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4화 3. 철갑신룡(鐵甲神龍) (5) >
* * *
격렬한 전투 끝에, 이안의 소환수 대부분이 빈사 상태가 되었다.
물론 그 이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비룡들을 쓸어 담기는 했으나, ‘중간자’가 된 이후 가장 극한의 상황에 몰렸다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이다.
최전방에서 비룡들을 상대하던 라이, 카르세우스, 뿍뿍이 등이 생명력이 다해 강제로 역소환되었으며, 심지어 이안과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사망한 적 없던 카이자르마저도 비룡들의 합공에 고혼이 되어 버렸다.
“크으윽, 한낱 미물들 따위에게……!”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소환할 수 있게 되는 소환수들과 달리, 부활시키려면 신전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가신들.
때문에 이안은 지금껏 어떻게든 가신이 사망하는 것은 막아 왔으나, 이번만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미안하다, 카이자르.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카이자르가 들을 수도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이안은, 전황을 빠르게 살피기 시작하였다.
다시 살려 낼 수 있는 가신이 사망했다고 때문에 슬퍼하기에는, 전장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빠르게 전장을 스캔한 이안은, 후방에 공간이 생길 때마다 새로 유입되는 비룡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더럽게도 많네.”
이제 이안에게 남은 전력은 까망이와 엘카릭스, 그리고 헬라임 정도.
그에 더해 항상 이안의 등 뒤를 따라다니는 마그비와 카카까지.
왜인지 시야 구석에 찍혀 있는 타이머를 힐끔 살핀 이안이, 양 주먹을 불끈 쥐며 기합을 넣었다.
“좋아. 지금부터 딱 3분만 더……. 마지막을 불태워 보자!”
이안이 허공을 향해 창대를 번쩍 치켜들었고, 그 순간 이안의 뒤에서 포롱포롱 부유하던 카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어서 카카는 양손을 모으며 눈을 감았고, 전장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어둠이…… 내린다.”
고오오-!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의 옆에 있던 헬라임과 까망이의 그림자가 동시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파앗-!
어둠을 타고 다니며 적을 베어 넘기는, 헬라임의 고유 능력 ‘다크 비전’과…….
히이잉-!
즉발형 돌진 기술인 까망이의 고유 능력 ‘어둠의 날개’가 동시에 발동된 것이다.
카카로 인해 어둠이 깔린 전장의 안에서 까망이와 헬라임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하였다.
히이잉-!
까망이가 어둠의 날개에 마력 연쇄 폭발을 연달아 시전하며, 순식간에 비룡들을 빈사 상태로 만들어 놓으면…….
쐐애애액-!
-소환수 ‘까망이’의 고유 능력 ‘어둠의 날개’가 발동합니다.
-용족 ‘비룡’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비룡’의 생명력이 3,579만큼 감소합니다.
-용족 ‘비룡’이 2.5초 동안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적을 ‘공포’ 상태에 빠뜨려,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1초 감소합니다.
-적을 ‘공포’ 상태에 빠뜨려,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1초 감소합니다.
……중략……
-소환수 ‘까망이’의 고유 능력, ‘마력 연쇄 폭발’이 발동합니다.
-대상이 ‘공포’ 상태에 빠져 있으므로 강력한 추가 피해가 적용됩니다.
-‘비룡’의 생명력이 6,592만큼 감소합니다.
-‘비룡’의 생명력이…….
쾅- 쾅- 콰앙-!
그 위에는 다크 비전을 발동시킨 헬라임의 그림자가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신 ‘헬라임’의 고유 능력 ‘다크 비전’이 발동하였습니다.
-가신 ‘헬라임’이 ‘비룡’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용족 ‘비룡’의 생명력이 7,795만큼 감소합니다.
-가신 ‘헬라임’의 고유 능력 ‘다크 비전’이 발동하였습니다.
-가신 ‘헬라임’의 고유 능력 ‘다크 비전’이…….
지금까지 수없이 합을 맞춰 온 덕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연계되는 까망이와 헬라임의 콜라보.
‘여기에 훈이까지 있었으면 시너지가 더 컸을 텐데……. 조금 아쉽네.’
후방에서 흡족한 표정으로 둘의 합동 공격을 지켜보던 이안이, 옆에 있던 엘카릭스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엘, 배리어는 끝까지 아끼고 있어야 해. 어떤 상황이 와도 까망이만큼은 꼭 지켜 내야 하니까. 알겠지, 엘?”
“까망이만요?”
“당연히 둘 다 살려 내는 게 베스트겠지만, 헬라임보단 까망이가 우선이라는 말이야.”
“네, 아빠……!”
이안의 오더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무슨 뜻이 있겠거니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엘카릭스.
그리고 둘의 대화가 잠깐 동안 이어지는 사이, 헬라임과 까망이는 전장의 더욱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들어갔다.
특히 비룡들의 공격을 유유히 피해 낸 까망이의 그림자는 아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소환수 ‘까망이’가 ‘비룡’의 공격을 회피하였습니다.
-소환수 ‘까망이’의 고유 능력, ‘그림자 회피’가 발동합니다.
-‘까망이’의 상태가 ‘어둠’으로 변환됩니다(조도가 낮은 어두운 환경이므로, 어둠 상태의 지속 시간이 대폭 증가합니다).
-소환수 ‘까망이’의 어둠 속성 공격력이 100%만큼 증가합니다.
-‘까망이’의 생명력이 2,879만큼 회복됩니다.
-‘까망이’의 생명력이 2,879만큼 회복됩니다.
……중략……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서 자신에게 쏠린 어그로를 순간적으로 흩어 버리고, 절반 아래로 떨어진 생명력을 순식간에 회복해 버리는 까망이.
하지만 여기서 끝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림자 회피’로 인해 강화된 어둠 공격을, ‘어둠’ 상태가 풀리기 전에 활용해야 했으니 말이었다.
-소환수 ‘까망이’가 ‘비룡’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용족 ‘비룡’이 2.5초 동안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적을 공격하여 ‘어둠’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소환수 ‘까망이’가 ‘비룡’의 공격을 회피하였습니다.
-소환수 ‘까망이’의 고유 능력 ‘그림자 회피’가 발동합니다.
……후략……
까망이는 강력한 광역기와 대시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 까망이가 진정한 위력을 뿜어내는 것은 ‘그림자 회피’ 고유 능력이 발동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적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이 누적될 때마다 ‘어둠’ 상태에 빠지며, 어둠 상태에서는 모든 어둠 속성 공격의 위력이 2배가 되어 버리니, 그때부턴 같은 공격 스킬을 사용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느낌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동안 이안을 태우고 다니느라 100퍼센트 발휘되지 못했던 까망이의 위력이, 비로소 꽃을 피우고 있었다.
히이잉-!
콰드득!
어두운 전장 여기저기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뛰는 헬라임과 까망이.
하지만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더 지나자, 아직까지도 멀쩡한 까망이와는 달리 헬라임의 생명력은 빠르게 소진되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림자 회피’라는 확실한 생존 기술이 있는 까망이와 달리, 헬라임이 가진 고유 능력은 공격 스킬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타이머를 확인한 이안은 뭔가 결심하기라도 한 듯 아이언을 타고 까망이를 향해 쇄도해 왔다.
‘이제는 진짜로……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아.’
“까망이, 헬라임 태워서 이쪽으로!”
정말 가능한 모든 수를 동원하여 최대한 많은 비룡을 처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수십 마리 이상 남아 있는 비룡들.
비룡들의 사이로 깊숙이 들어간 까망이와 헬라임을 살려 내기 위해, 이안은 마지막으로 엘카릭스의 배리어를 시전하였다.
“엘, 드라고닉 배리어!”
그러자 이안의 앞, 아이언의 등에 앉아 있던 엘카릭스의 양손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우우웅-!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소환수들이라도 데리고 이 둥지 바깥으로 탈출하려는 것인지, 빠른 속도로 까망이와 헬라임을 향해 마주 달리기 시작하는 이안.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안의 의도가 ‘탈출’이 아님은 명백히 알 수 있었다.
만약 정말 탈출을 하려 했더라면 배리어를 발동시키고 까망이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에 있는 통로의 출구를 향해 도주했어야 하니 말이다.
지금 이안의 행동은, 결국 적진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쐐애액-!
아직까지도 ‘급가속’ 버프를 유지하고 있는 아이언의 날개가 거친 바람소리를 내며 비룡들의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
쿵-!
통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나무줄기에 착지한 아이언이, 허공에 대고 거칠게 포효하였다.
크롸아아-!
이어서 헬라임을 태우고 도착한 까망이가 이안의 앞에 가뿐히 내려앉았다.
히이이잉-!
타탓-.
그리고 전장의 중앙에 내려앉은 이안은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하는 비룡들을 여유롭게 둘러보았다.
이안 일행의 주변을 둘러싼 비룡들은 마치 엘카릭스의 배리어가 풀리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건지, 입을 쩍 벌린 채 이안 일행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휘유, 그래도 이제 추가 유입되는 비룡들은 더 없는 것 같네.’
수많은 비룡들에게 포위당한 와중에도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한 이안은, 날카로운 눈으로 전장의 상황을 꼼꼼히 파악하였다.
“이 정도면 이제 충분히 다 잡아 볼 수 있겠어.”
전멸 직전의 극한까지 몰린 상황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이안.
아이언의 바로 옆까지 다가온 까망이의 갈기를 한차례 쓰다듬어 준 이안이, 까망이를 향해 낮은 어조로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까망아.”
히이잉-!
“준비됐지?”
푸릉- 푸릉-!
그리고 더 이상 이안이 노닥거리는 것을 봐줄 수 없다는 듯, 크게 벌린 입으로 숨결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는 십수 마리의 비룡들.
하지만 위협적으로 이빨을 들이미는 비룡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어쩐 일인지 타이머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맞춰 두었던 타이머가 제로에 수렴하는 순간.
-00:00:00
팅-!
이안은 기다렸다는 듯, 까망이를 마주보며 손가락을 퉁겼다.
“지금이야!”
그리고 이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히힝- 히이이잉-!
우렁창 까망이의 투레질 소리가 울려 퍼지며, 던전 안에 거대한 어둠의 기운이 휘몰아쳤다.
우우웅-!
고오오오-!
마치 시공간이 구겨지기라도 하듯, 혹은 지금 이안이 딛고 있는 던전의 통로가 하나의 거대한 포탈이 되기라도 한 듯 소용돌이 모양으로 일그러진 공간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는 이안의 일행.
화르륵-!
콰아아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비룡들이 뿜어낸 바람의 숨결은 이안 일행이 사라진 빈자리에 쏟아져 내렸으며.
-크릉-?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비룡들은, 사라진 이안의 일행을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이안’의 시간이, 15분 전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어둠의 모래시계(재사용 대기 시간 40분)
아군의 시간을 15분 전으로 되돌립니다.
모든 아군의 생명력과 고유 능력의 활성화 상태가 10분 전으로 되돌아갑니다.
15분 이내에 사망한 모든 아군이 부활합니다.
(모든 소환수, 가신에게 적용됩니다.)
(파티원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