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782화 (789/1,027)

< 782화 1. 다시 정령계로 (3) >

* * *

현재 이안은, 화염 속성의 피해를 감소시킬 수 있는 옵션을 총 세 가지 정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가장 흔한 옵션인 화염저항.

둘째는 레미르의 ‘이그라트 아머’에 붙어 있는 옵션인 화염피해 무효화.

마지막으로 용암 장화에 붙어 있는 옵션인 ‘화염 피해 흡수’까지 말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옵션은 각기 따로 중첩되어 적용된다.

즉, 덧 연산이 아닌 곱 연산으로 적용된다는 이야기.

이안은 지금 기준 화염 저항 55퍼센트에 무효화 15퍼센트, 마지막으로 피해 흡수 10퍼센트를 가지고 있었으니, 약 65~66퍼센트 정도의 화염 피해를 흡수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단순 덧셈 뺄셈으로 계산되었다면 80퍼센트에 육박하는 수치지만, 이럴 때는 오히려 곱 연산 방식인 카일란 시스템이 손해인 것.

하지만 이는 화염법사 톱 랭커인 레미르보다도 조금 더 높은 피해 감소 수치였으니, 이안이 얼마나 단단히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안, 버틸 만해?”

“아직은.”

“초반부라 몬스터가 약해서 다행인데, 조금 더 들어가면 확실히 힘들어지겠어.”

“포션은 넉넉히 챙겨 왔지, 누나?”

“당연하지. 사제도 없는데, 포션이라도 빵빵하게 들고 와야지.”

불지옥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용암 던전의 외관.

일단 던전 안에 호기롭게 들어오기는 했지만, 고대의 던전인 ‘용암의 대지’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시작부터 라바 스폰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용사의 협곡에 있던 용암대지랑 비슷한 콘셉트의 맵인 건 확신할 수 있겠네.’

협곡에서 공략했던 용암대지를 떠올린 이안은, 대략 앞으로 어떤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할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때문에 앞으로의 난이도가 얼마나 어려울지도, 가늠하는 것이 가능했다.

‘스폰들까지야 별 타격 없이 사냥할 수 있겠지만, 스퀴드들 등장하기 시작하면 힘들어지는데…….’

단지 ‘증식’이라는 특성을 통해 물량으로 압박하는 몬스터가 라바 스폰이라면, 라바 스퀴드들은 조금 더 더러운(?) 몬스터들이었다.

녀석들이 쏴대는 마그마 물총(?)을 피하지 못하고 맞는다면, 힘들게 올린 ‘화염저항’ 수치가 디버프를 먹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최대 3회까지 중첩 디버프로 적용되는데, 그렇게 되면 55퍼센트의 화염저항이 반 토막 나 버릴 터.

이 던전 안에서만큼은, 그 어떤 디버프보다도 무서운 공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나, 스퀴드 나오면 걔들부터 먼저 잘라야 되는 거 알지?”

“당연하지.”

레미르 또한 이안처럼 이미 용암지대를 경험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그의 말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쐐액- 촤아악-!

퍼펑- 펑-!

통통거리며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스폰들을 빠르게 정리하며, 던전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는 두 사람.

이안은 스폰들을 베어 내는 와중에도, 꼼꼼히 던전의 구조를 살피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던전은 아닐 것 같은데……. 분명 뭔가 트릭이…….’

그리고 그런 이안의 짐작이 맞아떨어진 것일까?

이안의 바로 뒤쪽에서 엄호하며 계단을 내려오던 레미르가 돌연 어딘가를 가리키며 이안을 불렀다.

“이안. 저기……!”

이어서 레미르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이안은,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지하로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계단이 드디어 끝을 보였으니 말이다.

“저기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인가 봐.”

“그러게, 느낌이 오네.”

게다가 계단실의 끝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신비로운 문양이 새겨진 철문이 있었고, 그 앞에는 끓어오르는 용암으로 만들어진 핏빛 수정이 둥실 떠올라 있었다.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리라.

콰쾅- 쾅-!

뀌에에엑!

신비로운 콘텐츠의 등장에 더욱 의욕이 차오른 이안과 레미르는, 앞을 막는 십수 마리의 스폰들을 순식간에 처치해 버렸다.

이어서 공간을 확보한 두 사람은,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내려가 바닥으로 내려섰다.

탓-!

이어서 용암수정 앞에 두 사람 모두 다가서자, 두 사람의 짐작대로, 이벤트가 발동하기 시작하였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고대의 ‘마그마 크리스털’이 반응합니다.

간결한 두 줄의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시뻘건 화염을 뿜어내기 시작하는 용암의 수정.

“……!”

그것을 본 이안과 레미르는,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대충 봐도 무지막지한 열기를 띄고 있는 용암 줄기가 갑자기 튀어나오니, 순간적으로 위협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몸을 날릴 자세를 취했던 두 사람은 곧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수정에서 뻗어 나온 화염의 기운이 두 사람을 향해 쏘아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화염의 줄기는 허공으로 솟아오른 뒤 그대로 철문에 새겨진 황금빛 문양에 작열하였다.

치익- 치이익-!

“오호……?”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이안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나왔다.

불길에 반응한 문양이 화려한 빛을 쏟아내며, 원래 문양이 새겨져 있던 위치의 주변으로 새로운 금빛 문양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대체 뭐가 나오려고 연출이 이렇게 화려한 거지?”

“그러게. 이거 기대 반 불안 반인데…….”

그리고 잠시 후.

쿠쿵-!

모든 기운을 다 뿜어낸 것인지, 힘을 잃은 마그마 크리스털은 소멸하였고…….

파삭!

그 힘을 빨아들인 철문에는 손바닥 크기만 한 총 열 개의 새로운 문양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안과 레미르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 앞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이걸 열고 들어가면 되는 건가?”

“흠, 새로 생긴 이 문양들에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철문 앞에 선 채, 조심스럽게 문양들을 관찰하는 두 사람.

그리고 두 사람의 궁금증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고대 용암의 대지’의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원하는 고대의 아티팩트를 선택하십시오(해당 문양 위에 손바닥을 올림).

-선택한 아티팩트에 따라 해당 장비를 얻을 수 있는 맵으로 이동됩니다.

“고대의 아티팩트라고?”

생각지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레미르.

하지만 당황한 그녀와 달리 이안은 곧바로 이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안은 레미르보다 더욱 자세히 황금빛 문양들을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나, 여길 봐. 자세히 보면, 문양이 각각 다른 부위의 장비 모양을 가지고 있어.”

“엇, 그러네?”

“여기 내 신발이랑 똑같이 생긴 문양도 있고…….”

이안의 말을 들은 레미르는, 철문에 둥그런 원을 그리며 새겨진 문양들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안의 말처럼 그 열 개의 문양들은 각기 다른 ‘장비 아이템’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일단 이건 대검인 것 같고, 이건 투구, 이건 갑주…….”

“여기 망토도 있어. 지팡이도 있고 로브도…….”

문양들을 하나씩 전부 확인한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다섯 개 정도는 이미 영웅의 협곡에서 봤던 물건들이었지만, 처음 보는 아이템들도 존재하였으니 말이다.

‘용암 세트 효과는 5세트가 끝이지만, 장비는 열 종류나 되는구나.’

그리고 이안과 레미르의 표정은 무척이나 신중해졌다.

저 모든 용암 장비를 다 파밍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선택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확정적으로 한 종류의 장비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선택의 기로임이 분명했으니 말이었다.

“누나.”

“응?”

“누나는 아무래도 지팡이가 탐나겠지?”

이안의 물음에, 레미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렇지, 뭐. 전설 등급 이상의 고성능 장비가 나올 확률이 높으니 무기부터 바꾸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레미르의 대답을 들은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에 이해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선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나, 나 믿지?”

“뜬금없이 그게 무슨……?”

“지금 필요한 건 지팡이가 아니라, 망토야 누나.”

“응?”

“우리 둘 다 망토 맵으로 골라야 해.”

이안은 무척이나 단호한 어투로 이야기했고, 이것은 신중을 기한 고민을 통해 도출된 확신이었다.

살짝 당황한 레미르를 향해 이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던전을 끝까지 뚫으려면, 결국 제일 중요한 건 화염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냐는 거야.”

“딜을 늘리는 것보다는 안정성을 확보하잔 얘기지?”

“그렇지.”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착하게 레미르를 설득하였다.

“내가 용암 장비들 스텟을 대충 알잖아?”

“그치. 용사의 협곡 때 파밍해 봤으니까.”

“물론 처음 보는 장비들도 있긴 하지만, 대략적인 그림은 그릴 수 있다는 말이지.”

“그래서?”

“다른 장비들도 물론 다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기는 하겠지만, 화염 저항에 특화된 아이템은 저 용암 망토야.”

이안이 영웅의 협곡에서 용암대지를 공략할 때, 가장 먼저 얻었던 장비가 바로 용암의 망토였다.

때문에 이안은 망토의 옵션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화염 피해 무효화 30퍼센트에, 모든 종류 피해 흡수 15퍼센트……. 이 두 가지 옵션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한다는 말이지.’

이안이 지금의 상황에서 이 망토를 얻게 된다면, 65퍼센트 정도였던 피해 흡수량이 80퍼센트 초반까지 대폭 늘어나게 된다.

단순 숫자로만 봤을 때는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는 어마어마한 차이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 화염 지속 피해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 버린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안의 설명을 다 듣고 난 레미르는 그의 주장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쩝. 확실히 망토를 먼저 얻어야겠네.”

“너무 아쉬워 마, 누나. 내가 볼 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아티팩트가 한 종류로 끝인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래, 알겠어.”

확실하게 선택지를 정한 이안과 레미르는 천천히 철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금빛으로 반짝이는 망토 모양의 황금 문양에 레미르가 먼저 손을 가져다 대었다.

위잉- 우우웅-!

그러자 그와 동시에 레미르의 신형이 땅으로 꺼지기라도 한 듯 사라졌고…….

파앗-!

이안 또한 망설임 없이 같은 자리에 손을 올려다 대었다.

‘망토만 얻어도 체감 난이도가 절반으로 내려갈 거야. 여기에 투구나 갑주 하나 정도만 추가로 세팅되면 게임 끝이지.’

이벤트 맵에 입장하기 직전까지도,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며 생각하는 이안.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이안의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작열의 관문’을 선택하셨습니다.

-해당 맵으로 이동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