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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78화 (785/1,027)

< 778화 8.기계 문명에 대하여 (1) >

이안의 이야기를 전부 다 들은 켄토의 첫 마디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퀘스트’라는 단어로 시작된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이안이라는 유저의 ‘플레이 히스토리’에 대한 것이었으니, 이제는 이안이 NPC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 ‘유저’였던 거네요?”

“음? 저야 당연히 유저……!”

“이럴 수가. 유저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안 또한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NPC의 입에서 유저라는 말이 나올 수는 없으니, 켄토 또한 NPC가 아니라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당신, NPC가 아니었네요?”

이안의 말에 켄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하였다.

“당연하죠! 허얼……. 당신도 저를 NPC로 착각하셨던 거예요?”

“기계공학자 클래스를 가진 유저가 있을 줄은 몰랐죠.”

“저도 라카토리움에서 인간 유저를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NPC가 아니었다 하여 딱히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게임을 하면서 이런 상황도 처음 겪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것, 참. 별일이 다 있네그래.’

사실 켄토가 조금만 더 사회성(?) 있는 유저였다면, 이러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커뮤니티를 조금이라도 하는 카일란 유저라면 이안이라는 이름을 모를 리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켄토는 이안은커녕, 자신을 제외한 그 어떤 랭커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 솔플러였다.

“뭐, 조금 신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 될 것도 없으니까…….”

퀘스트 창이 생성되지 않은 이유도, 돌발 퀘스트 치고 과하게 후했던 보상도 전부 이해된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켄토가 마족이긴 하지만 대충 봐도 전투 클래스 레벨이 높아 보이진 않았으니, 유저라 해도 딱히 위협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적대하지만 않는다면, 이 친구와 충분히 상부상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공학자 클래스의 유저라……. 어쩌면 전투 클래스 랭커보다 훨씬 더 귀한 자원일지도.’

켄토에게 흥미를 느낀 이안은, 그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대인기피증(?)이 있는 켄토는 이안이 유저라는 사실을 알자 처음에 어색해 하였으나, 대화에 적응하는 데까지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만약 처음부터 서로가 유저인 줄 아는 상태로 만났더라면 한마디 나누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이미 이야기를 나누며 경계심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켄토는 이안이 유저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NPC처럼 친근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뭔가 평범한 유저들이랑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우연히 켄토가 자신보다 어리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이안은, 말도 편하게 하기 시작하였다.

“여튼 이제 내 이야기는 다 한 것 같고, 기계공학자 찰리스에 대한 정보를 좀 줘 봐, 켄토.”

“그 77호라는 관리자 로봇의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서죠?”

“응, 그것도 그렇고, 찰리스를 찾아야 할 이유가 또 있거든.”

“어떤 이유요?”

“구해야 할 거북이가 한 마리 있어.”

“…….”

켄토는 이안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는 한에서 라카토리움의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가 이안에게 스스럼없이 정보를 주는 이유는 간단하였다.

첫째로는 이안이 유저임에도 불구하고 큰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켄토의 입장에서도 이안과의 친분이 장기적으로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전투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켄토의 입장에서는, 이안과 같은 강력한 조력자의 존재가 항상 아쉬웠던 것이다.

“음, 일단 찰리스 학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 먼저 아셔야 할 게 있어요.”

“그게 뭔데?”

켄토는 탁자에 올려 있던 공구 상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저 상자에 그려진 문양 보이시죠?”

“응. 톱니바퀴처럼 생긴 거?”

“네.”

고개를 끄덕인 켄토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문양이 제가 속해 있는 나르만 학파의 문양이고요.”

이번에는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한 권 꺼내는 켄토가, 그것을 펼쳐 열었다.

“여기 보이는 이 기계로봇 문양이, 찰리스 학파의 문양이에요.”

“오호.”

“기계공학자들의 학파는 이렇게 크게 두 학파로 나뉘죠.”

켄토의 입에서 흘러나온 라카토리움의 세계관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였다.

처음 이안이 균열을 넘어 라카토리움에 도착하기 전에 생각하고 있었던 구도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정령계를 침략하고 있는 기계문명은 라카토리움 전체가 아니라 대부분 찰리스 학파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용천과 엘라시움간의 대립이 완전히 진영간의 대립이었다면, 정령계와 라카토리움 사이의 대립은 복잡한 관계가 얽혀있었던 것.

“그렇다고 해서 나르만 학파와 찰리스 학파가 적대적인 관계인 건 아니에요.”

“그래?”

“서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적대 관계라기보단 경쟁관계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경쟁이라…….”

“두 학파는 더 높은 티어의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항상 경쟁중이니까요.”

대략 라카토리움 세계관의 구도를 이해한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찰리스 학파가 정령계를 침략했다면, 나르만 학파는 ‘방관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와중에도, 켄토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나르만 학파가 오로지 기계만 연구하는 학파라면, 찰리스 학파는 약간 이단 같은 느낌이에요.”

“이단이라니, 정확히 무슨 뜻이야?”

“찰리스 학파는 기계문명의 기술력만 사용해서 로봇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정령들이 갖고 있는 자연의 힘이나 망자들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힘까지도 로봇을 개발하는 데 사용하거든요.”

갈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기계문명의 세계관에 대한 켄토의 이야기.

그런데 이야기를 듣던 이안은 궁금한 점이 생겼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르만 학파에서는, 정수 같은 자원을 로봇 제작에 사용하지 않는 거야?”

“정수가 뭔데요?”

“음……. 정령계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의 힘이 담긴 자원이라고 보면 돼.”

켄토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 나르만 학파에서는, 오직 순수한 ‘포스’만으로 로봇을 움직여요.”

“포스……?”

“자연의 힘이 응집되어있는 정수 같은 것도 포스의 일종이지만, ‘미네랄 포스’야말로 정말 순수한 에너지거든요.”

“미네랄 포스라…….”

“뭐, 정수 같은 걸 사용하면 여러 모로 편리하겠지만, 완성된 로봇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그 관리자 로봇처럼 자아가 생긴다든가 하는 부작용 말이죠.”

“아…….”

켄토는 이안이 잡아 온 ‘루칼로스’의 사체를 가리키며, 한 마디 덧붙였다.

“지금 요 녀석처럼 오염된 대지에서 제멋대로 젠 되고 돌아다니는 기계 몬스터들도, 그런 순수하지 못한 포스로 만들어진 기계로봇들이라고 보면 돼요.”

“걔들은 그럼 찰리스 학파에서 만든 애들이야?”

“아, 그건 아니에요. 과거에 오염된 대지에서 몰락한 기계도시들이 있는데, 거기서 자생하듯 생겨난 기계로봇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켄토의 이야기를 들던 이안은 문득 그로부터 받은 설계도인 ‘로봇 기술자 설계도’ 아이템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순간,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정말 정령계에서 얻었던 설계도들이랑 제작 재료가 많이 다르네.’

이어서 이안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이라한과 다크루나 길드원을 몰살시킨 뒤 얻었던 전리품 중 하나.

‘미네랄 포스 탐지기’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잡화 아이템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인벤토리를 뒤적여 미네랄 포스 탐지기를 꺼낸 이안은, 그것을 켄토에게 보여 주며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켄토, 혹시 이 물건에 대해선 알고 있어?”

그리고 켄토는 그것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물론이죠. 포스 탐지기를 모르는 기계공학자는 없는걸요.”

“이거 어떻게 쓰는 건데?”

“순수한 미네랄 포스가 뭉쳐 있는 지역에 가면 알아서 반응할 거예요.”

“아아…….”

“그나저나 라카토리움에 오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별걸 다 가지고 계시네요.”

이안은 피식 웃으며 짧게 대답하였다.

“어떤 착한 친구한테 선물 받았거든.”

“제법 고가의 장비인데……. 말씀대로 정말 착한 친구분이신가 봐요.”

“그, 그렇지, 뭐.”

카일란의 차원계들이 대부분 그렇듯 라카토리움의 세계관은 무척이나 방대하였다.

그리고 켄토의 이야기만으로 그 모든 세계관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안은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하였다.

적어도 기본적인 틀에 대한 이해는 확실히 머릿속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하여 이안은 이제, 가장 중요한 마지막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켄토.”

“말씀하세요.”

“찰리스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해?”

“찰리스요?”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응. 녀석을 찾아야 하거든.”

“찾아서 뭐 하시게요?”

“아까도 말했지만, 녀석에게 잡혀 간 거북이 한 마리를 구해야 하거든.”

“…….”

“어쩌면 찰리스를 죽여야 할 수도 있고.”

이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내에는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이안은 켄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켄토는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말이다.

잠시 후, 켄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불가능할 걸요?”

“뭐가?”

“찰리스를 처치하는 일요.”

“음?”

켄토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루칼로스의 사체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천천히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녀석으로 대충 백 마리쯤 있다고 해도 찰리스의 군대를 상대하는 건 힘들 테니까 말이죠.”

이번에는 이안 또한 당황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고, 켄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뭐, 형 정도 되는 사람이 한 이삼십 명 정도 모인다면, 거북이 한 마리 구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고요.”

켄토의 말은 비아냥이 아닌 진심이었고, 그것을 느낀 이안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 라카토리움으로 넘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찰리스가 이렇게까지 거물(?)인 줄은 몰랐고, 늦어도 보름 안에는 녀석을 찾아 처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잠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한 이안이 작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래요, 찰리스는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안을 향해 주억거리는 켄토.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이안의 말은, 켄토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노가다를 더 하는 수밖에.”

“예……?”

“더 세지면 될 것 아냐.”

당황한 켄토는,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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