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8화 2. 용족과 거신족 (2) >
* * *
비룡과 비천룡의 이름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비룡이 진화하여 비천룡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유저는 거의 없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직 이안밖에 모르는 사실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비룡이 비천룡으로 진화하려면 ‘황금빛 비늘’이 필요한데, 이 비늘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비룡을 파밍한 유저가 이안 말고 또 있기는 힘들었으니, 그가 공개하지 않은 이상 알려질 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게다가 얼마 전, 유럽 서버의 랭커 중 하나가 ‘진화 가능’ 비룡을 사다가 ‘황금빛 안장’으로 진화시킨 것을 커뮤니티에 자랑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비룡의 진화체는 철갑룡이라고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최근 커뮤니티의 유저들 사이에는 이 비천룡이라는 소환수에 대한 의견이 무척이나 분분한 상황이었다.
-비천룡은 그럼 비룡의 상위 호환 콘셉트로 만들어진 소환수일까? 경매장에 올라왔던 거 보니까 등급도 일반 비룡보다 한 등급 높던데…….
-생긴 게 비슷한 거 보면 진화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지만, 일단 철갑룡이라는 진화체가 따로 있으니 위 님 말이 맞을지도요.
-크으, 고유 능력들 하나하나 미쳤던데. 난 언제 비천룡 같은 소환수 구해 보냐.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비천룡을 구할 수 있는 새로운 루트가 공개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유저들의 반응이 폭발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
공식 커뮤니티, 혹은 게임 내에서 소문을 들은 수많은 유저들이 라오렌의 방송을 보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오, 비룡의 알에서 비천룡이 나올 수도 있는 거였다니. 이러면 3천만 골에 저 알 산 다섯 명은 노난 거 아님?
-캬, 비천룡 지금 2만 차원코인 이상에도 거래되던데. 골드로 따지면 거의 2억5천만 골드……. 알에서 비천룡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3천만 골드면 엄청 싸다는 거임.
-와, 나도 미친 척하고 전 재산 털어서 알 한 개 낙찰받아 볼까? 까서 비천룡이라도 나오면 순식간에 전 재산 열 배 뻥튀기 각인데?
-후……. 님, 생각해 보셈. 이제부턴 경매 방식으로 팔 텐데, 3천만 골에 낙찰받는 게 가능하겠음? 못해도 5천만 골드 정도에는 시세가 형성될 것 같은데…….
-그건 이제부터 저 알 다섯 개 까는 거 보면 견적 나올 듯.
-맞음. 만약 알 다섯 개에서 비천룡 하나도 안 나와 버리면 생각보다 매수세가 안 붙을지도 모르는 거.
서버별로 따로 개설되어 있는 채팅 창은 저마다 폭주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보는 라오렌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나갔다.
이 비룡의 알을 잘 팔아서 이안에게 얻을 인센티브도 중요하였지만, 입소문을 타고 미친 듯이 유입되는 시청자들로 인한 광고 수익도 결코 무시할 만한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크흐흐, 이러니까 내가 이안갓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지.’
언제 이안의 갑질(?)이 불만이었냐는 듯, 행복한 표정으로 그를 찬양하는 라오렌!
잠시 뜸을 들인 라오렌은 다시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자, 제가 화면에 띄워 드린 정보 창은 다들 보셨을 테니, 이 알들의 가치가 얼마일지는 다들 짐작이 가능하실 테고요.”
라오렌은 씨익 웃으며, 다섯 개의 알들의 앞으로 다가가 스윽 하고 손을 뻗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간 시청자님들께 크게 혼날 것 같으니, 이제 하나씩 까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어서 첫 번째 알을 들어 올린 라오렌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방송을 통해 이뤄지는 모든 거래는 LB사 본사의 공증을 받을 수 있는 ‘카일란 계약서’와 함께 진행되오니, 시청자 여러분들께선 마음 놓고 이어질 경매에 참여해 주셔도 되겠습니다.”
청산유수같이 입을 놀리던 라오렌은, 황금빛 알을 집어 들어 탁자에 올려놓은 뒤 마치 기도라도 하듯 두 눈을 감고 양손을 모아 알에 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채팅이 올라오던 채팅 창은 순간적으로 다운이라도 된 듯 멈추었다.
이 장면을 보는 모든 시청자들의 화면에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알의 형상이 클로즈업되었기 때문이다.
가챠의 임팩트를 극대화하기 위한 라오렌의 계획된 연출!
-오옷!
-나온다!
우우웅!
이어서 장엄한 공명음과 함께, 견고해 보이던 황금빛 알이 쩌적거리며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라오렌은 일렬로 세워져 있던 다섯 개의 알들을 모조리 까기 시작하였다.
쩌적- 쩌저적-.
- 와, 미쳤다. 한 번에 다 깠어!
- 와씨. 비천룡 한 마리라도 나오면 대박인데 이거……!
수많은 시청자들의 관심 속에, 점점 부화하기 시작하는 다섯 개의 비룡의 알들!
그런데 바로 그때…….
쿠쿵- 쿠우웅-!
일렬로 놓여 있던 다섯 개의 알들 중 두 개의 알 주변으로 황금빛 뇌전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라오렌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어엇, 이게 뭔가요?”
방송하는 라오렌조차 사실 비룡의 알을 까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임팩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 30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캬아아오-!
크르릉-!
다섯 개의 알에서 부화된 비룡들이 라오렌의 세트장을 꽉 채운 채, 화면을 향해 포효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그 다섯 중 황금빛 뇌전이 소용돌이치던 알에서 태어난 두 마리의 비룡들은 누가 보더라도 다른 평범한 비룡들과는 남다를 외형을 가지고 있는, 분명한 ‘비천룡’들이었다.
그것을 보던 라오렌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대, 대박! 비천룡이 둘이나 나왔습니다, 여러분!”
물론 두 마리의 비천룡들 중 잠재력이 높은 녀석이 있을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의 머릿속에는 다섯 개의 알 중에서 비천룡이 두 마리나 나왔다는 사실만이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미, 미친……! 저거 3천 골에 산 사람은 대체 얼마를 번 거야?
-와 씨, 확률 이 정도면, 이거 할 만한 도박이잖아?
그것을 시작으로, 라오렌의 방송은 난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남아 있는 백사십오 개의 알들은 전부 골드가 아닌 차원코인으로 경매에 붙이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미친 듯이 치솟았다.
띠링-!
-‘비룡의 알’ 아이템이 3,950차원코인에 낙찰되었습니다!
-‘비룡의 알’ 아이템이 4,350차원코인에 낙찰되었습니다!
-‘비룡의 알’ 아이템이 4,480차원코인에 낙찰되었습니다!
……중략……
-‘비룡의 알’ 아이템이 5,780차원코인에 낙찰되었습니다!
만약 처음 오픈한 다섯 개의 비룡의 알에서 비천룡이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더라면 라오렌은 추가로 경매하는 알들도 하나씩 오픈하며 방송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비천룡이 나오는 것을 보여 줘야 구매 심리를 더욱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 다섯 개의 알 중 두 개에서 비천룡이 나온 이상 굳이 나머지 알들을 일일이 까면서 판매할 이유는 사라졌다.
이미 비천룡을 두 눈으로 확인한 매수 대기자들은 안달이 나기 시작하였으며, 백오십 개 가까이 있던 수량이 하나하나 줄어들 때마다 입찰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점점 더 급해졌으니 말이다.
신이 난 라오렌은 추임새를 넣으며 분위기를 더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자, 이제 단 열 개 남았습니다, 여러분! 비천룡의 주인이 될 기회를 이대로 놓치시렵니까?”
그리고 라오렌의 추임새에 힘입어 치솟은 마지막 비룡의 알은 최대 7천 코인이 넘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기록할 수 있었다.
띠링-!
-‘비룡의 알’ 아이템이 7,750차원코인에 낙찰되었습니다!
-모든 아이템이 낙찰되었습니다.
-경매를 종료합니다.
-수수료 1퍼센트를 제외한 액수가 입금됩니다.
그리고 경매가 끝난 순간, 글로벌 구독자 수를 확인한 라오렌의 양쪽 입꼬리는 귀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개인 방송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넘어 보지 못했었던, 무려 천만 단위가 넘는 시청자가 동시에 자신의 방송에 접속해 있었던 것이다.
‘으흐흐흐, 한 명당 광고 수익 20원만 잡아도 이게 얼마냐! 대박이다!’
하지만 벅차오르는 행복에 빠져 있던 라오렌의 표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 메시지 때문에 곳간(?)에 쌓인 차원코인과 골드의 물량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최종 판매대금
-골드 : 148,500,000
-차원코인 : 798,720
그것을 확인한 순간, 라오렌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하고 벌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서, 배가 살살 아파 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크윽,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이안이 가져간다더니…….’
라오렌이 광고 수익으로 벌어들인 돈의 수십 배를, 이안은 가만히 앉아서 벌었으니 말이었다.
* * *
한편 라오렌이 성황리에 경매를 마치고 난 그 시각.
기절하기라도 한 듯 침대에 쓰러져 있던 진성은 눈을 번쩍 뜨고는 다시 좀비처럼 캡슐을 향해 걷고 있었다.
피곤한 정도에 비해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탓인지 두 눈은 퀭했지만, 지금 그에게는 잠보다 훨씬 더 중요한 미션이 있었으니 말이다.
‘으, 너무 오래 잤어. 빨리 퀘스트 다 깨고 루가릭스 잡으러 가야 하는데…….’
루가릭스가 얘기했던 안전한(?) 기간은 아직 제법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최대한 빨리 퀘스트를 전부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언령퀘를 전부 완수하고 솔바르로부터 받은 암천 퀘스트까지 싹 다 클리어한 뒤 암천궁에서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을 루가릭스를 잡아다가 계약 도장을 쾅 하고 찍어 놔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으니 말이었다.
‘으흐흐. 이제 차원 마력 저항력도 거의 100에 가까워졌으니, 남은 퀘스트 정도는 순식간에 해치워 버릴 수 있겠지.’
두세 마리 정도의 거인들에게만 둘러싸여도 무척이나 힘들었던 이전과는 달리, 이젠 십수 마리가 넘는 거인들 사이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할 자신이 있었다.
진성은 탁자에 놓여 있던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후, 곧바로 캡슐의 버튼을 눌러 게임에 접속할 준비를 하였다.
삐릭- 위이이잉-!
저항력이 90에 달한 데다 게임 내 피로도까지 거의 회복되었을 지금, 거인들을 상대로 빨리 창을 휘둘러 보고 싶은 마음만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하지만 캡슐이 열리고 진성이 그 안에 몸을 집어넣으려던 그 순간, 그의 입에서는 고통에 찬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 아앗!”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하린이 캡슐에 들어가려던 그의 귓불을 잡아당긴 것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또 어딜 들어가시려고 그래?”
“아, 아파. 일단 이것 좀 놓고……!”
고통을 호소하는 그의 얼굴 앞에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민 하린.
“오늘, 피크닉 가기로 한 거,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박진성?”
그리고 바로 앞에 다가온 왕방울만 한 하린의 두 눈을 마주친 진성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하, 하하, 그럴 리가……! 그냥 잠깐 접속해서, 뭐 하나만 확인하려고 했었다고.”
뻔뻔하게 변명을 한 이안은 서둘러 캡슐 밖으로 튀어나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루가릭스가 중요해도 그보단 하린이 훨씬 더 중요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빠릿빠릿한 진성의 반응에 기분이 풀린 것인지, 하린은 언제 그랬냐는 듯 헤실헤실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끌기 시작하였다.
“빨리 옷 입고 나갈 준비 하자. 오늘 한강공원 불꽃축제 때문에 야시장에 푸드 트럭 엄청 많이 온대!”
신이 난 하린의 표정을 본 진성은 피식 웃음 지으며 외출복을 입기 시작하였다.
불꽃축제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신난 하린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래, 퀘스트랑 루가릭스는 내일부터 밤새면 어떻게든 되겠지, 뭐.’
그리고 그렇게 루가릭스는, 하린의 도움 덕에 하루 더 자유를 연명(?)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