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3화 5. 다시 만난 정령수 (2) >
* * *
라카도르의 능력치는 이안의 기대 이상이었다.
루가릭스와 엘카릭스, 그리고 카르세우스에 비견하더라도 전혀 꿀리지 않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다른 소환수들보다 20 가까이 높은 레벨 때문에, 지금 당장은 이안의 소환수들 중 가장 압도적인 전투력을 가진 라카도르.
거기에 고유 능력까지도 신화 등급 소환수로서 손색이 없었으니, 이안의 입가에는 절로 웃음이 피어날 수밖에 없었다.
“으히히!”
라카도르의 고유 능력 구성은 다른 신룡들과 비슷하였다.
드래곤 브레스는 물론, 드래곤 스킨과 ‘마법의 일족’ 패시브까지.
여기에 라카도르만의 고유 능력인 ‘용암의 권능’과 ‘용암의 비’ 또한 다른 신룡들에 비해 꿀리지 않는 스펙이었으니, 만족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용암의 권능 (패시브)(강화)
태초의 용암과 함께 탄생한 신룡 라카도르는, 태생부터 용암의 권능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라카도르는 모든 화염 속성의 고유 능력과 마법에 ‘용암’속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화염 속성의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생명력이 10퍼센트만큼 회복됩니다.
*용암 속성 부여
-용암 속성의 공격은 대상의 마법 방어력을 10퍼센트만큼 무시합니다.
-용암 속성의 공격은 대상의 화염 저항력을 10퍼센트만큼 무시합니다.
-용암 속성의 공격에 피격된 대상은 10초 동안 마법 방어력이 25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용암의 비(액티브)
전장에 용암의 비를 내려 적들을 섬멸합니다.
20초 동안 전방 50미터의 범위에 강력한 용암의 비를 내리며, 떨어지는 용암덩어리 하나당 마법 공격력의 87퍼센트만큼의 위력을 가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용암의 비는 점점 더 많이 쏟아집니다.
*‘용암의 비’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대상의 이동속도가 1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용암의 비’에 의해 적이 처치될 때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10초만큼 회복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300초)
‘크, 루가릭스랑 같이 쓰면, 미친 광역 딜을 뽑아낼 수 있겠어.’
사실 ‘용암의 비’ 고유 능력은, 용암의 대지에서 이안이 라카도르를 상대했을 당시에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피해 범위가 넓긴 했지만 캐스팅 모션이 짧지 않아 반응하기 쉬웠고, 이안과 레미르 2인 파티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던전 안에 피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이 가진 다른 소환수들의 고유 능력과 이 용암의 비를 함께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떡대의 어비스 홀과 같이 적들을 묶어 놓을 수 있는 능력들이 같이 버무려진다면, 그야말로 재앙 같은 기술일 것이니 말이었다.
‘찰리스의 기계군단이 어마어마한 대군이라 하였으니, 적절한 타이밍에 광역 딜이 보강되었어.’
게다가 한 가지 더.
라카도르는 아직 까지 않은 복권을 한 장 더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언령 각성.
‘그리고 무엇보다 지능이 높은 게 마음에 든단 말이지. 이렇게 되면 아껴 뒀던 마력의 심장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각성의 수정과 마력의 심장을 사용한다면 라카도르 또한 고유한 언령 마법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었고, 어떤 강력한 마법을 얻을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라카도르의 상태 창 정독을 마친 이안은, 옆에서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녀석을 다시 불렀다.
“불용아.”
-…….
“불용이 대답 안 할 거야?”
-불용이가 누군지 모르겠다, 주인아.
“너잖아. 왜 모르는 척하고 그래.”
-여러 번 얘기하지만, 난 라카도르다, 주인.
“흐음…….”
제법 끈질긴 녀석을 잠시 살펴본 이안은, 인벤토리를 뒤적이기 시작하였다.
채찍(?)은 줄 만큼 줬으니, 이제 당근을 꺼내 볼 차례였다.
“불용이 주려고 마력의 심장을 구해 뒀는데……. 불용이가 없으면 이걸 누구에게 줘야 한담?”
-……!
“각성의 수정도 남아 있는 게 있으니, 이것만 쓰면 곧바로 언령 각성까지 가능할 텐데…….”
-거, 거짓말! 그런 귀한 물건을 주인이 갖고 있을 리 없다!
라카도르의 동공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레벨이야 루가릭스보다 높은 라카도르였지만, 아직 그는 언령을 부릴 수 있는 위격은 갖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가 아직 언령 각성을 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라카도르는 평생을 정령계의 ‘용암의 대지’에서 지내 왔고, 때문에 용천을 올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라카도르로서는 이안의 떡밥이 너무도 먹음직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마법의 일족인 드래곤에게 언령 각성이란 꿈같은 것이었으니, 이안이 꺼내 든 당근은 거의 외통수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라카도르의 기색을 알아챈 이안이, 씨익 웃으며 마력의 심장을 꺼내 보였다.
“흠, 분명 ‘라페르 일족’의 장로님들이 확실히 마력의 심장이 맞다고 하셨는데…….”
-허억, 라페르 일족이라면, 마법의 일족?
“응, 그렇지.”
-그들은 또 주인이 어떻게 아는 거냐?
“그거야 알 거 없고.”
-…….
라카도르의 표정을 슬쩍 살핀 이안은,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이 자신이 던진 떡밥을 아주 단단하게 물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단단히 코가 꿰인 녀석을 낚아 올리는 것뿐.
“불용아.”
-…….
“어쨌든 난 이 마력의 심장을 우리 불용이한테 줄 생각인데, 이거 받고 불용이로 살아갈래, 아니면 언령 마법 포기하고 라카도르로 살아갈래?”
-가혹하다!
“뭐가 가혹해? 선택은 네 몫인데.”
-크윽…….
거대한 몸집과 우락부락한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바닥에 풀썩 주저앉은 채 고개를 떨구는 라카도르.
그런 그를 향해, 이안이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우리 불용이, 이제부터 부르면 대답 잘할 거지?”
그리고 눈물을 머금은 라카도르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크흑, 알겠다. 주인…….
* * *
띠링-!
-차원의 균열 A-17구역, 길드 과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셨습니다!
-돌파 스코어 : 10,237,892
-돌파 등급 : SSS
-A-17구역 최대 스코어를 갱신하였습니다!(종전 최대 스코어 : 681,298)
-SSS등급을 달성하여, 길드 공헌도 획득량이 20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로터스’ 길드의 길드 공헌도가 8,691만큼 증가하였습니다.
……후략……
길드원들의 눈앞에 연달아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들.
그것들을 확인한 로터스 길드원들은, 멍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내용을 다 떠나서 한 번에 8,000이 넘는 길드 공헌도를 얻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대, 대박…….”
“8,000이라고?”
“이거 이러면 이제 3티어 요건 달성된 거 아니야?”
“아직 달성은 아닌데, 이렇게 한 바퀴만 더 돌면 될 것 같아.”
“미……쳤다.”
“갓 레미르……!”
방금 로터스 길드에서 공략한 차원의 균열 A-17구역은, 평소에 한 바퀴 돌면 500~1,000 정도의 길드 공헌도를 얻을 수 있는 구역이었다.
심지어 놀라운 사실은, 길드 과제 한 바퀴 도는 것으로 500 정도의 공헌도만 획득해도 결코 적지 않은 양이었다는 것.
그나마 로터스 길드에서 높은 스코어로 돌파하여 지금까지 다른 길드에 비해 많이 받았던 것이 500포인트에서 1,000포인트 정도였으니, 이번에 얻은 8,000포인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다.
“와씨, 여기 스코어 백만 뚫는 게 가능한 거였구나.”
“그러게. 지난번에 달성했던 68만도 거의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길드 과제의 경우, 돌파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갈 때 마다 기하급수적으로 획득 공헌도가 증가한다.
그런데 평소에 A등급 정도를 받았던 돌파 등급이 무려 네 단계를 점프하여 SSS등급이 되었으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8,000이라는 공헌 포인트가 성적에 비해 절대로 과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레미르 누나, 대체 2박3일 동안 뭔 짓을 했기에 그렇게 세진 거야?”
“후후, 이제 다들 내 말이 좀 믿어지시나?”
“비법 좀 공유합시다. 혼자 꿀 그만 빠시고.”
“글쎄, 꿀이라…….”
길드원들이 보내는 선망의 눈빛에 으쓱해진 레미르는, 감회에 젖어 눈을 감았다.
용암 세트의 뛰어난 성능을 느낄 때마다, 이안과 함께 고생했던 사흘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으니 말이었다.
“비법이야 이미 너희들도 알고 있잖아.”
“음?”
“이안이랑 1분도 안 쉬고 2박3일 노가다 뛰면, 너희도 이렇게 될 수 있어.”
“…….”
“깨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던전을 될 때까지 하다보면 이렇게 돼.”
“흠, 크흠……!”
어찌 되었든 레미르의 활약으로 인해, 최고의 스코어를 갱신하며 길드 공헌도를 쌓기 시작한 로터스 길드원들.
그들은 한껏 들뜬 얼굴로 다음 구역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스펙이 오른 레미르 덕에, 길드 과제 노가다 지옥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으니 말이었다.
“다들 정비 끝났으면 이동하자고! 처음부터 말했지만, 공헌도 높은 길드원부터 용기사단에 먼저 배정해 줄 거야.”
이어서 헤르스의 한마디에, 길드원들의 막판 의욕이 더욱 불타기 시작하였다.
* * *
깊고 깊은 정령산의 심처.
북서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자랑하는 마이얀 산맥.
아직 유저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마이얀 산맥의 중턱에는, 작고 아담한 오두막이 하나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오두막의 주인은, 누가 보더라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특별한 외모의 인물들이었다.
덜컹.
오두막의 문이 열리고, 늘씬하고 길쭉한 여인 하나가 안에서 튀어 나왔다.
백옥같이 새하얀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길쭉한 귀를 가진, 아름다운 얼굴의 여인.
그녀의 등에는 기다란 장궁이 매어져 있었고, 그녀의 어깨 위에는 작은 정령 하나가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루루, 정말 샤이야 봉우리를 감싸던 냉기의 폭풍이 사라졌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주인?
“그게 정말이라면, 이번엔 정말 ‘생명의 계곡’을 찾을 수도 있겠는걸.”
-신난다! 얼른 올라가 보자, 주인. 얼른 계곡에 가서, 콸콸 솟는 생명수를 마셔 보고 싶어.
여인의 어깨에 잠시 앉아 있던 ‘루루’라는 이름의 정령은, 더욱 신바람이 나게 빙글빙글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때, 오두막의 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칼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억지로 쥐어짜 낸 듯 작았으나, 또렷한 힘이 느껴지는 노인의 목소리였다.
“아렌, 오늘도 새벽부터 어딜 가는 것이냐?”
“생명의 계곡을 찾으러 갈 거예요.”
“고대의 전설일 뿐, 그런 것은 없다고 이 할아비가 여러 번 말하지 않았느냐!”
“일전에 만났던 고랄 장로님이 분명히 생명의 계곡은 존재한다고 하셨어요.”
“콜록, 커허엄……!”
“전 반드시 생명의 계곡을 찾아, 생명수를 가져올 거예요.”
“아렌…….”
“그것만 있으면, 할아버지께서도 다시 건강해지실 수 있는 걸요.”
“…….”
오두막에서 더 이상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자, 여인은 결연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치 다짐하기라도 하듯,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샤이야 봉우리엔, 분명히 생명의 계곡이 있을 거야. 난 그걸 꼭 찾아내고 말 거고.”
-맞아, 주인. 분명히 있을 거라니까?
이어서 빠르게 내달린 아렌은, 순식간에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이안으로 인해 사라진 ‘용암의 대지’ 때문에 발생한 사소한(?) 이벤트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