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6화 1. 용족과 거신족 (4) >
* * *
이안이 시스템 메시지를 살피며 휴식을 취하는 사이 퀘스트의 제한 시간이었던 60분은 금방 다가왔고, 정확히 60분이 지나자 거신족 진영으로 프림슨을 비롯한 라페르 일족의 지원군이 나타났다.
이안은 체력 소모로 인해 아직까지도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일단 그들을 맞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서 선두에 있던 프림슨이 이안을 발견하고는 포롱포롱 날개를 움직이며 다가왔다.
“훌륭하군, 인간! 정말 정찰병 열을 처치해 놓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감탄 섞인 프림슨의 말에 이안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뭐, 이정도야 거뜬하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상이었던 이안의 표정이 밝아진 것은, 아무래도 저항력이 올랐다는 시스템 메시지 덕분일 것이었다.
“오오, 조금 건방지긴 하지만, 패기가 마음에 드는 인간이로군.”
프림슨에게 간결하게 대답한 이안은 곧바로 그의 뒤에 따라온 지원군들의 면면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외형이 이안이 예상했던 모양새와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뭐지? 라페르 종족이라고 다 같은 생김새를 가진 게 아닌가?’
이안은 프림슨이 원군을 끌고 온다고 하였을 때, 당연히 비슷하게 생긴 꼬마 도마뱀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안의 앞에 나타난 라페르 일족들은, 프림슨을 제외하면 전부 귀여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몸집도 이안보다 좀 더 큰 수준이었으며, 전반적으로 탄탄한 근육을 가진 이족보행 도마뱀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안의 의문을 느낀 것인지, 프림슨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 이 친구들은 우리 라페르 종족의 전사들이야. 우리 종족을 지켜 주는 고마운 친구들이지. 나와 달라서 좀 놀랐지?”
프림슨의 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되물었다.
“전사? 너는 전사가 아니야?”
프림슨이 맨들맨들한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하였다.
“난 태생적으로 학자의 핏줄을 가지고 태어났어.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오직 언령 마법을 연구하는 일. 난 싸움을 할 줄 몰라.”
싸움을 할 줄 모른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안은 곧바로 카카가 떠올랐다.
‘그럼 저 친구도 지능 몰빵에…… 한 대 잘못 맞으면 비명횡사 할 수준의 스텟인 건가?’
하지만 이안의 생각은, 더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생성됨과 동시에, 다음 연계 퀘스트가 떠올랐으니 말이었다.
띠링-!
-‘언령 마법의 비밀Ⅰ(히든)(연계)’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달성도 100퍼센트/추가 달성 0퍼센트
-용족 ‘라페르’종족 공헌도를 200만큼 획득하였습니다.
-‘언령 마법의 비밀Ⅱ(히든)(연계)’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그리고 추가 달성 0퍼센트라는 수치를 본 이안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표기된 난이도에 비해 시간 내 클리어가 어려웠던 이유를 이제는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으니 말이다.
‘차원 마력 저항력을 좀 올려 놓고 퀘스트를 천천히 진행했더라면, 추가 달성 보상도 충분히 받았을지도…….’
하지만 적어도 퀘스트에 실패하지는 않았으니, 그렇게까지 아쉬울 것은 없는 상황.
‘반나절 내로 이 저항력 스텟이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오르는 건지 파악해 내야겠어. 저항력만 100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균열 맵 전체를 씹어 먹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던 이안은 새로 떠오른 연계 퀘스트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연계 퀘스트의 내용은 무척이나 간결하였다.
-‘언령 마법의 비밀Ⅱ(히든)(연계)’
당신은 거신족 정찰병들을 처치하여 가진바 용맹과 능력을 입증하는 데 성공하였다.
……중략……
하여 이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라페르 일족의 전사들을 도와 첫 번째 광맥을 탈환하는 것.
최대한 열심히 활약하여, 라페르 일족의 광맥 탈환을 돕도록 하자.
전투에서 당신이 기여한 정도에 따라 라페르 일족으로부터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B+~S+ (초월)
퀘스트 조건 :‘중간자’의 위격을 획득한 자.
‘균열의 지도’ 아이템 보유.
‘언령 마법의 비밀Ⅰ(히든)(연계)’ 퀘스트 클리어.
클리어 조건 : 첫 번째 광맥을 지키는 거신족 섬멸/전투 기여도 10퍼센트 이상 달성.
*초과 달성 시 추가 보상을 받습니다.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용족 ‘라페르’ 종족 공헌도 +300
*클리어 조건 추가 달성 시 전투 기여도 1퍼센트당 10의 공헌도 획득.
최종 보상 : ‘마력의 심장’ 아이템 획득.
용족 ‘라페르’종족 공헌도 +500획득.
명성(초월) +500
*거절하거나 포기할 시 소멸되는 퀘스트입니다.
(페널티 없음)
‘난이도가 B+에서 S+까지 범위 설정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NPC들과 함께 하는 퀘스트이기 때문이겠지?’
전투 기여도가 10퍼센트라는 것은 광맥을 지키는 거신족의 일할만 처치하면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마 최소한의 클리어 조건 달성 난이도가 B+로 설정된 것일 터였다.
‘적극적으로 싸움에 가담할수록 난이도는 더 올라가는 것일 테고…….’
퀘스트 창을 꼼꼼히 확인하는 이안을 향해, 프림슨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자, 그럼 광맥을 탈환하기 위해 곧바로 움직여 보자고.”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프림슨의 뒤를 따랐다.
“그러도록 하지. 후딱 해치워 버리자.”
멀찍이 보이는 거신족들을 한차례 응시한 이안의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 * *
프림슨을 따라 거신족 진영 안쪽으로 조금 움직이자, 첫 번째 광맥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안의 체력과 정신력을 시험하는 지옥 같은 전투가 시작되었다.
후욱- 후욱-.
그나마 차원 마력 저항력이 9포인트가 오른 덕에 첫 번째 연계 퀘스트를 진행할 때보다는 한결 거동이 편해졌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온몸을 짓누르는 차원 마력의 힘은 계속해서 이안의 체력 소모를 가속화 시킨 것이다.
하지만 몸이 힘들지언정, 이안의 정신력은 점점 더 또렷해져 갔다.
탐구해야 할 대상과 목표가 생겼으니 말이었다.
‘한계를 넘을수록 더 많은 저항력을 얻을 수 있다니…….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때까지 미친 척하고 한번 싸워 봐야겠어.’
첫 번째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떠올랐던 시스템 메시지의 내용 중 이안이 생각하는 키워드는 두 가지 정도였다.
그것은 바로 ‘한계 이상의 움직임’이라는 단어와 ‘달성률’이라는 단어.
이 두 가지 단어의 의미를 파악한다면, 시스템 구조를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달성률이 높아질수록 시간 대비 얻을 수 있는 저항력이 높아지는 것 같은데…….’
이안은 우선 수치화되어 있는 ‘달성률’에 주목하였다.
달성률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가, 이 저항력이라는 스텟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분명 균열 안에서 머문 시간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처치한 적의 숫자에 비례한 것도 아니야.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여 이안이 주목한 것은, 바로 카일란의 시스템 중 하나인 ‘피로도’였다.
‘한계 이상의 움직임’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피로도 한계치에서의 움직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유추한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광산 탈환에 성공했을 무렵, 이안은 점점 더 확신을 갖기 시작하였다.
-차원 마력의 압박 속에서 한계 이상의 움직임을 달성했습니다.
-달성률 : 428퍼센트
-달성률이 적용되어 ‘차원 마력 저항력’ 능력치가 15만큼 증가합니다.
-현재 차원 마력 저항력 : 25
-차원 균열의 힘으로 인한 압력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둔화 효과가 6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42.5퍼센트 → 36.5퍼센트)
-‘차원 마력 저항력’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저항력이 4.5퍼센트만큼 회복됩니다. (-25.5퍼센트 → -21퍼센트)
-역류하는 차원의 힘에 조금 더 적응하였습니다.
-움직임이 가벼워집니다.
열 명의 정찰병을 처치할 때보다 오히려 더 짧은 시간동안 전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차원 마력 저항력 능력치는 훨씬 많이 획득하였으니 말이었다.
‘역시 최대 피로도에서 쉬지 않고 전투를 감행하니, 저항력이 훨씬 빨리 오르는 거였어.’
예상했던 대로 시스템이 움직이는 게 보이자, 이안은 점점 더 신이 나기 시작하였다.
피로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최대치를 찍고 있었지만, 왠지 몸은 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마치 마라토너들이 체력의 한계에 달했을 때 마지막 순간에 경험할 수 있다는, 그런 쾌감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허억, 허억, 폐하, 존경스럽습니다.”
“후우……. 내 주군이지만 정말 대단하군.”
항상 건방짐을 잃지 않던 카이자르조차 경의(?)를 표할 정도였으니, 이안이 얼마나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언령 마법의 비밀Ⅱ(히든)(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전투 기여도 : 12.5퍼센트
-용족 ‘라페르’ 종족 공헌도를 300만큼 획득하였습니다.
-기여도 추가 달성으로 인해, 25만큼의 공헌도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언령 마법의 비밀Ⅲ(히든)(연계)’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피로도로 인한 움직임의 한계 때문에 추가 공헌도는 많이 획득하지 못했지만, 이안은 이제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디버프로 인한 움직임의 제약이 눈에 띄게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으니, 배가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안,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다음 광맥을 공략하는 건 조금 쉬었다가 할까?”
NPC인 프림슨마저 이안이 걱정되는 것인지 잠시간의 휴식을 제안하였지만 이안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소리! 다섯 번째 광맥까지 스트레이트로 탈환하자고.”
“허허, 뭐 그렇다면야…….”
프림슨은 그의 근성에 혀를 내둘렀지만, 사실 이것은 이안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쉬는 순간 피로도가 떨어질 것이었고, 그럼 같은 시간 대비 얻을 수 있는 저항력의 수치가 줄어든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자, 이대로 광맥 다섯 개 전부 탈환할 즈음 되면……. 거의 80~90까지 저항력을 올릴 수 있겠어.’
하여 이안과 라페르 일족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광맥을 탈환하였다.
그 과정에서 솔바르로부터 받은 ‘C. 거신족 정찰대장 처치’ 퀘스트까지 완료할 수 있었으니 이제 솔바르의 퀘스트 중에 남은 것은 ‘B. 거신족 보급창고 파괴’ 퀘스트뿐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다리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들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기 그지없는 상황!
-현재 차원 마력 저항력 : 42
-현재 차원 마력 저항력 : 57
……중략……
-현재 차원 마력 저항력 : 75
수직상승하는 저항력을 확인하자, 이안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크, 이제 슬슬 디버프가 걷혀 나가는 게 느껴지는구먼.’
그리하여 마지막 광산을 탈환하고 여섯 번째 연계 퀘스트까지 완수한 그 순간.
띠링-!
-달성률이 적용되어, ‘차원 마력 저항력’ 능력치가 15만큼 증가합니다.
-현재 차원 마력 저항력 : 90
이안은 정확히 90의 차원마력 저항력을 달성할 수 있었고…….
“수고했어, 이안. 너 정말 근성이 대단하구나?”
“그대의 용맹과 정신력에 감탄했소. 덕분에 광맥을 다섯 개나 확보할 수 있었으니, 장로님들께서 무척이나 기뻐하실 것이오.”
쏟아지는 라페르 일족의 칭찬 속에 이안은 라페르 일족의 첫 번째 시험을 깔끔히 통과할 수 있었다.
“후후, 별말씀을.”
무려 여섯 개의 연계 퀘스트를 단 하루 만에 완수해 버린 이안.
그리고 이것은, 루가릭스가 당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거의 다섯 배에 가깝게 빠른 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 이 연계 퀘스트들은, 하나를 클리어하고 나면 피로도가 전부 회복될 때까지 쉬도록 의도하여 기획된 퀘스트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