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1화 3. 거신족 보급 창고 (1) >
거신족들을 하늘을 날지 못한다.
뭐 특별한 능력을 가진 거신족이 따로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이안이 보아 온 거신족 중에는 하늘을 날 줄 아는 개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거신족은 전원이 비행 능력을 가진 이안을 비롯한 용족들을 어떻게 상대하는 것일까?
물론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거신족들도 제법 있었지만,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거신족들의 어마어마한 덩치와, 그리 넓지 않은 균열의 틈새.
커다란 덩치를 가진 거신족들은 균열 사이사이에 부유하는 균열석 파편들을 밟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닐 수 있었고…….
쿵- 쿵-!
하여 비행 1능력이 있는 용족들과 대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채챙- 콰앙-!
파편을 밟고 도약하여 대검을 내리꽂는 거신족 돌격병들.
그 검을 정면으로 쳐 낸 이안은, 쭉 빠져 나가는 생명력과 함께 양손이 얼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덩치가 덩치인 만큼, 공격력 하나는 미친 수준이네.’
방금 이안은 거의 90퍼센트에 달하는 피해 감소율을 띄우며 무기 막기에 성공하였다.
완벽한 자세로, 거신족의 검격을 막아 낸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안의 생명력은 무려 30퍼센트 이상이 단숨에 빨려나갔다.
만약 저 무식한 공격을 직격으로 맞는다면, 그대로 게임 오버라는 소리였다.
무기 막기나 방패 막기에 성공하더라도 몇 대 두들겨 맞다보면 사망할 정도의 공격력이었으니, 애초에 막으면서 싸우라고 기획해 놓은 몬스터들이 아니라는 소리.
그렇다면 이안은, 그러한 사실들을 몰라서 피할 수도 있는 공격을 무기로 막아 낸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이안이 무리해서 무기 막기를 시도한 이유는, 거신족 돌격병의 공격력 스텟을 한번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공격력 스텟을 역산해서 얼추 계산해 보면, 평범한 정찰병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더 전투 능력이 좋은 개체인지 어림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었다.
‘이 정도면 공격력만 놓고 봤을 때, 정찰병보다 한 배 반 정돈 강력한 수준인데…….’
이안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지금까지 파악한 거신족들의 능력치 분배는 들고 있는 무기에 따라서 비율이 달라지는 형식이었으니, 대검 돌격병의 공격을 한번 피격당한 것만으로 어느 정도 거신족 돌격병들의 능력치를 파악해 낸 것이다.
물론 정확하고 구체적인 수치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 윤곽만 있으면 전장을 운용하는 데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카카.”
“왜 부르냐, 주인?”
“상황 봐서 위험한 친구 보이면, 네가 몸빵 한 번씩 해 줘.”
“시, 싫다. 저거 너무 아파 보인다.”
“어차피 물리 대미지 하나도 안 들어오는데 아프긴 뭘 아파?”
“으……. 못된 주인이 착한 노예를 괴롭힌다.”
카카와 반 농담 반 진담의 이야기를 잠시 주고받은 이안은, 엘카릭스를 소환하여 앞좌석(?)에 태웠다.
아이언의 덩치는 제법 컸기 때문에 인간형으로 폴리모프한 엘카릭스 정도는 이안의 앞에 태울 정도의 공간이 충분했으니 말이다.
“엘, 배리어는 최대한 아껴. 우린 알아서 잘 피할 테니까, 라페르 종족 전사들 지키는 데 주로 사용해.”
“알겠어요, 아빠.”
엘에 핀까지 소환한 이안은, 더 이상 소환수들을 소환하지 않았다.
까망이와 핀은 이미 소환되어 두 가신들이 타고 있었으며, 비행이 불가능한 소환수들은 이 균열 전장에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카르세우스같이 덩치 큰 소환수는, 비행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거신족의 무식한 공격에 재물이 되기 딱 좋았다.
그렇게 최적의 세팅을 마친 빠르게 전장을 누비기 시작하였다.
“하나씩 점사해서 제거해야 합니다. 중구난방으로 싸우면 피해가 커져요!”
라페르 족의 NPC들마저도, 마치 길드원 부리듯 어느새 통제하기 시작하는 이안.
콰쾅- 콰아앙-!
그리고 이안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라페르 진영의 전사들은, 순식간에 거신 돌격병들을 하나씩 처치하기 시작하였다.
-‘거신족 돌격병’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6,982만큼 획득합니다.
-가문 ‘암천’에 대한 공헌도가 5만큼 증가합니다.
-‘지저금화’ 재화를 409만큼 획득했습니다.
-‘거신족 돌격병’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거신족 돌격병’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후략……
그 결과 이안은 단 한 명의 라페르 일족 전사도 잃지 않고 돌발 퀘스트를 성공시킬 수 있었고, 마지막 돌격병을 처치한 순간, 이안의 눈앞에 퀘스트 성공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깔끔하게 떠올랐다.
띠링-!
-‘거신족 돌격부대 궤멸(돌발)’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클리어 등급 : SSS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경험치를 50,000만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초월)을 500만큼 획득하셨습니다.
-‘지저금화’ 재화를 3000만큼 획득했습니다.
……중략……
-‘차원 마력 저항력’ 능력치를 추가로 5만큼 획득하였습니다.
-현재 차원 마력 저항력 : 95
준수한 보상들 중에서도 마지막 보상으로 들어온 ‘차원 마력 저항력’에 흡족해진 이안의 입에, 기분 좋은 웃음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보급 창고에 도착할 쯤 되면, 충분히 저항력 100 정도는 채울 수 있겠는걸.’
피로도가 쌓여 있지 않은 탓에 이전처럼 급속도로 저항력을 쌓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 돌발 퀘스트 보상으로 획득한 저항력이 무척이나 귀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 * *
“휴, 여기가 전진 거점인가 보네. 드디어 찾았군.”
3차원 좌표로 만들어진 지도를 처음 보는 아레미스는, 약간의 혼란 끝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길을 그다지 헤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레미스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게다가 표정은 이미 격전을 치른 사람처럼 죽어 가는 듯했다.
“어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진이 다 빠질 것 같네. 이거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전투 환경이 너무 지옥인데?”
아레미스가 힘든 이유는, 당연히 ‘차원 마력’의 압박 때문이었다.
마치 중력처럼 온몸을 짓누르는 강력한 디버프 때문에, 오는 길에 딱히 빈번한 전투가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의 탈진할 정도로 피로가 쌓인 것이다.
전진 거점으로 이동하는 사이, 아레미스가 치른 전투는 딱 2회.
그것도 ‘용족 정찰병’이라는, 용족들 중 가장 허약해 보이는 몬스터를 한 마리씩 만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레미스는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했었다.
‘아오, 허접한 용가리들. 디버프만 아니었으면 진짜 순식간에 잡았을 텐데 말이지.’
아직까지 ‘차원 마력 저항력’이라는 스텟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아레미스는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고작 정찰병 둘 잡는데 이렇게 고생을 했으니, 앞으로의 퀘스트들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앞이 깜깜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내가 어려운 거면 다른 녀석들한테는 훨씬 더 어렵겠지. 어려운 만큼 보상도 막대할 테고 말이야.’
항상 카일란의 세계는, 어려운 퀘스트를 해결할수록 그에 걸맞은 보상을 지급해 준다.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진행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아레미스는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점 안을 돌아다니던 아레미스는, 최종 목적지인 보급 창고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자경대장 NPC에게 다가가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자경대장님. 염왕께서 보내시어 보급 창고 수비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거신족 자경대원들은, 정찰대나 돌격대에 속해 있는 거신족들보다는 덩치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인간 유저의 덩치와 비교하면 열 배는 더 거대했기 때문에, 아레미스는 목이 완전히 꺾일 정도로 그를 올려다봐야 했다.
아레미스의 목소리를 들은 자경대장이 힐끔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흐음, 그대는 마족 전사로군.”
자경대장이 입을 열자, 아레미스는 곧바로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자경대장님. 이곳에 용족 침입자들이 빈번히 출현한다 하여, 염왕께서 도우라 명하셨습니다.”
아레미스의 말에, 자경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손이 부족하여 각 가문에 원군을 요청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 와주었군.”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대의 활약을 염왕께 그대로 전할 터이니, 어디 한번 능력을 발휘해 보시게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경대장과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아레미스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보급 창고 수비’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 12시간 동안, 보급 창고를 공격하는 용족 침입자들을 막아 내야 합니다.
-용족 침입자를 하나 처치할 때마다 추가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추가 보상 : 지저금화 200냥~500냥, 명성(초월) 10~30, 염왕 가문의 공헌도 50~100
-강력한 적을 처치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추가 보상이 증가합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아레미스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한 마리 처치당 지저금화를 200이상 준다고?’
아직 커뮤니티 같은 곳에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이 지저금화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 재화였다.
지저의 남부에 있는 ‘거신의 모래탑’에 가면, 이 주화를 사용하여 강력한 아티팩트들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경매장에서 2만 차원코인 정도에 판매된 거신의 허리띠 아이템만 하더라도.
모래탑에서 지저금화로 구매하면 팔천 오백 냥 정도에 매입이 가능한 것.
‘크……! 그래. 딱 스무 마리 정도만 처치하는 걸 목표로 잡아 보자. 그 정도면, 지금까지 모은 금화 더해서 거신 세트 아이템 한 파츠 정도는 구매가 가능하겠지.’
더욱 강하게 동기부여가 된 아레미스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하였다.
지저금화가 많이 풀리면 거신 세트의 가격은 자연히 떨어질 테니, 그 전에 자신이 독점하여 최대한 차원코인을 벌어들일 생각이었다.
“좋아, 딱 12시간만 불태워 보자고.”
자기 자신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기합을 집어넣는 아레미스.
그런 그의 눈앞에 몇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지만, 아레미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용족 병사들의 침입이 시작되었습니다!
-전투에서 사망할 시 퀘스트는 실패로 돌아가며, 획득한 모든 보상은 무효화 처리됩니다.
어차피 퀘스트 실패 따위의 상황은, 그의 머릿속에 조금도 고려되고 있지 않았으니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