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3화 2. 생명의 수호자 (3) >
* * *
생명의 샘이 작은 연못이라면, 오염된 신령수는 그보다 훨씬 거대한 크기의 거목이었다.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나무의 밑둥보다 굵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진 오염된 신령수.
그 앞에 선 이안은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옆에 있던 사라를 향해 물어보았다.
“그런데 사라, 너희가 알던 거랑 좀 다르다는 건 무슨 이야기야?”
이안의 물음에, 사라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였다.
“풍기는 분위기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비슷한데, 우리가 공략했던 오염된 신령수보다 크기가 훨씬 더 커서 말이야.”
“오호.”
바네사가 옆에서 덧붙였다.
“게다가 저기 저 검붉은 안개들 있지?”
“응, 보이네.”
“원래 우리가 공략했던 신령수에는 저런 것도 없었어.”
“아하, 그렇군.”
사라가 다시 대답했다.
“아마 더 상위 맵에 등장한 던전이라서, 뭔가 던전이 업그레이드된 게 아닐까 싶네.”
사라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안이 생각하기에도, 그녀의 말이 맞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뭐, 같은 던전이라도 지역이나 난이도에 따라서 규모가 커지기도 하니 말이야.’
이어서 이안이 발을 떼자, 두 자매도 함께 던전의 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던전의 경우 소환수나 NPC처럼 위에 이름이 뜨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가서 확인할 때 까지는 오염된 신령수라고 확언할 수 없었다.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음침해지고 사이해지는 던전의 분위기.
이어서 이안 일행이 던전과 이어지는 통로에 들어섰을 때.
띠링-!
예의 그 시스템 알림음과 함께 기다렸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예상했던 것과 약간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오염된 고대의 신령수’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던전의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앞으로 24시간 동안 던전에서 획득하는 모든 경험치가 2배가 됩니다.
-앞으로 24시간 동안 던전에서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2배가 됩니다.
-앞으로 24시간 동안 던전에서 ‘오염된 고대의 정령’이 등장할 확률이 두 배가 됩니다.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Y/N)
분명히 오염된 신령수는 맞으나, 그 앞에 새롭게 붙어 있는 ‘고대의’라는 수식어.
그리고 다른 던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함께 떠오른 ‘던전 최초 발견’ 버프 메시지.
그것들을 확인한 이안의 동공은 커다랗게 확대되었고, 그것은 쌍둥이 자매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파티원인 그들의 눈에는 동시에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으니 말이다.
“그냥 오염된 신령수가 아니고 오염된 고대의 신령수?”
바네사의 중얼거림에, 사라 또한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뭔가 느낌이 쎄한데.”
메시지를 확인한 사라는 재빨리 던전 정보를 열어 확인해 보았다.
기존에 두 자매가 공략했던 던전보다 상위 개념의 던전일 것이야 당연히 예상했지만, 느낌상 기존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고난이도 던전 같았으니 말이다.
-던전 명칭 : 오염된 고대의 신령수
-입장 가능 조건 : 파티에 ‘정령술’을 익힌 소환술사 1명 이상 보유. 파티원 평균 레벨 45
-던전 레벨 : Lv. 50~55(초월)
그리고 간결한 던전의 정보를 확인한 사라는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이거 뭐야? 던전 레벨이 50이 넘잖아?”
사라의 말에 곧바로 정보 창을 오픈한 바네사 또한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헐, 아니 무슨 던전 난이도가 갑자기 이렇게 급격히 어려워져?”
지금 이안 파티가 있는 정령산의 중턱은 30레벨 중후반 정도의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필드였다.
그리고 보통 이런 필드에서 고난이도 던전이 등장하면, 아무리 높아도 45레벨 이하에서 난이도가 책정된다.
그런데 지금 두 사람이 확인한 정보 창에 의하면 눈앞의 던전은 최대 55레벨의 난이도라는 것이었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 이거 욕심 부려서 들어갔다가 끔살 당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던전 레벨이 50~55이면, 보스는 60레벨도 넘을 게 분명한데…….”
사라와 바네사는 진심으로 불안한 표정이었다.
물론 던전의 최초 발견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것이었으나, 그렇다고 한들 던전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최초 발견 버프가 아무리 좋아도 던전 안에서 유의미한 사냥 속도가 나와야 의미가 있는 것이었으니, 이제 초월 35레벨 언저리인 쌍둥이 자매로서는 불안한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파티에 이안이 없었다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고 포기했을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오염된 신령수’ 던전도 겨우 클리어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고대의 정령이 뭔지는 좀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이안? 그래도 일단 진입은 해 봐야겠지?”
동시에 이안을 향해 눈을 돌린 뒤 조심스레 이안의 의중을 묻는 사라와 바네사.
그런데 잠시 후, 이안의 얼굴을 본 두 사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불안한 자신들의 표정과 달리, 이안의 얼굴에는 함지박만한 웃음꽃이 피어있었으니 말이다.
‘고대의 오염된 정령이라고? 이거 대박인데?’
애초에 이안은, 던전의 레벨이나 난이도 따위 확인조차 않고 있었다.
지금 이안의 눈이 꽂혀 있는 것은, 던전 최초 발견 버프의 가장 마지막 줄.
24시간 동안 던전에서 오염된 고대의 정령이 등장할 확률이 증가한다는 그 메시지였으니 말이다.
‘이거 잘하면 마그비에 버금가는 새로운 정령을 여기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이안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마그비를 소환했던 소환 마법진의 이름이 바로, ‘고대의 정령 소환 마법진’이었던 것을 말이다.
마그비의 정보 창에 딱히 고대의 정령이라는 문구가 있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고대의 정령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 가능한 것.
“흐흐, 으흐흐흐!”
생각지도 못했던 쌍둥이 자매의 선물에 기분이 너무 좋아진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기괴한(?) 광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사대 정령이건 파생 정령이건, 쓸 만한 고대의 정령을 하나 무조건 잡아서 나가야겠어.’
이어서 이안은 쌍둥이 자매의 질문에 대답조차 않은 채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야, 이안. 정말 들어가는 거야?”
“던전 레벨이 50이 넘는다고! 괜찮겠어?”
당황한 두 자매의 외침에 잠시 멈춘 이안은 뒤를 슬쩍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무서우면 둘 다 오지 않아도 돼. 난 혼자라도 들어갈 거니까.”
이안의 대답에 더욱 당황한 사라와 바네사는 자리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사람은 곧바로 이안을 쫓기 시작하였다.
지금 이안을 따라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 남는다면, 나중에 후회할 게 너무도 뻔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두 자매는 거의 똑같은 생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 던전에 안 따라 들어갔다가 하게 될 후회보다는 사망 페널티 받고 할 후회가 나은 것 같아.’
그리고 잠시 후.
이안을 비롯한 세 사람의 눈앞에 돌이킬 수 없는 메시지가 떠오르고 말았다.
-‘오염된 고대의 신령수’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오염된 신령수의 영혼’이 당신들의 움직임에 반응합니다.
-던전의 입구가 봉쇄되었습니다.
-모든 ‘공간 이동’ 아티팩트와 마법, 고유능력이 봉인됩니다.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던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 * *
이안을 따라 던전 안으로 들어온 두 자매의 선택은, 사실 거의 본능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상식과 논리의 잣대로 생각한다면, 두 사람이 확인한 이안의 전투력을 감안하더라도 자살행위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비록 초월 58레벨의 생명의 수호자를 이안이 손쉽게 상대하였으나, 던전의 안에는 그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오염된 정령들이 득실거릴 터.
그런데 던전의 정보 창을 한 번 더 확인한 사라는, 순간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라는 옆에 걷던 바네사를 향해 속삭이듯 물어보았다.
“잠깐, 바네사.”
“응?”
“너 지금 레벨이 몇이었지?”
“나? 지금 37인데 왜?”
“그럼 우리 둘이 합해서 73레벨이고…….”
뭔가를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하던 사라는, 잠시 후 경악에 가까운 표정이 되었다.
“허억……?”
그리고 그런 사라의 표정을 본 바네사는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심상치 않은 그녀의 표정에 호기심이 솟아났기 때문이었다.
“또 뭔데 언니. 혼자서 그러지 말고 얘기해 보라고.”
이어서 마른침을 꿀꺽 삼킨 사라는 나직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안 저거, 진짜 엄청난 괴물이었어, 바네사.”
“쟤가 괴물인 거야 알고 있었던 사실이잖아? 뜬금없이 또 왜?”
“방금 계산해 봤는데, 쟤 레벨…… 최소 58레벨 이상이야.”
“……!”
사라의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바네사는 그대로 얼굴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초월 58레벨의 몬스터를 패대기친 것과 실제로 본인의 레벨이 58이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건데?”
바네사의 물음에, 사라는 짧게 대답해 주었다.
“이 던전 입장 조건을 한번 봐, 바네사.”
“……?”
“우리 파티가 평균 45레벨이려면, 쟤 레벨이 몇이어야 하는지 말이야.”
바네사는 맹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단순 계산에 있어서는 머리가 제법 빠르게 돌아가는 편이었다.
때문에 사라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대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괴, 괴물……!”
그리고 두 자매가 속닥이는 것을 대충 들은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핀잔을 주었다.
“쓸데없는 거 알아낸다고 머리 굴리지 말고, 서포팅할 준비나 좀 하지 그래?”
이안을 향해 시선을 돌린 바네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버, 버그 유저!”
하지만 이안은 기겁하는 사라와 바네사를 무시한 채, 소환수들을 하나하나 소환하기 시작하였다.
이안의 입장에서는 정령계에 입성한 뒤 처음으로 전투다운 전투를 해 볼 만한 던전에 들어온 것이었으니, 기분이 점점 더 상기되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카이자르와 헬라임까지 불러들일 필욘 없겠지. 이 던전 보스라고 해봐야, 60레벨 대일 테니 말이야.’
지금 이안의 두 충신들은, 각각 까망이와 핀을 탑승한 채 정령산을 휘젓고 있었다.
생명의 샘과 생명의 나무 등, 오염된 신령수 말고도 찾아야 할 스폿이 너무 많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안이 판단하기에 이 정도의 던전 난이도라면, 가신 둘과 소환수 둘이 없다 해도 딱히 문제될 수준은 아니었다.
“자, 슬슬 적들이 나타나는 것 같은데……?”
씨익 웃은 이안은 곧바로 아이언의 등 위에 올라탔다.
이어서 뒤늦게 전투준비를 마친 두 자매들 또한, 이안의 뒤로 바짝 붙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인간의 냄새가 나는군.
-기분 나쁜 녀석들이 나타났다.
-놈들을 몰아내라!
던전 안쪽으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진녹빛의 그림자를 가진 정령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 박스가 떠올라 있었다.
-오염된 늪지의 정령 ‘포나토스(상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