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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50화 (758/1,027)

< 750화 6. 새로운 정령을 만나다 >

광산을 나온 이안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히 정령수호자 샬론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마그비의 탄생부터 함께 지켜본 샬론이라면, 정령력이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진화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남부 정령의 성소는 이안이 있던 광산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였고, 때문에 이안은 금방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쪽 맵은 몇 달 전과 바뀐 게 아무것도 없네.’

처음 이안이 이 정령계에 도착했을 때, 정령의 성소를 제외한 정령산의 안쪽은 생기가 거의 죽어 있는 폐허의 상태였었다.

그런데 그동안 제법 많은 랭커들이 정령계에 유입되었고 퀘스트를 진행해서인지, 정령산의 외곽지역은 많이 정화되어 맵의 분위기가 달라졌던 것이다.

하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던 정령산 초입의 분위기와 달리, 정령의 성소는 이안이 기억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정령들의 성역인 이곳은, 애초에 기계문명의 영향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여 어렵지 않게 샬론의 오두막을 찾아낸 이안은,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계십니까?”

그리고 오랜만에 찾아온 이안을, 샬론은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 이안! 오랜만일세.”

“오랜만에 뵙습니다, 수호자님.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허허, 잘 지내다마다. 자네도 보았겠지만, 정령산이 점점 살아나고 있다네.”

“네, 그래 보입니다.”

“그동안 자네 같은 인간 영웅들이 우리 정령계를 많이 도와준 덕분이지.”

무척 오랜만이었지만 과거에 쌓아 뒀던 친밀도가 적지 않았던 덕분인지, 샬론은 이안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하여 이안은, 어렵지 않게 마그비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샬론.”

“말씀해 보시게.”

“혹시 이 친구, 기억하십니까?”

이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손끝에서 화르륵 하고 불길이 피어올랐다.

이어서 그 불길을 타고, 이안의 정령 마그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마그비의 모습을 확인한 샬론의 두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마그비와 눈이 마주친 샬론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허허, 이럴 수가…….”

샬론의 반응에, 이안은 눈을 빛내며 재빨리 물었다.

“역시 기억하시는군요?”

샬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기억하다마다. 아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염왕의 재목을 가진 정령을 내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놀란 표정을 다시 가다듬은 샬론은, 마그비를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안은, 말없이 그의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샬론의 반응을 보면, 뭐라도 얻어 갈 정보가 있긴 하겠어.’

정령수호자 샬론의 오두막에 내려앉은 잠시간의 정적.

그것을 깨고 울려 퍼진 것은 샬론의 까끌까끌한 목소리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겐가 이안?”

“그게 무슨…….”

“아니, 어떻게 정령을 성장시키면, 이렇게 빨리 정령력을 축척시킬 수 있냐는 이야길세.”

“뭐 그야, 열심히…….”

“허허, 정말 믿을 수가 없군. 평범한 정령도 아니고 사대속성의 정령을……. 그것도 염왕의 재목을 가진 정령을 이렇게 빨리 성장시키는 것이 가능할 줄이야…….”

흔들리는 동공으로 마그비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샬론.

이안은 별다른 이야기 없이, 일단 그의 말이 다시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딱히 할 말이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뭐 진짜 특별한 방법을 쓴 것도 아니고, 그냥 열심히 사냥만 했을 뿐인데…….’

잠시 후, 마치 사랑하는 정인을 바라보듯 마그비를 응시하던 샬론의 시선이 잠시 후 다시 이안을 향해 옮겨졌다.

이어서 샬론의 입이 떨어졌다.

“자네가 날 찾아온 이유가 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겠군.”

“예?”

“정령력을 충분히 쌓은 이 친구가 어째서 상급 정령으로 진화하지 않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내게 온 것 아닌가 말이야.”

샬론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이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 그저 마그비를 기억하냐는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 이안이 이곳에 온 이유까지 너무 정확히 꿰뚫어봤으니 말이다.

‘NPC 주제에 무슨 독심술이라도 쓰는 건가?’

하지만 이안의 반응과는 별개로, 샬론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이안의 눈은 점점 더 확대되었다.

“이 친구가 상급 정령으로 진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에게 있다네.”

“예? 그게 무슨…….”

“흠, 좀 풀어서 설명해 주자면, 이 녀석의 정령력은 진화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찼지만, 주인이자 정령술사인 자네의 정령술이 아직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네.”

“제 정령술요?”

“그나저나 이건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군. 사대 속성의 정령이 이만한 정령력을 쌓을 만큼 정령술을 수련했다면, 정령술의 경지는 이미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이안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샬론.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오랜만에 자신의 정령술 정보 창을 오픈해 보았다.

-중급 정령술

분류 : 패시브

스킬 레벨 : Lv. 6

숙련도 : 72.5퍼센트

마력 소모 : 없음

정령을 소환하고 교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정령술’의 스킬 레벨과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소환한 정령과 정령 마법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정령의 전투 능력이 소환술사의 ‘친화력’ 스텟에 비례하여 강해집니다.

정령 마력의 위력이 소환술사의 ‘친화력’ 스텟에 비례하여 강해집니다.

*현재 추가 능력치(스킬 레벨 6 기준)

소환된 정령의 전투 능력이 ‘친화력’ 능력치의 (26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소환된 정령 마법의 위력 계수가 ‘친화력’에 비례하여 증가합니다.

정령술 스킬은 사실 패시브에 가까운 스킬이다.

정령의 힘을 빌려 사용하는 정령 마법을 많이 사용할수록, 그리고 정령을 전투에서 많이 써먹을수록, 자연히 숙련도가 올라가고 그에 따라 강력해지는, 딱히 관리가 필요 없는 스킬이었으니 말이다.

‘정령술은 그동안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하도 불화살을 당겨서 그런지 제법 레벨이 많이 오르긴 했네.’

그리고 정령술의 정보 창을 확인한 순간, 이안의 뇌리로 한 가지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가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중급 정령을 상급 정령으로 진화시키기 위해선……. 먼저 정령술을 상급 정령술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건가?’

어디까지나 가정이기는 하지만, 거의 확신에 가까운 짐작.

그리고 이어진 샬론의 말은, 이안의 가정이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사실 평범한 정령들의 경우, 소환술사의 정령술 경지와 관계없이 정령력만 충족하면 진화한다네. 하지만 사대 정령들은 다르지.”

“아…….”

“아마 이 녀석을 상급 정령으로 진화시키려면, 자네의 정령술 경지가 먼저 상급에 올라야 할 걸세.”

“그렇군요.”

샬론의 말을 들은 이안은,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왜 자신의 정령술 경지에 비해 마그비의 정령력이 더 빨리 차올랐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화염시의 숨겨진 능력 덕에 마그비의 정령력이 비상식적으로 빨리 차올랐으니 내 정령술 숙련도가 따라가지 못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

이안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정령 마법인 ‘지옥의 화염시’ 공격마법.

표식이 열 번 중첩되어 터질 때마다 정령력이 1씩 증가하는 화염시의 숨겨진 옵션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방법은 내 정령술을 상급까지 빠르게 끌어올리는 것뿐인가?’

이안은 혹시나 해서 샬론에게, 강제로 마그비를 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샬론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신격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의 도움이 있다면 모르겠네만…….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그런 방법은 없다네.”

“역시…… 그렇군요.”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보아하니 자네의 정령술도 완숙한 중급 이상의 경지에 오른 것 같은데……. 머지않아 상급 정령술을 습득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뭔가 골똘한 표정이 된 이안을 보며 그가 실망했다고 생각한 샬론이 위로하였지만, 사실 그는 전혀 실망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한발 더 나아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흠, 정령술이야 노가다로 상급까지 찍어 버리면 그만인데, 그때까지 정령력이 낭비되는 건 싫단 말이지.’

정령술을 수련하려면 당연히 정령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정령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소환된 정령의 정령력이 쌓이는 것이 정령술의 기본 매커니즘이었으니.

마그비를 소환하여 정령술을 수련한다면, 더 이상 쌓이지 않는 정령력이 증발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안이 가진 정령마법 중 가장 강력한 마법이자 활용도가 높은 마법은 바로 지옥의 화염시.

때문에 이안은 화염시를 사용할 것이었고, 그럼 허공에 버리는(?) 정령력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이안은 그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이안이 샬론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샬론, 죄송한데요…….”

“음? 왜 그러시는가?”

“혹시 ‘고대의 정령 소환 마법진’ 갖고 계신 거 또 없나요?”

이안의 입에서 나온 ‘고대의 정령 소환 마법진’은, 다름 아닌 마그비를 처음 소환하게 해 주었던 고대의 아티팩트.

샬론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이안의 물음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 * *

이안이 샬론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정령술을 상급까지 찍을 동안 쌓일 정령력이 아까우니, 그 정령력으로 새로운 정령을 하나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당연히도, 그런 귀한 고대의 아티팩트가 샬론에게 또 있을 리 없었다.

“끌끌, 자네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네만, 고대의 소환서는 그리 흔한 물건이 아닐세.”

“역시 그렇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샬론이 완벽히 이안의 기대를 저버린 것 또한 아니었다.

“허나 고대의 소환서만큼 귀한 정령소환 아티팩트를 얻을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

“엇, 그게 정말인가요?”

샬론의 대답을 들은 이안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마그비보다 더 뛰어난 정령을 얻어서 키우고 싶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낭비될 뻔한 정령력을 유의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이었으니 말이다.

정 안 되면 아무 정령이나 소환해다 정령력을 채워 경매장에 팔 생각도 했던 이안에게, 샬론의 정보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것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샬론이 이안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일전에 만났던 내 동생 기억하는가?”

“수호자님의 동생이라면…….”

샬론의 말을 들은 이안의 머리가 잽싸게 굴러갔다.

그리고 이안은, 곧바로 샬론의 동생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다.

“샬리온 님 말씀하시는 거죠?”

이안의 대답에, 샬론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용케도 기억하고 있구먼.”

“물론이죠. 그때 얻은 수호자의 가면은 정말 유용하게 잘 썼는 걸요.”

이안과의 대화가 즐거운 것인지,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샬론.

그리고 이어진 샬론의 말에서, 이안은 잊고 있던 한 가지 콘텐츠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 내 동생을 만났던 ‘정령의 도장’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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