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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46화 (754/1,027)

< 746화 4. 중간자의 사명 (3) >

* * *

거신족의 연합군이 한발 물러선, 이전에 비해 비교적 평화(?)를 찾은 균열 맵.

하지만 거신들의 땅인 엘라시움과 가장 가까운 균열 지하의 깊숙한 곳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말이다.

“저 괴팍한 인간 놈이 절대로 엘라시움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

“모두 전력을 다해 놈을 공격하라!”

“이번에는 기필코 저놈을 처치해야 한다!”

수많은 거신족 병사들은 엘라시움으로 통하는 입구를 지키며 누군가를 치열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수적으로나 전력으로나 훨씬 더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군가를 어쩌지 못하여 뻘뻘거리고 있는 거신족 병사들.

그 ‘누군가’의 정체는, 당연히 이안이었다.

“뭐야, 좀 더 열심히 들 달려들어 보라고. 내가 너희 다 뚫고 엘라시움 입구로 들어가도 괜찮은 거야?”

“이, 이런 미친 인간 놈이!”

“좀 더 열심히 막아 봐.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저까지 들어가서 깽판을 놓을 테니 말이야.”

“간덩이가 불어 터진 인간 놈이로구나!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수많은 거신족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가 철철 넘치는 이안의 표정.

그는 더 많은 거신들을 사냥터로 끌어내기 위해, 공갈 협박(?)과 조롱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엘라시움으로 들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뭐,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지금 만약 거신족 병사들이 후퇴하여 균열을 버리고 엘라시움으로 넘어간다면 이안은 지금처럼 광속 사냥을 진행할 수가 없다.

초월 레벨이 많이 올라 곧 65레벨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균열 맵에서만 받을 수 있는 차원 마력 버프 없이 거신족 대군을 맞상대하는 것은 무리였으니 말이다.

아마 균열이 아닌 엘라시움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거신족 장군 한둘만 등장해도 상대하기 무척이나 힘들 터.

쉽게 말해 거신족을 지속적으로 도발하여 균열 안에 머물도록 해야 이안의 사냥 노가다가 계속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70레벨까지는 무리여도 65레벨은 찍고 말겠어. 이제 경험치도 30퍼센트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야.’

경험치 게이지 바를 보며, 사냥에 대한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이안.

물론 일주일이 넘게 이어진 하드한 사냥 때문에 가신들과 소환수들은 죽을 맛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야 늘 있던 일이었으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안, 이제 좀 쉴 때도 된 거 같다. 이러다가 과로사하겠다.”

이안의 소환수가 된 뒤, 이미 오래 전에 워라밸이 무너져 버린 루가릭스.

그가 슬픈 표정으로 이안을 향해 하소연하였지만, 이안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말했잖아 루가릭스. 나 65레벨 되면 내려갈 거라고.”

“크윽……!”

“네가 더 열심히 일할수록 빨리 쉴 수 있는 거야. 앓는 소리 하지 말고 그 시간에 얼른 가서 일하라고.”

“흑흑, 악덕 고용주……!”

이안이 자신의 클레임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일축해 버리자, 루가릭스는 주변의 동료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동료인 다른 소환수들과 가신들은 묵묵히 맡은 바 업무(?)를 착실히 할 뿐이었다.

아직 파티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루가릭스와 달리, 다른 소환수들은 이안에게 이미 완벽히 적응해 있었던 것.

“괜히 힘 빼지 말고 그 시간에 한 놈이라도 더 잡으라고, 루가릭스.”

“카이자르의 말이 맞다. 어차피 주인은 꿈쩍도 하지 않을 거다.”

한 번 정한 목표는 어지간해서 수정하지 않는 이안의 성격을 잘 아는 다른 소환수들과 가신들은, 루가릭스의 부질없는 노력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 여긴 지옥이야…….”

카이자르와 카르세우스 듀오의 핀잔에 풀이 죽은 루가릭스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다시 사냥을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이안과의 계약은 수천 년이 넘는 용생龍生 동안 최악의 선택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 루가릭스였다.

까강- 깡-!

-캬아아오-!

그리고 그렇게, 한나절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났을까?

우우우웅-!

이안의 주변으로 휘감기는 황금빛 광채를 발견한 소환수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크릉-! 드디어 끝났다!”

“뿌뿍! 이제 쉴 수 있겠뿍!”

이안의 주변에 감기는 광채는 레벨 업을 뜻하는 것이었고, 이번으로 정확히 다섯 번째 레벨 업이었으니.

그것을 확인한 소환수들은 사냥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안이 악덕 고용주이기는 하나 약속을 번복하는 일은 없었다.

“자, 조금 아쉽지만, 이제 돌아가자. 어쨌든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말을 마친 이안은, 탑승용(?) 소환수들만을 남기고 전부 소환 해제한 뒤, 빠른 속도로 균열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이제 용천에 돌아가면 모아 뒀던 공헌도 싹 다 써 버린 다음, 슬슬 이사를 준비해야겠어.’

이안은 지난 일주일 동안 무턱대고 레벨 업만 한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안은 중천의 용족 가문들 중 암천의 소속이었고, 균열 내에서 미친 듯이 사냥을 할 계획이었으니 솔바르로부터 받을 수 있는 반복 퀘스트와 동맹 퀘스트를 죄다 받아서 클리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일주일간 이안이 클리어한 퀘스트의 숫자만 해도 스무 개를 넘는 상황.

이안의 공헌도가 어마어마하게 쌓인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

슈우웅-!

암천에 도착하자마자 솔바르의 집무실을 찾은 이안이, 퀘스트 보상을 수령하며 입을 열었다.

“솔바르. 이만하면 이제 거신족들도 한동안 균열 넘어 쳐들어올 엄두는 못 내겠지요?”

그리고 이안의 말을 들으며 그의 업적(?)을 살펴보던 솔바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야, 당연하네. 자네에게 입은 피해를 다시 복구하기 전까지는…… 감히 용천을 넘볼 생각 따위 할 수 없겠지.”

암천에게 있어 그 누구보다 고마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질린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보는 솔바르.

그는 수천이 넘는 거신들을 때려잡은 이안의 무력도 놀라웠지만, 전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이안의 근성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어쨌든 퀘스트 보상을 싹 다 수령하고 인벤토리 정리를 마친 이안은, 솔바르를 향해 본론을 꺼내었다.

“휘유, 이 정도면 1인분…… 아니, 10인분 이상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까, 저 한동안 다른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이안의 발언에, 솔바르는 당황한 표정이 되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그, 그건 맞지만, 대체 무슨 일을 보러 간다는 겐가?”

지난 보름 동안, 암천에 이안이 가져다 준 공헌도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때문에 이안이 지금부터 일(?)을 쉰다고 해도, 이번 달 전장 기여도 정산일 까지 다른 가문에 1위를 뺏길 일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기준 전체 기여도의 90퍼센트 이상이 암천의 몫이었고, 나머지 네 가문의 기여도를 합쳐 봐야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달부터였다.

어쨌든 가문의 기여도 정산은 매달 새로 갱신되는 것이었고, 이안에 대한 의존도가 엄청나게 높아진 지금 상황에서 그가 빠진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불 보듯 뻔했으니 말이다.

아마 지난달과 이번 달처럼 기여도 1위를 차지하기는커녕, 중간도 못 갈 것이 분명하였다.

“늦어도 다음 달에는 돌아오는 거겠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이안을 향해 재차 묻는 솔바르.

그런 그를 향해, 이안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뭐, 그 전까지 원소의 목걸이랑 혼령의 날개를 구할 수 있다면 한번 고려해 보도록 하죠.”

그리고 이안의 말을 들은 솔바르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한 가문의 수장답게 중간자로서 높은 위격을 가진 솔바르는 이안이 지금 말하는 것이 어떤 물건인지 대략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물론 솔바르와 같이 태생부터 최상위의 위격을 갖고 태어난 중간자들은, 원소의 목걸이나 혼령의 날개와 같은 각 차원계의 ‘인장’ 없이도 성운을 밟는 게 가능하였다.

때문에 이안이 그 물건들을 왜 구하려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성운을 밟기 위해 그것들이 필요한지조차,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 물건들이 어떤 차원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얼마나 구하기 힘든 귀한 물건들인지 정도는 이안보다도 훨씬 잘 알고 있었다.

“그 물건들이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일세, 이안.”

솔바르의 이야기에, 이안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하였다.

“거신족 연합군을 혼자서 몰아내는 것보다 힘든 건가요?”

그리고 그 천연덕스런 말에 솔바르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안의 질문은, 솔바르조차도 결코 쉽사리 답을 내어놓을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

“여튼 전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다른 차원계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으니 그렇게 알고 계세요, 솔바르 님.”

“후우, 알겠네.”

이안의 이야기에, 마치 세상을 다 잃은 듯 우울한 표정이 된 솔바르.

하지만 이안의 다음 말이 이어지자 그는 약간 희망적인 표정이 될 수 있었다.

“아, 솔바르. 혹시 제 동료들이 이 중천에 오게 된다면 암천을 동맹으로 선택하라고 얘기해 둘게요.”

“오, 그게 정말인가?”

“뭐, 저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쓸 만한 녀석들이니 암천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오옷, 역시 자네야말로 우리 암천의 진정한 동맹일세!”

“별말씀을요.”

이안이 얘기하는 동료들이란, 당연히 로터스의 길드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이안의 머릿속에는 카노엘과 훈이가 떠올라 있었다.

‘노엘이 메인 퀘 진행하는 거 보니 조만간 중천 밟겠던데……. 암천으로 보내서 굴려야겠어. 훈이까지 세트로 이쪽에 불러다가 굴리면 금상첨화겠군.’

이안은 에픽 퀘스트 진행을 위해 다른 차원계로 넘어가지만, 그것과 별개로 용천에 힘들게 닦아 놓은 길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었다.

때문에 가장 충실한 충복 둘을 이쪽으로 불러, 자신의 업적(?)을 이어 가게 할 생각이었다.

“대신 제 동료들이 이쪽으로 오면, 최대한 일을 많이 주셔야 돼요.”

“알겠네, 그러도록 하지.”

“다들 뛰어난 친구들이니, 저 만큼은 충분히 해낼 겁니다.”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일단 그렇게 알도록 하겠네.”

그리고 솔바르와의 작별 인사까지 마친 이안은 미련 없이 암천을 빠져나왔다.

이어서 미리 생각해 두었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였다.

우우웅-!

평범한 유저라면 용사의 마을을 거쳐 번거롭게 이동해야 하지만, 차원의 힘으로 포털을 열 수 있는 이안에게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은 너무도 간단한 일.

이안이 좌표를 찍자, 붉은 빛깔의 포탈이 어김없이 생성되었고…….

위잉-!

이안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겨 들어섰다.

-차원을 이탈하여, 다른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차원 이동으로 인해 능력치가 변동될 수 있습니다.

-정령계, ‘정령산’ 지역의 ‘오염된 광산’ 맵으로 이동합니다.

이어서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며 히죽 웃은 이안은 머릿속으로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동안 우리 칠칠이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성운을 밟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의 징표.

그중 이안은 ‘원소의 목걸이’를 먼저 찾아보기로 결심하였고, 때문에 그의 행선지는 바로 정령계였다.

그리고 그 정령계 안에서도 이안이 첫 발 디딜 곳은, 오래 전 ‘정령산의 오염된 광산’에 만들어 놓은 그의 아지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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