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9화 2. 굴욕의 균열 전투 (2) >
* * *
뿍뿍이는 다른 신룡들에 못지않은 스펙을 가진 강력한 드래곤이다.
하지만 공격능력 면에서 따지자면, 카르세우스나 루가릭스와 같은 드래곤들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뿍뿍이의 스텟은 공격 능력보단 세미 탱킹, 유틸성에 최적화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어지간한 평범한 소환수들보다야 월등한 공격력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스의 위력이 조금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소환수 ‘뿍뿍이’의 ‘드래곤 브레스’가 발동됩니다.
-강력한 심연의 숨결이 휘몰아칩니다.
-마족 유저 ‘아레미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이 ‘유저’이므로, 위력이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마족 유저 ‘이리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이 ‘유저’이므로, 위력이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후략……
드래곤 브레스는 공격 계수가 다른 광역 스킬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탓에, 유저 상대로는 위력이 절반으로 감소한다는 페널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다른 드래곤들에 비해 비교적 위력이 떨어지는 뿍뿍이의 브레스로는 마족 유저들을 한 번에 녹여 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족 유저들은 사망하지는 않았을지언정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마혼사, 힐! 광역 치료 마법부터 돌려!”
“추가 광역기 들어올지 모르니까 대비해!”
생각지도 못했던 이안의 공격에 혼비백산한 마족들은 허둥대며 생명력을 빠르게 회복하였다.
그나마 랭커들 중 마족의 사제 클래스인 ‘마혼사’ 클래스 유저가 여럿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한 방으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만들어졌으리라.
“실드 다시 깔고 정비해! 탱커들은 이안이 실드 쪽으로 못 오게 들러붙어!”
빠르게 랭커들을 향해 오더를 내리면서도, 아레미스의 동공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방금 전에 있었던 한 번의 공방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레미스가 놀란 것은, 드래곤 브레스의 위력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이안이 가진 신룡들의 브레스가 듣던 대로 강력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예측 가능한 수준의 파괴력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아레미스가 당황한 것은 그 브레스를 막기 위해 준비해 온 고가의 스크롤들이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가 알기로 실드 내구도가 십만 단위인데, 대체 이안의 공격력은 몇인 거야?’
아레미스가 계산하기에 프로텍팅 필드 마법은, 평범한 딜러가 적어도 10초 가까이 딜을 쏟아 부어야 깰 수 있는 수준의 내구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저 미친 이안은, 창을 두 번 휙휙 휘두르는 것만으로 두 겹의 실드를 전부 걷어내 버렸다.
그 말인 즉, 이안의 공격력이 다른 딜러들의 세 배에서 많게는 다섯 배 까지도 강력하다는 이야기.
아레미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침착하자, 아레미스. 원래 저놈은 비상식적인 녀석이잖아? 어쨌든 놈은 하나고 우린 서른이니까, 충분히 해 볼 만해.’
처음 계획을 짤 때만 해도 이안을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레미스의 자신감은, 어느새 ‘해 볼 만은 하다’ 정도로 격하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해 볼 만하다’는 생각조차 그리 오래 이어질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주술사들, 이안한테 속박 걸어! 디버프 마법 싹 다 쏟아부어!”
아레미스의 오더에, 빈사 상태까지 내려갔던 생명력을 겨우 회복한 마족 주술사들이 상태이상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하였다.
이안을 어떻게든 묶어 두고 소환수들부터 잘라 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시도는 당연히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었다.
엘카릭스가 발동시킨 언령 마법인 ‘홀리 워’의 부가 효과 중에는, 모든 상태 이상을 무효화시키는 ‘면역’ 효과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이동속도 감소’ 종류의 상태 이상에 면역되어 있는 대상입니다.
-‘행동 불능’ 종류의 상태 이상에 면역되어 있는 대상입니다.
-‘전투 능력 저하’ 종류의 상태 이상에 면역되어 있는 대상입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두 눈을 꿈뻑거리며 벙 찐 상태가 되어 버린 마족 주술사들.
그리고 그 찰나간의 판단 미스는 또다시 재앙이 되어 돌아왔다.
푹- 퍼퍽-!
“크아악!”
촤아악-!
“커헉!”
모든 디버프를 퉁겨낸 이안의 창은, 그를 저지하기 위해 달려든 근접 탱커 마족들을 그대로 꼬챙이 꿰듯 꿰어 버렸으니 말이다.
심지어 비교적 초월 레벨이 낮았던 유저 하나는, 그대로 벽에 처박히더니 온몸이 까맣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말 그대로 단 한 방에, 모든 생명력을 잃고 사망해 버린 것이었다.
-인간 종족 유저 ‘이안’으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98,450만큼 감소합니다!
-사망하였습니다.
점입가경의 상황이 계속되자, 혼란이 더욱 가중되기 시작한 마족 진영의 유저들.
“저, 저거 어떻게 해?”
“괴, 괴물……!”
팀워크는 자연스레 무너졌고, 이안이 이러한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카카, 루가릭스!”
마족 유저들이 허둥거리는 사이, 모두를 한 방에 담가 버릴(?) 수 있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크롸아아-!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이안의 오더를 기다리던 루가릭스가 거대한 어둠의 날개를 펼치며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카카를 중심으로 검보랏빛의 아우라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어둠이…… 내린다…….”
고오오오-!
-카카의 고유 능력 ‘꿈꾸는 악마’가 발동됩니다.
-모든 파티원의 공격력이 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모든 파티원의 어둠 저항력이 5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어둠이 내려앉아, 아군의 모든 어둠 속성 공격의 위력이 증폭됩니다.
장내에 어둠이 내려앉자, 여느 때처럼 늑대의 하울링이 퍼져나갔다.
-아우우-!
카카의 ‘꿈꾸는 악마’와 세트처럼 움직이는, 라이의 고유 능력 ‘어둠 잠식’이 발동된 것이다.
그리고 그 위로, 루가릭스의 입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무시무시한 어둠의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루가릭스의 언령 마법 ‘소울 스톰’이 발동됩니다.
-루가릭스가 어둠의 기운을 토해 내어 강력한 어둠의 회오리를 생성하였습니다.
고오오.
마족 랭커들의 사이로 맹렬하게 쏟아져 들어간 어둠의 바람은, 커다랗게 원을 그리더니 점점 더 맹렬하게 회전하였다.
콰아아아-!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안은 한 가지 마법을 더 발동시켰다.
“엘, 디몰리시Demolish!”
이안이 엘에게 주문한 마법의 풀 네임은, 디몰리시 레지스턴스Demolish Resistance이다.
이것은 많은 마법사들이 애용하는 5서클의 디버프 마법으로서, 말 그대로 범위 안에 있는 대상의 저항력을 붕괴시키는 마법.
이 마법은 저항력을 비율이 아닌 10이라는 고정 수치로 감소시키는데, 이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마족 유저들에게 어마어마하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100도 훌쩍 넘을 다른 속성 저항력들이야 10정도 감소한다 하여 크게 다가오지 않겠지만, ‘차원 마력 저항력’ 만큼은 얘기가 달랐다.
이곳에 있는 유저들 중 이안을 제외하고는 차원마력 저항력이 30을 넘는 이도 아무도 없었으니, 10포인트 감소는 엄청나게 치명적인 것이다.
-소환수 ‘엘카릭스’의 마법, ‘디몰리시 레지스턴스’가 발동됩니다.
-범위 안의 모든 대상의 모든 저항력 능력치를, 10포인트만큼 깎아내립니다.
게다가 균열에 처음 들어와 본 몇몇 랭커들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제로였던 차원 마력 저항력이 –10으로 바뀌면서, 몸이 아예 굳어 버린 듯 움직이질 않았으니 말이다.
“젠장! 마혼사들 뭐 해? 빨리 디버프 해제 좀!”
마족 유저들은 마혼사들을 향해, 다급히 디버프 해제 스킬을 요청하였다.
디버프를 비롯하여 상태 이상을 해제할 수 있는 마법은, 모든 사제 계열의 클래스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간절한 그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마혼사들은 해제 마법을 발동시킬 수 없었다.
끊임없이 그들 전부를 끌어당기는 어둠의 회오리 때문에, 마법을 캐스팅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저 회오리가 사라져야 해요!”
“저게 없어야 캐스팅을 할 수 있어!”
마치 어마어마한 중력이 온몸을 잡아 끌어내리는 듯, 발바닥이 땅에 붙어 움직이질 않는 마족 유저들.
그 위에 생성된 어둠의 회오리는 그들을 청소기처럼 빨아들였고, 인장력에 대한 저항력 자체를 상실해 버린 마족 유저들은 힘없이 그 안으로 끌려들어가야만 했다.
“으아아악!”
게다가 소울 스톰의 용도는, 단지 적들을 끌어당기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5초 이상 대상이 소울 스톰의 영향력 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시, 강력한 어둠 속성의 마법 피해를 덤으로 입히니 말이었다.
루가릭스의 소울 스톰은 그야말로 떡대가 가진 어비스 홀의 완벽한 상위 호환 스킬이었다.
-루가릭스의 언령 마법 ‘소울 스톰’이 어둠 속성의 지속 피해를 발동합니다.
-마족 유저 ‘라델라’의 생명력이 25,034만큼 감소합니다.
-마족 유저 ‘이토미’의 생명력이 25,177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저항력 감소 디버프를 걸고, 그 위에 소울스톰을 발동시켜 모든 마족들의 손발을 묶어 버리려던 이안의 계획.
그 설계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이제 마족 유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의 회오리에 그저 몸을 맡긴 채, 계속해서 깎여 내려가는 생명력 게이지를 멍하니 바라봐야 할 뿐 회복 계열의 스킬을 사용하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했다.
회오리바람으로 인해 모든 마법 캐스팅이 묶인 상황에서 회복 계열 마법만 발동시킬 수 있을 리 만무했으니 말이다.
이안은 그 광경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이 광경을 만들어 낸 장본인 루가릭스가 이안의 옆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언령 마법을 발동시킨 탓인지, 드래곤의 본체로 현신해 있는 루가릭스의 두 눈에서는 강렬한 어둠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냐, 이안?
“뭐가?”
-저 마족 녀석들, 대체 왜 소울 스톰 안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는 거냐?
“응?”
-소울 스톰의 인장력이 강력하긴 해도, 저렇게 무기력하게 전부 다 빨려 들어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이안은 자신의 설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루가릭스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야 이 균열 안을 가득 메운 차원 마력 때문이지.”
-음?
“저 녀석들은 아직 차원 마력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녀석들이고, 그런 녀석들에게 내가 디몰리시 마법까지 걸어 버렸거든.”
-아……!
“아마 저 녀석들, 소울 스톰이 없었더라도 바닥을 기어 다녀야 했을 거야. 물론 소울 스톰이 아니었다면, 디버프를 해제해 버렸겠지만.”
-확실히 그렇겠군.
루가릭스는 강력한 어둠 마법을 구사하는 드래곤답게,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뛰어났다.
때문에 이안의 간단한 설명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절로 감탄한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이 인간은…… 머리가 비상하단 말이지.’
그리고 그런 루가릭스를 향해 이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루가릭스.”
-말하라, 주인.
“저 녀석들 놀이기구 타는 거 이제 그만 보고 싶어.”
회오리에 휘감겨 빙빙 돌고 있는 마족 유저들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이안.
“자, 이제 그만 보내 주자고.”
그리고 이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인 루가릭스가 천천히 대답하였다.
-알겠다. 저 못생긴 녀석들, 싹 다 지워 주도록 하지.
이안의 말에 대답한 루가릭스는 자신이 소환한 어둠의 회오리를 향해 다시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이어서 루가릭스의 입으로 또다시 어둠의 기운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지럼증으로 탈진하기 직전인 마족들에게 안식(?)을 내려 줄 강력한 용의 숨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