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726화 (735/1,027)

< 726화 4. 아레미스의 악몽 (3) >

* * *

이안을 위시한 라페르 일족 전사들은 조심스레 거신들의 거점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이안의 바로 뒤를 바짝 따르던 라페르 전사들의 수장 테사르가 이안에게 몇 가지 정보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마력의 거인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 보기 애매한 존재들이라네.”

“로봇……이라도 되는 겁니까?”

“음, 그렇게 봐도 무방할지도. 녀석들은 고대 거신족들이 전쟁병기로 개발했던, 전투병기이니 말이야.”

테사르의 이야기는 주로 ‘마력의 거인’에 대한 것들이었고, 그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력의 거인이 움직이는 동력은, 장로님들께 들었겠지만 ‘마력의 심장’으로부터 나오는 차원마력일세.”

“그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으음……. 심장을 파괴해야 마력의 거인이 작동을 멈출 것이라는 말이지.”

“아하, 그렇군요.”

“그리고 거인의 몸통은 전부 ‘마강석’이라는 차원의 광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게 또 골 때리는 광물이라네.”

“음……?”

“광물 주제에 재생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야.”

“재생……이라면, 설마 회복이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비슷해. 하지만 다행히도 무한하게 재생되는 건 아닐세. 차원 마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마강석도 평범한 바윗덩이나 철광석과 다를 게 없으니 말이야.”

“그러니까, 거인이 갖고 있는 마력의 심장으로부터 차원마력을 공급받을 때 재생이 된다는 말씀이로군요.”

“그렇지. 바로 그거일세.”

“확실히 상대하기 까다롭긴 하겠네요.”

테사르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이안은 멀찍이 보이는 마력의 거인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거리는 제법 있었지만 거신들의 덩치가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멀리서 봐도 제법 자세하게 생김새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마력의 심장이 저 로봇 같은 녀석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자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소린데…….’

이안의 시선이 자연히 거인의 흉부를 향해 움직였다.

심장이라면 당연히 가슴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어떤 식으로 공략해야 할지 미리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연히도, 거인의 심장이 어디에 있는지 외부에서 확인할 길은 없었다.

거대한 녀석의 신체는 전부 칠흑빛의 철갑으로 뒤덮여 있었으니 말이다.

‘휘유. 확실히 압도적인 위용이기는 하네. 저런 녀석 하나 만들어서 데리고 다니면 엄청 든든하겠는 걸.’

생각을 정리한 이안은 테사르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테사르, 일단 한 놈을 먼저 유인해 봐야겠습니다.”

“흐음, 유인이라……. 가능할지 모르겠네. 녀석들의 경계가 제법 삼엄한 상황이라 말이지.”

“한 놈만 빼서 잘라먹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차피 전투가 시작되면 다른 녀석들도 몰려올 테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전부 다를 상대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일리 있는 말이군. 알겠네, 한번 해 보도록 하지.”

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테사르는, 일행의 상태를 한번 점검한 뒤 허공으로 천천히 날아올랐다.

그리고 거점의 가장 외곽을 순찰하고 있는 마력의 거인을 향해, 화살을 한 발 쏘아 보내었다.

피이이잉-!

처음부터 데미지를 주기 위한 공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전력을 싣지 않은 화살은, 느슨한 포물선을 그리며 거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슉-!

이어서 테사르의 화살이 거인의 거대한 몸통에 틀어박힌 순간…….

위이잉- 철컥!

거인의 몸에서 돌연 기계음이 울려 퍼지더니, 녀석의 시선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둡게 그늘져 있던 거인의 눈두덩이 안쪽에서 시뻘건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 * *

다른 거신들보다 작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력의 거인은 거대하다.

이안의 소환수들 중 가장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토르와 비교하더라도, 좀 더 큰 수준의 비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이안은, 당연히 녀석이 둔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피륙으로 만들어진 거신들도 느려 터진 것을 감안하면, 광석덩어리로 만들어진 마력의 거인은 그보다도 더 굼뜰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이안의 착각일 뿐이었다.

쿵- 쿵- 쿵- 쿵-!

느릿느릿 거점의 외곽을 순찰하던 거인은 테사르의 화살을 맞은 순간 돌변하였고…….

기이이잉-!

눈에 시뻘건 불빛이 들어옴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친, 뭐 저런 놈이……!”

그것을 본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서둘러 녀석에게 대응할 준비를 하였다.

‘젠장. 무생물이라기에 토르로 뚝배기 부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렇게 빠르면 너무 난이도가 높아지잖아?’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안심하고 있었던 이안은,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저 괴물 같은 마력의 거인을 보고 있자니, 뼈다귀로 만들어진 토르가 연약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일단 부딪쳐 보자!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고 싸우는 건 아니잖아?’

빠르게 머리를 굴린 이안은, 거인이 도달하기 전까지 소환수들을 어떤 식으로 운용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해 두었다.

아직 녀석은 테사르 외에 다른 일행을 발견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정신 못 차리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다.

‘어서 와라!’

테사르가 있는 곳까지 정말 단숨에 달려온 마력의 거인은, 강하게 바닥을 구르며 허공으로 도약하였다.

쿵쿵- 콰아앙-!

그 거대한 덩치를 무색케 할 만큼, 날렵하고 높게 도약하는 마력의 거인!

하지만 이미 거인의 믿을 수 없는 민첩성을 인지한 이안은,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침착하게 아이언을 타고 날아오르며, 녀석을 향해 마주 뛰어들었다.

‘녀석과 싸우다 보면 본진의 거신들이 죄다 몰려오겠지. 그 전에 이놈을 처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략법은 알아내야 해.’

거인과 허공에서 눈이 마주친 이안은, 곧바로 약점 포착을 발동시켰다.

그런데 다음 순간…….

“……!”

이안은 또다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보호받는 대상입니다.

-약점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지금껏 카일란을 플레이하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종류의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으니 말이었다.

* * *

“후후, 예상했던 대로 이안은 돌아오지 않는군. 으하핫,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암천궁 북동쪽에 있는 아담한 크기의 팔각정.

그곳은 오늘도 단골 손님(?)들로 인해 복작이고 있었다.

“크, 역시 루가릭스 님이십니다. 저는 당연히 이안이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흐음……. 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네요. 물론 언령 마법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이안도 충분히 느꼈을 텐데……. 저 같으면 루가릭스 님과 먼저 계약을 하고 언령 마법에 대한 욕심은 나중으로 미뤘을 텐데 말입니다.”

마카론과 다카론의 감탄 아닌 감탄에, 루가릭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였다.

“후후, 나만큼 녀석을 잘 아는 드래곤도 없지. 녀석이 인간 치고 확실히 대단하기는 하지만, 결국 한계는 여기까지였어.”

루가릭스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이제 다 저물어가는 오늘이 지나고 정확히 하루만 더 지나가면, 암천궁에 갇혀있던 루가릭스는 자유를 얻게 된다.

이안에게 잡혀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미래에,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암천궁에 묶여 있지 않는 한 루가릭스가 마음 먹고 잠적한다면 이안이 찾아낼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으흐흐.”

기분 좋게 웃는 루가릭스를 향해, 옆에 있던 마카론이 물었다.

“그런데 루가릭스 님.”

“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쭤도 됩니까?”

“뭔데?”

잠시 뜸을 들인 마카론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궁금해서 묻기는 하지만, 물어보려는 내용이 자칫 루가릭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루가릭스 님은 그 이안이라는 인간을 왜 그렇게 싫어하십니까?”

“음? 싫어한다니? 난 이안을 싫어한 적이 없어.”

“네? 그럼 왜 그와 계약하는 것을 거부하시는 건지요?”

마카론의 의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카일란의 세계에서 소환수와 소환술사 간의 계약은 서로에게 시너지를 줄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소환술사야 당연히 소환수를 계약하여 부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이득이었지만, 소환수의 입장에서 얻는 것이 무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카일란의 시스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일 뿐,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환술사와 계약을 한 소환수는 다른 개체들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며, 소환술사가 가진 소환마력으로 인해 더 강력한 힘을 낼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더 강력한 힘을 갈망하는 드래곤 종족 특성상, 인간 소환술사와의 계약은 사실 나쁠 것이 없는 것이다.

물론, 계약 대상이 뛰어난 소환술사라는 전제가 깔려야 성립되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리고 드래곤인 마카론과 다카론이 보기에, 이안이라는 소환술사는 그 전제조건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었다.

“흐으음…….”

마카론의 의문을 들은 루가릭스는, 묘한 표정이 되어 두 드래곤을 번갈아 응시하였다.

질문의 의도가 뭔지는 루가릭스 또한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인 루가릭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안과의 계약을 왜 자꾸 피하려는 거냐고?”

“그렇습니다.”

루가릭스는 어깨를 으쓱 하며 말을 이었다.

여러 번 고민해 보아도 그 이유는, 너무도 명확히 정해져 있었으니 말이었다.

“이안 녀석은…….”

“……?”

“게으름의 미학을 모르거든.”

“예?”

“녀석과 계약하면, 내 워라밸이 파괴되고 말 거야.”

두 드래곤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루가릭스의 말에, 마카론이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게으름의 미학은 그렇다 치고……. 워라밸이라는 건 대체 뭡니까?”

마카론의 물음에, 루가릭스가 뿌듯한 표정이 되어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해 주었다.

“흐흐, 무식한 것들. 한 번만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라. 사실 나도 레미르라는 인간 마법사한테 배운 단어인데…….”

꿀꺽-!

뭔가 대단한 지식을 공유하기라도 하는 듯 뜸을 들이는 루가릭스를 보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두 드래곤들.

그리고 루가릭스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하루에 2시간 일하면 10시간 놀아야 하는 것.”

“……!”

“그게 바로 워라밸이라는 거다, 친구들.”

루가릭스의 설명을 들은 마카론과 다카론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