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1화 3. 철갑신룡(鐵甲神龍) (2) >
* * *
비룡의 둥지 안에 쌓여 있을 수십, 수백 개의 ‘비룡의 알’들.
그것을 떠올린 순간 솟아오르기 시작한 흥분을 가까스로 억누른 이안은, 침착하게 둥지를 털기 위한 작전을 개시하였다.
‘일반 비룡도 1천 코인 넘게 팔리니까, 비천룡이 나올 수도 있는 비룡의 알은 오천 코인은 받을 수 있겠지.’
말 그대로 ‘노다지’를 쓸어담을 생각에 연신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이안.
‘아이언’의 등에 올라탄 이안은,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정령왕의 심판을 치켜들고 거침없이 비룡의 둥지를 향해 다가갔다.
모든 능력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한 지금, 고작(?) 초월 50레벨 정도인 비룡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둥지 안쪽까지 뛰어들 생각은 아니었다.
급격히 증가한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먼저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증폭된 공격력으로 비룡을 얼마나 빨리 처치할 수 있는지.
거의 두 배 가까이 빨라진 민첩성에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금의 방어력으로 비룡에게 피격당하면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을지 등등.
이안은 정확한 데이터를 몸으로 체득한 뒤,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지금 비룡의 둥지에 뛰어드는 이안은, 사실 양떼를 노리는 늑대나 다름이 없는 스펙.
하지만 아무리 늑대라고 해도 어설프게 사냥을 개시한다면, 양들의 발굽에 짓밟힐 수 있다는 게 이안의 생각이었다.
둥지의 인근까지 접근한 이안이, 까망이와 핀에게 명령을 내렸다.
“까망아, 핀이랑 같이 저쪽으로 들어가서, 한 너댓 놈만 먼저 끌고 나와 봐.”
푸릉- 푸릉-!
꾸루룩- 꾹꾹!
이안의 명령을 받은 까망이와 핀이, 지체 없이 둥지의 측면을 향해 접근하였다.
비룡들의 이동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사실상 핀과 까망이를 제외한다면 비룡을 유인해 낼 수 있을 만한 소환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까망이조차도 어둠의 날개 고유 능력 없이는 비룡들에게 잡힐 수준이니, 뭐…….’
그리고 잠시 후.
두 소환수를 따라 둥지 안의 비룡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쏟아져 나왔다.
“야이……! 네다섯 정도만 끌고나오라니까……!”
순식간에 열 기 정도의 비룡들이 나타나는 것을 본 이안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이안은 까망이의 뒤를 가장 가깝게 쫓아오는 비룡을 향해 그대로 쇄도하였다.
소환수와 가신들이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빠르게 한 마리씩 처치한다면, 열 마리 정도는 어렵지 않게 잡아낼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원래의 능력치로, 한 초월 30레벨 몬스터 잡는다고 생각하고 싸워 보자.’
부웅- 부웅-!
이안은 손에 든 정령왕의 심판을 풍차 돌리듯 회전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소환수 ‘아이언’의 고유 능력, ‘바람신의 축복’이 발동하였습니다.
-‘아이언’의 공격력이 350(7×레벨)만큼 추가로 증가합니다.
-‘아이언’의 방어력이 350(7×레벨)만큼 추가로 증가합니다.
-‘일체화’ 고유 능력의 효과가 재설정되었습니다.
-공격력이 245만큼 추가로 증가합니다.
-방어력이 245만큼 추가로 증가합니다.
시작부터 기분 좋은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이안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철갑신룡 ‘아이언’의 능력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투 구도를,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그리고 있는 것이다.
‘급가속 고유능력을 15스텍까지 쌓는 게 가장 중요해. 폭풍의 숨결을 쓰던 육탄전을 벌이던, 일단 최대버프 상태를 만드는 게 우선이니까.’
1스텍당 7.5퍼센트만큼이나 민첩성을 증가시켜 주는 ‘급가속’ 고유 능력은 아이언이 몬스터 처치에 기여할 때마다 스텍이 중첩된다.
때문에 지금 이안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이 ‘처치 기여’라는 것의 기준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우선 아이언의 공격 없이 솔로 킬을 한번 만들어 보자. 날 태우고 있는 것만으로도 처치기여 조건이 충족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순식간에 첫 번째 비룡의 지근거리까지 도달한 이안은, 자연스레 ‘약점 포착’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비룡의 목덜미에 붉게 표시된 약점을 향하여, 역수로 거머쥔 창을 있는 힘껏 내질러 틀어박았다.
콰드득-!
-용족, ‘비룡’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근접’ 공격을 성공시켰습니다. 공격의 위력이 1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물리’ 속성의 공격입니다. 공격의 위력이 1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비룡’의 생명력이 32,295만큼 감소합니다!
비천각에서 얻은 ‘파괴의 목걸이’의 부가옵션 덕에, 이안의 창격(槍擊)은 더욱 강력한 위력을 뿜어내었다.
그리고 눈앞에 떠오른 정확한 데미지 수치를 확인한 이안의 두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3만……이라고?’
만 단위 이상의 위력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삼만 이라는 수치가 직접적으로 눈 앞에 떠오르자 놀란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계산을 두들겨 보자, 이안은 금세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래. 공격력이 극대화될수록 대미지 증폭이 커지니까……. 어떻게 보면 이 정도는 당연한 수준이겠네.’
비룡은 원래부터, 방어력이 종잇장처럼 약한 몬스터이다.
때문에 아이언을 탑승하기 전에도 약점을 제대로 공략하기만 한다면, 많게는 1만 가까이 되는 대미지를 뽑아 낸 적도 있었다.
한데 아이언을 탄 지금, 이안의 공격력은 거의 두 배 가까이 강력해졌다.
그에 반해 비룡의 방어력은 거의 그대로였으니, 위력이 세 배 이상 증가하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비룡의 생명력이 많아 봐야 10만이니까……. 세 방 내지 네 방 정도면 한 마리 뚝딱이겠군.’
수백 마리가 넘는 비룡들을 포획해 본 이안은, 비룡의 스펙을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그리고 이안의 예상처럼, 비룡은 창질 서너 방을 버텨내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하고 말았다.
-용족, ‘비룡’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3,590만큼 획득합니다.
-용천주화를 318냥 만큼 획득하였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소환수 ‘아이언’의 고유 능력 ‘급가속’이 발동합니다.
-‘아이언’의 민첩성이 7.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현재 1중첩).
-‘일체화’ 고유 능력의 효과가 재설정되었습니다.
-민첩성이…….
‘역시……!’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창대를 다시 한 번 꽉 말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일체화’ 고유 능력의 버프를 받은 상태에서 몬스터를 처치했기 때문에, ‘처치 기여’ 조건이 여지없이 충족된 것이다.
그리고 더욱 고무적인 것은, ‘급가속’으로 추가된 7.5퍼센트라는 민첩성 수치가 버프를 받은 최종 능력치의 위에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하여 급가속의 스텍이 한 번 쌓일 때마다, 이안은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아이언은 물론이고, ‘일체화’ 효과로 인해 이안의 능력치도 같이 증가했으니 말이었다.
때문에 전투가 이어질수록 점점 더 빨라지는 이안과 아이언은, 순식간에 열 마리의 비룡들을 도마뱀 꼬치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소환수 ‘아이언’의 고유능력, ‘급가속’이 발동합니다.
-‘아이언’의 민첩성이 7.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현재 4중첩)
-‘아이언’의 민첩성이 7.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현재 5중첩)
……후략……
그리하여 둥지 밖으로 끌고나온 모든 비룡들을 전부 처치한 이안은, 더욱 확고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비룡을 상대로 하드코어하게 노가다를 해 온 덕분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비룡을 훨씬 더 수월하게 처치해 낸 것이다.
“여기 있는 비룡 다 잡는데…… 오늘 하루면 충분하겠어.”
이제 더 이상 망설일 것 없어진 이안은, 그대로 둥지의 입구를 향해 직행하였다.
카카를 앞세운 채, 둥지의 동쪽 입구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의 눈앞에, 그를 더욱 기쁘게 만드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그리고 기대하고 있었던 종류의 메시지.
-‘비룡의 둥지’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카일란 최초로 ‘비룡의 둥지’에 입장하셨습니다.
-지금부터 12시간 동안, 모든 경험치와 획득 재화가 네 배만큼 증가합니다.
하지만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이안의 동공은 또 한 번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24시간 동안 두 배’ 라는 거의 고정적인 수치의 최초 입장 버프가 아닌, 새로운 종류의 최초 입장 버프가 발생했으니 말이었다.
게다가 ‘카일란 최초’라는 단어 또한,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단어였다.
* * *
“일처리는…… 확실히 한 거 맞겠지?”
“헤헤, 그렇다니까, 루가릭스 님.”
“저희가 비룡의 협곡 안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실하게 확인했습죠.”
암천궁 구석에 있는 작은 정자.
셋의 어두침침한(?) 외모를 가진 드래곤들이 은밀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흐음, 마카론, 이안이 비룡의 둥지 맵으로 들어간 지 얼마나 지났다고 했지?”
루가릭스의 물음에 마카론이 잽싸게 대답하였다.
“오늘까지 해서, 대략 열흘 정도 지났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어서 옆에 있던 다카론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마 삼일도 버티지 못하고 죽지 않았을까 예상해 봅니다. 비룡의 둥지는 정말 위험한 곳이니까요.”
마카론과 다카론은 암천의 시험관이다.
그리고 시험관들은, 언제 어디서나 수험자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능력에는 예외가 있었으니, 중천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숨겨진 공간’에 수험자가 입장했을 경우였다.
예를 들자면 이안이 입장했던 ‘천비각’이나 지금 들어가 있는 ‘비룡의 둥지’와 같은 곳 말이다.
때문에 마카론과 다카론은 현재 이안의 상태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안이 시험에서 탈락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비룡의 둥지에 들어가서 열흘이 지났다는 건……. 이미 죽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지.’
‘아까운 인재이긴 했지만, 루가릭스 님께 받을 어둠의 보주를 생각하면야…….’
루가릭스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너희들. 만약 이안이 비룡의 둥지에서 살아 나오면, 어디에 있는지 추적할 수 있지?”
그의 물음에, 이번에는 다카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이안이라는 수험자가 다시 살아나올 확률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즉시 알 수 있습니다.”
마카론도 한마디 덧붙였다.
“위치 추적이야 당연히 가능하고요.”
둘의 말을 들은 루가릭스가 신중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렇다는 말은……. 적어도 아직 이안이 그 안에서 나오진 못했다는 말이네?”
“아니, 나오지 못한 게 아니라 이미 사망했을 거라니까요?”
“이안이라는 수험자를 너무 고평가하시는 것 아닙니까?”
거의 확신에 가까운 어조로 이야기하는 마카론과 다카론.
하지만 아직까지도 뭔가 꺼림칙한 모양인지, 루가릭스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불안이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