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2화 3. 거신족 보급 창고 (2) >
* * *
처음 이 ‘언령 마법의 비밀’ 최종 연계 퀘스트를 받았을 때, 이안은 난이도와 별개로 퀘스트에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두 번째 연계 퀘스트부터 여섯 번째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까지 총 다섯 개의 연계 퀘스트를 하루 만에 전부 클리어했던 경험이 있었으니, 마지막 퀘스트의 난이도가 높다고 한들 반나절이면 족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퀘스트가 진행될수록 이안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거신족 돌격병인지 뭔지…… 정말 끝도 없이 몰려오네.’
이미 처음 예상했던 반나절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퀘스트를 클리어하긴 커녕 보급창고 그림자도 만나지 못했으니 말이었다.
계속해서 발생되는 돌발 퀘스트와 몰려오는 거신족 돌격병들도 문제였지만, 지도에 표시된 근방까지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목적지인 ‘전진 거점’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였던 것.
‘균열의 미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균열 북동쪽 맵의 구조는 극악할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하였다.
“후우……!”
또다시 달려드는 거신족 돌격병을 해치운 이안은, 한 차례 깊게 심호흡하였다.
쉴 새 없이 창을 휘두르며 전장을 누빈 탓에 적잖이 체력이 소모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여유가 넘쳤다.
차원 마력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진 덕에 이제 피로도가 이전처럼 급격하게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항력은 이제 100에 거의 근접한 상황이었고, 덕분에 디버프는 체감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미약하게 남은 것.
‘빨리 100 뚫고 올라가서, 초과 저항력 얻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은데…….’
-현재 차원 마력 저항력 : 98
돌발 퀘스트의 보상으로 저항력을 두 번 추가로 얻으면서, 현재까지 누적된 이안의 차원마력 저항력은 98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퀘스트를 진행한 지도 5시간이 다 되어 가는 상황이었으니, 이안은 추가 저항력을 얻을 때가 한참 지났다고 생각하였다.
‘피로도가 꽉 차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수치 자체가 높아져서 스텟을 올리기 어렵게 된 것인지……. 어지간히 안 오르는군.’
“쩝.”
한차례 입맛을 다신 이안은 기다란 창대를 다시 휘두르며 거신족 돌격병을 처치하기 시작하였다.
후웅- 훙-!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 거신족까지 처치하고 나자…….
띠링-!
시스템 알림 음이 울려 퍼지면서, 예의 그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거신족 돌격부대 궤멸 Ⅵ (돌발)’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클리어 등급 : SSS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경험치를 70,000만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초월)을 500만큼 획득하셨습니다.
-‘지저금화’ 재화를 5,000만큼 획득했습니다.
……후략……
‘뭐, 역시 별다를 건 없는 건가……?’
이미 여러 번 확인했던 메시지들이었기 때문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 목록을 확인하는 이안.
하지만 메시지들을 전부 다 확인하였을 때, 이안의 두 동공은 살짝 확대되어 있었다.
“음……?”
메시지의 마지막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메시지가 하나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거신족 돌격부대장을 처치하셨습니다.
-‘용맹의 팬던트’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돌격부대장이라는 놈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어쨌든 처음 보는 아이템을 획득하였으니, 이안은 곧바로 인벤토리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 인벤토리의 한쪽 구석에 반짝이는 팬던트의 정보 창을 확인한 이안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찾았다. 이거였구나……!”
이 용맹의 팬던트가 바로, 거신족의 전진거점으로 이안을 안내해 줄 나침반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었다.
-용맹의 팬던트
등급 : 유일(초월)
분류 : 잡화
거신족 진영의 ‘부대장’급 이상의 직책을 가진 거신들에게 주어지는 팬던트입니다.
팬던트를 지니고 있으면, ‘균열의 미로’에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징표가 있으면, 지저地底에 있는 ‘쟈크람 마을’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유저 ‘이안’ 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더해서 지저의 쟈크람 마을이라는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단서도 추가 옵션에 붙어 있었지만, 일단 그것은 나중에 생각해 볼 문제였다.
당장 진행중인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이, 이안에겐 더 시급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디 보자……. 미로에서 길을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된다고?’
기대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킨 이안은, 거신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미로를 구석구석 살피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었다.
“……!”
미로의 곳곳에서 이제까진 보이지 않았던 붉은 기운의 흐름을 발견하였고, 본능적으로 그 흐름이 거신족 전진거점과 이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 * *
쿵- 쿵- 쿵-!
“용족 놈들의 침입을 막아라! 녀석들에게 보급품을 단 한 개도 내줘서는 안 된다!”
콰쾅- 퍼엉-!
“놈들의 브레스를 조심해! 보급 창고가 브레스에 녹지 않도록 마력 실드를 유지시켜!”
크허어엉!
정신없도록 치열하게 공방이 오가는 거신족 전진기지의 보급 창고.
그 안에서 이를 악물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한 명의 ‘마족’ 유저가 있었으니, 남자의 정체는 당연히 아레미스였다.
‘으아아……! 무슨 퀘스트 난이도가 이렇게 지옥이야?’
아레미스는 지금 죽을 맛이었다.
지금 보급 창고에 쳐들어오는 용족의 병력들은 대부분 ‘드레이크’들이었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이 드레이크들의 전투력은 그가 알던 수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으니 말이었다.
‘무슨 놈의 드레이크들이 이렇게 날렵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드레이크들의 특징은 단단한 방어력과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이동속도나 민첩성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레미스의 눈앞에 나타난 드레이크들은, 결코 느리지 않았다.
아니. 지금껏 거신족들과 함께 있다가 봐서 그런 것인지, 느리기는커녕 어지간한 민첩형 몬스터들만큼 빠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레미스가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역시 차원마력으로 인한 디버프의 영향이 지대하였다.
‘아으, 12시간은 대체 언제 지나는 거야? 그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데…….’
지금 아레미스의 능력으로는, 드레이크 한 마리 정도를 일대일로 처치하는 것이 한계였다.
아니, 그마저도 거의 사투를 벌여야 가능할까 말까 할 정도로 어려운 수준이었다.
때문에 아레미스는, 최대한 영리하게 포지션을 잡는 중이었다.
거신족과 용족의 싸움이 한참 벌어져 있는 상황에서 교묘하게 싸움에 끼어들어, 소위 말하는 ‘막타’만 슬쩍 빼먹고 나오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물론 기여도 없이 막타만 치게 되면 경험치를 비롯한 보상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지만, 그런 것은 상관 없었다.
어쨌든 막타를 치면 처치 횟수로 인정이 되니, ‘보급 창고 수비’ 퀘스트의 추가 보상을 받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다.
‘후우, 어디 보자……. 지금까지 성공한 막타가 열두 번 정도는 되는 것 같으니까, 이대로 좀만 더 버티면 최소 금화 3천 냥 정도는 기대해도 되겠어.’
어마어마한 체력소모로 인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림에도 불구하고, 퀘스트 클리어 보상만 생각하면 힘이 샘솟는 아레미스.
게다가 이제는 ‘차원 마력 저항력’이라는 스텟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힘들게 퀘스트를 진행한다는 데에 대한 동기 부여도 조금 더 확실해졌다.
‘열심히 노가다한 덕에 벌써 저항력도 5포인트나 쌓았으니까…….’
그렇게 고갈되는 체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며 스스로를 격려하는 아레미스!
-퀘스트 종료까지 남은 시간 : 01:03:55
이제 1시간 남짓 남은 이 지옥만 잘 버텨 내고 나면, 꿀같은 보상이 찾아오리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좋아, 끝나기 전까지 막타 딱 두 놈만 더 성공시켜 보자고……!”
하지만 그렇게 10여 분 정도가 더 지났을까?
띠링-!
익숙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지며, 아레미스의 눈앞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전장에 용족 진영의 지원부대가 도착하였습니다!
-강력한 라페르 일족의 전사들이 전장에 나타납니다.
-돌발상황으로 인해, 퀘스트의 난이도가 상향됩니다.
-난이도 : SSS->SSSS
-라페르 일족 전사를 처치할 시, 추가보상을 세 배로 얻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괴성을 내지른 아레미스.
“으아아아……!”
아레미스가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였다.
‘아니, 더 이상 추가 보상 따윈 필요 없으니까……! 제발 이대로 퀘스트가 끝나게 해 달라고!’
라페르 일족 전사가 주는 추가 보상이 세 배 라는 이야기는, 그를 처치하는 것이 평범한 드레이크를 처치하는 것보다 세 배 정도 어렵다는 이야기.
지금의 아레미스로서는, 아예 대적할 생각조차 못할법한 전력들이 전장에 나타났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후우, 침착하자 아레미스. 막타고 나발이고, 그냥 창고 구석 어디에 숨어 있으면 되지 않겠어?’
그러나 절규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레미스가 모르는 더 최악의 상황이 하나 있었다.
“어디 보자……. 저기 저쪽이 거신족 보급 창고인 것 같은데…….”
라페르 전사들의 선두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보급 창고의 위치를 탐색하고 있는, 라페르 일족보다 몇 배는 무서운(?) ‘이안’이라는 존재가 있었으니 말이었다.
전투력만 놓고 따져보더라도, 현재 이안의 전투력은 라페르 일족 전사들보다 몇 배 이상 강력하다고 할 수 있었다.
“좋아, 싹 쓸어 버리고 빨리 퀘스트 마무리하자고.”
아마 시스템이 이안의 존재를 난이도 산정 요소에 집어넣었더라면, 퀘스트 난이도의 상향은 한 단계 올라가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안이 등장한 이상 이 전장의 결말은, 둘 중 하나로 귀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안을 막아 낸 아레미스가 퀘스트를 성공하거나, 아니면 보급 창고를 전부 파괴한 이안의 퀘스트가 성공하거나.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그는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었다.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레미스…….”
모니터링실에서 상황을 기록하던 LB사의 어느 직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