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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71화 (778/1,027)

< 771화 5. 어부지리 (3) >

* * *

간만에 꿀 같은 수면을 취한 뒤 곧바로 다시 카일란에 접속한 이안.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던전을 클리어하고 얻은 전리품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고대의 정령혼을 사용하기에 앞서, 잡템(?)부터 빠르게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는 가장 먼저 프뉴마 마을의 대장간을 방문하였다.

던전의 보스를 처치하고 나오는 길에 수거했던, ‘고대의 황금빛 나뭇가지’ 아이템부터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마음이 바쁜 이안은, 접속하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 자네, 이안 아닌가. 오랜만일세. 여긴 어쩐 일로……?”

“고대의 양피지가 필요해서요.”

“흠, 고대의 양피지라. 확실히 그 물건이라면 내가 만들어줄 수 있지. 하지만 재료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자, 여기 이만큼 드릴 테니, 되는 대로 많이 만들어 주세요.”

“헉, 이 귀한 재료들을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정령산에서 따 왔어요.”

“그, 그게 무슨…….”

“저 지금 좀 바쁘니까, 빨리 만들어나 주세요.”

“아, 알았네. 제작 자체는 어렵지 않으니 금방 완성해 주도록 하지.”

띠링-!

-‘고대의 황금빛 나뭇가지×27’ 을 건네었습니다.

-‘고대의 양피지\×3’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어서 세 장의 양피지를 인벤토리에 챙긴 이안이 향한 곳은, 77호와 ‘로봇 머슴’이 열심히 작업 중인 자신의 공장이었다.

이번에는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쌓인 어마어마한 양의 정수들과, 양산형 설계도를 77호에게 건네기 위해서였다.

“자, 77호.”

“응?”

“여기 이것들을 맡겨두고 갈 테니까 싹 다 사용해서 공장 좀 돌려 봐.”

“뭐, 뭐야. 어디서 재료를 이렇게 많이……!”

“그건 알 것 없고. 아무튼 싹 다 쓸 때까지 공장 풀가동 시켜 줘.”

“아니, 재료만 많으면 뭐 해? 설계도가 있어야…….”

“설계도는 그거 하나면 충분할 거야.”

“……?”

“그거 일회용 아니고 양산형 설계도거든.”

“커헉!”

그리고 놀라는 77호를 뒤로한 채 마지막으로 이안이 향한 곳은, 바로 프뉴마 마을의 거래소였다.

포획하면서 미리 선별해 둔 상등급의 정령들을 제외한 수백 마리의 정령들을, 경매장에 전부 등록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한 번에 대량으로 물량을 풀어 버리면 제값을 받기는 힘들겠지만, 코인 조금 더 벌겠다고 일일이 정령을 나눠 파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그 시간에 다른 콘텐츠를 진행하는 것이 이안에게는 더 의미 있는 일인 것이다.

‘쓸 만한 개체들로 열 마리 정도만 남겨 놓으면, 길드원에게 나눠 주기도 충분하겠지.’

-‘조화의 구슬(사용됨)’ 아이템을 경매장에 등록하였습니다. (폭풍의 정령 ‘블레스티아(중급)’)

-‘조화의 구슬(사용됨)’ 아이템을 경매장에 등록하였습니다. (폭풍의 정령 ‘블레스티아(중급)’)

-‘조화의 구슬(사용됨)’ 아이템을 경매장에 등록하였습니다. (폭풍의 정령 ‘블레스티아(중급)’)

……후략……

그리고 그렇게 꽉꽉 차 있던 인벤토리를 싹 정리한 이안은, 경건한 마음으로 정령의 제단 근처로 향했다.

물론 정령혼을 쓰기 위해 꼭 제단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제단에서 신성한(?) 기운을 받는다면 성공률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거 실패하면 며칠 노가다 한 거 그대로 날리는 셈인데…….’

이안은 인벤토리 안에 넣어 두었던 정령들을 꺼내어, 다시 한 번 신중하게 능력치들을 비교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 중 확실하게 가장 능력치가 좋은 녀석을 선별하여 제단에 올려놓았다.

가장 좋은 녀석을 고대의 정령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했으며, 그에 더해 좋은 녀석일수록 더 성공률도 높다고 명시까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이어서 마치 신주단지 다루듯 조심스레 황금빛 호리병을 꺼내 드는 이안.

양손으로 조심히 그것을 받쳐 든 이안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크게 심호흡하였다.

“후우.”

거의 50시간 동안 던전을 샅샅이 뒤졌음에도, 단 하나밖에 얻을 수 없었던 귀중하기 그지없는 아이템!

“가자……! 어차피 못 먹어도 고!”

퐁-!

이안은 망설임 없이 호리병의 뚜껑을 열었고, 그대로 그 안의 내용물을 조화의 구슬에 부었다.

그러자 호리병의 안에서, 황금빛 기운이 흘러나와 구슬을 감싸기 시작하였다.

띠링-!

-‘고대의 정령혼’ 아이템을 사용하셨습니다.

-‘조화의 구슬(폭풍의 정령 블레스티아)’을 선택합니다.

-‘폭풍의 정령’입니다.

-‘파생 정령’입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폭풍의 정령 블레스티아’의 영혼에 고대의 정령 혼이 깃들기 시작합니다.

우우웅-!

언제나 그랬듯 뜸들이지 않고 아이템을 발동시킨 이안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침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들어간 노력과 기대감이 큰 만큼, 긴장감도 큰 것이 당연하니 말이다.

“제발……!”

하지만 다음 순간, 이안은 안도감과 동시에 묘한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폭풍의 정령 블레스티아’의 영혼 잠재력에 따라, 고대의 비술이 성공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현재 성공 확률 : 98.95퍼센트

-폭풍의 정령이 고대의 힘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고대의 정령혼’ 아이템이 소멸하였습니다.

-‘고대의 비술’이 성공하였습니다!

성공 메시지를 확인하여 안도하였으나, 성공률이 99퍼센트에 가까운 것을 보자 살짝 허탈해진 것이다.

‘괜히 마음 졸였나?’

하지만 그러한 자잘한(?) 감정들과 별개로 역시 가장 큰 것은 뿌듯함이었다.

“흐흐.”

조화의 구슬을 깨고 눈앞에 나타난 고대의 정령이, 늠름한 자태로 이안과 마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난 고대의 정령, 블레스터.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인간이 그대인가?

심지어 고대의 신령수 던전에서 만났던 고대의 정령과 비교하더라도, 훨씬 더 멋들어진 생김새를 가진 처음 보는 고대의 정령.

이전까지 봤던 폭풍의 정령이 새하얀 바람에 휘감긴 전사의 모습이었다면, 지금 이안의 눈앞에 나타난 이 녀석은, 대장군과 같은 위용을 뿜어내고 있었다.

생김새 자체는 평범한 블레스티아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덩치가 더욱 큰 데다 휘황찬란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황금빛 갑주를 두르고 은빛 언월도를 거머쥔, 멋들어진 고대 정령의 자태.

그리고 녀석의 머리 위에 떠오른 시스템 박스를 확인한 순간.

“……!”

이안의 전신으로, 심장이 멎을 듯한 행복감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폭풍의 정령 ‘블레스터(상급)(고대)’

고대의 정령을 소환해 내는 데 성공한 것도 모자라, 무려 상급의 고대 정령이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말이었다.

* * *

이라한을 위시한 다크루나 길드의 전력과, 랄프, 이니스코, 체스크를 포함한 미국 서버 랭커들의 진영.

팽팽한 것처럼 보이던 양 진영 간의 전투는 조금씩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다크루나 길드에서 최대한 수비적으로 대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영이 슬슬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내 길드원 한둘을 잃은 다크루나 길드는 슬금슬금 후퇴하였다.

이어서 마족 랭커들이 도망치는 것을 확인한 미국 랭커들은,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놈들이 도망친다! 쫓아!”

“마족 놈들을 잡아라!”

그리고 전장 전체를 진두지휘하던 랄프는, 달아나는 다크루나 길드원을 보며 흡족한 웃음을 터뜨렸다.

“으흐흣, 그러니까 상대를 봐 가면서 공격을 하든가 했어야지. 선제공격은 지들이 해 놓고 도망치는 꼴이라니…….”

복수니 어쩌니 이상한 소리를 해 대며 미친 듯이 달려들던 마족 랭커들이 꼬리를 말자, 더욱 자신감이 솟아오른 것이다.

그것은 옆에 있던 체스크와 이니스코도, 랄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빨리 쫓아가서 다 잡아 버리자, 랄프 형. 그래도 마계 진영 쪽에선 제법 랭커들이라, 처치 보상이 은근 짭짤할 거야.”

“당연하지. 추격이야 내 전문 아니겠어?”

한동안 명계에서 주구장창 레벨을 올렸던 미국 서버의 랭커들은, 상대 진영 유저를 처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짭짤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립 진영끼리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정령계나 용천과 달리, 명계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족과 인간족의 전투가 벌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랄프를 비롯한 미국 서버 랭커들은, 정령계에서 만난 마족들이 온실 속 화초들이라 생각하였다.

초월 레벨이야 자신들과 비견될 정도로 높아 보였지만, 대규모 PVP에 대한 경험만큼은 압도적으로 부족할 것이라 판단했으니 말이다.

‘저들을 쫓다 보면 마족들이 어떤 루트로 정령계에 진입했는지도 알아낼 수 있겠지. 그리고 분명히 그 통로는, 새로운 콘텐츠들과 연관되어 있을 거야.’

꼬리 내리고 후퇴하는 마족 랭커들을 보며, 랄프의 두 눈은 탐욕에 가득 찼다.

녀석들을 쫓아 처치하여 초월명성을 비롯한 보상을 획득하고 그에 이어 새로운 콘텐츠까지 발견한다면, 다시 돌아온 정령계에서의 첫 걸음이 아주 완벽할 것 같았으니 말이었다.

타탓- 탓-!

“마법사들 뭐 해? 헤이스트 좀 걸어 봐!”

“이니스코, 비행 소환수 띄워서 녀석들 위치 파악 지속적으로 해!”

추격이 전문이라는 호언장담이 허세는 아니었는지, 일사불란하게 파티원을 컨트롤하여 마족 랭커들을 고립시키는 랄프.

그의 깔끔한 오더에 힘입은 파티원은 매서운 기세로 험준한 산맥을 타고 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어, 저기……!”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그들이 발견한 것은, 신비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어두컴컴한 바위동굴이었다.

“뭐지? 던전인가?”

이어서 동굴로 뛰어드는 마족 랭커들을 보며, 그들을 쫓던 랄프 일행들은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가 하나도 없는 미지의 지역에 쫓아 들어가는 것은, 확실히 리스크를 수반하는 일이니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망설임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들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랄프의 오더가 곧바로 떨어졌으니 말이었다.

“뭣들 하는 거야? 빨리 쫓아 들어가지 않고!”

“하, 하지만……!”

“녀석들의 전력은 대충 파악했잖아? 괜히 쫄 필요 없다고 친구들!”

랄프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미지의 동굴이 바로, 마계 랭커들이 정령계에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이자 새로운 콘텐츠일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최상위 랭커답게 랄프의 촉은 예리했다.

그곳이 바로 ‘균열’이었고, 그것은 기계문명과 정령계를 이어 주는 통로였으니 말이다.

비록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이 그들을 전멸의 길로 인도하게 될지라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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