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770화 (27/1,027)

< 770화 5. 어부지리 (2) >

* * *

‘아로니에의 미로’를 통과한 뒤, 정령산을 한참 동안 뒤지던 라이와 뿍뿍이.

둘은 결국 처음 목표였던 ‘균열’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기계 몬스터만 보이면 다 부숴 버리려고 하는 뿍뿍이의 개인적인 사무(?) 때문에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원래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이다.

이어서 균열의 안쪽까지 꼼꼼하게 확인한 뿍뿍이는 다시 밖으로 나와 걸음을 돌렸다.

“뿍, 이제 돌아가자뿍.”

“크릉, 저 안으로는 안 들어가는 거냐, 뿍뿍?”

“균열 입구만 찾아오면 주인이 함께 가 주기로 했뿍.”

“크르릉. 그렇군.”

“주인과 함께 가야 더 빨리 찰리스를 찾을 수 있을 거다뿍.”

“맞다, 크릉. 주인은 똑똑하니까.”

뿍뿍이를 비롯한 소환수들의 눈에 이안은 악덕 주인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그의 능력만큼은 모두가 신뢰하고 있었다.

일단 개인의 전투력 자체도 압도적으로 강했지만, 항상 기상천외한 전략과 전술을 보여 주니 말이다.

그리하여 균열을 찾은 라이와 뿍뿍이는 일단 프뉴마 마을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마을에서 이안이 다시 접속하기까지 기다리려는 것이다.

뿍- 뿍-.

프뉴마 마을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뿍뿍이와 라이.

“크릉-!”

그런데 잠시 후.

두 소환수가 사라진 그 자리에 소란스런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휴우, 드디어 도착했군.”

“그렇습니다, 마스터.”

“매번 지나다닐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균열 안에서 이동하는 건 너무 고역이야.”

“이제 저희 전진기지에 이동 포털만 설치하면, 균열을 다시 지날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후후. 그건 그렇지. 대체 저런 쓸모없는 콘텐츠는 왜 만든 건지…….”

정말 잠깐의 시간 차이로 두 소환수와 엇갈린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라한과 다크루나 길드의 길드원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마스터. 지금쯤 일꾼 로봇들이 어느 정도 터를 닦아 놓았을 겁니다.”

“좋아, 좋아. 가 보자고.”

이라한을 선두로, 다크루나 길드의 기계 로봇들과 생산 장비들이 균열을 넘어 차례대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기다란 행렬들은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로니에의 미로가 있던, 그 숲을 향해 말이다.

* * *

“읏차, 드디어 출구인가?”

“오오, 랄프 형 말이 맞았어! 이쪽이 출구였네.”

“크, 이 정도면 생각보다 쉽게 통과했는데?”

“그러게. 이 미로인지 뭔지, 짜증나긴 해도 보상이 제법 짭짤하잖아?”

“맞아. 초월 명성에 경험치 보상만 해도, 은근 쏠쏠한 걸?”

아로니에 미로의 출구.

2시간 정도의 트라이 끝에 미로를 전부 통과한 랄프 일행들은 저마다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이 ‘미로’이지 이 아로니에의 미로는 히든 던전 같은 곳이었고, 출구에 도착하자 제법 훌륭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길드원을 좀 데려오길 잘했어.”

“맞아. 셋이서 헤딩하다가는 훨씬 더 시간이 오래 걸렸을 거야.”

미로의 난이도가 낮은 편은 아니었지만, 길드원을 추가로 불러 물량으로 밀어붙이니 금방 클리어한 것.

특별한 장비 아이템이나 히든피스를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랄프 일행들은 투자한 시간대비 초월명성과 경험치를 쏠쏠하게 챙겼다.

게다가 아까 보았던 그 의문의 에픽 몬스터(?)들도 곧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니스코의 경우 더욱 들떠있을 수 밖에 없었다.

‘흐릿해서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 드래곤 분명 대단한 소환수일 거야.’

미국 서버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상위 랭커 소환술사인 이니스코는, 이미 신화 등급의 소환수도 둘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니스코의 가장 큰 불만은 자신의 신화 등급 소환수 중 용족이 없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흐릿하게나마 모습을 보였던 정체불명의 드래곤이, 더욱 탐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 이니스코는 일행을 독촉하기 시작하였다.

“랄프 형, 얼른 안쪽으로 들어가 보자. 아까 그 몬스터들을 얼른 찾아야 해.”

이니스코의 말에 랄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래. 그 드래곤같이 생긴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어쩌면 히든 퀘스트의 단서가 되는 이벤트일 수도 있으니 빨리 찾아봐야겠지.”

두 사람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 랄프 일행들은 망설임 없이 더 깊은 숲속으로 이동하였다.

미로 안에서 등장했던 몬스터들의 수준이 그들에게 어렵지 않은 레벨대였기 때문에 더 깊은 맵으로 이동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이 정도 레벨대의 맵에서는 어떤 몬스터가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이제 길은 한 갈래네. 안쪽으로 쭉 들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겠어.”

한 걸음 떼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웠던 미로와 달리, 미로 바깥의 길은 무척이나 단순하였다.

산세가 가팔라져 구불구불하고 험하기는 했지만, 길은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이 험준한 산속에는 몬스터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이미 파괴된 기계 몬스터들의 사체들(?)만이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거, 그 드래곤의 작품인 것 같은데…….’

이니스코는 부서진 기계로봇들을 살펴보며 더욱 기분이 들뜨기 시작하였다.

파괴된 잔해들의 흔적을 봤을 때 이것은 분명 미로 바깥에서 보았던 드래곤과 펜리르의 작품이 분명했고, 그렇다는 말은 이 길의 끝에 녀석들이 있을 확률이 더욱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하여 랄프 일행들은, 거침없이 안쪽으로 이동하였다.

미로보다 배 이상은 먼 거리를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은 반에 반도 걸리지 않았다.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 보면 봉우리가 나올 것 같은데, 그쪽에 뭔가 이벤트가 있겠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아까 봤던 그 드래곤의 레어라든가…….”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봉우리에 다다를수록, 저마다 들뜨기 시작하는 랄프 일행들.

하지만 잠시 후.

봉우리의 향해 거침없이 산로를 오르던 랄프 일행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 폐허가 된 공터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과 마주해야 했으니 말이다.

“……?”

“쟤, 쟤들 뭐야?”

“정령계에 마족들이 어떻게……!”

랄프 일행들이 마주한 것은 드래곤도 히든피스도 아닌 일단의 마족들이었던 것.

“찾았다!”

“저, 저놈들이었어!”

“저놈들이 범인이었군!”

“으드득, 싹 다 죽여 주마!”

심지어 어찌 된 일인지 그 처음 보는 마족들은 무척이나 울분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

이라한을 비롯한 다크루나 길드의 길드원은 당황하였다.

아니, 당황을 넘어 분노하였다.

“대체 이게 무슨……!”

“아니, 그 1시간 사이에 어떻게 이럴 수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크루나에서 공들여 만든 수많은 기계 설비들과 로봇들이 싹 다 부서져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후발대로 운송해 온 기계 로봇들과 설비들이 더 많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피해가 막심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크루나 길드의 기계 설비들 중 30퍼센트는 박살이 난 셈이었으니 말이다.

“후우…….”

게다가 미리 닦아 놓은 터가 완전히 망가진 것이었으니, 정령산에 요새를 건설하겠다는 장대한 계획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본대가 도착한 시점에 이미 터는 완성되어 있고, 준비해 온 기계 설비들로 뚝딱뚝딱 요새를 완성할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이틀 정도의 시간을 날려 버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젠장, 대체 어떤 놈들이……!”

재수가 없어도 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주변 환경까지 싹 정찰하여 인적이 없을 위치를 선정하였으며, 길드원이 자리를 비운 시간은 고작 1~2시간에 불과하였는데 그 사이에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남겨 두고 간 기계 로봇들에게 전투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지간한 랭커 한둘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정도의 전력은 되었으니, 최상위권 랭커 파티가 습격한 것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스터, 범인들이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 찾아서 본때를 보여 줘야 합니다!”

“맞습니다. 분명 이 근방 어디에 놈들이 있을 겁니다. 거점 건설에 앞서, 위험 요소를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길드원의 말에, 이라한은 이를 뿌드득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거점이 파괴된 것에 대한 복수도 복수였지만, 놈들이 언제고 다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 근방에 인간 진영 랭커로 구성된 파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거점을 만드는 데 큰 위협이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솔린의 말이 맞다. 일단 거점건설은 뒤로 미뤄 두고, 녀석들을 먼저 찾아야 해.”

이라한과 다크루나의 길드원은, 눈을 번뜩이며 주변 지형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준비한 대계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흩어져! 우리가 이쪽을 수색할 테니, 라르밀 너희는 반대로 가!”

“알겠어, 솔린!”

그리고 그렇게 10분 여 정도 지났을 무렵.

“찾았다!”

“저, 저놈들이었어……!”

“저놈들이 범인이었군!”

“으드득, 싹 다 죽여 주마!”

다크루나의 길드원은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간진영의 파티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모든 상황과 전제조건을 떠나 인간 종족과 마족은 기본적으로 적대 관계이다.

때문에 다크루나 길드원과 랄프 일행이 만난 순간, 전투가 시작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싸우고 보자!”

“그래, 랄프 형, 보아하니 마족 진영 랭커인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명성이나 확 땡겨 보자고!”

카일란에는 명성을 쌓기 위한 여러 가지 콘텐츠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명성을 주는 것은 상대 진영 유저와의 전투였다.

동레벨대의 상대 진영 유저 하나만 처치해도 거의 1천에 가까운 초월 명성을 획득할 수 있으니, 확실히 적지 않은 양인 것이다.

게다가 지금 정령산에서 마주친 양쪽 진영들은 각각 자신감에 차 있는 랭커들이었으니 서로 전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길드 대부분이 포진한 다크루나 길드에 비해 랄프 일행의 인원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압도적인 수준도 아니었다.

랄프와 체스크, 이니스코가 속한 길드에서 각각 길드에 속한 랭커들을 대동해 왔으니 말이다.

오히려 로봇들로 구성된 인원을 제외한다면, 단일 길드인 다크루나 쪽의 인원이 딱히 더 많다고 느껴지지도 않는 수준.

“싹 쓸어 버리자!”

“우리가 할 소리!”

하여 정령산에서는 때 아닌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무척이나 치열하였다.

양 진영의 전투력은, 결국 비등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저 로봇들의 전투력이 생각보다 강해! 랄프 형, 어그로 좀 끌어 줘!”

“알겠어, 체스크!”

까강-!

퍼퍼펑-!

그리고 전황이 생각보다 팽팽하게 진행되다 보니, 당황한 것은 다크루나 길드와 이라한이었다.

‘이런 녀석들이 갑자기 어디서……!’

랄프 일행이야 지켜야 할 것들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크루나 길드들은 후방에 있는 자신들의 기계 설비를 지켜야 했으니 말이다.

때문에 이라한은 전력으로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전투가 길어진다면, 불리한 것은 자신들일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라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번개같이 스쳐 지나갔다.

‘잠깐. 그러고 보니…….’

문득 자신들이 통과한 균열의 강력한 디버프가 생각난 것이다.

‘유저들과 달리 로봇들은 차원 마력 디버프 영향에서 자유롭잖아?’

정확히는 균열을 통과할 때 로봇들이 차원마력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던 것.

이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이라한은 다급하게 솔린을 불러 세웠다.

“솔린, 잠시 이쪽으로……!”

“예, 마스터!”

다급한 목소리가 된 이라한은, 솔린에게 빠르게 모종의 명령을 내렸다.

인간 진영의 유저들이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렇게…… 그렇게 하면…….”

그리고 그 명령을 다 들은 솔린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 좋은 생각이십니다, 마스터!”

“그러니 빨리 움직이도록!”

“옛!”

이어서 힘차게 대답한 솔린이 사라지자 이라한은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좀 더 밝아진 표정으로 말이다.

‘후후, 그 짜증나는 균열을 이렇게 사용할 수 있을 줄이야.’

만약 이라한이 머릿속에 그린 대로 시나리오가 전개된다면, 제법 강력해 보이는 저 인간계 랭커들을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변수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라한이 고려할 수 없었던 그 변수는, 안타깝게도 재앙에 가까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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