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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90화 (797/1,027)

< 790화 4. 용암보다 뜨거운(?) 근성 (2) >

* * *

이안은 꼼꼼하고 기억력이 좋다.

특히 게임할 때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 이안은 던전에 입장하면서 생성되었던 시스템 메시지들 중 중요한 포인트들은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시스템상의 룰을 최대한 잘 활용하는 것이 던전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안은, 기억하고 있는 룰을 바탕으로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 용암의 대지 마지막 스테이지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하기 위해서,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의 명제를 말이다.

“절대 서둘러선 안 돼, 누나. 최대한 침착하게 조금씩 공략해 보자고.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좋아.”

관문 돌파까지 제한되어 있는 50여 분이라는 시간.

하나의 관문에 주어진 이 시간은 절대치로 봤을 땐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긴 것도 아니었다.

이안과 레미르처럼 화염 저항을 단단히 무장하지 않았더라면, 50분 안에 관문의 보스조차 만날 수 없을 수준의 난이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안은, 정말 50분이라는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해서 시간이 많다고 이야기한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다섯 번째 관문지기에게 주어졌던 30분이라는 시간도 턱 없이 짧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울 히든 스테이지에 주어진 50분이 넉넉하다고 생각할 리 없는 것이다.

다만 이안과 레미르가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죽지만 않으면 무한정 트라이가 가능하다는 히든 스테이지의 룰.

그것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첫 트라이에선 50분 동안 살아남는 게 목표야. 알지?”

“그래. 일단 제한시간 끝날 때까지 버티기만 해도, 절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지.”

해서 이안과 레미르는 지금까지의 관문들을 트라이할 때 보다 더욱 조심스럽고 침착하게 플레이를 이어 나갔다.

관문 보스까지의 길이 미로 던전의 절반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10분이상의 시간을 소모해 가며 모든 잡몹들을 싹 다 정리하면서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관문의 끝에 도달했을 때.

끓어오르는 용암 위로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며, 드디어 베일에 가려져 있던 히든 스테이지의 관문지기를 만날 수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문지기‘들’을 말이다.

우릉- 쿠르르릉-!

-그그극-!

-크워어어-!

마치 관문 내부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진동하는 던전 내부의 구조물들.

쾅- 콰앙-!

떨어져 내리는 용암덩이들을 피해 가며, 이안과 레미르는 침착하게 시야를 확보하였다.

갈라지는 용암 사이로, 어떤 녀석들이 등장하는지 확인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

“미친……!”

두 사람은 입을 쩍 벌리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파멸의 염옥’ 관문지기들이 너무도 익숙한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와 씨, 얘들을 한 번에 상대하라고?”

이안의 눈동자에 비친 관문지기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다섯의 용암의 수호자들이었던 것이다.

* * *

“휴우, 그래도 이렇게 다 때려 박아 넣어 놓으니, 아무리 이안갓이라도 어쩔 수 없군요.”

“용암 수호자 하나하나가 사실 어지간한 초월 던전 보스급이 넘는데, 다섯 놈을 관문 하나에 집어넣어 놨으니 뭐…….”

“크, 역시 나 팀장이야! 이 정도는 준비해 놨을 줄 알았어!”

라바 드래곤이 잡힐 때까지만 해도 우울한 분위기였던 기획 팀의 모니터링실.

하지만 고작 40~5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니터링실의 분위기는 축제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이렇게 반전된 이유는, 당연히 한 가지였다.

-잔여 도전 시간 : 275초

-모든 도전자가 사망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관문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정확히 4분 35초가 남은 시점.

이안과 레미르의 파티가 히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기는커녕, 보스 룸에서 전멸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전멸도 그냥 전멸한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다섯의 용암 수호자들 중 단 한 녀석도 처치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리타이어하고 만 것이다.

“팀장님, 이제 퇴근해도 되겠죠?”

“휴, 맘 졸이느라 혼났네. 뭐 용암 풀셋 풀린 것만 해도 좀 뼈아프긴 하지만, 그 정도야 하루 이틀 야근이면 커버할 수 있겠지, 뭐.”

“박 대리. 아직 도전 횟수 3회나 남았는데, 다 안 보고 퇴근하려고?”

“에이, 팀장님, 방금 보지 않으셨습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전멸해 버리는 거요.”

“그건 그렇지.”

“두셋이라도 잡았거나 아슬아슬했다거나 하면 모르겠지만, 이건 이미 답 나왔습니다.”

“하긴. 그냥 스펙 자체가 아직 부족한 걸로 보이는데, 아무리 이안이 날고뛰어도 이번에는 무리겠지.”

“그러니까 팀장님들도 얼른 퇴근하십쇼. 버스 지하철 다 끈길 시간입니다.”

“흐음, 그, 그래도 될까?”

모니터링실을 가득 메우고 있던 기획 팀의 직원들은,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그들이라도 사무실에서 날짜가 바뀌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열두시가 되기 전 후다닥 모니터링실을 벗어난 것이었다.

물론 이안과 레미르의 플레이를 끝까지 보고 싶은 이들도 있었지만, 굳이 그것을 야근까지 해 가며 볼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기획1 팀의 팀장, 김의환도 마찬가지였다.

“좋아. 그럼 슬슬 나도 짐 챙겨서 나가 볼까?”

하지만 모니터링실에 있던 이들 중 단 한 명.

아직까지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의자에 엉덩이를 무겁게 붙이고 있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나 팀장, 자네는 퇴근 안 해?”

“음……. 예, 팀장님. 전 조금만 더 있다가 퇴근하려고요.”

“설마 이 상황에서 이안이 이변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글쎄요. 그건…….”

사실 후련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다른 기획 팀 직원들과는 달리, 나지찬의 표정은 그다지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첫 번째 트라이에서 이안 파티가 시원하게 리타이어하는 모습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이다.

‘이안과 레미르는, 충분히 두셋 정도 처치할 능력이 있었어.’

일전에도 설명했지만, 다섯 수호자들 사이에도 전투력의 차이는 명확하게 존재했다.

1, 2, 3번 수호자인 골렘과 광전사, 그리고 루칼로스의 전투력과 4, 5번 수호자인 메이지와 드래곤 사이에는 압도적인 고유능력과 스텟의 차이가 존재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방금의 전투를 보면서 나지찬이 느끼기에 이안과 레미르는 적어도 1, 2, 3번 수호자 중 둘 정도는 처치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나지찬이 보기엔, 두 사람이 의도적으로 보스들 주변을 빙빙 도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분명 이안과 레미르는 적극적으로 딜을 넣지 않았어. 뭔가 겉도는 느낌이었단 말이지.’

그리고 관문에 입장한 지 4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둘은 결국 메이지와 드래곤의 연계 페이즈에서 전멸하고 말았다.

라바 드래곤의 고유 능력인 ‘용암의 권능’과 메이지의 고유능력이자 저항력 관통 스킬인 ‘화염 지배’가 연계되면서 단숨에 녹아내리고 만 것이었다.

‘일단 더 지켜봐야겠어. 난 이안갓이 4회 차까지 싹 다 날려먹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해야, 잠이 올 것 같으니까 말이야.’

나지찬은 모니터링실에서 밤을 지새울 요량으로, 아예 소파에 몸을 푹 묻어 버렸고, 그것을 본 김의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걸음을 돌렸다.

“그럼 나 먼저 퇴근할게. 수고해, 나 팀장.”

“예, 들어가세요, 팀장님.”

그리고 곧 북적이던 모니터링실에는, 어느새 감자칩을 꺼내 든 나지찬 혼자만이 조용히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 * *

-잔여 도전 시간 : 275초

-모든 도전자가 사망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관문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하얗게 변했고, 어느새 두 사람은 관문 대기실로 강제 소환되어 있었다.

둘 모두 남아 있는 생명력은 1퍼센트 남짓.

사망에 이르는 피해를 입은 것이 확인되자, 시스템이 자동으로 관문 낙오 처리를 하여 두 사람을 대기실로 소환시킨 것이었다.

“젠장. 결국 기회 한번 날려 버렸네.”

“괜찮아, 아직 세 번이나 남아 있으니까, 뭐.”

“조금만 빨리 반응했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었는데, 용가리 녀석이 ‘용암의 권능’을 그런 식으로 사용할 줄 몰랐어.”

“어쩔 수 없지 뭐. 하지만 이제 알았으니까 당할 일은 없을 거야.”

대기실에 도착한 이안과 레미르는, 툴툴거리며 정비를 시작하였다.

일단 포션과 회복마법을 이용하여, 생명력을 전부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두 사람이 가진 회복계열 마법이라 봐야, 붕대감기 수준의 초급 마법이었지만 말이다.

-생명력이 1,022만큼 회복되었습니다.

-생명력이 978만큼 회복되었습니다.

……후략……

관문지기에게 거의 흠집조차 내지 못한 채로 한 번의 기회를 날려 버린 두 사람.

하지만 어쩐 일인지, 두 사람의 표정은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첫 번째 트라이 전 대기실에 있을 때보다도 더욱 의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50분까지 못 버티고 기회를 한 번 버렸으니까, 이번 트라이에서도 같은 전략을 한 번 더 쓰는 게 좋겠지?”

레미르의 물음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물론이야. 이번에는 50분 다 지날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테니, 기회를 날려먹을 일도 없어.”

“그렇겠지?”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흐흣.”

이안과 레미르가 단 하나의 보스도 처치하지 못했던 이유.

그것은 나지찬의 예상대로, 두 사람의 ‘의도’와 관련이 있었다.

둘은 애초에 첫 번째 트라이에서 보스를 잡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50분 내내 버티면서 보스들이 가진 모든 고유 능력의 조합을 상대해 보고.

그에 최대한 익숙해질 때까지 적응하여, 50분 동안 생존하는 게 목표였던 것.

물론 변칙적인 공격에 타이밍을 놓쳐 5분 여를 남겨 놓고 낙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번에 당한 수법에만 완벽히 대응한다면, 50분 동안 버텨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확신을 얻었으니 말이다.

두 번째에서 실패하면 적어도 세 번째 트라이부터는, 죽지 않고 50분을 버틸 자신이 생긴 이안과 레미르였다.

“자, 준비 끝났으면, 다시 들어가 보자고.”

“좋았어. 세팅 완료!”

“그나저나 누나, 제법 오래 전투한 것 같은데, 평소보다 더 쌩쌩해 보인다?”

“으흐흐, 강화된 용암지팡이가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피곤 따위가 느껴지겠냐?”

“하긴, 그것도 그래.”

“아마 여기 클리어 못 하고 아웃되기라도 하면, 억울해서 잠이 안 올지도 몰라.”

“…….”

여느 때와 달리, 오히려 이안보다도 더욱 의욕적인 레미르의 모습.

-‘파멸의 염옥’ 관문에 입장하셨습니다.

-관문 돌파 제한 시간 : 3,000초

그리고 한 번의 도전 기회를 더 소모한 끝에, 두 사람은 결국 ‘50분 동안 살아남기’라는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띠링-!

-제한 시간이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관문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파티원 모두가 생존하였으므로, 소모했던 1회의 도전횟수가 다시 회복됩니다.

우우웅-!

“좋았어!”

“크, 이제 시작이지!”

총 두 번의 도전 기회를 남겨 둔 두 사람의 본격적인 던전 공략이 비로소 시작된 것.

-제한 시간이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관문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중략……

-제한 시간이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관문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후략……

이안과 레미르는 지치는 기색 없이 계속해서 관문에 헤딩하기 시작하였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한 번의 트라이에 50분이라는 시간이 소모되니, 열 번 정도 만에 아침 해가 밝아 버린 것이다.

-제한 시간이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관문대기실로 이동합니다.

“좋아. 이제 몇 번만 더 하면 답이 보일 것 같아.”

“방금 괜찮았어, 누나. 세 번째 페이즈에서도 이렇게 하면, 시간을 5분은 단축시킬 수 있을 듯.”

“오케!”

그리고 이안과 레미르가 근성의 관문 헤딩을 계속하는 동안, 밤늦게 퇴근했던 기획 팀의 직원들은 전부 다시 모니터링실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

출근 시간까지 이안의 트라이가 계속되고 있다는 비보(?)를 받은 마당에, 다른 업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와, 저 괴물 같은 놈……!”

“밤새 저렇게 헤딩하고 있었던 거야?”

“으아아! 저거 저러다 클리어하겠는데?”

“나 팀장님께 들었는데, 방금 전 트라이에서 드래곤 하나 남기고 싹 다 전멸시켰었대.”

“하아, 저 미친놈 누가 어떻게 좀 해 봐!”

그리고 모든 직원들이 모니터링실에 모인 뒤로부터도, 3시간 정도가 더 지났을 무렵.

“아디오스…….”

“저 야근 준비하러 갑니다.”

“눈에서 자꾸 땀이 나는데……. 이거 왜 이런 거죠?”

기획 팀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50분의 제한 시간이 1분 남은 시점에서, 라바 드래곤의 생명력이 1만도 채 남지 않았으니 말이었다.

이안과 레미르의 공격 중 아무거나 한두 방만 들어가도, 던전 클리어는 기정사실화된 상황.

그런데 바로 그때.

기획 팀의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뭐야, 쟤 왜 저래?”

“뭐지? 갑자기 왜 멈춘 거지?”

당장이라도 라바 드래곤을 처치할 것처럼 보였던 이안과 레미르가 갑자기 공격을 중지한 것이다.

1분이라는 시간은 금세 지나가 버렸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안과 레미르는 또다시 대기실로 소환되어야만 했다.

-제한 시간이 모두 소모되어…….

다른 기획 팀 사원들은 물론, 나지찬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믿을 수 없는 상황!

“뭐, 뭐야 대체?”

그리고 아무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사실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제한 시간이 종료되기 전, 마지막 순간.

이안의 입에서 흘러나온 나지막한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으니 말이었다.

“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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