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736화 (745/1,027)

< 736화 1. 아레미스와의 재회 >

이름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마령 각성의 비약’이라는 잡화 아이템.

이안이 확인한 비약의 정보 창은 잡화 아이템답게 간단했지만, 그 내용 안에 들어 있는 의미까지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지금껏 카일란을 플레이하면서 어지간히 귀한 아이템들을 다 보아 온 이안조차도, 내용을 확인한 순간,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마령 각성의 비약

분류 : 잡화

등급 : 신화 (초월)

가격 : 지저금화 453,500냥

마수의 영체를 강제로 각성시킬 수 있는, 금단의 비약입니다.

비약을 마신 마수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되며, 한 차원 높은 등급으로 각성하게 됩니다.

*아직 사용되지 않은 아이템입니다.

*‘신화’ 등급의 마수에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수’로 분류된 대상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각성시 외형과 고유능력은 그대로 유지되며, ‘전투 능력’만 등급에 맞게 증가합니다.

*귀속 아이템입니다.

구매할 시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자질구레한 부연설명을 제하고 내용만 보자면, 이 아이템의 용도는 단 한 줄로 설명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 이 ‘마령 각성의 비약’ 아이템은, 마수를 강제로 ‘진화’시켜 주는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 등급 위로 진화.

“미쳤다…….”

마수를 진화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지 잘 아는 이안으로서는, 정보 창을 확인하자마자 반사적으로 사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의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템을 보자마자 생각나는 것은, 당연히 마수인 ‘크르르’였다.

이 비싼 아이템을 유일이나 영웅 등급에 먹일 일은 없을 것이었고, 전설 등급인 크르르에게 먹인다면 최고의 효율을 보여 줄 테니 말이다.

지금도 공격력에 한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크르르가 신화 등급이 된다면, 분명 물리 속성 공격력에 한해서는 까망이와 비견될 정도의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 주리라.

하지만 비약의 정보 창을 다시 한 번 읽어 내려간 이안은, 한 가지 찝찝한 부분도 발견하였다.

‘으음, 각성 시 외형과 고유 능력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한데…….’

마수가 진화할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전투 능력의 비약적인 상승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고유 능력이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

크르르도 정상적으로 신화 등급까지 진화시킨다면 분명 그에 걸맞은 새로운 고유 능력을 얻을 수 있을 테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유 능력들 또한 계수가 대폭 증가할 테니 말이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이안에게 있어서, 조금은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분인 것.

‘그래도 크르르한테 먹이면 분명 밥값은 해 줄 것 같은데……. 역시 구매하긴 해야겠지?’

그런데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떠올리던 그때.

“……!”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기억이 이안의 뇌리를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 * *

이 마령 각성의 비약이라는 이름의 금단의 아이템은, 모든 등급의 마수를 조건 없이 상위 등급으로 진화시켜 준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이안이 떠올리게 되는 것은 보유하고 있는 전설 등급의 마수들 목록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른 마수는 당연히 크르르.

하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눈에 밟힌 이안은 좀 더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다른 한 마리의 전설등급 마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베히모스! 내가 왜 그 녀석을 잊고 있었지?’

베히모스를 떠올린 순간, 양 주먹을 불끈 쥐는 이안.

과거 이안은, 억지로 명계를 뚫고 들어가기까지 하면서 가지고 있던 세 개의 베히모스 알을 부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 세 마리의 어린 베히모스 중 두 마리는 까망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모하였지만, 아직까지도 베히모스 한 마리는 창고에 남아 있었다.

‘이건 진짜 그 녀석을 위해 존재하는 아이템이나 다름없잖아?’

이안이 당시 베히모스 한 마리를 고이 보관해 두었던 이유는, 바로 ‘태초의 마룡’을 연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퍼로부터 얻은 ‘태초의 마룡 연성 레시피’에 의하면, 기본 연성 수식이 다음과 같았으니 말이다.

-베이스 마수 : ‘신화’ 등급 이상인 드래곤 종족의 마수.

-재료 마수 : ‘신화’ 등급 이상인 태초의 마수.

오히려 베이스 마수로 들어가는 ‘드래곤 종족의 마수’보다, 훨씬 더 희귀하고 구하기 힘든 분류인 ‘태초’의 마수.

베히모스는 바로 이 태초의 마수였고, 때문에 이안은 언젠가 이 녀석을 신화 등급으로 진화시켜야만 했다.

‘태초의 마룡’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화 등급 이상’인 태초의 마수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재료로 들어갈 녀석이라면, 고유 능력이 어떻게 되건 간에 아무런 상관이 없지. 등급만 신화 등급으로 격상되면 만사 오케이니 말이야.’

마치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과를 발견한 뉴턴처럼 큰 깨달음을 얻은 이안은, 비약을 구매하기 위해 곧바로 다시 정보 창을 오픈하였다.

그리고 보유 중인 금화와 가격을 비교해 보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두들겨 보았다.

‘잠깐, 이거 할인 적용 안 된 가격이지?’

쟈크람 마을에 처음 들어오면서 얻었던 20퍼센트 할인 효과를 받는다면, 혹시나 비약을 두 병 정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꼭 태초의 마룡이 아니더라도 마수 연성의 재료로 신화 등급의 마수를 넣어야 할 일은 또 생길 것이었고, 그럴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쉬운 망상에 불과했다.

금화도 약간 모자라긴 하였지만, 애초에 이 아이템은 구매 수량이 제한되어있는 아이템이었으니 말이다.

-마령 각성의 비약 / 가격 : 453,500 / 수량 : 1

이안은 아쉬운 마음에, 로로크를 향해 물어보았다.

“아저씨, 이거 마령 각성의 비약이요, 혹시 한 병만 파시는 건가요?”

그리고 이안이 운을 떼자 로로크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받았다.

“오호, 이 친구 금단의 비약에 관심을 보이다니, 마수를 부릴 줄 아는 ‘소환마’ 클래스인가 보지?”

물론 이안은 소환술사였고 소환마는 듀얼 클래스였지만, 굳이 그렇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필요는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후후, 마령 각성의 비약은 소환마라면 확실히 탐낼 만한 녀석이지. 바로 어제 다른 소환마 녀석 하나도 이 금단의 비약을 보고는 군침을 흘리며 돌아갔으니 말이야.”

“……!”

“이 비약은 나조차도 단 한 병밖에 구하지 못한 귀물이라네. 뭐, 언젠가는 또 구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 뭐.”

“그렇게 귀한 건가요?”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는 이안을 보며 로로크는 더욱 우쭐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당연하지! 아마 이 비약은 저 지옥 세계에 내려가도 찾기 힘든 물건일 걸세.”

지옥 세계는 거신들의 땅 엘라시움에서 지저 세계보다 한 등급 높은 단계의 상위 지역이다.

용천으로 따지자면 자운곡주가 꿈도 꾸지 말라던 태천太天과 동급의 지역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조차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면, 확실히 귀한 물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후, 크르르에게 먹이든 누구에게 먹이든, 어떻게 쓸지는 일단 사고 봐야겠어.’

그런데 그때, 로로크의 말을 들은 이안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났다.

“그런데 아저씨.”

“응?”

“어제 왔었다는 다른 소환마 친구는, 이렇게 귀한 아이템을 대체 왜 사지 않고 돌아간 거죠?”

“음……?”

“제가 볼 땐 소환마라면 사지 않을 이유가 없는 아이템이거든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안의 물음에, 로로크는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야 당연히 하나뿐이지.”

“……?”

“그 친구는 돈이 없었네.”

“아……!”

“글쎄, 그 파렴치한 녀석이 나한테 외상을 요구하더라니까?”

“외, 외상요?”

“그래. 그런데 더 어이없는 건 뭔 줄 알아?”

“뭔데요……?”

“녀석이 가지고 있던 금화가 고작 3만냥 정도였다는 사실이야.”

“…….”

“양심을 어디서 엿이라도 바꿔먹었는지, 아주 괘씸한 녀석이었지.”

“큭…….”

로로크의 말을 들은 이안은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말을 듣고 나자 대략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엊그제 왔다던 소환마 녀석은 분명히 유저였겠지. 그리고 아마 이 비약이 갖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굴렀을 거야.’

소환마 클래스의 랭커 유저라면, 분명 이 비약을 보고 눈이 돌아갔을 것이다.

신화 등급의 마수는 같은 등급 소환수보다 더 귀했으니, 고유 능력이고 나발이고 일단 가지고 있는 전설 등급 마수를 진화시키고 싶었을 테니 말이다.

로로크에게 외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꺼낸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수량이 많은 물건이라면 모르되 단 한 개만 팔고 있는 물건이었으니, 어떻게든 먼저 선점하고 싶었을 터.

‘어떤 중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 되었구려. 요건 내가 가져가리다.’

지금쯤 금화를 벌기 위해 노가다를 뛰고 있을, 이름 모를 소환마 랭커.

그를 떠올린 이안은, 사악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비약을 집어 들며 로로크에게 금화를 지불하였다.

“아저씨, 이거 제가 살게요.”

“오호, 자네도 설마 외상 어쩌고 이상한 소릴 하는 건 아니겠지?”

“후후, 그럴 리가요. 절 그런 거지랑 비교하시면 곤란합니다.”

“……!”

띠링-!

-‘마령각성의 비약’ 아이템을 구매하셨습니다.

-특수한 조건으로 인해, 20퍼센트만큼 물건의 가격이 인하됩니다.

-지저금화 362,800냥을 지불하였습니다.

이안은 쿨하게 비약을 구매한 뒤 씨익 웃었고, 그것을 본 로로크는 두 눈을 꿈뻑였다.

NPC인 로로크의 입장에서도 수십만 냥의 지저금화는 엄청난 액수였는데,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지불하는 이안의 재력(?)에 놀란 것이었다.

“고, 고맙네……. 자네 덕에 한동안 놀고먹어도 되겠어.”

“흐흐, 별말씀을요. 이런 귀한 물건 저한테 팔아 주셔서 제가 고맙지요.”

만약 노가다를 통해 베히모스를 진화시키려면, 몇 달이 걸리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 비약을 사는 데 들어간 40만 냥 정도의 지저금화는, 이안이 일주일 정도 노가다하면 충분히 다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준의 액수였다.

‘좋아, 좋아. 이거 하나만 해도 충분히 여기 온 목적은 달성한 것 같고……. 남은 지저금화는 잡템 구입하는 데 싹 다 써 버려야지.’

비약을 인벤토리 한쪽 구석에 조심히 담은 이안은 남은 30만 냥 정도의 금화를 펑펑 쓰기 시작하였다.

-‘파괴의 마력원’ 아이템을 구매하셨습니다.

-특수한 조건으로 인해, 20퍼센트만큼 물건의 가격이 인하됩니다.

-지저금화 67,200냥을 지불하였습니다.

-‘거신족 머리 장식’ 아이템을 구매하셨습니다.

-특수한 조건으로 인해, 20퍼센트만큼 물건의 가격이 인하됩니다.

……후략……

물론 이안이 아무런 기준 없이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기준은 정확히 두 가지.

‘경매장에서 거액에 팔릴 만한 아이템이면서, 수량이 하나밖에 없는 아이템만 골라서 싹 다 사 버려야겠어.’

그야말로 마족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사악하고 악랄하기 그지없는 사재기를 시전한 것이다.

띠링-!

-‘지저금화’ 재화가 부족합니다.

-더 이상 아이템을 구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어이 잔고가 텅텅 빌 때까지 모든 쇼핑을 마친 이안은, 기분 좋게 웃으며 로로크를 향해 말했다.

“자, 이제 필요한 건 다 산 것 같네요, 아저씨.”

그에 로로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그래. 자네 정말 큰손이었구먼. 몰라봐서 미안하군.”

“다음에 또 봐요 아저씨. 혹시 마령 각성의 비약 하나 더 구하면, 제가 와서 비싼 값에 살 테니까 몰래 쟁여 두시고요.”

마지막까지 로로크를 향해 악랄한(?) 당부를 덧붙인 이안은, 후련한 표정으로 상점 밖으로 걸어 나왔다.

“좋아, 이제 볼일은 다 끝났고…….”

이어서 이안의 시선이, 경비병 둘이 지키고 있는 쟈크람 마을의 정문을 향해 움직였다.

“이제 무사히 여길 탈출해서 귀환하기만 하면 되는 거네.”

이제 이안이 지저세계에 들어온 지도 거의 1시간이 훌쩍 지난 상황.

이안이 이곳에 온 것을 마족 랭커들이 알아차리기엔, 차고 넘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를 몰랐으면 모르되, 아레미스의 경우 그가 이 쟈크람 마을에 오고 싶어 한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전혀 걱정되거나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쇼 타임인가?’

이미 모든 일을 본 뒤의 상황까지도, 이안의 머릿속에는 처음부터 그려져 있었으니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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