기를 스왑한 이안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침착하게 녀석과 대치하였다.

순식간에 공간을 무시하고 이동하는 녀석에게, 원거리 무기인 활은 상성이 좋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앉은 자리에서 사라져 버리는 녀석을 화살로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크르르르.

자신의 공격을 피했다는 것에 놀랐는지, 녀석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이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뻔했군.’

방금의 암습에 제대로 당해 이 자리에서 사망이라도 했더라면, 지난 이틀간의 노가다를 그대로 날려 버릴 뻔한 것.

이안으로서는 정말 가슴이 철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휘유.”

그렇다면 방금 전의 이 암습은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안은 이 변칙 상황을 어떻게 예측하고 본능적으로 대처할 것일까?

그 답은, 이안이 카이자르에게 들었던 이 생명의 수호자의 ‘고유능력’ 안에 있었다.

녀석은 이안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이안의 옆에 있던 ‘마그번’과 자리를 바꿨고, 덕분에 이안의 측 후방에서 변칙적인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볼수록 탐나는 녀석이잖아.”

더욱 흥미진진한 표정이 된 이안은, 으르렁대는 녀석을 찬찬히 관찰하였다.

일단 나타난 이상 어떤 수고를 들이더라도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녀석.

하지만 녀석을 잡기 위해서는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했다.

‘문제는 저 녀석이 다른 스팟으로 튀었을 때인데…….’

예상 이상으로 높은 녀석의 레벨 때문에.

다른 스팟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이 녀석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또 아니지.”

뭔가를 떠올린 것인지 히죽 웃은 이안이, 생명의 수호자를 향해 창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의외의 변수 때문에 예상치 못한 고생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았지만, 고생 끝에 얻는 열매가 더욱 달콤한 법이었다.

* * *

지금껏 생명의 수호자들을 잡으면서, 이안이 알아낸 규칙은 세 가지 정도였다.

첫째, 수호자의 생명력 퍼센트가 떨어질수록 도주를 시도할 확률이 급격히 올라간다.

둘째, 수호자를 공격하는 적의 숫자가 많을수록 녀석이 도주를 시도할 확률이 증가한다.

셋째, 수호자를 공격하는 유저의 레벨이 높을수록 수호자가 도주할 확률이 증가한다.

지금까지 수호자를 상대할 때, 이안은 이 세 가지 규칙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였다.

어쨌든 녀석이 도망치기 전에 포획하거나 처치해야 빠르게 다음 녀석을 만날 수 있었으니, 도주 확률을 최대한 줄이도록 신경 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녀석의 전투력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에 이안이 있는 스팟이 아닌 다른 스팟에서는 녀석을 상대하는 게 무척이나 힘들 것이고, 때문에 미리 생명력을 최대한 깎아 놓아 바로바로 도주하게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아무리 레벨이 높고 강력한 녀석이라 하더라도 생명력이 10퍼센트 이하로 남은 상태에서는 끊임없이 도주를 시도할 테니, 생명력만 바닥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바네사나 사라가 지키는 스팟으로 놈이 도망친다 하더라도 곧바로 쫓아낼 수 있게 될 터였다.

물론 녀석의 생명력을 바닥까지 깎기 위해서, 적잖은 공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방법은 단 하나.

녀석이 도망칠 때 마다 이안이 해당 스팟으로 쫓아가서 끈질기게 녀석의 생명력을 깎아 내는 것.

-이안 : 이 녀석 어디로 갔어?

-바네사 : 이쪽이야, 이안!

-이안 : 최대한 시간 끌고 있어. 내가 금방 거기로 갈게!

고유 능력들이 도주에 최적화되어 있는 녀석답게 한 번에 많은 생명력을 깎기도 쉽지 않았으니, 이안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안 :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돼.

-사라 : 알겠어!

다만 이 와중에 다행인 부분이 하나 있었으니, 이안 본인의 소환수가 지키고 있는 스팟으로 녀석이 이동했을 땐 편하게 커버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라이의 생명력이 닳고 있는 걸 보니 이번엔 북측 스팟으로 움직였나 보네.’

“공간 왜곡!”

덕분에 공간 왜곡을 활용하여 해당 소환수와 위치를 바꿔치기 하여, 곧바로 녀석을 따라붙을 수 있었던 것.

“-크, 크릉?(대체 어떻게 따라온 거지?)

그리고 하루 종일 끈질긴 근성을 발휘한 끝에, 이안은 드디어 녀석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일 수 있었다.

-크릉! 크허어엉!(저리 가라, 이 악마같은 놈아!)

“이제 그만 잡히는 게 어떨까, 친구?”

-크허엉!(싫어! 싫다고!)

게이지 바가 완전히 까만색으로 보일 정도로, 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수호자의 생명력.

이 상태에서도 녀석은 여러 번 포획을 거부하고 도주하였지만, 이안은 여유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이제는 도주해 봐야 1분 정도만 앉아서 기다리면, 다시 이안의 앞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으니 말이었다.

-크아앙!(저리 가!)

“포획!”

-크워어어!(살려 줘!)

“포획!

-크뤄어어……!(여긴 지옥이야……!)

“포획!”

그리고 가여운(?) 생명의 수호자는, 1시간을 더 버티지 못하고 결국 이안의 마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정령수(생명의 수호자) ‘차르타’를 포획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차르타’ 소환수를 포획하여,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근성의 테이머 Ⅱ(전설)(초월)’ 칭호를 획득합니다.

-‘전설’ 등급의 소환수를 테이밍하셨습니다!

-‘통솔력’ 능력치가 추가로 15만큼 증가합니다.

-‘친화력’ 능력치가 추가로 10만큼 증가합니다.

-‘정령 마력’ 능력치가 추가로 0.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소환 마력’ 능력치가 추가로 0.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후략……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안의 근성 앞에선 아무리 도주에 최적화된 소환수라 하더라도 버텨 낼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살짝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은근히 신화 등급이기를 기대했었건만, 다른 수호자들과 다름없이 전설 등급의 소환수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 줄 수 있는 것은 녀석이 ‘진화 가능’한 개체였다는 것 정도.

‘진화 조건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간 달성할 수 있겠지, 뭐.’

기대어린 표정으로 ‘차르타’의 정보 창을 오픈한 이안은, 빠르게 녀석의 고유 능력부터 쭉 훑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녀석을 잡으려 했던 이유가 특별한 고유 능력들에 있었으니, 전투력보다도 구체적인 고유 능력들을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유 능력들을 막 읽으려던 이안은, 화들짝 놀라며 시스템 창을 끌 수밖에 없었다.

부스럭.

분명히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건만, 낯선 외모의 여인 하나가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났으니 말이었다.

“저,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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