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744화 (752/1,027)

< 744화 4. 중간자의 사명 >

용천, 명계, 정령계.

그리고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중간계의 차원들.

처음 용사의 마을을 수료하였을 때, 이안에게는 선택지가 무척이나 많았다.

용사의 마을 수료 자체도 다른 랭커들에 비해 무척이나 빨랐으며, 가지고 있는 중간계에 대한 정보 또한 방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많은 선택지 중, 이안은 망설임 없이 용천을 선택하였으며, 그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어둠의 신룡이며, 그것도 이미 초월 각성까지 되어 있는 완전체에 가까운 소환수.

신화 등급의 드래곤 루가릭스를 확정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메리트는, 그 어떤 콘텐츠보다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 이안은 루가릭스를 얻은 것은 물론, 다른 신룡들까지 각성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신룡과 비교하여 하나 꿇릴 것 없는 드래곤 소환수인, 아이언까지 손에 넣었고 말이다.

다른 랭커들이 안다면, 배가 아프다 못해 쓰러질지도 모를 성과!

‘생각보다 좀 이르긴 한 것 같지만…… 이제 슬슬 다른 차원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온 것 같군. 용천에 있는 콘텐츠도 이미 할 만큼 진행했고…….’

눈앞에 떠올라 있는 퀘스트창을 읽어 내려가며, 이안은 속으로 저울질을 시작했다.

앞으로 중간계의 퀘스트 진행을, 어떤 방향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일지를 말이다.

고대 전장의 영웅 Ⅰ (히든)(에픽)

당신은 거신족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경이로운 공헌도를 달성하였다.

당신의 활약으로 거신족 대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균열 바깥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물론 거신들은 머지않아 또다시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볼 것이지만, 그래도 용천의 용족들이 더욱 강대한 힘을 키울 수 있을 만한 시간이 확보된 것.

하여 중천의 가문들은, 당신에게 용족이 아닌 동맹 세력 최초로 ‘현자의 탑’에 오를 자격을 부여하였다.

성운에 있는 현자의 탑으로 가서, 그곳을 지키는 고룡 ‘드라키시스’를 만나자.

그리고 그가 가진 지혜를 얻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영혼이 가진 위격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없음

퀘스트 조건 :

‘중간자’의 위격을 획득한 자

승천의 조건을 충족하여, 용오름을 오른 자

중천의 동맹으로, 누적 공헌도 100만을 달성한 자

중천의 가문 중 세 곳 이상의 수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자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고대 전장의 영웅 Ⅰ’ 연계 퀘스트 발동

명성(초월) +5,000

*거절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퀘스트입니다.

퀘스트의 내용은 심플했다.

뛰어난 활약으로 인해 용들의 가문으로부터 인정받았으니, 현자의 탑에 있는 고룡 드라키시스를 만날 수 있는 자격을 주겠다는 것.

심지어 난이도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퀘스트였으니, 사실 이 퀘스트 창만을 본다면 이안이 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퀘스트 창이 열린 것이고, 이안은 그저 걸음만 옮기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안은 대체 왜, 다른 차원계로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 이유가 이 에픽 퀘스트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조금 더 정확히 따지자면 ‘현자의 탑’이 있다는 위치가 문제였다.

현자의 탑이 솟아 있는 곳인 ‘현자의 땅’은, 이안이 아직 갈 수 없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성스러운 구름’을 통해야만 하는데, 그것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게다가 그곳에 들어서기 위한 조건 중 몇 가지는, 이 용천에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자의 탑에 오를 자격이 생겼으면 뭐 해. 그게 어떻게 생긴 탑인지 확인조차 불가능한 상황인데…….’

그리고 그 ‘성스러운 구름’이라는 곳을 통과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초월 레벨 80 이상.

2. 용 비늘 신발 보유.

3. 원소의 목걸이 보유.

4. 혼령의 날개 보유.

‘초월 레벨 80 제한이야 한두 달 더 노가다하면 달성할 수 있겠지만…….’

이 네 가지의 조건들 중, 이안이 달성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초월 레벨 80 조건과 용 비늘 신발 보유 조건.

레벨 80이야 노가다와 함께라면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것이었고, 용 비늘 신발은 지금이라도 이안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초월 스텟을 막대하게 올려 주는 장비인 용 비늘 신발은, 지금까지 쌓은 암천의 공헌도를 털면 솔바르로부터 구매(?)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3번 조건인 원소의 목걸이와 마지막 조건인 혼령의 날개는, 이안으로서도 어떻게 얻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것들이었다.

‘대체 왜 아직 들어갈 수 도 없는 지역과 관련된 퀘스트가 생성된 건지 모르겠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겠지.’

이안은 알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실 ‘고대 전장의 영웅’ 퀘스트는 이 시점에 생성될 수 없는 퀘스트였다.

기획 팀이 처음 기획할 때 이 퀘스트는, 중간계의 모든 콘텐츠를 거의 다 섭렵하고 극한까지 성장을 마친 유저에게 부여되도록 설계된 퀘스트였으니 말이다.

100만이라는 누적 공헌도와 용족의 가문 세 곳으로부터의 인정이라는 조건은, 이안처럼 고작(?) 초월 레벨 60정도의 수준에서 결코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적어도 기획 팀이 생각하기에는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콘텐츠를 몇 단계나 뛰어넘어 당장 진행할 수 없는 퀘스트를 받은 이안.

‘원소의 목걸이와 혼령의 날개라……. 결국 상위 콘텐츠로 점프하기 전에, 다른 차원계를 뚫어야 한단 얘기로군.’

생각지 못했던 타이밍에 떠오른 에픽 퀘스트가, 그를 다른 차원계로 인도하고 있었다.

‘그래도 차원 마력 저항력으로 꿀을 좀 더 빨긴 해야 하니, 한 보름 정도만 용천에서 노가다를 더 해야겠어. 차원 마력 버프를 이용하면, 초월 70레벨까지는 수월하게 찍을 수 있겠지.’

나름의 계획을 세운 이안은, 며칠간의 노가다로 쌓인 인벤토리를 정리한 뒤 드디어 로그아웃하였다.

지난 삼일간의 전투는 어지간해서는 지치지 않는 이안조차도 무리가 올 정도로 하드한 일정이었기 때문에, 푹 쉬고 다시 접속할 생각이었다.

‘다시 접속하면 오랜만에 그리퍼를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 처음 원소의 목걸이와 혼령의 날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곳도, 그리퍼의 연구실이었으니까.’

위이잉, 철컥!

캡슐에서 나온 이안은, 깔끔하게 샤워를 마친 후 침상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리퍼의 장난기 어린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난번엔 대충 얼버무리면서 알려 주지 않았지만, 이번엔 자초지종을 얘기하면 대답해 주겠지.’

* * *

아예 이틀 정도를 푹 쉬며 현실 재정비를 마친 이안은, 모든 체력을 전부 회복한 뒤 다시 게임에 접속하였다.

오랜만에 용천을 벗어나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인간계.

콜로나르 대륙 서쪽에 자리한, 차원의 마탑이었다.

차원의 마도사인 그리퍼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으니 말이다.

“오호, 오래간만일세, 이안. 그간 잘 지내셨는가?”

“그럼요. 당연하죠, 그리퍼.”

“허허, 못 본 사이에 신수가 훤해졌구먼그래. 역시 자네의 성장 속도는 감히 예측을 못 하겠어.”

“하핫, 이게 다 그리퍼 덕분 아니겠습니까. 차원의 마도사님께서 살펴 주신 덕에 제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오랜만에 이안과 조우한 그리퍼는, 무척이나 반갑게 이안을 맞아 주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너스레를 떨며 얘기하는 이안을 보고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후후, 자네는 여전하구먼그래.”

“뭐가 말입니까?”

“자네에게서 이 노인네에게 또 뭘 뜯어 가려는 모양새가 보이니 하는 말일세.”

“어헛, 뜯어 가다니요. 그렇게 섭한 말씀을.”

이안은 그리퍼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지만,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대화를 이어 갔다.

어찌 보면 이 카일란에 존재하는 모든 NPC 중, 이안과 가장 친분이 두터운 이가 바로 그리퍼였으니.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별달리 거리가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오랜만에 왔는데 마실 거라도 한 잔 내주시지요.”

“허허, 그럼세. 뭐 어려운 일도 아니지.”

“노인네 적적하셨을 텐데, 그간 있었던 재밌는 썰도 좀 풀어 드리겠습니다.”

“썰? 그게 뭔가?”

“음…… 이야기보따리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마치 본인의 집 안방처럼 그리퍼의 연구실 쇼파에 몸을 푹 담근 이안은, 차를 홀짝이며 그리퍼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리퍼와 오랜만에 나누는 대화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즐거웠다.

“셀리파는 잘 지내고 있죠, 그리퍼?”

“물론일세. 가끔 마을에 내려가 말썽을 부리는 것만 제외한다면, 아주 잘 지내고 있지. 오랜만에 녀석이 보고 싶은 모양이구먼?”

“하하. 뭐 그렇기도 하지만…… 마탑 앞에 있어야 할 녀석이 보이지 않아서 한번 여쭤봤습니다.”

“뭐……? 으으……! 이 녀석 또 어디 간 게야!”

사실상 카일란을 플레이하는 내내 그리퍼와의 인연을 이어 온 이안은, 그와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연구소에 온 목적을 잊지 않은 이안은, 슬슬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아, 그건 그렇고 그리퍼.”

“말씀하시게.”

“그리퍼께서 예전에 중간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던 중 성운에 대한 말을 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십니까?”

그리퍼가 이안에게 성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사실 정말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것은 이안이 용사의 마을에 채 발을 들이기도 전.

중간계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적립하지 못했던 시절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일전에 마해(魔海)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 혹시 기억하는가, 이안?”

“물론이죠. 마계라는 차원계를 담고 있는 그릇을 마해라고 한다고…….”

“역시 정확히 기억하고 있군. 훌륭해.”

“중간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던 중에 뜬금없이 그 얘기는 왜 꺼내신 겁니까?”

“당연히 연관이 있으니 꺼낸 이야기일세.”

“……?”

“마해가 마계라는 차원을 한 바구니에 담아 주는 역할을 한다면, 중간계라 불리는 모든 차원계 또한 마찬가지로 그러한 바구니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야.”

“그……렇군요.”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할 ‘성운(聖雲)’은, 그 바구니들을 한데 이어 주는 역할을 하지.”

“성운……요?”

“자네, ‘중간자’의 진정한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걸 제가 어찌 압니까?”

“중간자의 역할이란, 이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원들을 중재하는 것이라네.”

“……!”

“그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중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성운을 디딜 수 있어야만 하지.”

“이게 무슨 선문답 같은…….”

“그리고 성운을 딛기 위해선 용 비늘 신발과 원소의 목걸이, 그리고 혼령의 날개가 필요하지.”

“아, 네…….”

“혹여 중간계를 여행하다가 그 물건들을 얻을 기회가 생긴다면, 꼭 손에 넣으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서 말을 꺼낸 것이라네. 아마 이 세 가지 물건들은 각각 다른 차원계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야.”

“뭐, 아직은 감도 잘 안 오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당시에 뭔지도 모르면서 꼼꼼히 머릿속에 기억해 뒀던 이안은, 중천에서 처음 성운을 발견한 순간 그리퍼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다만 성운을 밟기 위해서는 80이라는 초월 레벨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궁금증을 지금까지 미뤄 오고 있었던 것일 뿐.

그리고 이안의 이안의 이야기를 들은 그리퍼는, 놀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이안이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낼 것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점이 생각보다 너무 빨랐으니 말이었다.

하여 잠시 뜸을 들이던 그리퍼는,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성운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낸 것을 보면…… 그것을 이미 발견했다는 얘기겠군.”

“그렇습니다. 발견한 지는 사실 좀 됐는데…… 이제 거길 가야 하는 상황이 돼서 말이지요.”

“……!”

이안의 대답에 더욱 놀란 표정이 된 그리퍼.

잠시 후, 그리퍼의 이야기가 천천히 다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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