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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40화 (26/1,027)

< 740화 2. 굴욕의 균열 전투 (3) >

* * *

“이, 이안이 모든 마족 랭커들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어, 어어! 저 위에 그대로 브레스를 덮으려는 모양입니다! 이거 이러면 전멸이에요!”

균열 전장의 구석.

계속해서 은신 상태를 유지시키며 전장을 지켜보던 레이콥스는 자신의 마이크에 대고 흥분한 목소리로 전장을 중계하고 있었다.

물론 흥분했다고 해서 크게 소리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이안의 눈을 피해 숨어 있는 상황이었고, 아무리 흥분했다고 한들 그에 대한 최소한의 인지는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레이콥스는 적어도 자신이 마족 진영의 유저라는 사실은 잊은 듯했다.

같은 진영의 유저들이 싸그리 몰살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침을 튀어 가며 방송에 열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드, 드래곤의 입에서 보랏빛 브레스가 쏟아져 나옵니다!”

“아, 전멸이에요, 전멸! 기사 클래스 한둘 빼고는 싹 다 지워져 버렸어요.”

그리고 그런 그의 방송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숫자는 이제 백만을 가뿐히 넘어 이백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와, 미쳤다. 지금 이안 혼자서 서른이 넘는 마족 랭커들을 박살낸 거임?

-돌았네. 이거 너무 밸런스 붕괴인데.

-그러게. 뭘 어떻게 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저 커다란 회오리가 사기 스킬인 것 같은데?

-와 씨ㅋㅋㅋ 이안갓은 안 본 사이에 더 괴물이 되어 있었네. 요즘 한동안 영상 뜸하다 했었는데…….

-아까 이안이 이길지도 모른다고 얘기한 친구 나와 보셈.

-여, 여기…….

-선지자다! 여기 선지자가 나타났다!

레이콥스 방송의 시청자 채팅 방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라고 할 수 있었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이안의 전투 영상을 라이브로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 해도 충분히 설레는 것이었는데, 심지어 이안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장을 평정해 버렸으니 이것은 이안의 팬들뿐만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흥분될 수밖에 없는 전개였던 것이다.

-하아, 이거 괜히 마족 진영으로 게임 시작했나? 이거 마족으로 계속 플레이해도 되는 건가 모르겠네.

-저도 오늘 이 영상 보니 갑자기 고민되기 시작함. 어중이떠중이들도 아니고 최상위 랭커들끼리 치고받은 건데, 마족 랭커 서른 명이서 이안 하나를 못 이기다니…….

-LB사는 종족 변경권을 뿌려라! 아무래도 이거 줄 잘못 선 것 같다!

-아니면 이안 너프 좀 시켜라! 너무 사기다!

그리고 그렇게, 전장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 * *

‘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줄이야. 녀석이 괴물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모든 사단이 일어난 근원이자, 모든 계획을 주도한 장본인인 아레미스.

아예 경우의 수에조차 넣어 두지 않았었던 최악의 상황이 닥친 지금.

그는 침통한 얼굴로 전장의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의 몸이 까맣게 변해 있다는 점이었다.

분명 그의 생명력은 아직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죽기라도 한 듯 시체처럼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크윽, 이 굴욕적인 스킬을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이야…….’

아레미스가 사용한 스킬의 이름은 ‘죽은 척하기’였다.

일시적으로 자신을 사망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서 모든 어그로를 해제하고 시체로 위장하여 누워 있는 동안 조금씩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죽은 척하여 목숨을 연명하는 구차하기 그지없는 스킬!

하지만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아레미스에게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그와 같은 랭커의 입장에서 사망 페널티만큼 치명적인 것도 없었을 뿐더러, 모두가 전멸한 지금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것이 이안에게 들통나면 적잖은 모욕과 조롱(?)을 당할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조롱만 당하면 다행이지. 또 내 목숨을 인질로 이상한 계약서를 쓰자고 할지도 몰라.’

때문에 좀 모욕적일지 몰라도, 아레미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죽은 척하는 것이었다.

건물에 깔렸을 당시에는 죽은 척해서 이안의 눈을 피해 봐야 그 안에 갇혀 버릴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스킬을 쓰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달랐으니 말이다.

이안이 전장을 떠날 때까지만 숨죽인 채 버텨 낸다면, 무사히 살아 돌아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상황이었다.

정말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주변에 자신의 잡템과 약간의 금화까지 뿌려 둔 아레미스는 귀를 쫑긋 세워 주변의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레미스의 귓전으로 가장 먼저 들려온 목소리는 이안과 그가 부리는 늑대인간(?)의 대화였다.

“흐음, 이제 살아 있는 녀석은 없는 것 같지?”

“크릉, 그런 것 같다, 주인.”

“싱거운 녀석들이었군.”

“너무 허약한 친구들이었다. 크르릉.”

둘의 대화를 듣던 아레미스는 순간 울컥 하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하다못해 이젠 소환수 따위에게까지 무시당한 거야?’

아레미스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울분을 집어삼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거신족 연합군 진영까지 이안을 유인해서 싸웠어야 했는데…….’

하지만 다음 순간, 이어지는 이안의 목소리를 들은 아레미스는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라이, 뿍뿍이랑 같이 마족 녀석들이 떨군 잡템 싹 다 수거해.”

“크릉, 알겠다, 주인.”

“알겠뿍.”

“그리고 카카, 너는 균열 위쪽으로 좀 더 올라가서 거신족 진영 좀 정찰해 봐.”

“녀석들을 피해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찾으면 되는 거냐, 주인?”

“아니, 걔들을 왜 피해?”

“음……?”

“싹 다 잡으면서 올라갈 거야. 대충 봐도 노다진데, 그걸 왜 피해서 가?”

“일단 알겠다. 그럼 적진의 구조랑 위치 위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주인.”

아레미스는 자신도 모르게 번쩍 고개를 치켜들 뻔했다.

카카와 이안의 대화 내용이 너무도 비현실적인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거 진짜로 미친놈 아니야? 분명 내가 연합군이라는 말까지 한 것 같은데……. 피하는 게 아니라 싸우면서 올라가겠다고?’

연합군은 말 그대로, 거신족 모든 가문들이 총력을 동원해 구성된 부대이다.

그 숫자도 천 단위가 넘는 어마아마한 수준이었지만, 그들을 통솔하는 ‘장군’ 격의 거신들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다.

초월 레벨은 기본 70레벨부터 시작이었으며, 등급 또한 전설 등급 이상의 NPC들이었으니, 아레미스의 기준에서는 레이드 보스나 다름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아마 이안도 대략적인 전력을 예상하고 있을 텐데, 대체 어쩔 셈이지?’

거신족과 용족은 완전히 다른 종족이었지만, 여러 가문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는 군 조직 자체는 무척이나 흡사하였다.

때문에 용족의 조직 구조를 알고 있는 이안이 연합군의 의미를 모를 리는 없었다.

‘이거 자신감이 도를 넘은 친구였네. 죽은 척하고 대기 타다가 몰래 뒤따라가면……. 잘하면 뒤통수 칠 각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이안의 계획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아레미스는 다 죽어 가던 복수심이라는 불씨를 조금씩 되살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는 머지않아 알게 되겠지만 말이었다.

그리고 아레미스가 이런저런 꿍꿍이를 상상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과 별개로, 이안은 빠르게 전장을 정리하였다.

“좋아. 여긴 대충 정리된 것 같으니, 이제 슬슬 카카 따라서 움직이자고.”

“알겠어요, 아빠.”

“그나저나 이 두 가신 놈들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입구 앞에 좀 대기하다가 적당할 때 들어오라 했더니만…….”

아레미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이야기를 잠시 구시렁거리던 이안은, 전장에 드롭된 재화들을 싸그리 쓸어 담은 뒤 소환수들과 함께 균열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끝까지 숨죽인 채 이안이 떠나기를 기다리던 아레미스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주변 상황을 확인하였다.

‘휴, 이안 이 징그러운 놈. 이제 진짜로 사라진 건가?’

휙- 휙-.

최소한의 동작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안전을 거듭 확인한 아레미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10분이 넘도록 바닥에 누워 있었던 탓에 빈사 상태에 가깝던 생명력 게이지도 30퍼센트 정도는 회복된 상태였다.

“후우, 살아남은 건 나 하나뿐인 건가? 레이콥스는 어디 갔지?”

사방으로 널브러져 있는 동료들의 시체를 보며, 약간이나마 죄책감을 느끼는 아레미스.

“나만 살아서 미안하다, 친구들……. 이안이 이렇게 괴물일 줄은 나도 몰랐어.”

이어서 잠깐 동안 동료들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던 아레미스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이안을 따라가서 한번 마지막 도박을 해 보든가 아니면 깔끔하게 엘라시움으로 돌아가 후일을 기약하든가.

‘이거 어쩐다…….’

하지만 아레미스의 고민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뭐야, 다 끝났잖아?”

“우리가 너무 늦게 들어왔나……?”

균열의 아래쪽, 지저세계로 이어지는 입구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었다.

“……?”

그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적일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아레미스는 자연스레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것은 그의 최대 실수가 되어버렸다.

“어, 저기 한 놈 살아 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낄 정도로, 강렬한 어둠의 기운을 내뿜는 흑기린.

그 위에 올라타 있던 의문의 남자와 눈을 마주쳐 버린 것이었다.

“네, 네놈들은 뭐야?”

당황한 아레미스는 말까지 더듬으며 그들에게 물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묵빛 갑주의 사내는 아레미스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신기루처럼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으니 말이다.

“……!”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아레미스의 시야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촤라악!

등 뒤로 이해할 수 없는 강력한 충격을 받으며 말이다.

-유저 이안의 가신 ‘헬라임’으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79,840만큼 감소합니다!

-모든 생명력이 소진되었습니다.

-사망하셨습니다.

전투 자체가 너무 빨리 끝난 탓에 아직까지 필드에는 카카가 깔아 놓은 어둠의 기운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때문에 아레미스를 발견한 순간, 헬라임의 고유 능력인 다크 비전이 발동될 수 있었던 것.

아레미스로서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했던 헬라임의 기습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털썩-.

아레미스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쓰러져 버렸고, 쓰러진 그의 사체 위로 마치 분수처럼 금화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짜랑- 짜라랑-!

이안에게 목숨을 구걸하면서까지 지켜 왔던 그의 생명줄 같은 지저금화들이, 속절없이 바닥에 흩뿌려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빠르게 챙긴 헬라임과 카이자르는 흡족한 표정으로 다시 핀과 까망이의 등에 올라탔다.

“후후, 십만 냥이라. 제법 알토란 같은 친구였군그래.”

“폐하께서 좋아하시겠어.”

이어서 각각 탑승한 소환수의 고삐를 능숙하게 잡아당긴 두 가신들은, 빠르게 균열 사이로 날아올랐다.

이안에게 칭찬받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두 가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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