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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734화 (743/1,027)

< 734화 거신들의 땅, ‘엘라시움’(1) >

엘라시움.

정확히는 지저 세계에 성공적으로 발을 들인 이안은, 반사적으로 주변 환경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아레미스로부터 공유받은 지도 덕에 대략적인 맵의 구조는 미리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도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 간의 차이는 제법 컸으니 말이다.

“으음…….”

그리고 빠르게 판단을 마친 이안은, 일단 아이언에서 내려 섰다.

“흣차-!”

맵 자체가 아래위로 미친 듯이 길게 이어진 절벽의 형태인 균열과 달리, 지저는 일반적인 맵처럼 수평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저에서도 아이언을 타고 비행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겠지만, 그것은 너무 위험한 선택일 수 있었다.

적아敵我의 비율이 반반이었던 균열과 달리 이곳 지저는 완벽한 적진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맵의 구조 외에는 모든 정보가 전무한 상태이다 보니, 언제 어디서 강력한 적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런 상황에서 하늘을 비행한다면, 적들의 표적이 되기 딱 좋을 것이었다.

척- 처척-!

이안이 바닥에 내려서자, 그 뒤에 각각 핀과 까망이를 타고 있던 두 가신들도 따라서 바닥에 내려섰다.

이어서 이안은, 아이언을 제외한 모든 소환수들을 전부 소환 해제하였다.

우우웅-!

테이밍 마스터 직업의 티어가 4티어가 된 이후 소환 해제에 대한 부담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일단 싸움은 피하면서, 최대한 조심해서 움직여. 우선 ‘붉은 바위산’까지 거신들에게 들키지 않고 이동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이안의 오더에 카이자르와 헬라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명을 받듭니다.”

스슥- 슥-!

이안이 움직이면 그 뒤를 헬라임과 카이자르가 따르고, 이어서 날개를 접은 아이언이 조용히 그 뒤로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움직임은, 거신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지저의 지형 자체가 엄폐물로 쓸 만한 지형지물이 많은 험준한 형태인 데다, 거신들의 덩치가 워낙 거대한 탓에 숨어서 이동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던 것이다.

이안은 아레미스로부터 공유받은 지도를 지속적으로 살피며, 이동 경로를 꾸준히 체크하였다.

적진 한가운데서 길을 잃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붉은 바위산이라……. 이름 그대로의 외형을 가진 지역이면, 저 쪽에 보이는 커다란 산맥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안은 몸을 숨긴 바위 더미 사이로 멀찍이 보이는 붉은 봉우리를 응시하였다.

아무래도 ‘쟈크람 마을’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는 붉은 바위산은, 저 험준한 산맥이 맞는 듯싶었다.

‘균열과 그리 멀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 정도라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충분히 도주할 수 있을 만한 거리군.’

엘라시움에 발을 들인 뒤.

이안이 지금까지 이동한 시간은 대략 20여 분 정도였다.

그리고 아마 멀찍이 보이는 바위산까지 도착하려면, 2~30분 정도는 더 소요될 터.

하지만 그것은 거신족들의 눈을 피해 육로로 이동했기 때문에 걸린 시간일 뿐, 아마 직선 거리로 비행한다면 10분 만에 주파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일단 아직까지는 순조로운 것 같고…….’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면서도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 상황을 정리하는 이안.

그리고 잠시 후.

띠링-!

간결히 떠오른 두세 줄의 메시지와 함께, 이안은 붉은 바위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붉은 바위산’ 지역에 입장하였습니다.

-‘염왕炎王의 가문’의 영토입니다.

-위험지대에 진입하였습니다.

* * *

지저의 지형은, 전반적으로 무척이나 험준하다.

깊게 파인 절곡부터 시작하여 높다랗게 뻗어 있는 산맥까지.

평탄하게 이어지는 평지를 찾기 힘든 수준으로, 지저의 지형은 굴곡이 심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지저의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의 뒤에는, 죄다 산山이나 곡谷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용천의 지역 이름 뒤에 천天이라는 글귀가 붙는 것처럼 말이다.

붉은 바위산, 검은 달의 협곡, 사령의 바위산 등등.

그리고 붉은 바위산의 바로 뒤편에 이어져 있는 ‘사령의 바위산’에는, 수많은 마족 랭커들이 모여 있는 캄푸스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역시나 다들 모이셨군요. 이 정도 인원이라면 아무리 이안이라도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겁니다.”

캄푸스 마을의 공터.

그 구석에 놓인 작은 단상에 오른 아레미스는, 공터에 모여 있는 랭커들을 둘러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후후, 당장 공터에 모인 인원만 열둘. 추가로 연락이 닿은 인원까지 합하면 총 열 일곱 정도는 모이겠어.’

아레미스가 마족 랭커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는 당연히 하나였다.

그에게 수모를 안겨 준 이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함.

균열에서 도망나온 이후 아레미스는 지속적으로 균열로 이어지는 통로 근처에서 머물고 있었고, 덕분에 이안이 균열을 넘어 지저로 들어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안 녀석은 일부러 시간차를 두고 늦게 넘어온 듯하지만, 이 아레미스 님의 끈기를 너무 얕봤어.’

이안은 처음 아레미스가 예상했던 것보다 거의 사나흘 정도 늦게 나타났다.

때문에 아레미스는, 이안이 그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늦게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안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상황이었고, 아레미스는 그저 망상을 펼치고 있을 뿐이었다.

“아레미스, 이안 녀석이 쟈크람 마을로 향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야?”

공터에 모인 랭커 중 하나가 묻자, 아레미스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렇다니까. 내가 방금 지저로 통하는 입구에서 이안이 들어오는 걸 확인했고, 보자마자 연락 돌리고 나서 이쪽으로 워프 탄 거라고.”

“흠…….”

“이안, 그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대체 왜……?”

마족의 랭커들에게 있어서, 이안은 그야말로 탐나는 먹잇감이었다.

때문에 그를 잡을 수 있는 이런 절호의 기회는, 진행 중이던 퀘스트마저 잠시 중단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에게 매력적인 것이었다.

좌중을 한 차례 둘러본 아레미스가 은근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지만, 친구들.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이안 그놈에 대한 복수.”

“…….”

“녀석이 드롭한 아이템이나 재화는 하나도 필요 없어. 그러니까 녀석을, 확실하게 죽여 주기만 하라고.”

아레미스의 말에, 랭커들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라는 세계 랭킹 1위급 유저를 곧 상대할 예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에는 별다른 긴장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균열에 널려 있는 용족 정찰병들을 상대하러 갈 때보다도 오히려 여유 넘쳐 보이는 표정들.

“아레미스,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자꾸 그리 강조를 하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이안 그놈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우린 지금 열 명이 넘는 숫자라고. 그놈 하나 제압하지 못하면, 캐릭터 삭제하고 접어야지.”

“크크, 아레미스가 이안 놈에게 한번 당하더니, 아주 쫄보가 되어 버렸어, 쫄보가.”

“크히히히.”

자신을 조롱하며 킬킬거리는 랭커들을 본 아레미스는 인상을 팍 하고 구겼다.

자신을 놀리는 데 대하여 기분이 나쁜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이들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느꼈기 때문이었다.

“후우, 잘 들어, 친구들. 나는 우리가 그놈 하나 상대하지 못할까 봐 이렇게 신신당부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럼?”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녀석이 균열 안쪽으로 도주하는 걸 막지 못할까 봐 그게 걱정인 거지.”

하지만 아레미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다른 랭커들의 표정은 그저 심드렁할 뿐이었다.

“걱정 마, 아레미스. 균열까지 도망치도록 그냥 두지도 않을 거지만, 그쪽으로 도망가도 별다른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미국서버 랭커 테오스의 말에, 아레미스가 곧바로 반문하였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음, 이건 나름 고급 정보라 원래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잠시 뜸을 들인 테오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조금 전부터, 거신족 가문들의 연합군 병력이 균열로 향하기 시작했거든.”

“응?”

“며칠 전까지 용족들의 공격으로 피해가 너무 막심해서 그런지, 거신께서 분노하신 모양이더라고.”

“아……!”

“아마 이안이 우릴 피해 균열로 도망칠 쯤이면, 균열의 입구에는 마력의 거인들만 수십 기가 넘게 배치되어 있을 거야. 이안이 이미 엘라시움에 들어온 이상, 죽지 않고는 되돌아갈 방법이 없어졌다는 말이지.”

테오스의 말이 끝나자, 아레미스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안이 도주하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어떻게든 피했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안이 균열까지 도망가서 거신족 군대에 의해 죽는 것은 차선일 뿐이었다.

어쨌든 아레미스의 분이 완전히 풀리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쟈크람 마을 앞에서 그를 때려잡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네. 알려 줘서 고마워, 테오스.”

“별말씀을.”

이어서 한차례 깊게 심호흡한 아레미스는 마지막으로 랭커들을 향해 말하였다.

“이안은 지금쯤 아마 쟈크람 마을 근처까지 도착했을 거야. 때문에 지금 당장 녀석을 덮치는 건 불가능해.”

쟈크람 마을은 엘라시움의 안에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중립지대 같은 느낌의 마을이었다.

그곳은 거신들의 성역과 같은 장소였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전투가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아레미스의 계획은 쟈크람 마을 주변에 매복하여 이안이 그 바깥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안이 마을 밖으로 나오면 곧바로 녀석을 덮칠 거야. 먼저 녀석이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퇴로를 막은 다음에, 동시에 협공해서 녀석을 제압해야 해.”

그것을 시작으로, 아레미스의 작전 설명이 간단히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전부 들은 랭커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움직인다면, 이안이 빠져나갈 길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 마족 랭커들은, 빠르게 붉은 바위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 * *

한편 마족 랭커들이 이러한 작당모의를 하고 있는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이안은, 콧노래를 부르며 붉은 바위산을 넘고 있었다.

“흐흐, 역시 지도가 있으니까 순식간이구먼. 저기 저쪽에 보이는 마을이 쟈크람 마을인가 보네.”

지역 이름처럼 붉은 바위로 가득한 붉은 바위산 봉우리에 오른 이안은, 반대편 봉우리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을까지 가는 길에 위협적으로 생긴 용암거인들이 득실거리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큰 걸림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처럼 엄폐물을 잘 이용해 이동한다면, 얼마든지 둔한 거인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저 쟈크람 마을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인데…….’

쟈크람 마을에 다가갈수록, 이안의 눈에 경비병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가까이서 녀석을 확인한 이안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명의 경비병들의 풍채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경비병들 생김새가 저래?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을 보면 무슨 대장군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평범한 거신족들과 달리, 쟈크람 마을의 경비병들은 덩치가 작은 편이었다.

일반적인 사람의 두세 배 정도의 덩치를 가지고 있었으니, 거인들에 비하면 확실히 작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안의 눈에 그들은 지금까지 만난 거신족 NPC들 중 가장 강력해 보였다.

‘어쩌나……. 무력으로 뚫고 들어가는 건 왠지 위험해 보이는데, 용맹의 펜던트를 한번 믿어 보는 수밖에 없나?’

용맹의 펜던트에는 분명, 그것을 지닌다면 쟈크람 마을에 입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아이템 정보창이 거짓을 말할 리는 없었으니 이안은 그것을 믿어 보기로 하였다.

‘그래, 뭐. 정 안 되면 한번 싸워 보고, 아니다 싶으면 튀면 되지.’

마음을 편히 먹은 이안은 자연스런 걸음걸이로 마을 입구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그리고 잠시 후, 태연한 표정으로 경비병을 향해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고생이 많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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