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4화 7. 어부지리Ⅱ (3) >
* * *
다크루나 길드와의 일전은, 사실 이안에게 몸 풀기 운동(?)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의 전력이 완전히 무시할 만큼 허약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안에게 위협될 정도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새로 얻은 정령과 정령 마법을 연습하기에, 딱 좋은 난이도의 적들이었던 것.
하여 이안은, 다른 소환수들의 전투 기여를 최소화시키면서 최대한 블래스터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투를 이끌어 나갔다.
아직 손에 덜 익은 ‘비도술’이라는 공격 방식에 더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슈슈슉-!
그리고 그 결과, 이안의 비도술은 점점 더 날카롭고 예리해졌다.
퍼퍽-!
“멍청한 놈아, 비도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뛰면 어떡해?”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뛰는 방향으로 저게 날아온 거지!”
“젠장, 피해!”
“몸이 안 움직인다고!”
“으아악!”
블래스터가 언월도를 휘두르면,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들 만큼 사나운 칼날 바람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다크루나 길드원은 결코 그 무시무시한 칼날 폭풍을 피할 수 없었다.
투사체의 속도 자체는 그렇게까지 빠른 편이 아니었지만, 칼날 폭풍이 생성됨과 동시에 어김없이 이안의 비도 세 자루가 날아들기 때문이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드는 세 자루의 비도.
그것은 맞는 순간 속박으로 인해 1초 동안 움직일 수 없었고, 1초 정도면 칼날 폭풍이 휩쓸고 가기에 넉넉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콰아아앙!
“커허억!”
-블래스터의 고유 능력 ‘칼날 폭풍’이 발동하였습니다.
-마족 유저 ‘데르미안’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폭풍의 표식(3Stk)’으로 인해 위력이 3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데르미안’의 생명력이 7,592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칼날 폭풍’의 위력은, ‘바람 가르기’보다는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한 번 쓰면 그것으로 끝인 바람 가르기와 달리, 칼날 폭풍은 계속해서 튕겨 나가며 지속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게다가 이안이 ‘폭풍의 표식’을 실수 없이 계속해서 걸어 준다면, 이안이 실수하거나 비도가 다 떨어지기 전까지는 거의 무한에 가깝게 튕기며 피해를 입힐 수가 있다.
갈수록 더 강력해지는 위력으로 말이다.
-‘폭풍의 표식(1Stk)’으로 인해 위력이 1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솔린’의 생명력이 9,739만큼 감소합니다.
-‘폭풍의 표식(1Stk)’으로 인해 위력이 1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몰리니아’의 생명력이 10,929만큼 감소합니다.
-‘폭풍의 표식(1Stk)’으로 인해 위력이…….
그리고 그렇게 열 번이 넘도록 표식 연계가 끝나고 나면, 최대치까지 증폭된 칼날 폭풍의 위력은 ‘바람 가르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다.
-마족 유저 ‘이라한’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폭풍의 표식(3Stk)’으로 인해 위력이 3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이라한’의 생명력이 23,618만큼 감소합니다.
“크허억!”
순식간에 절반에 가까운 생명력이 빨려 나간 이라한의 등 뒤로, 한 줄기 식은땀이 주륵 하고 흘러내렸다.
칼날 폭풍의 위력도 물론 놀라웠지만, 그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힘든 이안의 움직임이었다.
‘균열 안에서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누가 보더라도 지금 이안은, 차원 마력 디버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스텟 차이가 나는 마당에, 필드 디버프 마저도 피해 가는 이안.
그러다 보니 다크루나 길드원의 눈엔, 이안의 플레이가 정상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를 뿌득뿌득 갈며 묻는 이라한을 보며 이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대체 어떻게 균열의 디버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거냐는 말이다.”
부들부들 떠는 이라한과 눈이 마주친 이안은, 말없이 실소를 흘렸다.
억울한 그의 표정이 충분히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한 건 이해한 거고,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이안은 이라한을 다시 약 올리기 시작하였다.
“균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날 여기로 끌어들인 거였어?”
“아니, 내가 언제 널 끌어들였어? 네놈이 제 발로 들어왔…….”
“됐고, 머리가 나빴으면 몸이 고생해야지, 뭐.”
“……!”
“로그아웃 시켜 줄 테니까, 쉬는 동안 공부들 좀 해 오라고.”
콰아앙-!
이안이 손을 휘젓자, 거대한 파도가 다시 이라한의 일행을 향해 뻗어 갔다.
처음 전투가 시작될 때와 달리 여력이 없어진 다크루나 길드원은, 타이달 웨이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앗!”
그리고 갑작스런 이안의 공격에 당황한 이라한 또한 제대로 된 대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이런 비겁한……!”
타이달 웨이브의 넉백 효과로 인해, 균열의 구석으로 옹기종기 밀려 나가는 다크루나 길드원.
그런 그들의 위로, 아이언의 커다란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그럼 잘 가라고.”
이어서 다크루나 길드원의 눈앞으로 거대한 용의 숨결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 * *
한편 균열의 디버프 때문에 다크루나 길드원이 고통받고 있던 그 무렵.
다른 차원계에는, 균열 버프로 달콤한 꿀을 빨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휴우, 이 정도면 오늘도 공헌도 괜찮게 쌓은 것 같지?”
“캬, 역시 이안 형 말대로 용천으로 오길 잘했어. 명계에 계속 있었어 봐야, 사냥터 경쟁이 너무 심해서 제대로 레벨 업을 못 했을 거라고.”
“훈이, 너 레벨 몇이야?”
“난 56. 누나는?”
“나는 이제 55 딱 찍었네.”
“좋아, 좋아. 균열에서 한 달 정도만 더 비비면 60~70까진 무난하게 찍을 수 있을 것 같네.”
“70은 몰라도 60까진 진짜 금방일 것 같아.”
오늘도 보람찬 사냥을 마치고, 균열을 빠져나와 정비 중인 로터스 길드의 파티원.
그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용천으로 달려온 훈이와 레미르는, 오늘도 열심히 이안을 찬양하는 중이었다.
처음 균열에서 고생할 때만 해도 매일 한숨을 푹푹 쉬었지만, 차원 마력 저항력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오자 달콤하기 그지없는 사냥 효율을 맛보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안처럼 150 맥스까지 찍은 이는 아직 없었지만, 100을 넘긴 것만으로도 균열은 충분히 고효율 사냥터가 되어 주었다.
이안이 쌓아 둔 공헌도 덕분인지 암천에서는 로터스 길드원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고, 암천의 용족들을 등에 업고 하는 사냥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으니 말이었다.
“그나저나 그렇게 노가다를 해도 차원 마력 저항력 맥스까진 아직인데, 이안 형은 대체 며칠 만에 맥스를 어떻게 찍었다는 거야?”
“몰라, 그게 중요해?”
“뭐, 그건 아니지만…….”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그, 그러지 뭐…….”
현재 로터스의 길드원은, 이안이 용천에서 닦아 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균열에서 길드원의 전반적인 레벨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그와 동시에 비룡의 둥지를 털어 잠재력이 높은 비룡을 포획하여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안처럼 한 번에 수백 마리의 비룡을 쓸어 담지는 못하였지만, 한두 마리씩이라도 차곡차곡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선별하여 비룡을 수집한 이유는 당연히 ‘천룡 기사단’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균열에서 열심히 파밍하며 모은 ‘용천주화’를 사용하여 ‘황금빛 안장’을 최대한 사 모으고, 진화 가능한 비룡들에게 안장을 사용하여 ‘철갑룡’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
아이언처럼 ‘철갑신룡’까지 만들어 내지는 못하더라도, 전설 등급인 ‘철갑룡’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자원이라 할 수 있었다.
전설 등급에 ‘탑승 가능’ 옵션이 붙은 드래곤이라는 자원은 희소성이 어마어마했으니 말이었다.
천룡 기사단을 설립하기 위한 조건들 중 현재 로터스 길드가 달성해 낸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천룡 기사단 설립 조건 (달성률 : 77.6퍼센트)
-중간계 길드 거점 3티어 이상 달성(미달성).
-‘중간자’ 이상의 위격을 가진 구성원 20인(달성).
-‘전설’ 등급 이상의 탑승 가능한 ‘드래곤’ 스무 마리 보유(14/20).
-‘신화’ 등급 이상, ‘천룡’ 이상의 위격을 가진 드래곤 종족 소환수를 수호 신수로 등록.
(달성/수호 신수 : 카르세우스)
-‘기사’ 클래스를 가진 구성원 5인 이상(달성).
-‘(흑)마법사’ 클래스를 가진 구성원 4인 이상(달성).
-‘사제’ 클래스를 가진 구성원 3인 이상(달성).
-‘소환술사’ 클래스를 가진 구성원 2인 이상(달성).
-초월 레벨 70레벨 이상인 전투 클래스의 ‘유저’를 ‘기사단장’으로 임명(0/1).
만약 천룡 기사단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길드원이 본다면, 두 눈을 의심할 정도의 달성률.
그리고 이런 달성률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끊임없는 푸시와 갈굼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이안 : 유현아, 길드 거점 3티어는 아직이야?
-헤르스 : 거, 거의 다 됐어. 조금만 기다려 봐.
-이안 : 2티어 달성한 지 한 달 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헤르스 : 어차피 너도 아직 70레벨 멀지 않았어?
-이안 : 난 이제 3레벨만 더 올리면 70이야.
-헤르스 : …….
-이안 : 후우, 라카토리움은 아무래도 나 혼자 가야겠네.
-헤르스 : 라카토리움? 기계 문명으로 이어지는 균열을 찾은 거야?
-이안 : 응. 지금 그 안에 있어.
-헤르스 : 아니, 그런데 가는 거면 길드원도 좀 데리고 가야…….
-이안 : 용기사단 버프라도 받을 수 있으면 모를까, 평균 50레벨로는 짐만 될 것 같은데?
-헤르스 : 용천에 있는 균열보다 정령계 균열이 난이도가 높은 거야?
-이안 : 그런 건 아닌데, 난 균열 넘어서 라카토리움까지 쳐들어갈 생각이니깐.
-헤르스 : 아하.
중간계 길드 거점의 집무실에서 이안과 메시지를 나누던 헤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진성이 이 녀석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벌써 67레벨이라니…….”
길드 관리와 업무 때문에 사냥을 소홀히 했다고 하긴 하지만, 지금 헤르스의 레벨은 45정도였다.
길드 파티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안과 20레벨이 넘게 차이나는 것이다.
“휘유, 난 내가 할 수 있는 거나 열심히 해야지 뭐.”
길드 거점의 정보 창을 오픈한 헤르스는 트라이 가능한 길드 퀘스트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용천으로 사냥 나갔던 길드 파티가 돌아오면, 곧바로 길드 퀘스트에 그들을 굴리기 위해서 말이다.
퀭해진 눈으로 앓는 소리를 할 길드원이 벌써 눈에 선한 헤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