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0화 1. 호루스 전진기지 (3) >
* * *
사라진 생명의 샘을 다시 찾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근방을 뒤지다 보면 금세 다른 생명의 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거의 한 시간이 넘게 지나도록 찾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슬슬 이안 일행이 지쳐 갈 때쯤 생명의 샘이 다시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도 생명의 샘을 찾은 것은 쌍둥이 자매였지만, 한번 뼈아픈 경험이 있었던 두 사람은 신중하게 숨어 이안을 먼저 불렀다.
그리고 생명의 샘 인근에 모인 이안 일행은, 잠시 자리에 멈춰 한차례 정비하였다.
초월 60레벨에 육박할 정도의 전투력을 보여 준다는 미지의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아무리 이안이라 할지라도 정비하고 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다.
그냥 싸워서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면 몰라도, 녀석을 도망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하나의 추가 전제가 있었으니 말이다.
파랗게 반짝거리는 기운이 피어오르는 신비로운 샘물을 응시하며, 이안이 바네사를 향해 물었다.
“저게 생명의 샘이란 말이지?”
“응, 맞아.”
바네사의 대답을 들은 이안이 샘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며 중얼거리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뭐가?”
“그 표범인지 뭔지 말이야.”
“아하.”
옆에 있던 사라가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샘물 근처에 다가가면 나타나더라고. 정확히 보진 못했지만 물속에서 튀어나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바네사가 대꾸했다.
“물에서 나온 거 맞아.”
“응? 그랬으면 물소리가 났어야 했는데, 난 못 들었는 걸?”
“정확히는 물속에서 나왔다기보다, 물 위에서 나타났거든.”
“……?”
“수면에 파란 물줄기들이 모이면서 표범처럼 변하더라고. 마치 물의 정령이 나타날 때처럼 말이야.”
“아하, 그랬어?”
두 자매의 정신없는 대화를 듣던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 둘의 재잘대는 소리를 듣다 보면 가끔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사라와 바네사는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잠시만 한눈을 팔면 누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뭐 어떻게 나타났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고, 어쨌든 가까이 가면 나타난다는 거지?”
“응, 물 위에서.”
“그리고 샘에 접근하는 사람을 먼저 공격한다고 했고?”
“맞아. 그랬지.”
사실 이 시점에서, 녀석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라졌는지였다.
생명의 샘이 사라지기 전에 생명수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했으니 말이다.
이안은 생명의 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생명의 샘이 사라질 때의 이야기를 좀 해 줄래?”
이안의 물음에, 바네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거야 뭐 어렵지 않지.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바네사는 생명의 샘이 사라질 때 보았던 것들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표범(?)에게 먼저 공격당했던 사라는 상황을 제대로 눈에 담지 못했었지만,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던 바네사는 제법 구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안은 점점 더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 생명의 샘의 주변에 반투명한 아지랑이 같은 게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그게 수면을 전부 하얗게 뒤덮은 시점에 샘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는 거네.’
바네사의 설명을 머릿속으로 꼼꼼하게 정리하는 이안.
그런데 바로 그때.
“어, 저, 저기……!”
뭔가를 발견한 사라가 생명의 샘을 가리키며 당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이안과 바네사의 시선이 동시에 그곳을 향했다.
그리고 생명의 샘에는…….
‘저게 아지랑이?’
점점 샘의 주변을 하얗게 물들이는 새하얀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사라와 바네사의 말에 의하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샘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전조현상이다.
때문에 그것을 발견한 순간 세 사람의 마음은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일단 가 보자!”
“어쩌려고?”
“일단 내가 앞장설 테니까, 뒤에서 둘이 서포팅해 줘.”
“알겠어!”
타탓-!
빠르게 아이언의 등에 오른 이안은 서둘러 샘을 향해 쇄도하였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자신의 오판을 자책하였다.
‘당연히 유저가 근처에 가거나 그 표범 같은 놈을 만나는 게 이벤트 발동 조건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잖아?’
이안 일행이 멀찍이 자리를 잡고 정비하고 있었던 것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면 샘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표범이 나타나든 샘이 사라지든 간에 모든 이벤트의 발동조건은 ‘유저가 생명의 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 일행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지랑이가 피어나기 시작한 것을 보면, 그것은 잘못된 가정이었음이 분명하였다.
생명의 샘은 그저, 일정 시간마다 옮겨 다니며 생성되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언의 등에 오른 이안이 생명의 샘 바로 앞에 도달하였을 때, 고요했던 생명의 샘에 사나운 맹수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허엉-!
쌍둥이 자매가 말했던 그 무시무시한 표범(?)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호라.”
이어서 녀석을 발견한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띄었다.
‘저거, 정령이 아니었잖아?’
이안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표범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간결한 시스템 박스였다.
-생명의 수호자 ??? : Lv. 58
* * *
처음 사라와 바네사가 초월 60레벨에 육박할 정도로 강력하다고 했을 때, 이안은 ‘초월 60레벨’이라는 말이 단순히 강함을 표현하기 위한 말인 것으로 이해했었다.
두 자매는 분명 강력한 ‘정령’이라고 하였는데, 카일란의 세계관에서 정령은 레벨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안의 눈앞에 등장한 이 녀석은 분명히 58이라는 초월 레벨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녀석이 정령이 아니라는 너무도 확실한 방증이었다.
‘그나저나 사라는 그렇다 치고, 나름 소환술사 랭커인 바네사는 대체 왜 레벨을 보고도 저놈을 정령이라고 생각한 거지?’
피식 실소를 흘린 이안은 뒤따라오는 바네사를 슬쩍 응시하였다.
어쩌면 바네사는 이안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백치미 넘치는 캐릭터인지도 몰랐다.
“으앗! 봐, 물위에서 나타나잖아! 어쩌면 물의 정령일지도 모른다고!”
바네사의 기가 막힌(?) 대사에 더욱 어이없는 표정이 된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무기를 빼어 들었다.
스릉- 철컥-!
등에 메고 있던 창을 꺼내 ‘생명의 수호자’를 겨누며 빠른 속도로 물 위를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쐐애액-!
잔잔하던 생명의 샘의 수면에 새하얀 물살을 일으키며, 물고기를 사냥하는 독수리처럼 빠르고 낮게 비행하는 아이언.
그런 아이언과 이안을 본 사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서포팅해 달라더니 저렇게 빨리 혼자 튀어나가면 어쩌자는 거야?”
“내 말이……. 저러다 호되게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당황 반 걱정 반의 표정으로, 이안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사라와 바네사.
하지만 두 자매의 걱정과 달리 이안이 호되게 당할(?)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아이언을 탄 이안의 실질 전투력은 초월 80레벨에 육박할 정도로 강력하였으니, 58레벨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는 잡몹(?)따위를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크허어엉-!
이어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안을 발견한 표범 또한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며 물 위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가까이서 확인한 녀석의 외형은 무척이나 멋들어지는 것이었다.
표범이나 재규어를 연상케 하는 날렵한 생김새에, 쏟아지는 폭포수를 연상케 하는 파랗고 진한 줄무늬.
수면을 밟을 때마다 하늘빛으로 반투명하게 물드는 네 다리와 꼬리.
하지만 녀석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는 것도 잠시일 뿐이었다.
서로를 향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내달린 이안과 생명의 수호자는, 정말 순식간에 허공에서 맞부딪쳤으니 말이다.
이안의 바로 앞까지 달려온 생명의 수호자는 날렵한 몸짓으로 수면을 딛고 도약하여 이안에게 달려들었고…….
촤락-!
-캬아아오!
그것을 확인한 이안은, 침착하게 상체를 비틀며 묵빛 창을 휘둘러 올렸다.
쐐액- 콰쾅-!
사납게 달려드는 녀석을 피해 냄과 동시에, 전력을 다한 풀 스윙으로 녀석의 옆구리를 강타한 것이다.
그리고 작정하고 후려갈긴 이안의 풀 스윙은, 고작 58레벨의 몬스터가 감당하기에 너무도 아플 수밖에 없었다.
크웨에엑-!
이제까지의 멋들어진 포효는 어디 간 것인지 볼썽사나운 꼴로 하늘 높이 튕겨 나간 생명의 수호자.
끄륵- 끄으윽-!
샘 바깥으로 패대기쳐진 녀석은 고통스러운지 끄르륵거렸고,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 되어 이안을 응시하였다.
지금껏 길고 긴 세월 동안 이 샘을 지켜온 그였지만, 이렇게 무지막지한 침략자(?)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지금 이안에게 중요한 것은, 생명의 샘을 ‘다섯 되’ 만큼 퍼 올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안은 수호자를 성공적으로 쫓아낸 뒤, 서둘러 뭍에 내려앉아 두레박을 꺼내 들었다.
새하얀 아지랑이는 샘의 수면을 점점 더 빠르게 덮어 가고 있었으니, 이안의 입장에서는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생명수를 전부 확보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정령산을 이 잡듯 뒤져야 하니 말이다.
“자, 일단 한번……!”
-잡화 아이템 ‘생명의 두레박’을 사용합니다.
-‘생명수’를 한 되 만큼 퍼 올립니다.(1/5)
-‘생명수’를 한 되 만큼 퍼 올립니다.(2/5)
……후략……
빠르게 두레박을 움직여, 생명수를 확보하기 시작하는 이안!
하지만 그런 그를 보면서도, 생명의 수호자는 쉽게 이안에게 다가서지 못하였다.
너무 제대로 맞은 탓에 아직도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던 데다, 이안의 옆에 다소곳이 앉은 아이언이 사나운 표정으로 녀석을 주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다섯 되의 생명수를 전부 퍼 올린 이안이, 이번에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생명의 수호자를 향해 다가갔다.
이제 생명의 샘은 거의 하얗게 변해 가고 있었고, 쌍둥이 자매의 말에 의하면 이제 곧 어디론가 사라질 터.
퀘스트 조건은 전부 충족시켰지만, 이안은 생명의 샘과 수호자가 사라지기 전에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크르릉- 크허엉-!
혼미해졌던 정신을 다시 붙잡은 것인지, 이안을 향해 다시 호기롭게 으르렁거리는 생명의 수호자.
그런 녀석을 향해, 이안의 입에서 나직한 시동어가 흘러나왔다.
“포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