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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80화 (787/1,027)

< 780화 1. 다시 정령계로 >

-이제…… 좀 기억이 돌아오는군.

마그번의 말을 들은 이안은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

기억이 돌아온다는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기억? 무슨 기억이 돌아온다는 거야? 너 언제 기억 잃은 적 있어?”

지금까지 함께 멀쩡히 잘 싸워 온 마그번이었기에, 이안으로서는 기억이 돌아왔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마그번의 다음 말이 이어지자, 이안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주인, 잊은 건 아니겠지?

“뭘?”

-난, 고대의 정령이다.

“그거야 알고 있지.”

-차원의 틈에 잠들어 있던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힘을 잃었고 기억도 함께 잃었었다.

“……!”

정령은 사실상 중간계의 콘텐츠이다.

때문에 정령이라는 콘텐츠 자체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정령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이 전부 랭커들인 상황에서, 이 세계관에 대한 연구 같은 것이 대중적으로 이뤄지기는 힘든 것이다.

하물며 일반 정령도 아니고 고대의 정령이다.

과연 이안 말고 접한 이가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미지의 콘텐츠.

‘고대의 정령’이라는 녀석들에 대한 설정이 어떤 건지는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는 것이다.

‘고대의 정령이라기에 환생 같은 것을 해서 현세의 정령계에 소환된 건 줄 알았는데, 그런 개념이 아니었나 보네?’

흥미로운 표정이 된 이안은 마그번을 향해 다시 물었다.

“그럼 되찾았다는 그 기억이라는 건, 고대의 기억을 말하는 건가?”

-그렇지.

“힘이 다시 강해지면서, 잃었던 그 기억들이 돌아온 거고?”

-아직 완전한 기억들은 아니지만,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기억을 전부 되찾으려면,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하는데?”

-한참 멀었다, 주인. 아직 내 능력의 절반도 찾지 못한 기분이다.

“오호?”

마그번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잔뜩 기대감에 부풀기 시작하였다.

‘고대의 기억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그와 관련된 콘텐츠가 발생할 거라는 말인데…….’

어떤 종류의 콘텐츠일지는 모르지만, 이안은 고대 정령과 관련된 히든 퀘스트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카일란에는 이유 없이 발생하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안의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킨 것은 마그번의 마지막 대사였다.

‘게다가 아직 능력의 절반도 찾지 못했다니…….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그러는 거야?’

마그번은 이제 상급 정령이다.

상급이라는 수식을 생각해 봤을 때, 절반은 훌쩍 넘게 성장한 것으로 추측하는 게 당연하였다.

하지만 마그번은 아직 능력을 절반도 찾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가 능력을 다 되찾으려면 정령왕이 되어야 할 것이고, 정령왕이 된 마그번이 얼마나 강력할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크으, 취한다!’

기분이 좋아진 이안이 마그번을 슬쩍 떠보기 시작하였다.

되찾았다는 그 ‘기억’이라는 것에서 어떤 콩고물(?)을 주워먹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럼 마그비, 아니, 마그번.”

-말해라, 주인.

“되찾았다는 그 기억에 대해, 내게 말해 줄 만 한 건 없어?”

-흠, 어떤 종류의 기억을 말함인가?

“뭐, 예를 들자면, 고대의 정령과 관련된 특별한 아티팩트라든가, 뛰어난 고대의 정령술이 담긴 스킬북이라든가 그런 것들 말이지. 험험.”

이안의 물음에 뭔가를 떠올리기라도 하듯 마그번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겼고, 잠시 후, 그의 입이 천천히 다시 열렸다.

그리고 마그번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이안의 기대에 부응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확실히 주인의 말처럼 고대의 정령술과 관련된 마법이나 아티팩트를 얻는다면 내가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겠군.

“오, 역시 그런 게 있는 거지?”

-당연하다. 지금의 정령술은 고대에 비해 많이 퇴보하였으니 말이지.

“오오!”

눈을 반짝이며 마그번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이안.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마그번은 멋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대의 정령술에 대한 기억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 그래?”

-대신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주인.

“음……?”

-주인이 신고 있는 그 신발.

“……!”

-그 신발과 비슷한 힘을 지닌 물건들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알고 있다.

마그비의 말을 들은 이안의 시선이, 절로 신고 있던 신발을 향해 움직였다.

‘용암의 마법 장화……. 이것과 비슷한 힘을 지닌 물건들이라면……!’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두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용암지대 세트 아이템?”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른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육성을 내뱉는 이안.

그런 이안의 말에, 마그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다.

-정확한 명칭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맞는 것 같군.

“용암의 망토나 용암의 투구 같은 장비들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

-고대의 원소 장비들…….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크으!”

이안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영웅의 협곡에서 헥사 킬을 달성한 보상으로 얻었던 용암의 마법 장화 아이템.

이것을 처음 얻었을 때부터 협곡 바깥의 세상에서도 구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었는데, 그 짐작이 옳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용암 세트도 싹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게다가 한 가지 더.

이안의 머릿속에, 잊고 있던 소환수의 존재가 하나 떠올랐다.

‘라바 드래곤! 잘하면 녀석을 찾을 수도 있겠어!’

* * *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마그번이 기억하고 있다는 그 고대의 아티팩트들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정령계였다.

하여 이안의 행선지는 자연스레 정령계가 되었고, 그 전에 마지막으로 라카토리움의 도시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간간히 보이는 마족 유저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평소에 착용하지 않는 마족스러운(?) 디자인의 장비들을 둘둘 두르고서 말이다.

새로운 콘텐츠를 탐색한다기보다는 지난 사냥으로 얻은 잡템들을 싹 다 처분하기 위해서였다.

“여기 이 부서진 부품들, 혹시 관심 있으신가요?”

“엇, 이것은 오염된 타로드켄의 잔해들이 아닌가!”

“맞습니다.”

“내가 전부 다 매입하도록 하지.”

“가격은 얼마나 쳐주실 수 있는지요?”

“흠, 이 정도면 589차원코인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네.”

“좋습니다.”

다른 차원계들과 달리 라카토리움은, 용사의 마을 소르피스 내성에서 쓰는 ‘차원코인’과 같은 종류의 화폐를 사용하고 있었다.

어차피 다른 화폐들도 전부 용사의 마을에서 환전이 가능했지만, 그래도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편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자, 이쯤이면 된 것 같고…….”

잡무(?)를 전부 마친 이안은, 망설임 없이 ‘시공의 열쇠’를 꺼내어 시공의 탑에 입장하였다.

이미 입장해 본 차원계에 한해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이 시공의 탑은, 차원의 구슬이 있는 이안에게도 무척이나 유용한 것이었다.

우우웅-!

-시공의 탑에 입장하였습니다.

-‘정령계’ 차원의 ‘프뉴마’ 마을로 입장합니다.

그리고 다시 정령계의 땅을 밟은 이안은, 망설임 없이 프뉴마 마을을 벗어나 북쪽으로 비행하기 시작하였다.

이안의 목적지는, 정령산 최북단.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마그번?”

-용암이 흐르는 땅, 고대의 아티팩트가 잠들어 있는 곳을 말함인가?

“그래. 거기 말이야. 용암의 대지.”

새하얀 만년설로 뒤덮인 ‘샤이야’ 봉우리였다.

-정령산의 북쪽. 칼날 같은 한기와 태양처럼 뜨거운 열기가 공존하는 곳.

“……!”

-샤이야 봉우리의 꼭대기에, 거대한 용암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 * *

소르피스 내성에는 커다란 광장이 있다.

그리고 그 광장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가장 크게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비싸기로 소문난 소르피스 내성에 커다랗게 지어진 이 건물은 다름 아닌 로터스 길드의 거점이었다.

“와, 여기 평당 몇만 코인이 넘던데……. 대체 로터스 길드는 얼마나 돈이 많은 거야?”

“그러게 말이야. 물론 왕웨이 쪽 길드 거점이 더 거대하고 웅장하지만, 입지만큼은 로터스 길드 건물이 짱인 것 같네.”

“내성 들어올 때마다 가장 먼저 보이니까, 왠지 모르게 가입 신청 넣어 보고 싶네.”

“로터스에서 받아 주긴 한대고?”

“그냥 하는 소리지, 인마.”

지나가는 행인(?)들의 이야기처럼, 로터스 길드 거점의 자리는 명당 중에 명당이었다.

로터스야 전혀 팔 생각이 없었지만, 현 시세 기준으로 평당 10만 코인을 불러도 충분히 팔릴 정도의 자리.

처음 이안이 자신과 길드의 자본을 몰빵하여 알 박기를 시전 한 결과, 이미 열 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시세 차익을 남긴 것이다.

물론 팔아야 돈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휴우, 부럽다. 조만간 저 건물 1층에는 대형 카페 오픈할 모양이던데. 코인을 그냥 쓸어 담겠네, 쓸어 담겠어.”

“크으, 카페를 오픈한다고? 거기 가서 알바나 해 볼까?”

“시급으로 한 100코인만 받아도 할 만할 텐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사냥이나 가자고, 브로.”

“…….”

이렇게 소르피스 내성을 오가는 수많은 유저들의 부러움을 받는 로터스 길드의 거점 건물.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로터스 길드원에겐 요즘 큰 우환(?)이 하나 있었다.

최근 이안에게 갈굼당한 길드 마스터 헤르스가 길드원을 혹독하게 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퀘스트 지옥……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건데?”

“언제긴 언제겠어? 길드 거점 3티어로 올릴 때까진 쉬지 않고 해야겠지.”

“하, 아직도 한참 남은 것 같은데?”

“카윈, 너무 한숨 쉬지 마. 앞으로 보름 정도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거야.”

중간계의 길드 거점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거점에서 생성된 길드 퀘스트를 계속해서 클리어해야만 한다.

길드 퀘스트 클리어로 획득한 공헌도와 명성 등이 계속 누적되어야 거점 티어가 상승하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로터스 길드에게는 단기적으로 3티어를 달성해야 한다는 하드코어한 목표가 있었다.

“우리가 이안이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하드하게 해야 할 이유가 있어?”

“바로 그 이안 님이 엄포를 놨거든.”

“…….”

“다음 달까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룡기사단 완성할 거라고 말이야.”

“후우…….”

“보니까 길드 티어는 우리만큼 높은 길드들이 제법 되더라고.”

“우리만큼 티어가 높은 길드가 또 있다고?”

“또가 아니야. 제법 많아.”

“…….”

“특히 중국 서버 쪽 길드들은 진짜 엄청나더라고. 내가 듣기로 이미 3티어 달성한 곳도 있던데?”

“후우, 인해전술의 힘인가…….”

한숨을 늘어지게 쉬는 레미르를 보며, 훈이가 무섭기 그지없는 엄포를 놓았다.

“누나, 아무리 힘들어도 도망치면 안 돼.”

“…….”

“도망치면 바로 이안 형한테 이를 거라고.”

“크흑.”

레미르는 탁자에 헤르스가 펼쳐 놓은 퀘스트 일정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 난이도 자체는 그리 어려운 것들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힘들었으니 말이었다.

‘이 지루한 퀘스트 노가다를 앞으로 보름이나 더 해야 한다고?’

누군가 이 길드 퀘스트 지옥에서 꺼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양손을 모아 기도하는 레미르.

‘살려 주세요. 차라리 사냥을 더 열심히 할게요.’

그런데 바로 그때, 그 누군가(?)가 레미르의 기도를 듣기라도 한 것인지 그녀의 눈앞에 돌연 메시지 창이 팝업되었다.

띠링-!

“……!”

그리고 그 메시지를 확인한 레미르의 얼굴은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그녀의 기도가 이루어(?)졌으니 말이었다.

-이안 : 레미르 누나, 잠깐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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