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7화 3. 용암 속의 비밀 (2) >
* * *
“봤지, 나 팀장?”
“…….”
“이제 어쩔 거야?”
“뭘…… 말입니까.”
“지금 고작 세 번째 관문이라고.”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세 번째 관문에서 ‘암염의 루칼로스’가 잡혔어.”
“그러네요.”
“보스는 두 녀석 남았고, 이안에게는 일곱 번의 기회가 남았지.”
“…….”
모니터링실의 구석에 조용히 앉아 은밀히 담소를 나누는 나지찬과 김의환.
두 사람의 대화는 조곤조곤하였지만, 표정만큼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스크린에서는, 몇 날 며칠 밤 새가며 만들어 낸 콘텐츠가 아주 예쁘게(?) 파괴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의환의 표정에 조급함과 걱정이 쌓여 있는 반면, 나지찬의 표정은 조금 달랐다.
심각한 표정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침착해 보였으니 말이었다.
‘결국 용암의 대지를 가장 먼저 찾은 것도 이안이 되어 버렸군.’
사실 나지찬은 처음 모니터링실에 왔을 때 크게 놀라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이 상황은 이미 지난달에 나지찬이 예견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안이 고대 불의 정령을 얻은 순간 뭐,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다만 용암의 대지가 발견된 시점 자체는, 나지찬이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빠른 것이 사실이었다.
이안이 이렇게나 빨리 고대 불의 정령을 상급 정령까지 키운 것까지는, 아무리 나지찬이라 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차례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나지찬이, 김의환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 기억나십니까, 팀장님?”
“뭐가?”
“작년 겨울에 저거 기획할 때, 제가 더 어렵게 만들자고 했던 거요.”
“…….”
“그리고 골렘이 너무 어렵다고, 광전사랑 루칼로스 난이도 낮춘 거 팀장님이시잖아요.”
나지찬의 말에, 김의환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애써 잊고 있던 과거가 떠올라 버렸으니 말이었다.
“우리 지난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김의환을 본 나지찬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걱정 마세요. 저도 지난 얘길 하려고 말을 꺼낸 건 아닙니다.”
“그럼?”
“그때 2, 3번 보스 난이도 낮춘 대신, 제가 4, 5번 보스 난이도 엄청 올려 놨으니까요.”
“……!”
나지찬의 말을 들은 김의환은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뻔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호재(?)에 감격이 벅차오른 것이다.
기획 마무리를 3팀으로 넘긴 것이 이렇게 다행스런 일이 되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김의환이었다.
“대체 언제 그런 훌륭한 짓을 한 거야?”
“그때 기억 안 나세요? 제가 2, 3번 보스 너무 쉽다고 난이도 올려야 한다고 했더니, 팀장님이 차라리 4, 5번 보스를 올리라고 하셨잖아요.”
“아,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4, 5번째 파츠는 유저들이 얻을 수 없을 만큼 어려워도 된다면서, 거긴 맘대로 기획하라고 저한테 권한 주셨잖아요.”
“흐음……. 확실히 그랬던 기억이 있구먼. 과거의 나에게 칭찬 스티커라도 붙여 주고 싶군.”
“과거의 팀장님을 왜 칭찬합니까? 절 칭찬해 주셔야죠.”
“험험,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그리고 나지찬의 이야기에 안색이 밝아진 김의환은, 다시 기분 좋은 표정으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이어서 나지찬을 향해, 결정적으로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꺼내었다.
“그럼 나 팀장.”
“네, 말씀하시죠.”
“이안이 염혼의 마도사를 처치하고 라바 드래곤까지 잡을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봐야 할까?”
질문을 한 김의환은 다시 살짝 초조한 표정이 되어 나지찬의 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지찬의 대답을 들은 순간, 또다시 표정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대답이,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었다.
“아마 이안은 거의 99퍼센트 정도 확률로 라바 드래곤까지 잡지 않을까 싶네요.”
“어, 어렵게 만들었다며!”
“뭐, 2, 3번 보스처럼 한 큐에 잡진 못할 수도 있지만, 지금 도전 횟수가 너무 많이 남아 버렸거든요.”
“…….”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 나지찬의 이야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김의환의 표정.
그런 그를 향해, 나지찬은 마지막으로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 주었다.
“뭐 그래도 너무 걱정 마세요, 팀장님.”
“음?”
“만약 이안이 라바 드래곤까지 잡고 도전 횟수가 남는다 해도, 버그라든가 기획 의도를 벗어난다든가 하는 슬픈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오, 그래……?”
잠시 뜸을 들인 나지찬이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남은 도전 횟수로 한 번 더 도전하는 순간, 아마 이안은 지옥을 맛보게 될 겁니다.”
* * *
한편 기획 팀이 모니터링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무렵.
이안과 레미르는 쉬지 않고 네 번째 관문에 도전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이 네 번째로 선택한 장비는 투구.
아무래도 함께 쓸 수 있는 장비들 중 가장 효율이 높은 것부터 고르다 보니, 자연스레 투구를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관문 초기부터 두 사람은 뭔가 이제까지와는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적운赤雲의 관문’에 입장하셨습니다.
-관문 돌파 제한 시간 : 1500초
-지금부터 모든 화염 속성 피해를 20퍼센트만큼 추가로 입습니다.(1분이 지날 때마다, 추가 피해량이 5퍼센트씩 증가합니다.)
-지금부터 모든 종류의 화염 속성 공격의 위력이 30퍼센트만큼 강해집니다.
-관문의 끝에 있는 ‘적운의 첨탑’을 파괴하면, 관문이 클리어됩니다.
-관문에서 낙오한다면, 다시는 해당 관문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관문을 통과한다면 ‘용암의 머리 장식’을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흠, 이번에는 시간도 25분이나 주네?”
“뭐지? 화염 지속 딜도 더 강해진 것 같고…….”
“이거 뭔가 심상치 않은데.”
이안과 레미르는 긴장한 표정으로, 던전을 꼼꼼히 살피며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적운의 관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던전의 내부는 붉은 빛깔의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구름들의 정체는 뜨거운 용암의 수증기의 결집체였다.
“아오, 가상현실인데 이렇게 뜨겁게 만들면 어떡하냐? 캡슐 안에서 발바닥 익어 가는 거 아닐까?”
“실없는 소리 말고 리퀴드들이나 잡아, 이안.”
“알겠어, 누나.”
이안과 레미르는 호흡을 척척 맞추며 관문의 깊숙한 곳까지 순식간에 이동하였다.
관문의 환경이 더욱 열악해졌고,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초월 레벨도 평균 5레벨 정도가 높아졌지만, 오히려 두 사람의 전진 속도는 더 빨라진 느낌이었다.
용암 장비를 세 파츠나 맞춰 입고 나니, 그들의 스펙도 훨씬 올라간 것이다.
특히 신발까지 착용하여 네 파츠인 이안의 경우 마그비를 활용한 모든 화염 공격의 위력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상태였다.
-2세트 효과
모든 ‘용암지대’ 장비의 성능 +10퍼센트 (부가 옵션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3세트 효과
모든 화염 속성 공격의 위력이 20퍼센트만큼 추가로 상승합니다.
모든 화염 속성 피해를 20퍼센트만큼 추가로 무효화합니다.
-4세트 효과
모든 화염 속성 공격의 위력이 30퍼센트만큼 추가로 상승합니다.
모든 화염 속성 피해를 30퍼센트만큼 추가로 무효화합니다.
‘이제 대충 계산해도 화염 피해 감소 수치가 90퍼센트는 훌쩍 넘을 테니, 어지간한 화염 공격은 간지럽지도 않겠어.’
모든 피해 감소 옵션이 그렇지만, 수치가 90퍼센트를 넘어가면 1퍼센트가 오를 때마다 체감 피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피해 감소가 90퍼센트일 때와 95퍼센트일 때 숫자 자체는 5퍼센트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사실상 피격자가 입는 피해량은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니 말이었다.
거기에 뻥튀기될 대로 된 이안의 화염시는 어지간한 스폰이나 스퀴드들을 두세 방에 골로 보내 버릴 만큼 강력해져 있었다.
“빨리 뚫자, 누나. 보스가 어떤 녀석일지 모르니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 해.”
“당연한 말씀!”
3세트 효과로 인해 모든 화염 속성 공격 버프를 20퍼센트 추가로 받은 레미르는 신이 나서 화염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는 한 방에 죽지 않던 몹이 스르륵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기분 좋고 짜릿한 쾌감도 흔치 않았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뜨거운 구름을 밟고 전진한 두 사람은 5분여 만에 관문 보스가 있는 보스 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웅- 우우웅-!
두 사람이 도착하자 마치 반겨 주기라도 하듯 그들을 태운 채 커다란 공명음과 함께 허공을 날기 시작하는 붉은 구름.
“어, 어어……!”
그리고 둘을 태운 구름은, 거대한 첨탑 위로 쏜살같이 날아가 두 사람을 자리에 내려 주었다.
이어서 두 사람의 귓전으로 누군가의 칼칼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염혼의 마탑에 온 것을 환영하노라.
그리고 두 사람이 내려앉은 그 자리를 중심으로, 바닥에서부터 거대한 불기둥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 * *
네 번째 관문지기이자 용암수호자인 ‘염혼의 마도사’.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녀석은 지금까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보스였다.
온갖 강력한 화염마법을 난사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 용암의 대지에서 가장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화염 저항력 디버프’를 기본 마법으로 장착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용암의 저주’라는 이름을 가진,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극악무도한 디버프 마법.
게다가 염혼의 마도사는 이 디버프 마법이 발동된 직후에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화염 마법을 구사했는데, 사실 이것은 거의 외통수나 다름없는 페이즈라 할 수 있었다.
화염 속성 저항력을 50퍼센트나 깎은 뒤에 ‘염혼의 잉걸불’ 이라는 9서클의 장판 화염 마법을 깔아 버리는 것.
그러다 보니 피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할뿐더러 이안이 아니라 기사 랭킹 1위쯤 되는 탱커라 하더라도 순식간에 녹아 버릴 만한 페이즈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기사 랭킹 1위가 아닌 ‘이안’이었고, 그래서 이런 극악무도한 보스 패턴에도 곧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마도사의 손에서 불길이 일렁이는 것을 본 순간 ‘닉’을 소환한 뒤, 잉걸불이 깔리기 시작한 시점에 ‘태양신의 비호’를 발동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드코어한 보스 패턴이 나올 때마다 이안과 레미르가 번갈아 기지를 발휘한 덕에, 두 사람은 결국 네 번째 용암수호자 까지도 성공적으로 처치할 수 있었다.
-이런, 내 불씨가……!
띠링-!
-‘적운의 첨탑’을 파괴하셨습니다!
-‘적운의 관문’을 성공적으로 돌파하였습니다!
……중략……
-‘용암의 머리 장식(전설)(초월)’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관문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결국 네 번의 도전 기회로 네 번째 관문지기 염혼의 마도사까지 깔끔하게 처치한 뒤, 네 부위의 용암장비 파츠를 확보한 이안과 레미르.
“좋았어!”
“휴우, 이번엔 진짜 위험했다고.”
이어서 정비를 마친 두 사람이 다섯 번째로 선택한 장비 파츠는 계획했던 대로 용암의 갑옷이었다.
갑옷까지 다섯 개의 파츠를 확보하면 두 사람 모두 5세트효과까지 확보되는 것이었고, 그 이후에 이제 각자 필요한 장비에 차례로 도전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우우웅-!
-‘용암의 미로’ 관문에 입장하셨습니다.
-관문돌파 제한 시간 : 2,000초
……후략……
그리고 두 사람은 온몸을 지지는 듯한 불길로 만들어진 미로 끝에서 용암으로 뒤덮인 거대한 드래곤을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