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3화 6. 어부지리Ⅱ (2) >
* * *
새로이 나타난 손님은 무척이나 태연했다.
저벅저벅.
위협적인 외모의 기계 괴수들이 퇴로를 차단하고, 서른 명에 가까운 다크루나 길드원이 주변을 에워쌌음에도…….
“룰루.”
그는 마치 이 균열 안에 본인 혼자인 양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태연히 걸어 나왔다.
‘저놈…… 대체 뭐지?’
그리고 멀찍이서 그 실루엣을 지켜보던 이라한은 뭔가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이 균열 안에서만큼은 어떤 녀석들과 싸우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과 별개로 본능이 머릿속에 경종을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어라, 누군가 했더니 너였어?”
가까이 다가온 남자와 눈이 마주친 이라한은 온몸에 소름이 쫙 하고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손님’의 정체가, 그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이안……!”
사실 이라한은, 이안이 아니라 이안 할애비가 오더라도 이곳에서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곳은 모두에게 평등한(?) 균열이었고,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절반의 디버프를 먹은 상태에서 기계 괴수들과 길드원의 다굴을 이겨 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다만 본능적으로 불안감과 초조함이 끓어오르는 이유는, 이안과의 지난 악연이 너무 깊기 때문일 것이었다.
“역시 정령계의 균열도 마족 진영이랑 이어져 있었나 보네. 뭐, 예상은 했지만…….”
이안은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피식 웃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균열의 입구에서 이라한과 마주함으로서, 한 가지 사실이 확실해졌으니 말이다.
라카토리움과 연결되어 있다는 정령계의 균열이, 용천과 엘라시움을 잇는 균열처럼 유저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
이렇게 되면 굳이 호루스 기지를 뒤적거리며 설계도를 수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냥 균열을 뚫고 지나가 기계 문명의 차원계에 들어가서, 녀석들의 본진에 있을 더욱 뛰어난 설계도들을 약탈하면 되니까.
“여, 이라한.”
“……?”
“한 번 봐줄까?”
“그게 무슨……!”
“뭐, 싫음 말고.”
한차례 이라한을 약 올린 이안은, 본격적으로 소환수들을 다 소환하기 시작하였다.
우웅- 우웅- 우우웅-!
두 가신들과 까망이, 그리고 핀은 이 자리에 없었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이곳은 균열 안이었고, 균열은 이라한의 생각과 달리, 결코 평등한 곳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안의 파티에는 상급 고대의 정령이라는 새로운 전력도 합류되어 있었다.
‘얼른 블레스터를 써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는데…….’
그리고 이안이 소환수를 소환하는 동안, 그의 조롱으로 분노에 떨던 이라한은 또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싹 다 쓸어 버려!”
이안을 향한 다크루나 길드의 총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 * *
뿍뿍이와 라이의 제보를 받은 직후, 고민 없이 균열을 향해 목적지를 선회한 이안.
하지만 이안은 균열을 향해 곧바로 이동한 것이 아니었다.
이동 경로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 프뉴마 마을의 상점에 들렀다 왔으니 말이다.
프뉴마 상점에 들른 이유는 단 하나.
블레스터와 함께 사용할, 그의 고유 능력과 연계할 ‘정령 마법’들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폭풍이라는 파생 속성은 특이하게도 사대 속성과 연계가 되는 속성이로군.’
짹이가 갖고 있는 ‘전격’ 속성의 경우, 파생 속성이긴 해도 하나의 독립 속성으로 존재한다.
그 자체로 속성 간의 상성 관계를 가지며, 해당 속성만을 위한 독립 스킬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얻은 파생 속성인 ‘폭풍’ 속성의 경우 조금 개념이 달랐다.
‘폭풍’이라는 독립된 하나의 새로운 속성이라기보단, 바람속성과 물의 속성이 융합되어 탄생한 듀얼 속성이었으니 말이다.
하여 이안이 프뉴마에서 구입한 정령 마법은, 두 가지였다.
물 속성의 정령 마법과 바람 속성의 정령 마법.
블레스터의 고유 능력과 가장 궁합이 잘 맞을 마법으로 두 가지를 골라 구입한 것이다.
처음 프뉴마에 왔을 때와 달리 이안은 부자(?)였고, 때문에 가격과 무관하게 사고 싶은 마법서를 골라 구입할 수 있었다.
* * *
-바람의 비도술
분류 : 액티브 스킬
속성 : 바람
스킬 레벨 : Lv. 0
스킬 등급 : 유일(초월)
숙련도 : 0퍼센트
소모 값 : 150정령 마력(초월)
재사용 대기 시간 : 100초
‘바람’ 속성을 가진 정령의 힘을 빌려,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을 생성합니다.
처음 마법을 발동시킬 시 다섯 자루의 ‘바람의 비도’가 생성되며, 비도를 던져 대상을 명중시킬 시 소환 마력의 75퍼센트만큼의 바람 속성 피해를 입힙니다.
다섯 자루의 비도를 전부 명중시킬 시 열 자루의 비도가 추가로 생성되며, 추가로 생성된 모든 비도가 명중한다면 ‘바람의 비도술’ 재사용 대기 시간이 50초만큼 감소합니다.
*같은 대상에게 세 자루 이상의 비도를 연속으로 맞출 시, 대상을 1초 동안 ‘바람의 속박’상태에 빠지게 만듭니다(바람의 속박 상태에 빠진 대상은, 지속 시간 동안 이동속도가 99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바람의 속박’ 상태인 적에게 비도를 명중시킬 시 더욱 강력한 피해를 입히며 속박의 지속 시간이 0.5초만큼 증가합니다.
*스킬 습득 조건 : 패시브 스킬 ‘정령 소환술’을 배운 상태에서만 습득이 가능합니다.
*스킬 발동 조건 : ‘바람’ 속성을 가진 정령이 소환된 상태에서만 스킬 발동이 가능합니다.
일단 이안이 선택한 첫 번째 마법인 바람의 비도술은, 블레스터의 고유 능력인 ‘칼날 폭풍’과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스킬이었다.
명중을 잘 시킨다는 전제하에 최대 열다섯 개의 바람 속성 투사체를 쏘아 보낼 수 있는 것이었으니, 적재적소에 ‘폭풍의 표식’을 만들어 주기 아주 편리한 스킬인 것이다.
물론 원래 쓰던 정령 마법인 지옥의 화염시처럼 무한에 가깝게 투사체를 쏘아 보낼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이안은 기막힌 그림을 만들어 낼 자신이 있었다.
‘경우에 따라 바람의 속박을 활용해서 한 놈을 묶어 버릴 수도 있고.’
물론 이러한 가정들은 비도가 전부 명중한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이안의 논타깃 스킬 명중률은 타깃팅 스킬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이안이 구입한 물 속성의 정령 마법은, 바람의 비도술과 완전히 다른 성격의 스킬이었다.
-타이달 웨이브Tidal Wave
분류 : 액티브 스킬
속성 : 물
스킬 레벨 : Lv. 0
스킬 등급 : 영웅(초월)
숙련도 : 0퍼센트
소모 값 : 550정령 마력(초월)
재사용 대기 시간 : 180초
‘물’ 속성을 가진 정령의 힘을 빌려, 강력한 물의 파동을 연속해서 소환합니다.
파동은 시전자의 전면에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나가며, 범위 내의 모든 적에게 강력한 ‘물’ 속성의 피해를 입힙니다.
한 번의 웨이브당 소환 마력의 375퍼센트만큼의 물 속성 피해를 입히며, 물의 힘을 빌려온 정령의 공격력에 비례하여 위력이 더욱 증폭됩니다.
물의 파동은 7초 동안 총 일곱 차례 퍼져 나갑니다.
*물의 파동에 피격당한 적은, 80퍼센트의 확률로 (0.8~1미터)만큼 ‘넉백’됩니다.
*스킬 습득 조건 : 패시브 스킬 ‘정령 소환술’을 배운 상태에서만 습득이 가능합니다.
*스킬 발동 조건 : ‘물’ 속성을 가진 정령이 소환된 상태에서만 스킬 발동이 가능합니다.
바람의 비도술과 비교한다면, 훨씬 더 심플한 구조를 가진 정령 마법인 ‘타이달 웨이브’.
하지만 이안은 이 타이달 웨이브를 훨씬 더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했고,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정령 마법이라 생각하였다.
넉백 효과 외에 특별한 부가 효과 하나 없는 평범한 광역마법이었지만, 공격 계수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어마어마한 공격력 스텟을 가진 블레스터의 정령력을 빌려와 발동시킨다면, 무시무시한 광역 파괴력을 보여 줄 것이 분명한 스킬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녀석으로 한번 시작해 볼까?’
몰려드는 기계 괴수들을 한차례 둘러본 이안이 씨익 웃으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이어서 전방을 향해 창을 휘저으며, 타이달 웨이브를 발동시켰다.
콰아아아-!
마치 거대한 해일을 연상케 하는 위용을 뽐내며,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나가는 위력적인 물의 파동.
철썩- 철썩- 콰앙-!
연달아 터져 나오는 타격 음과 함께, 이안을 향해 달려들던 기계로봇들은 뒤로 쭉쭉 밀려 내려갔다.
-정령 마법, ‘타이달 웨이브’를 발동하였습니다.
-기계몬스터 ‘카르타’에게 강력한 물 속성 피해를 입혔습니다.
-‘카르타’의 내구도가 4,698만큼 감소합니다.
-‘카르타’의 내구도가 3,998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그리고 미친 듯이 깎여 내려가는 기계 로봇들의 내구도를 보며, 이라한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친……!”
하지만 놀란 것과는 별개로, 이라한은 산전수전 다 겪은 최상위의 랭커이자 길드 마스터였다.
게다가 이안에게 당해 본 경력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오더를 내리며 대응하였다.
“마법사들 뭐 해? 광역 실드 소환해!”
“내구도 많이 깎인 녀석들은 후방으로 내리고!”
그러나 이라한과 다크루나 길드가 분주하게 대응하는 동안, 이안 또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타이달 웨이브로 다크루나의 진형을 붕괴시켰으니 이제 블래스터와 함께 날뛸 차례인 것이었다.
‘어디 보자……. 제일 티어가 높아 보이는 녀석들부터 하나씩 잘라 내는 게 좋겠는데.’
차원 마력으로 오히려 능력치가 뻥튀기된 이안에게, 디버프로 손발이 잘린 다크루나 랭커들은 조금의 위협조차 되질 않았다.
그나마 이 전장에서 위협적인 존재들은 디버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이는 기계 몬스터들.
때문에 이안은, 가장 강력해 보이는 기계 로봇부터 타깃팅하기로 결정하였다.
“블래스터, 저기 저놈 보이지?”
-보인다, 계약자여.
블래스터를 부른 이안은 씨익 웃음 지으며 오더를 시작하였다.
“일단 ‘바람 가르기’로 시작하자고.”
척-!
이안이 손을 뻗어 기계 괴수를 가리킨 순간, 블래스터의 모습이 파란 회오리에 휩싸이며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이안은, 지체 없이 ‘바람의 비도술’을 시전하였다.
촤라락-!
-‘바람의 비도술’ 정령 마법을 발동하였습니다.
-다섯 자루의 ‘바람의 비도’가 생성되었습니다.
이안의 오른손 주변에 떠오른, 신비한 기운으로 만들어진 다섯 자루의 은청빛 비도.
스르륵-!
그것들을 자연스레 집어 든 이안은 블래스터가 튀어 나간 방향을 향해 다시 한 번 손끝을 흩뿌렸다.
그러자 더욱 파란 기운으로 뒤덮인 다섯 자루의 비도들이, 사나운 파공성을 만들어 내며 허공을 가로질러 쏘아졌다.
쐐애액-!
그리고 다음 순간.
퍼퍼퍼퍽-!
어마어마한 속도로 쏘아져 간 다섯 자루의 비도들이, 앞서 튀어 나간 블레스터보다 먼저 기계괴수의 몸통에 차례대로 박혀 들어갔다.
-기계 몬스터 ‘데르탈’에게 강력한 바람 속성 피해를 입혔습니다!
-‘데르탈’의 내구도가 1,026만큼 감소합니다.
-폭풍의 정령 ‘블래스터’의 고유 능력 ‘폭풍의 눈’이 발동합니다.
-‘폭풍의 표식’이 생성되었습니다.(1Stk)
-‘데르탈’의 내구도가 1,011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기계 괴수의 덩치가 큰 편이기는 하였으나, 미친 듯 날뛰고 있었던 상황임을 생각한다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정교한 비도술이었다.
그리고 비도들이 전부 명중함과 동시에, 이안이 바람의 비도술을 습득하며 생각했던 첫 번째 그림이 깔끔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폭풍의 표식’이 생성되었습니다.(3Stk)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바람의 속박’이 발동합니다.
-‘폭풍의 표식’이 생성되었습니다.(4Stk)
-‘바람의 속박’ 지속 시간이 0.5초만큼 증가합니다.
-‘폭풍의 표식’이 생성되었습니다.(5Stk)
-‘바람의 속박’ 지속 시간이 0.5초만큼 증가합니다.
다섯 개의 비도에 피격됨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 거대한 기계 괴수 데르탈.
그런 그의 위로 블래스터의 ‘바람 가르기’가 그대로 작렬하였다.
퍼펑- 펑-!
블래스터가 돌진하면서 한 번, 되돌아오면서 한 번.
두 번의 바람 가르기를 정확히 기계괴 수의 약점에 명중시킨 것이다.
-‘폭풍의 표식(5Stk)으로 인해 위력이 한 배 반 증폭됩니다.’
-‘데르탈’의 내구도가 12,758만큼 감소합니다.
-두 번의 바람 가르기를 성공하여, 위력이 두 배 강화됩니다.
-‘데르탈’의 내구도가 25,217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이안의 눈앞에 모든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퍼펑-!
순식간에 모든 내구도를 잃어버린 4티어의 기계 괴수가 그대로 허공에서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
다크루나 길드에서도 아직 몇 개체 만들지 못한 상위 티어의 기계 로봇이, 단 한 번의 공격에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그러나 다크루나 길드의 악몽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