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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43화 (751/1,027)

< 743화 2. 거신 섬멸전 (3) >

* * *

이안이 등장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순식간에 배 이상 불어나버린 레이콥스의 방송 시청자들.

그만큼 이안이라는 콘텐츠는 카일란 유저들에게 파괴력 있고 가치 있었다.

때문에 로터스 길드에서는, 이안의 개인영상을 항상 받아서 편집하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이안과 함께 일했던, 영상 편집 기술자 소진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매번 이안의 영상을 상품화하면서 편집자들에게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안의 영상이 무척이나 불친절하다는 것.

이안은 그냥 영상 녹화를 활성화시켜 둔 채 그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1시간짜리 영상에서 10분도 채 건지지 못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인칭 시점의 전투 영상 자체가 편집 난이도가 상당했는데, 이안은 영상이 어떻게 찍힐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고 플레이했으니 그의 전투 퀄리티가 영상에 제대로 담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이안을 따라다니며 영상을 찍어 주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안이 진행하는 콘텐츠는 항상 최상위 콘텐츠였기 때문에, 그곳까지 진입이 가능한 촬영사(?)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것.

심지어 진입이 가능하다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안이 사냥하는 필드의 난이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촬영사가 촬영에 집중하기는커녕 몬스터들로부터 살아남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레이콥스라는 카드는 이안에게 제법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레이콥스는 어쩌면 이안보다도 더 안전하게(?) 거신족 연합군 진영을 활보하며, 이안의 영상을 찍어 줄 수 있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놓치지 말고 잘 쫓아와야 해, 레이콥스. 암살자니까 그 정돈 할 수 있겠지?”

“당연하지. 날 뭘로 보고……!”

“못 쫓아오거나 불성실하면 계약은 자동 해제야. 계약 해제되면 어떻게 될지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그, 그런……!”

계약 해지란 곧 이안이 다시 레이콥스를 적대하겠다는 이야기.

협박을 서슴지 않으며, 레이콥스에게 목줄(?)을 단단하게 채운 이안은, 그대로 다시 거신족 연합군 진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신난 것은, 레이콥스의 방송을 지켜보던 수많은 시청자들이었다.

-크, 오늘은 여기다! 이안갓이 못해도 12시간 얘기했으니, 밤새 치킨이나 뜯으면서 영상 봐야지.

-위 님, 내일 회사 안 가심? 혹시 백수……?

-ㄴㄴ 잠은 회사 가서 잘 거임. 정 너무 피곤하면 연차 내지 뭐.

-ㅋㅋㅋ월급 도둑 클래스.

하지만 이안과의 계약을 체결한 장본인인 레이콥스는 물론, 그의 방송을 시청 중인 수백만 시청자들까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안의 사냥이 12시간에서 끝날 리 없다는 사실.

‘뭐, 연합군 궤멸시키는 게 12시간 안에 끝난다면 사냥도 당연히 끝나겠지만,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 빨리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이안은 정말로, 균열맵의 하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거신족 연합군을 전부 궤멸시킬 때 까지 사냥을 끝낼 생각이 조금도 없었으니 말이다.

* * *

한편, 이안이 균열 지하를 박살 내고 있던 그 무렵.

균열의 윗동네(?)인 용들의 땅 중천에서는, 각 가문의 수장들 간에 긴급회의가 소집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거신족 연합군의 창궐 때문.

균열 도처에 용족 정찰병들이 포진하여 있었으니, 거신족 연합군이 결성되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용족 수뇌부들에 알려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미세하게나마 거신족에 비해 용족 진영이 우세한 상황이었으나, 거신족 연합군이 작정하고 총 공세를 펼친다면 수뇌부 입장에서는 위기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때문에 중천을 지키는 각 가문의 수장들은 일단 경쟁을 멈추고 합심하여 거신족의 공격에 대응하기로 하였다.

“무식한 거신족 녀석들이, 이번에는 단단히 뿔이 났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언젠간 이렇게 대규모 전장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시기가 조금 빠르긴 하군요.”

“더 이상 안일하게 대처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모든 병력 소집하여 균열로 진입할 준비를 마치고, 각 가문의 동맹들에게도 도움을 청하도록 하지요.”

“그러도록 하지요. 저 거신족 무뢰배들이 이 성스러운 중천을 밟도록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세카이토 님께서 대노하시겠지요.”

암천의 천주인 솔바르를 포함한 다섯 명의 각 가문 수장들.

중천의 성역인 지혜의 탑에 모인 그들은, 한 목소리로 뜻을 모아 연합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연합을 선포한 순간, 중천에 들어와 각 가문과 동맹을 맺은 인간종족 랭커들의 퀘스트 창에는, 새로운 퀘스트가 알림이 떠올랐다.

띠링-!

-‘용족 연합군 결성’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각 가문의 수장에게서, 퀘스트를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에픽(Epic) 속성의 퀘스트입니다.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에 수령하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소멸되는 퀘스트입니다.

에픽 퀘스트란, 말 그대로 게임 내의 메인 스토리가 진행될 때 발생하는 서사시적 속성을 가진 퀘스트.

에픽 퀘스트 발생을 확인한 중천의 인간 종족 랭커들은 퀘스트를 받기 위해 부지런히 자신의 동맹 가문으로 이동하였으며 다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퀘스트가 발동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일란의 에픽 퀘스트들은 대부분 보상이 무척이나 후한 편이었으니, 얼른 퀘스트에 탑승하여 선이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크, 열심히 해서 중천에 빨리 올라오길 잘했네. 며칠만 늦었으면 에픽 퀘 못 받을 뻔했잖아?”

“흐흐, 후발주자들 올라오기 전에, 그만 뜸 들이고 빨리 퀘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퀘스트 보상이 뭘까요? 초월 명성이야 당연히 빵빵하게 들어올 테고, 한정판 세트 아이템이라도 보상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오, 한정판 세트템이라. 얘기 듣는 것만으로도 설레는데요?”

“불가능한 얘기는 아님. LB사에서 에픽 퀘 관련 한정판 세트템 자주 뿌리더라고요.”

“오옷……!”

중천에 진입한 랭커들은 에픽 퀘스트를 얼른 수령한 뒤, 퀘스트가 시작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초월레벨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퀘스트 생성 알림이 떠오른 지 반나절이 지나고, 하루가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기다리던 퀘스트 발동 소식은 들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 무렵.

띠링-!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용족 연합군 결성’ 퀘스트가 소멸됩니다.

-퀘스트 소멸 보상으로, 용천주화 150냥이 지급됩니다.

랭커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충격적인(?)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을 뿐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에픽 퀘가 소멸됐다고? 뜬금없이 이럴 수가 있나?”

“아 놔,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에픽퀘 준비한다고 다른 퀘 아무것도 진행 안 하고 있었는데!”

“하, 용천주화 150냥이라니. 이건 누구 코에 붙이라고 주는 거임?”

“아무래도 버그인 것 같은데, LB사에 전화 한번 해 봐야 겠어요.”

“맞아요. 일반퀘도 아니고 에픽퀘가 뜬금없이 소멸되다니. 메인 스토리가 바뀐 게 아닌 이상 말도 안 되는 일 아닙니까?”

기대가 컸던 만큼 분노(?)한 랭커들은 LB사의 고객센터에 전화까지 하며 항의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처럼 한가지일 뿐이었다.

-확인 결과 발생한 버그가 없습니다, 고객님. 정상적인 시스템 작동 결과로…….

그리고 그러한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 에픽 퀘스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용천의 랭커들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 순간 가장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LB사의 기획팀 직원이었으니까.

특히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용천과 지저세계의 에픽퀘스트 기획을 담당한 기획 2팀의 직원이었다.

“잠깐. 지난달에 일주일 철야 하면서 구상한 퀘스트가 없어진 거지, 지금?”

“그, 그런 것 같습니다, 팀장님.”

“으, 으아악! 이안, 이 미친노옴!”

“진정하세요, 팀장님!”

“아니,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지난 달 야근 게 아까운 건 둘째치고, 이러면 메인 스토리 진행이 또 너무 빨라지잖아!”

메인 스토리 진행이 빨라지는 것은, 사실 시스템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다만 스토리가 빨라진다는 것은 콘텐츠 소모 속도가 빨라진다는 이야기였고, 그 말인 즉, 기획팀에서 얼른 다음 콘텐츠를 대령해야 한다는 이야기.

덕분에 기획 2팀의 팀장인 임진택은, 마치 세상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포효(?)할 수밖에 없었으며…….

“으아아!”

또, 그의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대리 손병수는, 해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야근……. 또 하면 되죠, 뭐.”

“크윽!”

그리고 그런 그들의 옆에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들도 있었다.

“휴우, 탈 이안 하는 게 이렇게까지 행복한 일일 줄이야…….”

“전 요즘 다른 회사 다니는 기분입니다, 팀장님.”

“저도요.”

“난 어제 밤새 이안 방송 보면서 응원까지 했다고.”

그들의 정체는 얼마 전 용천 기획 작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나지찬을 비롯한 기획 3팀이었다.

* * *

‘헉, 헉, 이건 꿈일 거야. 그리고 저놈은 분명 사람이 아닐 거야…….’

이안의 노예(?)가 된 지 사흘 차.

탱탱하기 그지없었던 레이콥스의 피부는 쭈글쭈글해져 있었으며, 하얗던 그의 피부 위에는 시커먼 다크서클이 죽 내려앉아 있었다.

방송을 시작한지 만으로 이틀이 지난 지금, 레이콥스는 그야말로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12시간이라던 이안의 사냥은 벌써 50시간째 이어지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누적 구독자 수는 어느새 오백만을 넘어 칠백만에 도달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콥스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다만 이 지옥같은 사냥 릴레이가, 1초라도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까강- 까앙-!

퍼어엉-!

지금 이 순간도 쉴 새 없이 거신들과 드잡이질을 벌이는 이안을 보며, 레이콥스는 두 눈을 의심하였다.

‘난 그냥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지금 사망할 것 같은데, 저놈은 대체 정체가 뭐지? 지금 50시간 동안 사냥하면서 몇 번 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처음 이안과 계약을 체결할 때, 레이콥스는 사실 이안이 12시간은커녕 5시간도 채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는 거신족 연합군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었고, 아무리 이안이라고 한들 그들을 상대로 장시간 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때 이미 레이콥스는 이안이 거신족들을 때려잡는 광경을 본 이후였지만, 연합군 본진은 그것과 또 다른 문제였다.

연합군 본진에는 ‘거신족 장군’과 같은 한 차원 더 강력한 거신들이 즐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릴 지언정 모든 거신족들을 피하지 않고 때려잡았으며, 그 결과 방송 사흘 차에 접어들 때까지 사냥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레이콥스는 그때 그냥 이안의 창에 찔려 죽는 것이, 열배 쯤 행복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후우,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계약을 파기할 수는 없잖아? 아까워서라도 그렇겐 못 하지. 암……!’

기호지세라 했던가.

뭔가 조금 의미가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레이콥스는 이안의 제안을 받아 버렸고, 이미 너무 먼 길을 왔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이안 저 미친놈은 정말 연합군을 전멸시킬 때까지 사냥을 그만두지 않을 것 같았고,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모든 연합군을 전멸시킬 때 까지는 앞으로도 며칠이 더 걸릴 것 같았으니.

레이콥스의 눈에는 이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 있을 수 없었다.

‘으으……. 이번 계약 건만 끝나면, 내가 다신 이안 근처에 얼씬도 안 거린다. 구독자고 나발이고, 나부터 살아야지!’

그리고 그렇게 2~3시간 정도 더 고통 받던 레이콥스에게, 정말로 기적이 찾아왔다.

“……!”

끝날 것 같지 않던 이안과 연합군 간의 전쟁이, 드디어 막을 내린 것이다.

용천에 발을 들이기도 전, 이안 때문에 너무 큰 피해를 입은 거신족 연합군이, 지저세계로 퇴각을 결정한 것.

‘오, 신이시여……!’

그리고 다행히 이안도 지치기는 한 모양인지, 드디어 레이콥스에게 방송 종료를 허락(?)해 주었다.

“수고했어, 레이콥스.”

“크윽……. 고맙다, 이안.”

“찍은 영상은, 로터스 길드 메일로 발송하도록. 편집은 너한테 안 시킬 거니까 걱정 말고.”

“그걸 말이라고……!”

“여튼, 다음에 또 보자고.”

“그, 그러든가…….”

이안과의 거래를 마친 레이콥스는, 혹시 이안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 까봐 전속력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에게는 다음에 또 보자는 이안의 말이 그 어떤 말보다 더 공포스러웠으니 말이다.

‘다음에 또 보기는 개뿔! 난 이제부터 한국이 있는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쌀 거다.’

질릴 대로 질린 표정이 되어, 서둘러 방송을 마무리하고는 게임에서 로그아웃한 레이콥스.

한편 그렇게 레이콥스를 쫓아 보낸 이안은, 거신족 연합군이 전부 퇴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로그아웃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뭔가를 읽고 있었을 뿐.

“오호, 에픽 퀘스트라……. 어쩌면 이거 태천으로 이어지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걸?”

다른 용족진영 랭커들이 수령했던 에픽 퀘스트가 소멸한 그 시점, 이안에게만 부여된 새로운 에픽 퀘스트가 창에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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