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8화 5. 정령산의 아지트 (2) >
* * *
“으와앗, 귀신, 아니, 이안이다!”
어두운 광산 통로에서 나타난 이안을 발견한 77호는 반가움에 괴성(?)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이 공장 안에서 셀 수 없이 긴 시간을 살아온 그에게 몇 개월 정도야 별것 아닌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이안이 그를 잊지 않고 다시 공장에 찾아왔다는 사실이 77호로서는 더없이 반가웠던 것이다.
물론 이안이 잊지 않은 것은 77호라는 존재라기보다는 정수를 대신 채굴해 주고 있을 두 충복들이었지만 말이다.
“하하, 그동안 잘 지냈지, 77호?”
이안의 물음에, 77호는 마치 칭찬받고 싶었던 아이처럼 방방 뛰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이안이 부탁했던 공장 수리도 전부 끝냈고, 광물들도 제법 많이 채굴해 놨다고!”
77호의 대답을 들은 이안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의 보고는 듣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으래? 어디 한번 볼까?”
한껏 기분이 좋아진 이안은, 77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공장 내부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허얼, 지난번엔 분명 다 쓰러져 가던 낡은 공장이었는데……!’
찰리스의 환영을 처치하고 공장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만 하더라도, 공장은 사실 다 쓰러져 가는 고철덩이 같은 느낌이었다.
과연 이 로봇을 만든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여기저기 녹슬고 기울어 있던 외형이었던 것.
하지만 지금 이안의 눈앞에 나타난 공장의 기계는 이전과 완벽히 다른 모습이었다.
전체적인 크기와 규모는 원래의 것보다 절반 이하로 축소된 듯 작아졌지만, 당장 가동해도 무리 없을 것처럼 번쩍거리는 외형을 자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안이 생각한 것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77호의 말이 이어졌다.
“기존에 작동 안 되던 기계들은 싹 다 폐기해 버렸어.”
“아하……!”
“완전히 고장난 기계들을 분리해서 멀쩡한 부품들만 따로 분류했고, 그것들로 아예 새로운 기계들을 만들었다고 보면 돼.”
“크, 77호 너 능력자였구나?”
“그럼, 그럼. 공장 관리는 아무 로봇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이안의 칭찬에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쫙 펴는 77호.
아직 이안은 이 공장이 어떤 성능을 보여 줄지 짐작하지 않았지만, 뭔가 훨씬 쓸 만해졌다는 정도는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내 기억에 원래 장비들론 머슴 로봇을 거의 보름 걸려 만들었었는데……. 생산 공정 자체가 훨씬 더 빨라진 거겠지.’
그런데 그렇게 흡족한 표정으로 공장의 기계를 여기저기 살피고 있던 이안의 시야에, 뭔가 새로운 것이 들어왔다.
“……?”
마치 아이템처럼, 기계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아이콘이 생성된 것이다.
‘분명 처음 공장을 얻었을 때 이런 건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마른침을 꿀꺽 삼킨 이안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공장 기계의 정보 창을 오픈해 보았다.
-로봇 생산 기계 공장
레벨 : Lv. 1
분류 : 시설물
등급 : 일반 (초월)
티어 : 2
개조 가능
생산성 : 25
기술력 : 32
내구성 : 56
에너지 효율성 : 12
안정성 : 74
고장난 찰리스의 기계들을 재조립하여 만들어 낸, 로봇생산 기계공장입니다.
제작자의 기술력과 제작에 쓰인 재료들의 한계로 아주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제법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 시설물입니다.
공장 관리 로봇 P-77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유저 ‘이안’에게 소유권이 있는 시설물입니다.
*2티어 이하의 로봇들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기계 공장의 정보 창을 확인한 이안은, 처음 보는 내용에 두 눈을 깜빡였다.
어지간한 게임 콘텐츠에 전부 통달해 있는 이안에게도, 이 기계 공장이라는 생소한 시설물의 정보 창은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생산성이나 기술력, 내구력까지는 뭐 대충 이해하겠는데……. 에너지 효율성, 안정성은 대체 뭐지?’
하지만 곧바로 이해되지 않는다 하여, 그것이 이안에게 불만일 리는 없었다.
오히려 게임 광인 이안에게는 단번에 이해되는 뻔한 콘텐츠보다, 이렇게 연구거리가 있는 신선한 콘텐츠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정보 창을 아래까지 쭉 읽어 내려간 이안의 두 눈이 반짝였다.
‘오호, 내 소유의 시설물이라……. 소유권 덕에 지난번엔 볼 수 없었던 정보 창을 볼 수 있게 된 거였군.’
처음 오염된 광산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77호와 찰리스의 공장을 발견했을 때, 사실 이 공장의 소유권은 이안에게 있지 않았다.
이전의 폐허에 가까웠던 공장은 찰리스가 사라진 후 주인 없는 시설물이었고, 사실상 NPC인 77호에게 귀속되어 있었던 상태였으니 말이다.
다만 이제 새로 만들어진 공장이 이안의 소유가 된 것은 아무래도 77호와의 친밀도와 퀘스트 진행 때문일 것이었다.
여하튼 정보 창을 나름대로 분석한 이안은 궁금한 부분들을 하나씩 77호에게 물어보기 시작하였다.
“77호 그런데 이 기계 말이야, 혹시 개조도 가능한 거야?”
“개조?”
“응. 뭐 더 좋은 로봇을 만들 수 있도록 성능을 강화시킨다거나…….”
77호는 NPC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보 창에 대해 알 수 없다.
물론 상태 창이나 정보 창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위 NPC도 있긴 하였으나, 77호는 사람으로 따지면 갓난아기 수준의 NPC였으니 말이다.
하여 이안은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하였고, 77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당연히 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공장의 성능을 개조하려면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그래? 기술력이 부족해서인가?”
“그런 이유도 있지만, 이곳은 환경이 너무 열악하거든.”
“환경이라…….”
“이 기계가 만들어진 데 쓰인 건, 원래 있던 기계공장의 부품들이랑 광산에서 채굴한 광물들이 전부거든.”
“아무래도 그렇겠지. 네가 여길 나갈 수 없으니 말이야.”
“응. 그런데 사실 더 고성능의 기계 공장을 만들어 내려면, 평범한 광석이나 속성의 정수뿐 아니라, 차원 마력이 깃들어 있는 마력석이나 원소 결정 같은 희귀한 광물들이 필요하거든.”
77호의 이야기를 듣던 이안의 두 눈이 더욱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방금 그가 언급한 원소결정이나 마력석 같은 광물들을 어디서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막 얻은 기계 시설물을 써 보기도 전에 개조를 생각하는 건 순서상으로 맞지 않았으니, 이안은 다른 궁금증들부터 계속해서 풀어놓았다.
“그리고 77호, 기계에 생산성이나 기술력, 내구성 같은 능력치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것들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을까?”
이안의 물음에, 77호는 놀란 표정이 되어 대꾸하였다.
방금 이안이 이야기했던 것들과 같은 능력치를 확인하려면, 기계를 뜯어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물론 정보창 이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어 그러니까, 생산성이라는 능력치부터 이야기해 주면…….”
그리고 77호의 설명을 듣던 이안은, 점점 더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 * *
한편 광산에 도착한 이안이 열심히 기계 설비에 대한 탐구와 연구를 하고 있던 그때.
오랜만에 정령산을 밟은 뿍뿍이는 무척이나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무려 이안에게 허락까지 맡은 뒤 홀로 순록의 숲에 도착해 있었으니 말이다.
뿍- 뿍- 뿌북-!
짧고 통통하지만 날렵한(?)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여, 어디론가 정신없이 이동하고 있는 뿍뿍이.
그의 목적지는 당연히, 순록의 숲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서리 동굴’이었다.
‘흐엉, 드디어 예뿍이를 보러갈 수 있뿍……!’
비록 뿍뿍이 자신이 아닌 다른 거북이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예뿍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뿍뿍이에겐 오직 하나의 사랑인 아름다운 거북, 예뿍이.
뿍뿍이의 걸음걸이는 미트볼을 쟁취하기 위해 달릴 때와 버금갈 정도로 날렵하였으며, 배가 고파 먹이를 찾을 때에 비견될 정도로 진지하였다.
‘이 뿍뿍이가 강해져서 돌아왔뿍! 이제 내가 예뿍이의 슬픔을 치유해 줄 수 있뿍!’
뿍뿍이는 그저 예뿍이가 보고 싶어서 서리동굴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뿍뿍이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하린으로부터 들었던 조언들.
소환수의 연애사 따위에 관심조차 없는 악덕 주인과 달리, 미트볼을 만들어 주는 데다 연애상담까지 해 주는 하린은 뿍뿍이에게 있어 천사였고, 그런 그녀의 조언들은 뿍뿍이에게 절대적인 것이었다.
‘하린의 말대로 예뿍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일단 상처를 치료해 줘야 한다뿍.’
서리 동굴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비장한 표정이 되는 뿍뿍이.
‘그리고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그 괘씸한 거북의 행방을 찾는 것이겠뿍.’
순록의 평원에 어슬렁거리는 기계 몬스터들과 오염된 정령들이 뿍뿍이의 앞길을 방해하였지만, 녀석들은 결코 뿍뿍이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겁을 상실한 고철덩어리들이다뿍. 등껍질 맛을 봐야 정신 차리겠뿍.”
순록의 평원은 처음 정령계에 진입한 유저들을 위해 만들어진, 한 자리수의 초월 레벨을 가진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초보 사냥터이다.
그리고 많아 봐야 초월 6~7레벨 정도인 필드의 잡졸들이, 무려 초월 60레벨에 육박하는 뿍뿍이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퍼퍽- 퍽-!
푹- 뿌북-!
뿍뿍이가 엉덩이를 한번 씰룩일 때마다 녹슨 기계몬스터들은 힘없이 쓰러져 버렸으며…….
-끼익, 위험한 거북이다!
뿍뿍이의 앞발에 깔린 오염된 정령들은, 그 압도적인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할 수밖에 없었다.
-뀌이익! 내가 대두 거북이 따위에게 당하다니……!
마치 동화 속 공주를 만나러 가는 왕자님처럼, 용맹하게 적들을 무찌르고 서리동굴을 향해 달리는 뿍뿍이의 위용!
사냥터에서 사냥 중이던 유저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뿍뿍이를 응시하였고.
“저 거북이 뭐임?”
“어, 서리 동굴에 있던 NPC거북이랑 비슷하게 생긴 것도 같고…….”
뿍뿍이의 외모를 알아본 이안의 팬들은 두 눈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헐! 저거 뿍뿍이 아냐? 정령계에 이안이 나타났나?”
“그럴 리가. 이안 초월 레벨이 못해도 30은 넘었을 텐데, 이런 초보 맵에 뿍뿍이가 왜 나타나겠어?”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네.”
하지만 그러한 관심 어린 시선들에도 불구하고, 뿍뿍이는 오직 서리동굴을 향해 직진할 뿐이었다.
‘뿍. 달라진 내 모습을 본다면, 예뿍이도 깜짝 놀랄 게 분명하다뿍.’
그리고 그렇게,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찾았뿍……!”
꿈에도 그리던 동굴의 입구를 발견한 뿍뿍이는 감격 어린 표정이 되어 네 다리를 더욱 빠르게 놀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