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4화 5. 다시 만난 정령수 (3) >
* * *
당근과 채찍질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숙한 조련술로, 난폭한(?) 불용이를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이안.
이안은 새로운 식구를 얻은 기분도 내 볼 겸, 아이언 대신 불용이를 타고 정령산의 창공을 날기 시작하였다.
쐐애액-!
“불용아, 저쪽으로 가자.”
-아…… 알겠다, 주인.
“저기 저 협곡 보이지? 저쪽으로 지나서 중턱쯤에 내려 설 거야.”
-저쪽으로 가도록 하지.
펄럭-!
탑승에 최적화된 아이언에 비해 승차감(?)은 떨어지는 편이었으나, 이안은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편리성, 실용성과 반비례하여 간지 점수가 올라간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이언의 외형도 신화 등급의 멋들어진 드래곤이긴 하였으나, 아무리 좋은 녀석이라도 계속 같은 녀석만 타다 보면 조금은 질리는 법.
자동차나 오토바이 애호가들에게 ‘기변병’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전투할 때야 무조건 아이언을 타야 하겠지만…….’
실없는 생각을 잠시 떠올리던 이안은, 목적지에 도착하자 사뿐히 바닥에 내려섰다.
지금 이안이 찾는 것은 생명의 샘.
정확히는 생명의 샘을 지키는 ‘정령수’ 녀석이었다.
“흠, 카이자르가 분명 이 근방에서 봤다고 했었는데…….”
이안은 숲속을 두리번거리며, 기동성 좋은 소환수들을 소환하였다.
이제 이안의 소환수들은 전부 다 초월 70레벨이 넘었고, 이 근방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레벨대는 60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따로따로 소환수들을 풀어서 정찰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흩어져서 수색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이 좋을 터.
“다들 뭐 찾으러 왔는지는 알지?”
이안의 물음에, 소환수들이 제각각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뿍, 알고 있뿍.”
“크릉, 생명의 샘을 찾으면 되는 거냐, 주인아.”
-끼요오오-!
그리고 그중 잘못 소환된(?) 한 녀석을 보며, 이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뿍뿍이는 잘못 소환했네.”
“뿍……! 지금 무시하는 거냐뿍.”
“무시하는 건 아닌데, 넌 다리가 짧잖아.”
“뿌뿍!”
최근 들어 의욕이 넘치는 뿍뿍이를 불용이의 등에 얹어 놓은 이안은, 피식 웃으며 숲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옆에 있던 카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묻는다.
“주인아, 그렇게 자꾸 욕심 부리면, 뿍뿍이처럼 대머리 된다.”
“음? 뭐가?”
“이번에 얻은 불용이까지 소환하면 통솔력이 빠듯한 걸로 아는데, 그 비리비리한 호랑이까지 잡으려고 욕심내니 하는 말이다.”
“아하.”
카카의 의문점은 당연한 것이었다.
처음 정령수를 만났을 때야 녀석이 조금은 메리트 있는 소환수였지만, 이제는 이안의 파티에 딱히 필요하지 않은 녀석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물론 잡아 놓으면 쓸모가 없지야 않겠으나, 이렇게까지 찾아다니면서 포획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는 것.
하지만 그런 카카의 의문에 대한 이안의 대답은, 여느 때처럼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그야 잡아 보고 싶으니까.”
“…….”
“좀 허약해 보이긴 해도, 일단 생긴 건 간지 나잖아.”
“흠, 확실히 할리보다 조금 더 멋진 것 같긴 하다.”
“크릉!”
대답은 단순하게 했지만, 사실 이안이 녀석을 잡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단서.
녀석의 성능이야 크게 기대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정령수’라는 처음 보는 종류의 소환수라는 사실만으로도 이안에게는 충분히 잡을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정령계에만 존재하는 종류의 소환수일 테고, 어쩌면 정령술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게다가 이안의 명을 받아 한동안 생명의 샘을 찾아다니던 카이자르와 헬라임은, 이안에게 재미있는 정보들도 몇 가지 물어다 주었다.
그것들을 써먹어 보기 위해서라도, 이안은 정령수를 찾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할리, 넌 저쪽으로.”
“크허엉!”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이 되어 으르렁대는 할리를 시작으로, 이안은 소환수들을 하나씩 숲속으로 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30분 정도 숲 속을 뒤진 이안 일행은, 어렵지 않게 생명의 샘을 찾아낼 수 있었다.
“크릉, 저기 있다, 주인아.”
“확실히 생명의 샘이네.”
“크르릉! 내가 제일 먼저 찾았다!”
“잘했어, 라이. 수고했어.”
“크릉- 크릉-!”
샘을 가장 먼저 찾은 라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이안은, 조심스레 생명의 샘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샘과 일정 거리에 도달하자 잠시 멈춰서 뭔가를 확인하였다.
‘흐음. 좌표가 8,712, 908……. 카이자르에게 들었던 좌표와 거의 흡사해.’
이어서 씨익 웃은 이안은, 등에 메고 있던 활을 꺼내어 들었다.
화륵-!
세트 효과 때문인지, 용암의 장궁은 착용하는 순간 붉은 아지랑이를 피어 올리기 시작하였다.
‘한 번에 잡을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쉽지 않겠지.’
스슥-!
풀숲 사이로 단숨에 이동한 이안은, 순식간에 생명의 샘 지근거리까지 도달하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쏴아아-!
-크허엉-!
시원스런 물소리와 함께, 샘물이 솟아오르며 익숙한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령수……!’
이안은 기다렸다는 듯, 활시위를 연속으로 당겨 화살을 쏘아 보냈다.
피핑- 핑- 핑-!
이안이 쏘아 보낸 세 발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빠르게 쏘아져 나갔고…….
쐐애액-!
이안은 더 이상 활을 당기지 않고, 허공을 가르는 화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쏴아-!
화살에 맞기 직전, 정령수의 몸이 푸른 물줄기로 변하며 허공에서 사라졌다.
마치 안개처럼 흩어진 것이다.
이안의 화살은 당연히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고…….
촤아악-!
사라졌던 정령수의 형상은 화살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나타났다.
녀석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고유 능력이 발동한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피하기 힘든 이안의 화살을 고유 능력을 사용해 무력화시킨 것.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안과 눈이 마주친 정령수는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뒷걸음질 치며, 이안을 향해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였다.
-크릉- 크허엉……!
그리고 잠시 후.
위이잉-!
새하얀 빛줄기와 함께, 녀석의 신형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물론 생명의 샘도 함께 말이다.
“후후.”
포획해야 할 녀석이 사라져 버렸음에도, 별달리 당황한 기색 없이 작게 웃는 이안.
그런 이안을 보며, 라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크릉! 주인, 저 녀석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크릉……?”
의아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갸웃하는 라이에게, 이안이 명령을 내렸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라이. 여기에 생명의 샘이 다시 나타나면 나를 불러 주고.”
“크르릉. 알겠다, 주인.”
라이를 숲속에 남겨 둔 이안은, 또다시 어딘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노가다를 위한 물밑작업의 시작이었다.
* * *
생명의 샘을 지키는 정령수인 생명의 수호자.
처음 녀석을 만났을 때 이안은 생명의 수호자가 고유한 몬스터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생명의 샘을 지키는 단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카이자르와 헬라임 덕에 이안은 생명의 수호자가 고유한 개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정령산에 존재하는 생명의 샘도 하나가 아니고, 그것을 지키는 수호자도 여럿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놀라운 사실은, 그 정령수들이 제각각 조금씩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자세히 보면 생김새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
그리고 이안은 그 각기 다른 정령수들 중에 구체적으로 원하는 녀석이 있었다.
-정말 신기한 녀석이었다, 주군.
-흠, 뭐가?
-전투력 자체는 다른 정령수들보다 훨씬 허약했는데, 특이한 고유 능력을 사용하는 녀석이었다. 도주에 최적화된 녀석이랄까?
-특이한 고유 능력이라……. 어떤 건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바윗덩이를 통과하기도 하고 커다란 나무를 무시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오호.
-게다가 제일 당황했던 게, 갑자기 자신의 위치를 나랑 바꿔 버리기도 하더군.
-……!
-무튼 엄청 까다로운 녀석이었다. 다른 녀석들보다 좀 더 늘씬하고 길쭉하게 휘어진 이빨을 가진 녀석이니, 아마 주군도 본다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거다.
지형지물을 무시하고 이동하는 능력과, 순간적으로 위치를 바꿔버리는 능력.
이안은 이 두 가지 능력이 무척이나 궁금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두 번째 능력이 더욱 탐이 났다.
그것은 얼핏 이안이 갖고 있는 공간왜곡과 비슷한 느낌의 고유 능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안이 생각하기에는 완전히 격이 다른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카이자르의 얘기만 들어서는, 사실 완전 사기 스킬이지.’
이안의 공간 왜곡은 본인이 소환한 소환수에만 발동시킬 수 있었지만.
카이자르의 이야기에 의하면, 녀석의 고유 능력은 적에게도 발동 가능해 보였다.
발동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조건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활용하기에 따라 전략적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능력인 것이다.
‘기왕 잡는 거, 그 녀석으로 잡아야겠어.’
그리고 녀석을 잡기 위해서 지금, 이안은 큰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도주에 최적화된 고유 능력들 때문에 가장 잡기는 힘들 녀석이었지만, 두 가신들로부터 얻은 또 다른 정보를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생명의 샘이 생성되는 좌표는 정해져 있는 것 같으니까……. 정령산에 있는 좌표란 좌표는 싹 다 뒤져서 찾아내야겠어.’
정령산 전체는 너무 방대하지만, 다행히 생명의 샘이 생성되는 위치는 산의 중턱에 한정되어 있다.
초월 레벨 50 정도의 필드에서만 생명의 샘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샘물을 퍼오기 위해 계속해서 샘을 쫓아다녔던 카이자르와 헬라임의 말에 의하면, 좌표의 숫자는 스무 곳 정도를 크게 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였다.
결국 찾아다니다 보면, 같은 자리에서 여러 번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안은, 그 정도는 충분히 전부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안의 발상은, 이번에도 기획의도를 처참하게 파괴해 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좌표를 찾아내서 소환수들을 토템처럼 하나씩 다 박아 두고 나타나는 정령수를 바로바로 쫓아내 버리면, 결국 녀석은 내가 있는 좌표로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겠지.’
정해진 좌표 내에서 랜덤하게 이동하는 정령수와 생명의 샘들.
이안은 그 모든 좌표를 찾아내서, 녀석들이 도망칠 구멍을 없애 버릴 생각인 것이다.
‘일손이 좀 더 필요할 수도 있으니 사라와 바네사를 불러야겠어.’
성실한 일꾼(?)인 두 쌍둥이 자매를 떠올린 이안은,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노동의 대가로 한 마리 정도의 정령수를 잡아 준다면, 아마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해 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