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5화 3. 오염된 고대의 신령수 (2) >
* * *
소환술사 클래스의 꽃이자, 가장 중요한 콘텐츠인 포획.
이렇게 중요한 콘텐츠인 만큼 포획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포획하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이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오염된 정령을 포획하는 것은 무척이나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매커니즘이야 소환수를 포획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비슷할지 몰라도.
마력만 있으면 무한정 시도 가능한 포획 고유 능력과 달리, 오염된 정령을 포획할 때에는 한정된 자원인 조화의 구슬이 필요하니 말이다.
최소한의 시도로 포획에 성공해야 하니, 물밑작업에 더욱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이안이 쌍둥이 자매에게 잘해 주며 미리 설계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오염된 정령의 생명력을 깎고 포획할 수 있도록 밥상을 차리는 작업을, 두 자매에게 전적으로 위임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포획 노가다는 이안의 마음에 드는 정령을 포획할 때까지 계속 진행될 것이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찾아낸 정령들 중에는 얘들이 제법 괜찮은 것 같지?”
던전의 구석에 모여 있는 중급 폭풍의 정령, ‘블레스티아’.
2시간이 넘도록 던전을 구석구석 뒤진 끝에 적당히 마음에 드는 파생 정령을 찾아낸 이안은, 두 자매를 번갈아 보며 넌지시 운을 띄웠다.
그리고 레벨 업을 해서인지 의욕이 넘치는 두 자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롭게 대답하였다.
“맞아, 지금껏 상대했던 녀석들 중에 제일 괜찮아 보여.”
“고유 능력도 훌륭하고, 전투 능력 자체도 어쭙잖은 상급 정령들보다 나은 것 같고…….”
두 자매의 대답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비록 고대의 정령은 아니지만, 일단 이 녀석들부터 포획해 보자고. 아직 그림자도 못 본 고대의 정령만 무작정 기다릴 순 없으니 말이야.”
이안의 말에 두 자매는 다시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포획을 시작한다는 생각에 들뜬 바네사는 더욱더 적극적이었다.
“좋았어. 그럼 뭐부터 할까, 이안?”
“한 마리씩 유인해서 생명력 깎는 작업부터 해야겠지.”
“알겠어. 그럼 이안 네가 유인해 올래? 나랑 언니가 같이 생명력 깎는 작업을 할게. 아무래도 중급 정령이라, 네가 공격하면 너무 쉽게 죽어 버릴 것 같아.”
바네사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에 이안은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이안이 원했던 것이 바로 이거였기 때문이었다.
‘후후, 그래도 랭커들이라 그런지, 척 하면 척 알아듣는군.’
정령 보호소에서 오십여 마리의 정령을 잡아 본 결과.
정령을 포획하는 데 성공하기 위한 가장 기본 조건은 생명력을 최대한 바닥까지 빼는 것이었다.
때문에 공격력이 필요 이상으로(?) 강력한 이안에게는 정령의 생명력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중급 정령의 경우 이안이 3~4회 정도 창을 휘두르면 그대로 죽어 버리기 때문에, 사라와 바네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좋아. 내가 적당히 두어 대 쳐서 그쪽으로 쫓아 낼 테니까, 마무리 작업 좀 잘 부탁해.”
“오케이! 우리만 믿어, 이안!”
이안이 몇 대 쳐서 절반 이하의 생명력을 만든 뒤 쌍둥이 자매에게 쫓아내면, 두 자매가 섬세한(?) 작업으로 정령의 생명력이 실금에 가까워질 때까지 공격한다.
그리고 그렇게 빈사 상태가 된 정령을 이안이 조화의 구슬로 포획하면,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포획에 성공할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안이 처음부터 그렸던, 포획 공장(?)의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대충 보이는 것 다 잡으면 서른 마리 정돈 되겠고……. 그 정도면 얼추 견적이 나오겠지.’
파생 정령은 사대 정령과 달리, 일반 소환수들처럼 정령마다 능력치가 제각각이다.
같은 종류의 같은 레벨 정령이라 하더라도 개체마다 전투력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안은 이 폭풍의 정령들을 포획하며 능력치를 분석한 뒤, 가장 괜찮은 녀석을 남기고 전부 경매장에 팔아 버릴 생각이었다.
절반 정도는 쌍둥이 자매에게 인건비로 넘겨줄 용의도 있었다.
“자, 얼른 시작해 보자고.”
이안의 이 말을 시작으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노가다의 열차가 출발하고 말았다.
어쩐지 승객들의 표정은 제법 신나 보였지만 말이다.
* * *
처음 포획 노가다가 시작되었을 때, 쌍둥이 자매는 마냥 행복하였다.
노가다가 제법 고되기는 하였어도, 이것은 이안과 함께가 아니라면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현재 정령계에 대체 어떤 랭커가 있어서, 중급~상급 정령들이 득실거리는 이 오염된 고대의 생명수 던전에서 노가다를 할 수 있을까?
아마 최상위권 랭커들이 파티를 맺고 오더라도, 노가다는커녕 클리어조차 제대로 해 내지 못할 고난이도의 던전.
이안 덕분에 이 던전에서 마음 놓고 파밍을 하고 있으니, 두 자매의 입장에서는 힘듦조차 느껴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 둔화 마법으로 발 좀 묶어 봐. 저쪽으로 빠져나가면 골치 아파진다고!”
“알겠어! 그리고 마지막엔 포이즌 마법 쓸 거니까 공격 멈춰야 돼!”
“오케이!”
이안이 따로 오더를 내리지 않아도, 깔끔하게 호흡을 맞추며 역할을 해 내는 쌍둥이 자매.
정령의 생명력을 조금이라도 더 깎아 내기 위해, 지속 피해를 줄 수 있는 포이즌 계열의 마법까지 사용해 가며 두 사람은 이안을 확실히 서포팅하였다.
덕분에 이안의 인벤토리에는, 폭풍의 정령 ‘블레스티아’를 가둔 조화의 구슬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였다.
-‘조화의 구슬’아이템을 사용하셨습니다!
-폭풍의 정령 ‘블레스티아(중급)’을 성공적으로 포획하셨습니다!
-폭풍의 정령 ‘블레스티아(중급)’을 성공적으로 포획하셨습니다!
……후략……
‘생각보다 둘이 더 잘해 주는데?’
이안은 흡족한 표정으로 사라와 바네사를 힐끔 응시하였다.
까다로운 고용주인 이안이 보기에도, 결코 임금이 아깝지 않은 직원들!
하여 이안은, 중간중간 추가 임금 협상(?)도 잊지 않았다.
이안은 직원들을 하드하게 부려먹을지언정, 임금 체불은 하지 않는 양심적인 고용주였으니 말이다.
“오, 좋아, 좋아! 이렇게만 계속 해 주면, 있다가 사냥 끝나고 중급 정수도 좀 나눠 줄게.”
“좋았어! 약속은 꼭 지켜야 돼!”
그에 더해 업무의 텐션이 떨어질 때마다, 한 번씩 당근을 던져 주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좋았어, 바네사! 계속 그렇게만 해 줘. 내가 괜찮은 녀석으로 골라서 몇 마리 분양해 줄 테니 말이야.”
“크……!”
“역시 이안갓이야!”
하지만 노가다의 시간이 흐르고 흐를수록, 두 직원들은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 너무 열심히 뛰어다녀서 그런가? 온몸이 다 뻐근하네.”
“언니, 지금까지 몇 마리 잡았지?”
“정확히 세진 않았는데, 얼추 서른 마리 정도 잡은 것 같아.”
“흐음, 그럼 이제 슬슬 블레스티아 포획은 마무리할 때가 되었는데…….”
사실 사라와 바네사는 아무 생각 없이 이안의 노가다 지옥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이미 이안의 노가다 강도를 경험해 본 적 있는 바.
달콤한 보상도 보상이었지만,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기에 흔쾌히 노가다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안의 욕심이라면 분명 고대의 정령이란 것을 잡으려 할 테고, 그럼 슬슬 조화의 구슬을 아낄 때가 되었단 말이지.’
쌍둥이 자매는 이안의 인벤토리에 몇 개의 ‘조화의 구슬’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이안이 노가다를 하드하게 한다 하더라도, 그 구슬들이 전부 소진되고 나면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안이 가지고 있는 구슬만 다 쓰더라도 충분히 하이레벨의 노가다였지만, 그 정도까지는 감수할 생각으로 들어온 것.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안은 조화의 구슬을 전혀 아끼지 않았고, 폭풍의 정령을 잡는 데에만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구슬을 소진하고 있었다.
이러면 두 자매가 생각했던 것과는 뭔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조바심이 난 사라가 이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잠깐만, 이안.”
“응? 무슨 일이야?”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그러는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물론이야. 말해 봐.”
사라의 부름에 잠시 사냥을 멈추고 두 자매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이안.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이번에는 바네사가 입을 열었다.
“이안 너, 폭풍의 정령만 계속 잡을 거야?”
“음?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다른 정령들도 포획해야 하고, 무엇보다 고대의 정령을 찾아서 포획하는 게 원래 계획 아니었냔 말이지.”
이안은 두 자매가 어떤 이유에서 묻는지 대번에 알아챘지만,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하였다.
“그야 당연한 얘기지. 폭풍의 정령 오십 마리 채우면, 다른 포인트로 넘어갈 거야. 아까 봤던 상급 바위의 정령이랑 중급 어둠의 정령도 잡아야 하고, 네 말처럼 고대의 정령도 찾아야 하고.”
이안의 대답을 들은 바네사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동공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조화의 구슬 부족하지 않아? 구슬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안의 계획대로라면, 지금까지 3시간이 넘게 했던 노가다를 연달아 두세 번 이상 추가로 해야 한다.
심지어 지금 이안이 말한 계획이 전부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스케줄을 다 소화하고 나면, 두 사람 모두 탈진해 버릴 게 분명하였다.
당황한 표정으로 동시에 이안을 응시하는 사라와 바네사.
그런 그녀들과 눈이 마주친 이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구슬 부족할까 봐 걱정해 주는 거지?”
이안의 물음에, 바네사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 그런 셈이지, 뭐.”
사라도 한마디 덧붙였다.
“고대의 정령이라도 나타났는데, 구슬이 부족하면 너무 슬프잖아.”
조화의 구슬이 얼마 남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떨리는 눈동자로 이안을 응시하는 두 자매.
하지만 사라와 바네사의 그 바람은 곧 송두리째 깨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던전 멀찍한 곳에서 어쩐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폐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나이다!”
“시킨 대로 물 떠서 이상한 구슬이랑 바꿔왔다.”
각각 핀과 까망이를 타고, 던전을 가로지르며 나타난 이안의 두 가신들.
그들의 등장은 정말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수고했어, 카이자르, 헬라임.”
“아닙니다, 폐하. 늦어서 죄송합니다.”
“별말씀을.”
한결같이 공손한 헬라임과 존대와 평대를 섞어 쓰는 독특한 말투의 카이자르.
두 가신은 쌍둥이 자매도 이미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고, 그들의 손에 보따리째 들려 있는 구슬들은 더더욱 잘 아는 물건들이었다.
“어디 보자, 한 포대 가져가니 구슬 몇 개로 바꿔 주던?”
이안의 물음에 헬라임이 곧바로 대답하였다.
“정확히 육백 개이옵니다, 폐하.”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라와 바네사는 저도 모르게 육성을 내뱉고 말았다.
“유, 육백 개라고?”
“육십 개도 아니고?”
하지만 헬라임의 대답을 들은 이안은, 너무도 태연할 뿐이었다.
“육백 개라……. 대충 예상했던 대로군. 한 포대 용량이 100됫박 이었나 보네.”
그리고 두 가신들로부터 받은 구슬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인벤토리에 털어 넣은 이안은 하얗게 질린 두 자매를 응시하며 씨익 웃었다.
“자, 구슬 부족할 걱정은 없겠지?”
“…….”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해 볼까……?”
이안의 그 힘찬 물음에, 쌍둥이 자매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