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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42화 (750/1,027)

< 742화 2. 거신 섬멸전 (2) >

* * *

카일란 초기, 처음 암살자 클래스가 탄생했을 무렵, 암살자 클래스의 상징과도 같은 스킬인 ‘은신’ 계열의 스킬들은 많은 랭커들 사이에서 오버 밸런스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PVE에서야 그렇게까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지 않았지만, PVP에서만큼은 최강의 위력과 유틸성을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LB사는 언제나 그랬듯 따로 밸런스 패치를 진행하지 않았고, 대신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종류의 디텍팅 마법과 도구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신 계열 스킬들이 무용해진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디텍팅 마법에도 캐스팅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고, 도구들 또한 사용하기 위해선 특정 조건을 갖춰야 했으니 여전히 적당한 밸런스가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 은신 계열의 스킬들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암살자 클래스 유저가 디텍팅 가능한 수단들에 대해 잘 꿰고 있기만 한다면, 아직도 얼마든지 은신 능력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때문에 암살자 랭커인 레이콥스는 당연히 어지간한 디텍팅 수단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이안이 전투를 벌이는 지근거리까지 대담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래, 날 발견한 게 아닐 거야. 그냥 우연일 거야……!’

다가오는 이안을 응시하며, 마치 주문이라도 외듯 속으로 연신 중얼거리는 레이콥스.

하지만 지금 그가 밟고 있는 맵에 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고, 그가 이 어둠의 영역 안에 있는 한 이안의 눈에 훤히 보인다는 사실은, 안타깝게도 레이콥스로서는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오직 카카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 ‘꿈꾸는 악마’라는 필드 버프 스킬을 몰랐던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저벅- 저벅- 척-!

굳어 있는 레이콥스의 앞으로 다가선 이안이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중얼거렸다.

“크흠. 여기 어디서 마족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

“어떤 녀석이 숨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쭐을 내줘야겠는 걸?”

능청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시커먼 창을 번쩍 치켜드는 이안!

‘히익……!’

이안의 연기(?)에 완전히 속은 레이콥스는 아직 그에게 완전히 들킨 것은 아니라고 착각하였다.

‘이, 미친놈은 무슨 냄새로 마족을 찾냐?’

때문에 숨죽인 채, 이안의 창끝에 온 정신을 집중하였다.

혹시라도 운이 나빠서(?) 이안의 창이 그가 있는 자리로 날아온다면, 재빨리 옆으로 피해 낼 생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수많은 시청자들도 손에 땀을 쥔 채 레이콥스에 몰입하고 있었다.

-미친, 님들, 카일란에 냄새로 은신 찾아내는 기술도 있음?

-아니, 말도 안 되지. 그런 게 어디 있어?ㅋㅋㅋ

-아냐, 이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름. 애초에 혼자 다른 게임 하는 친구라서.

-레이콥스 저거 혹시 안 씻어서 암내라도 나는 거 아니냐?

창을 번쩍 치켜 든 채, 레이콥스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이안.

그 창끝을 향해 있는 레이콥스 방송의 화면.

이것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어지간한 스릴러 영화 뺨칠 정도의 긴장감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거 스릴 넘치네. 레이콥스 초월 레벨 쪼렙인 것 같은데, 이안갓 창질 한 방이면 그대로 푹찍이겠지?

-그건 안 돼! 이 꿀잼 방송이 여기서 강제 종료되는 건 원치 않는다고!

방송 화면을 보는 시청자들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이안이 레이콥스를 찾지 못하길 바라고 있었다.

레이콥스는 이안에게 발견되는 순간 당연히 처형(?)당할 것이고, 방송은 그대로 종료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이안이 거신족 연합군을 농락하고 다니는 영상을 계속해서 시청하고 싶은 시청자들이, 간절히 레이콥스를 응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청자들의 존재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이안의 창끝은 허공을 가르기 시작하였다.

슉- 슈슉- 슉-!

레이콥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재미있는지, 그의 양옆으로 연달아 창을 찔러 넣는 이안!

듣는 것만으로도 섬뜩할 정도의 파공성이 레이콥스의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자, 시청자들은 공포에 질리기 시작하였다.

-미, 미쳤다. 이거 너무 무섭잖아.

-방금 난 찔리는 줄 알았어……!

-난 내가 찔리는 줄 알았음 ㅋㅋㅋ

그런데 그때.

“……!”

레이콥스도, 시청자들도, 그에 더해 이안까지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등장하며, 아쉽게도 이안에 의해 급조된 단편 스릴러 영화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따악-!

갑자기 레이콥스의 뒤편으로 스륵 하고 나타난 헬라임이 솥뚜껑만 한 주먹으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다.

“마족 나부랭이 자식이 폐하께서 앞에 계신데 왜 이렇게 뻣뻣해? 눈 안 깔아?”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갑작스런 충격에 놀란 레이콥스는 털썩 하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 * *

이안은 레이콥스에 대해 모른다.

때문에 그가 BJ인지, 또 얼마나 유명한 BJ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 당연히 알 턱이 없었다.

때문에 이안은, 당연히 그가 자신의 뒤를 노리던 암살자라고 생각하였다.

다만 암살자(?)인 그를 바로 죽이지 않고 장난을 친 것은, 그의 존재가 어이없을 정도로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 저 단검, 경매장에서 250차원코인에 팔던 거잖아? 저 가죽 갑옷은 쟈크람 마을 방어구 상점에서 지저금화 430냥에 팔던 거고…….’

이안이 말하는 방어구 상점은, 당연히 쟈크람 마을의 고대상인 로로크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로크가 팔던 아이템들 중에 몇백 냥 단위의 싸구려(?) 아이템은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반지하에 있던 고대 상점을 지나면 평범한 마을과 다를 바 없는 방어구 상점과 무기 상점이 나란히 나타나는데, 이안의 눈에 띈 레이콥스의 장비들은 그곳에 진열되어있던 싸구려 잡템이었던 것이다.

‘거신족 정찰병 하나 잡을 수 없게 생긴 허약한 친구가 내 뒤를 왜 쫓아온 거지? 설마 몰래 뒤를 찌르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이안의 초월 레벨은 이제 60이다.

거신들을 계속해서 때려잡다 보니, 어느새 십의 자리 숫자가 6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반면에 이안의 눈에 비친 레이콥스의 초월 레벨은 정말 높게 잡아 줘야 20~25레벨 정도였다.

균열에 대체 어떻게 진입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허약해 보였던 것이다.

이안이 장비를 전부 벗은 상태에서 공격당한다고 하더라도, 단검이 박히긴 할지 의심스러운 수준.

이안은 레이콥스의 의도가 궁금해서라도, 그를 곧바로 죽일 수 없었다.

“친구,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그, 그냥 있었는데…….”

“장난해? 보아하니 균열 입구부터 쭉 따라온 것 같은데, 설마 날 암살하려고 따라온 거야?”

레이콥스와 이안의 대화를 듣던 시청자들은,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하였다.

상황 자체가 신박하고 흥미로웠으니 말이다.

-ㅋㅋㅋㅋ이안ㅋㅋㅋ 설마 암살하려고 한 거녜ㅋㅋ

-이안갓이 보기엔 어이없을만 하지ㅋㅋ

-그러게. 레이콥스가 이안을 암살하는 것보단, 차라리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깨는 게 더 쉬워 보이긴 함ㅋㅋ

그리고 뜻밖의 이벤트에 시청자들이 즐거워하는 동안, 이안과 레이콥스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빈약한 장비로는, 등껍질 없는 뿍뿍이랑 싸워도 질 것 같은데……. 대체 날 따라다닌 저의가 뭐야?”

“그게, 그,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 봐, 친구. 어쩌면 내가 널 살려 줄 수도 있잖아?”

“……!”

이미 죽은 목숨이라 생각했던 레이콥스는 어쩌면 살려 줄 수도 있다는 이안의 말에 두 눈을 번쩍 떴다.

이안을 처음 따라붙은 순간부터 죽음을 무릅쓴 선택이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죽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방송이라도 몇 시간 이상 뽕을 뽑은 다음이면 모를까, 이안을 따라 붙은 지는 아직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상황.

지금 죽어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었다.

-오, 레이콥스, 뭐 하고 있냐? 살려 준대잖아! 이안느님한테 싹싹 빌지 않고 뭐 해?

-기왕이면 계속 따라다니면서 촬영해도 되냐고 물어봐라. 방송 수익 배분해 준다고 하면 허락해 줄지도 몰라.

시선을 힐끔 돌려 시청자들의 채팅을 확인한 레이콥스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지, 판단을 잘 해야 했으니 말이다.

‘후, 진짜 이안한테 솔직하게 얘기하고, 방송 수익이라도 배분해 줘 볼까? 살아서 이안의 영상을 계속 촬영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일 것 같은데…….’

카일란에선 특별한 계약서를 쓰지 않는 한, 다른 유저의 개인 영상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심지어 다른 유저의 영상에 자신이 계속해서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영상에 대한 저작권은 직접 촬영한 유저의 몫인 것이다.

카일란 초기부터 이에 대한 논란이 많자, LB사에서 아예 그렇게 규정지어 버린 것.

때문에 지금껏 촬영한 영상에 대한 저작권이야 당연히 레이콥스의 것이었고, 그는 이것을 가지고 이안에게 딜을 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가진 글로벌 시청자의 숫자와 그 파급력까지 계산해 넣는다면, 이안으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일 것이라 생각하고 말이다.

생각을 정리한 레이콥스는 이안에게 차분히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이안, 이렇게 하면 너랑 나 둘 다 윈윈이 아니냐는 거지.”

“흠…….”

“지금 내 방송에 들어와 있는 시청자만 2백만이 넘어. 여기서 나올 광고 수익을 생각한다면, 너로서도 나쁜 제안이 아닐 걸?”

“균열에 처음 들어와서 다른 마족 랭커들이랑 싸울 때부터, 영상을 다 찍었다는 거지?”

“그래. 그렇다니까?”

“만약 지금부터 연합군 토벌 영상을 계속 찍게 해 주면, 모든 영상수익을 절반 떼어 주겠다는 거고.”

“빙고. 바로 그거지. 역시 머리가 좋은 친구라 말이 잘 통하는군.”

이안에게 모든 설명을 한 레이콥스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안이 분명히 이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줄 것이라 기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데에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근데 그거 알아, 레이콥스?”

“뭐……?”

“네가 찍었다는 영상, 이미 나도 개인 영상으로 다 찍어 뒀어.”

“……!”

“로터스 영상 편집 전담 팀에 맡기면 아주 기깔 나게 CG작업까지 해 줄 거고…….”

“그, 그래도 내 구독자 수를 생각하면……!”

“당장 내가 개인 방송만 열면, 2백만이 아니라 5백만도 금방 모일 것 같은데?”

“큭……!”

너무도 논리 정연한 이안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만 레이콥스.

그런 그의 표정을 슬슬 살핀 이안이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다시 제안하도록 하지. 이 제안을 수용한다면, 살려 주는 것은 물론 영상도 계속 찍을 수 있게 해 주겠어.”

“……?”

“지금까지 찍은 영상에 대한 수익은 네가 다 가져도 돼. 어차피 내가 찍어 둔 것도 있고, 그에 대해 딱히 미련도 없으니 말이야.”

“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이안의 이야기에, 다시 두 눈이 휘둥그레진 레이콥스.

하지만 너무 당연히도, 이안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단!”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이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이 사냥이 끝날 때까지 날 계속 따라다니면서 영상을 찍어야 해. 더해서 그 영상에 대한 수익과 저작권은 100퍼센트 내가 가져갈 거고.”

이안의 말에 레이콥스는 당황하였다.

수익 배분을 1퍼센트도 받지 못한다면, 그를 따라다니며 영상을 찍을 이유 자체가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그, 그게 무슨……!”

하지만 이어지는 이안의 말을 듣자, 레이콥스는 점점 그의 제안이 이해되었다.

“날 따라다니면서 라이브영상을 방송하는 것만으로도 네 구독자는 몇 배로 늘어날걸?”

“……!”

“나 지금부터 못해도 12시간은 계속 사냥할 거야. 그리고 그동안 네가 계속 영상을 라이브로 방송하면, 구독자가 몇 명이나 될지 생각해 봤어?”

이안의 논리 정연한 이야기에, 레이콥스는 점점 더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 그래. 1천만까지는 안 되더라도, 잘하면 500만 시청자 까지는 찍어 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눈알을 굴리며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레이콥스를 보며, 이안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 데리고 다니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훌륭한 노예(?)를 하나 얻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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