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9화 4. 새로운 힘 (2) >
* * *
언령 마법의 종류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존재하는 거의 모든 마법에 언령 마법으로 재구성된 버전이 존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곳 라페르 일족의 마법 성소에서, 그 모든 언령 마법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카일란의 세계에는 각 서클마다 백 단위가 넘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마법이 존재하는데, 지금 이 성소에 등재되어 있는 마법의 숫자는 모든 클래스를 통틀어 백 개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장로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 이 순간도 그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언령 마법을 개발해 내는 중이며, 앞으로도 이 성소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언령 마법이 추가될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쇼핑을 하던 이안의 표정이 갑자기 살짝 굳어졌다.
“장로님, 저기 접근 불가라고 떠 있는 마법서는 왜 그런 건가요?”
마법서의 목록을 내리며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던 도중, 붉은 빛의 장막으로 주변이 차단되어 접근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마법서들을 발견한 것이다.
심지어 차단된 마법서들의 외형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이 상위 티어의 마법들처럼 보였다.
“허허, 아쉽지만 그렇게 표시된 마법서들은, 자네에게 아직 접근 권한이 없는 마법서들이라네.”
“접근…… 권한요?”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네. 자네와 우리 라페르 일족간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면, 아마 접근 권한이 풀릴 걸세.”
그리고 옆에 있던 다른 장로들이, 미안한 표정으로 한 마디 거들었다.
“이것은 우리 장로들의 권한으로 결정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너무 섭섭히 생각지 말게나.”
“그래, 이건 저 크리스탈 드래곤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우리도 모르는 어떤 기준에 의해 정해진 룰 같은 것이니 말이야.”
“아마 족장님이라면 그 기준에 대해 알고 계실지도…….”
장로들의 말을 들은 이안은 입맛을 다셨지만, 아쉬운 대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균열에서의 전투가 계속되는 이상 라페르 일족과의 공헌도를 쌓을 일은 지속적으로 생길 것이었고, 차근차근 다음 스텝을 밟아 나가면 언젠가는 접근권한 차단을 전부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래, 뭐 처음부터 다 오픈되면 재미없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한 이안은, 자신이 접근 가능한 마법서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총 백여 개가 넘는 마법서들 중, 이안에게 오픈된 마법서는 총 30종 정도.
그중 ‘마력 등급’이 가장 높은 것은 5~6서클의 마법서들이었다.
‘제일 비싼 마법서는 공헌도 한 4천 정도 필요한 녀석들이고……. 상위 마법들이 제한된 바람에, 좀 더 다양한 마법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네.’
당연한 얘기겠지만 마법서의 마력 등급이 올라갈수록, 필요한 공헌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접근 불가 마법서들 중에는 필요 공헌도가 만 단위가 넘어가는 것들도 여럿 보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이안은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공개되어 있었다면 선택 장애만 더욱 깊어졌을 터.
이안은 구매 가능한 마법서들 중 가장 가성비가 괜찮은 마법서들을 골라 두 개 정도 구매하기로 결정하였다.
‘흠……. 공격 마법도 좋지만, 실질적인 효용성은 버프나 유틸 계열 마법이 더 나아 보이는데……. 아니다. 이 정도 공격 계수라면, 공격 마법이 나은 것 같기도…….’
서른 개 정도의 마법서를 하나하나 계수까지 따져 가며,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는 이안.
때문에 이안은 제법 오랜 시간동안 행복한 고민을 해야만 했고, 거의 30~40분이 지난 뒤에야 구매할 마법서들을 결정할 수 있었다.
“여기, 이거랑 이거. 이 두 개로 결정하겠습니다.”
이안은 마법서들을 선택하였고, 그러자 해당 마법서들의 주변으로 새하얀 빛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뒤쪽에서 그 모습을 보던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었다.
“오, 훌륭한 선택일세. 뛰어난 마법들을 잘 골랐구먼.”
“우리가 연구해 낸 것들이지만, 정말 대단한 마법들이지.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일세.”
이어서 장로들의 대사가 끝난 순간…….
띠링-!
경쾌한 알림 음과 함께,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라페르 일족의 공헌도를 3,550만큼 소모합니다.
-‘리사이클링Recycling 마법서’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라페르 일족의 공헌도를 2,790만큼 소모합니다.
-‘커스 프리징Cause Freezing 마법서’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어서 공헌도를 100단위까지 깔끔하게 다 소모한 이안은, 후련한 마음으로 마법성소를 나설 수 있었다.
‘만족스러워. 얼른 실전에서 써 보고 싶은 걸.’
그리고 공헌도까지 싹 소진한 이안이 다음 차례로 해야 할 일은, ‘각성의 수정’과 ‘마력의 심장’을 사용하여 드래곤들을 각성시키는 것이었다.
* * *
현재 이안이 보유하고 있는 드래곤은 총 네 마리이다.
가장 처음으로 얻은 드래곤인 카르세우스와, 진화를 거듭하여 신룡이 된 뿍뿍이.
빛의 여신 에르네시스의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얻게 된 엘카릭스와 어느새 이안의 애마(?)가 되어 버린 아이언까지.
물론 물리 공격력이 주력인 카르세우스와 아이언은 마법을 사용할 일이 별로 없었지만, 모든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마법의 일족’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법사 클래스 유저가 쓰는 마법보다 위력이 떨어진다는 페널티를 가지고 있긴 하였지만, 대신 별다른 마법수련 없이 8서클까지의 모든 마법을 습득하고 사용할 수 있는 사기적인 고유 능력 말이다.
그리고 덕분에 이 네 마리의 드래곤들은, 각성의 수정과 마력의 심장을 이용한 ‘언령 각성’이 가능한 개체였다.
‘흐흐, 각성하고 나면 언령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 말고도 더 좋아지는 게 있으려나?’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길 수 있다.
이안에게 언령 각성이 가능한 소환수는 넷이 전부이건만, 대체 그는 왜 각성의 수정을 다섯 개나 구입한 것일까?
물론 각성에 필요한 주된 재료는 수정이 아닌 마력의 심장이었고, 때문에 수정 값이 마법서보다는 훨씬 저렴하였지만 그래도 쓸 일 없는 물건을 구매할 이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안의 큰 그림(?) 때문이었다.
‘남는 각성석 한 개는, 언젠가 용암의 대지를 발견하면 사용할 날이 오겠지.’
중간계 어딘가 존재하는, 아니, 존재할지도 모르는 ‘용암의 대지’에 있을 ‘라바 드래곤’을 위해 각성석 하나를 추가로 구입했던 것.
망상에 그칠지 큰 그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안은 그러한 이유로 각성석을 하나 더 산 것이었다.
저벅- 저벅-.
아이언을 끌고 라페르 일족의 거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이안은, 조용하고 으슥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이어서 나머지 세 마리의 드래곤들을, 차례로 소환하였다.
“엘카릭스, 카르세우스, 뿍뿍이 소환!”
위이잉-!
이안의 시동어가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그의 앞에 나타나는 세 마리의 소환수들.
“흐아아암, 아빠, 졸려요…….”
“왜 벌써 부른 거냐, 주인? 설마 개미 발자국만큼 쉬고 나서 또 싸우려는 건 아니겠지?”
“뿍, 살려 줘라뿍…….”
반쯤 눈이 감겨 있는 엘카릭스와 긴장한 표정의 카르세우스,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서는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이안을 응시하는 뿍뿍이까지.
세 소환수들을 본 이안은 살짝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이안이 생각하기에도 이번에는 소환수들을 좀 심하게 혹사시켰으니 말이었다.
“다들 걱정하지 마. 사냥 가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 말이야.”
이안의 말에, 카르세우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게슴츠레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주인아. 믿어도 되지?”
“그렇다니까?”
이안의 대답이 떨어지자, 그제야 불안한 표정을 얼굴에서 지우는 세 소환수들.
그들을 한 번씩 번갈아 응시한 이안은, 슬슬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너희를 소환한 이유는, 전투가 아니라 선물을 하나씩 주기 위해서야.”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안의 말에 소환수들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서, 선물이라니……. 주인이 오늘 이상하다.”
“선물! 역시 우리 아빠밖에 없어요!”
“뿍! 미트볼이냐뿍?”
하지만 소환수들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안이 선물(?)을 공개하고 나자 더욱 놀란 것이다.
미트볼이 아니어서 실망한 뿍뿍이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것은…… 각성의 수정?”
신화등급이 된 뒤 전생의 기억을 대부분 되찾은 카르세우스는 각성의 수정이 어떤 물건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에 이안은 반색하며 카르세우스를 향해 되물었다.
“카르세우스, 너 이 물건을 알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각성체가 될 수 없을 텐데…….”
“오호. 정말 알고 있네.”
이어서 씨익 웃어 보인 이안은, 인벤토리에서 마력의 심장 아이템을 꺼내어 들었고.
그것을 발견한 엘카릭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마력의 심장! 그래서 거신들을 그렇게 잡았던 거였…….”
이제야 모든 정황이 이해되었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엘카릭스와 카르세우스.
“확실히 주인이 대단하긴 하군. 드래곤들조차 구하기 힘든 물건들을 이렇게 손쉽게 구해 오다니 말이야.”
중얼거리듯 말하는 카르세우스를 보며, 이안이 핀잔을 주었다.
“말은 바로 하자, 카르세우스. 결코 손쉽지 않았다고.”
이어서 아이언까지 네 마리의 소환수들을 한 번씩 응시한 이안은, 그들을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누가 먼저 해 볼래? 어차피 넷 다 각성시켜 주긴 할 거야.”
그리고 이안의 말이 떨어진 바로 그 순간…….
번쩍.
재빨리 양손을 번쩍 든 엘카릭스가 베시시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요, 저! 나부터 시켜 줘요!”
* * *
획득하는 과정이 어려웠던 것과 달리, 마력의 심장과 각성의 수정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안이 수정을 꺼내 들어 엘카릭스에게 내민 순간…….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마력의 심장’을 소모하여, ‘각성의 수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소환수 ‘엘카릭스’에게 ‘각성의 수정’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N)
-각성의 수정을 사용할 시, ‘각성의 수정’과 ‘마력의 심장’ 아이템은 모두 소모됩니다.
친절한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각성의 수정에서 신비로운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으니 말이었다.
“좋아, 엘. 너부터 한번 해 보자.”
이안의 말이 떨어지자 엘카릭스는 이안의 손에 올려 있던 수정을 재빨리 집어 들었고, 그것을 지켜보던 이안은 마른침을 꿀꺽 하고 집어삼켰다.
각성을 앞에 둔 엘카릭스보다도 오히려 이안이 더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각성하면서 전투 능력도 좀 강해졌으면 좋겠는데……. 아니다, 그것까진 좀 욕심이고, 새로운 언령 마법이라도 배웠으면…….’
각성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온갖 망상을 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엘카릭스를 지켜보는 이안.
그리고 그런 이안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엘카릭스의 각성은 무척이나 화려하였다.
각성의 수정에서 뿜어져 나온 새하얀 빛줄기는 어마어마한 광채를 뿜어내며 엘카릭스의 전신을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우우웅-!
온몸이 하얀 빛으로 뒤덮인 채, 점점 커져 가는 엘카릭스의 신체.
고오오오-!
각성의 수정은 마력의 심장으로부터 계속해서 마력을 빨아들였으며, 그것으로 만들어 낸 강력한 에너지를 엘카릭스에게 지속적으로 뿜어내었다.
또, 각성하면서 폴리모프가 풀린 것인지, 엘카릭스의 몸은 점점 거대한 신룡의 위용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쿠궁- 쿠우웅-!
이안의 기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엘카릭스의 각성 이펙트.
그리고 잠시 후…….
띠링-!
이안의 눈앞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환수 ‘엘카릭스’의 언령 각성에 성공하였습니다!
-‘엘카릭스’의 위격에 걸려 있던 봉인이 해제됩니다.
-‘엘카릭스’가 가진 모든 마법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25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엘카릭스’가 가진 모든 마법의 캐스팅 시간이 40퍼센트만큼 단축됩니다!
……중략……
“와…….”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던 이안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각성의 효과가 이안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각성으로 인해 떠오른 모든 시스템 메시지들 중 이안을 가장 흥분시킨 것은, 마지막에 떠오른 세 줄의 메시지였다.
-소환수 ‘엘카릭스’의 고유 능력 ‘마법의 일족’이 각성으로 인해 진화합니다.
-‘엘카릭스’의 마법 공격력이 3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마법의 일족’ 고유 능력이 ‘마법의 지배자’로 변경됩니다.
그것을 확인한 이안은 소환수 정보 창을 오픈하여 다급히 엘카릭스의 정보를 찾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