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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79화 (786/1,027)

< 779화 8.기계 문명에 대하여 (2) >

* * *

켄토가 이안에 대해 아는 것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안의 전투력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켄토가 아는 사실은 단 하나.

‘루칼로스’라는 괴물 같은 오염된 기계괴수를, 이안이 어렵지 않게 처치하고 돌아왔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켄토의 이야기가 거의 정확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현재 이안은 루칼로스급의 기계몬스터가 셋 정도만 모여도 버거운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루칼로스가 에픽 몬스터이며 초월 80레벨이 넘는 전투력을 가진 괴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수준이긴 했지만 말이다.

‘찰리스……. 확실히 당장 비벼 볼 만한 수준은 아니겠어.’

하여 이안은, 켄토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노가다’를 시작하였다.

앞자리가 7로 바뀐 시점부터 경험치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지만.

이안의 근성에 고작(?) 그런 정도의 난관으로 의욕이 저하될 리 없었다.

‘일단 상급 정령술 찍을 때까진 라카토리움의 오염지대에서 사냥하고, 목표 달성하면 다시 정령계로 넘어가야겠어.’

겉으로 보기엔 이안이 무념무상의 상태로 기계처럼 사냥만 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사실 이안의 머릿속에는 체계적으로 계획이 다 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의 첫 번째는, 일단 상급 정령술을 찍고 마그비를 상급 정령으로 진화시킨 뒤 정령계에 돌아가 ‘정령수’를 포획하는 것이었다.

루칼로스를 잡으러 갔을 때 중급 10레벨을 찍었으니 한 계단만 더 오르면 이제 상급 정령술의 고지를 밟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켄토의 부탁을 간간이 들어주면서 설계도를 뜯어내는 것도 필수 코스고 말이지.’

그리하여 이안은, 위성도시 토라프의 인근에 있는 오염지대를 씨가 마르도록 탈탈 털기 시작하였다.

* * *

“발람, 이쪽으로! 침착하게 유인해서 이쪽으로 와!”

“료이카 님, 발람에게 실드 좀 걸어주세요!”

“넵, 훈이 님.”

“어둠의 힘으로 명하노니, 데스 앤 디케이Death and Decay!”

고오오오-!

데스나이트 ‘발람’을 필두로 한 어둠의 군단이 거대한 몸집을 가진 거신족 병사들을 포위하고 몰아넣는다.

이어서 새하얀 빛과 함께 성스러운 속박이 그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 버린 뒤, 그 위로 죽음의 기운이 내려앉았다.

콰쾅- 콰아앙-!

거신족 병사 하나가 쓰러지자 까맣게 변한 그 사체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진녹빛의 안개구름.

“쿨럭- 크어억-!”

“비겁한 흑마법사 놈!”

시체가 부패하며 지독한 독안개가 공간을 가득 메우자, 나머지 거신족들도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쿵-.

쿠쿵-!

그리고 마지막으로, 훈이의 손에서 소환된 수십 발의 데스 메테오가 그들을 뒤덮었다.

콰앙- 콰콰콰쾅-!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순식간에 초월 60레벨 대의 거신족 병사들을 몰살시키는 흑마법사 훈이.

“음홧홧, 어둠의 힘에 굴복하라……!”

끊임없이 흑마법을 캐스팅하는 훈이의 표정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와아, 저 벌써 레벨이 올랐어요, 훈이 님!”

“핫, 제가 뭐랬습니까. 여기만큼 좋은 사냥터가 없다고 그랬죠?”

“역시 훈이 님 따라오길 잘했네요. 훈이 님이랑 사냥하면, 50레벨까지는 금방 찍겠어요.”

“흐흐, 헤르스 형이 월요일에 길드 자리 하나 비워 주신다고 했으니 다음 주부턴 길드파티에서 같이 사냥해요, 료이카 님.”

“당연하죠! 로터스 길드라니, 진짜 꿈만 같네요.”

훈이가 요즘 행복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용사의 마을에서 한눈에 반했던, 일본 서버 랭커 유저인 료이카.

얼마 전 그녀와 다시 연락이 닿아 이렇게 파티 사냥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녀는 원래 속해 있던 길드에서 탈퇴한 상황이었고, 헤르스가 로터스 길드에 받아 주기로 약속까지 했으니 훈이로서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료이카 님이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거의 레비아 누나급 사제 랭커인데, 길드 차원에서도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거야.’

료이카는 용사의 마을 초기 시절, 인간 진영 랭킹 50위 안에 들던 사제 랭커였다.

지금이야 레비아보다 초월 레벨이 살짝 낮았지만, 한때는 그녀보다도 더 높은 랭킹을 갖고 있었던 실력자인 것.

때문에 로터스 길드에서도, 그녀의 길드 가입을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훈이와의 친분까지 있는 마당에 말이다.

‘흐흐, 이안 형이랑 헤르스 형은 안 될 거라 했지만, 이 훈이 님을 너무 과소평가했어.’

훈이의 게임 인생 십 년(?)만에, 처음으로 찾아든 연애 전선.

하지만 이 연애 전선이 앞으로도 순탄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일 것이었다.

* * *

이안이 10레벨의 중급 정령술을 상급 1레벨로 만드는 데까지는 대략 닷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단순히 숙련도가 1레벨 올라가는 것이 아닌 티어 자체가 한 등급 격상되는 단계였기 때문에, 하드코어하게 노가다를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그 사이 이안의 초월 레벨이 두 단계나 추가로 올랐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얼마나 하드한 사냥 스케줄이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였다.

‘휴우. 드디어 1차 목표 달성인가?’

이안은 스킬 정보 창 최상단에 떠올라 있는 ‘상급 정령술’의 데이터 박스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조건이 충족되었으니, 드디어 마그비를 상급 정령으로 진화시킬 수 있으리라.

“어디 보자, 불의 정수가 남는 게 어디 있었을 텐데…….”

현재 마그비의 정령력은 최대치까지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조금만 더 사냥해서 정령력을 1만 더 올린다면 곧바로 진화할 게 분명하였지만, 성질 급한 이안은 당장 진화부터 시켜 보고 싶었다.

하여 이안은 손에 집히는 대로 중급 불의 정수를 꺼내어 마그비에게 사용하였다.

-‘중급 불의 정수’ 아이템을 정령‘마그비’에게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됐어!”

마그비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시뻘건 불길이, 점점 더 커다랗고 화려하게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화르륵- 타탁- 탁-!

-화염의 정령 ‘마그비’의 정령력이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강렬한 화염의 힘이 태동합니다.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화염의 정령 ‘마그비’가 진화합니다.

이어서 작은 ‘소년’의 외모를 가지고 있던 마그비의 몸집이, 앳된 ‘청년’의 모습으로 진화하였고…….

우우웅-!

늠름해진 그 모습이 완전히 형체를 드러내자, 이안의 눈 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화염의 중급 정령 ‘마그비’가 화염의 상급 정령 ‘마그번’으로 진화하였습니다.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곧바로 녀석의 정보 창을 확인해 보았다.

-마그번(화염의 정령)

정령력 : 0/300,000

속성 : 화염

등급 : 상급 정령

소환 지속 시간 : 675분(재소환 대기 시간 : 900분)

공격력 : 4,220

방어력 : 1,635

민첩성 : 2,715

생명력 : 37,825

*고유 능력

-불의 악마

정령술사가 사용한 화염 속성의 공격 마법이 치명타로 적중할 시, 마그번이 해당 마법을 한 번 더 시전합니다.

*30퍼센트의 확률로, 대상의 양기를 흡수하여 홍염의 구슬을 충전시킵니다.

-도깨비불

마그번이 던지는 불꽃이 적에게 적중할 시 주변에 있는 다른 적에게로 튕겨 나갑니다.

튕겨 나간 불꽃은 최초 피해량의 80퍼센트만큼의 피해를 입히며, 최대 다섯 번까지 튕길 수 있습니다.

*하나의 대상이 도깨비불을 연속으로 두 번 이상 피격당할 시 2초 동안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홍염의 방패

마그번이 지속 시간 동안 양손을 교차시키며, 일시적으로 범위 내의 모든 피해를 흡수합니다(흡수율 : 90~99퍼센트).

*흡수된 피해량의 30~40퍼센트만큼을 화염 피해로 전환하여 적에게 다시 돌려줍니다.

*홍염의 구슬에 화염의 기운이 가득할 때만, 고유 능력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충전된 화염의 기운 : 0.00/100).

*마그번이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때마다 화염의 기운이 조금씩 충전됩니다.

-화염인火焰印

마그번이 양손을 뻗어, 강력한 화염의 장풍을 뿜어 냅니다.

장풍은 마그번의 공격력과 소환술사의 소환 마력에 비례하는 위력을 가지며, 치명적인 피해가 발동할 시 대상에게 화염의 인장을 각인시킵니다.

각인된 화염의 인장은 대상으로부터 양기를 흡수하여, 마그번이 가진 ‘홍염의 구슬’을 충전시킵니다.

*각인된 화염의 인장의 숫자가 많을수록 홍염의 구슬이 더욱 빨리 충전됩니다.

*홍염의 구슬에 화염의 기운이 가득 찬 순간 화염의 인장이 폭발합니다.

*정령력이 Max가 되면 상위 정령으로 진화합니다.

-화염 속성을 필요로 하는 소환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일정량의 정령력이 차오릅니다.

-화염 속성의 정수(혹은 대자연의 구슬)를 사용하여 정령력을 채울 수 있습니다.

*소환술사의 소환 마력이 높을수록 정령의 소환 지속 시간이 길어집니다.

마그번의 정보 창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나 진화하는 데 필요한 ‘정령력’ 수치였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이안은, 블레스터의 정보 창을 봤을 때보다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지? 같은 상급 고대의 정령인데, 진화에 필요한 정령력이 절반도 채 안 되잖아?’

블레스터는 최상급 정령으로 진화하기 위해, 무려 7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정령력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그에 반해 마그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0만의 정령력만 모으면 진화가 가능하였다.

이안으로서는 충분히 당황할 법한 차이인 것이다.

‘파생 정령은 최상급이 최종 진화인데 반해 마그번은 정령왕이라는 단계가 남아 있어서 그런 건가?’

이런저런 추측을 해 보았지만 지금 당장 정확한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하여 일단 전투 능력부터 시작해서 고유 능력까지, 마그번의 달라진 능력들을 꼼꼼히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전투 능력은 블레스터랑 비교했을 때 비슷하거나 약간 부족한 수준이네.’

공격력의 경우 마그번이 블레스터보다 높지만, 민첩성의 경우 월등히 부족하다.

거기에 방어력과 생명력도 블레스터보다 조금 부족했으니, 전체적으로 본다면 블레스터의 전투 능력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이것도 역시, 사대 정령의 진화 단계가 하나 더 많기 때문이겠지?’

마그번의 전투 능력에 나름대로 만족한 이안은, 마지막으로 고유 능력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그비 시절 때부터 있었던 첫 번째 고유 능력인 ‘불의 악마’를 확인한 순간,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오호, 기존에 있던 능력에도 옵션이 붙었잖아?’

고유 능력의 아래 새로 생긴 부가 옵션이, 곧바로 눈에 들어온 것이다.

-30퍼센트의 확률로, 대상의 양기를 흡수하여 홍염의 구슬을 충전시킵니다.

‘도깨비불 능력에도 기절 옵션이 생겼고…….’

마그번의 정보를 확인할수록, 이안은 점점 더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새로 생긴 부가 옵션들이 훌륭했기 때문이기도 하였으나, 이런 식으로 스킬이 진화하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새로 생긴 고유 능력인 ‘화염인’까지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신선한 구조의 스킬이었다.

‘체감 위력이 얼마나 될지는 써 봐야 알겠지만, 유틸성만 보더라도 충분히 괜찮겠어.’

마그번이 갖고 있었던 고유 능력 중 가장 사기적인 스킬은 단연 ‘홍염의 방패’였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홍염의 구슬’을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스킬을 자주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인데, 새로 생긴 화염인 스킬을 잘 이용한다면 ‘홍염의 구슬’을 금방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휘유, 이 정도면 분석은 대충 끝난 것 같고. 실전에서 한번 써 봐야겠는데…….”

마그번을 응시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이안.

그런데 다음 순간.

가만히 있던 마그번이 돌연 입을 열었고, 이안은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좀 기억이 돌아오는군.

마그번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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