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9화 2. 비룡 연구가 (4) >
* * *
소르피스 내성의 중앙 광장.
그 북쪽에 만들어진 작은 분수대의 바로 앞에, 뭔가 허름한 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었다.
초보 건축가도 몇 시간이면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을 법한, 허름한 통나무 오두막.
건물의 위치가 내성의 광장에 바로 붙어 있는 알짜배기 입지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오두막은 임시로 지어 놓은 간이 건물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간이 오두막의 작은 문에는 ‘로터스’라고 한글로 쓰여 있는 작은 현판이 박혀 있었다.
“뭐야, 내성에 길드 거점 만들었다고 하기에 삐까번쩍할 줄 알았는데…….”
오두막의 앞에 나타난 붉은 로브의 마법사.
‘홍염의 군주’ 레미르가 투덜거리며 허름한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오두막의 안에 있던 로터스 길드원이 그녀를 반겨 주었다.
“여, 레미르 누나, 왔어?”
“길드 거점 멋있지? 아직 소르피스 내성에 길드 거점 가진 길드는 우리 길드밖에 없다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헤르스의 말에, 레미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하였다.
“아니, 기왕에 지을 거면 좀 크고 멋지게 짓든가. 광장에서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오두막이 웬 말이냐.”
레미르의 말에, 이번에는 헤르스의 옆에 앉아 있던 레비아가 입을 열었다.
“언니, 우리도 크게 짓고 싶었는데, 돈이 없었어요.”
“응? 우리 길드가 돈이 없다고? 그거 참 신박한 사실인데?”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땅이 부족했죠.”
옆에서 훈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 네 평짜리 땅에 지을 수 있는 건물은 이 오두막 말고 없을 거야.”
이안이 소르피스 광장 주변의 땅 여기저기에 알박기(?)를 시전한 뒤 그의 의견을 참고한 헤르스는, 길드의 여유 자금을 탈탈 털어 소르피스성 안에 서른 평 정도의 땅을 매입했다.
광장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입지 좋은 위치에, 30억 골드가 넘는 수준의 거금을 들여 땅을 매입한 것이다.
그런데 서른 평이나 되는 땅을 매입해 놓았으면서, 훈이와 하린은 왜 땅 크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로터스는 딱 네 평의 땅만을 붙여서 매입한 뒤, 나머지 스물여섯 평의 대지는 주변으로 흩뿌리듯 듬성듬성 매입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안의 의견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게 듬성듬성 한 평씩 박아서, 제일 좋은 위치에 일이백 평 정도 확보해 놓자.
-아니, 대체 어떻게 하려고? 길드 유동자금 탈탈 털어도 스무 평밖에 못사는데, 그 사이사이 일흔 평은 언제 사서 메울 건데?
-내가 금방 메워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하아……. 그래. 네가 일흔 평을 살 만한 돈을 금방 벌 수 있다고 치자. 대충 계산해도 70억인데……. 그만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거면, 현금화해서 건물주를 시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음? 나 건물주 하려고 이러는 건데?
-뭐?
-소르피스성 안에 건물 지어서 건물주 할 거야.
헤르스의 이야기를 전부 다 들은 레미르가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입을 열었다.
“아니, 이안이 지금 제일 빠르게 중간계 콘텐츠 선점 중인 건 알고 있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70만 차원코인을 버는 게 가능해?”
“본인 말로는 금방이라던데?”
“…….”
“소환수 한 마리 잡아다가 벌써 만 코인 넘는 가격에 낙찰시켰다고, 충분히 가능할거라며…….”
소르피스 내성의 땅 투기(?)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던 로터스의 길드원들.
하지만 그들의 대화 주제는, 금방 다른 방향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바쁜 로터스의 랭커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데에는,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헤르스, 이번 순위 결정전에 이안이 참전 안 한다는 게 사실이야?”
레미르의 물음에 헤르스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였다.
“어, 그렇게 됐어. 처음에 자기 빼고 나가라고 하기에 농담인 줄 알았는데, 한 사흘 전부터 아예 연락 두절이야.”
유신이 한마디 거들었다.
“며칠 동안 엄청 중요한 일이 있다고 바쁘다던데?”
“아니, 그래도 순위 결정전에는 와야 되는 거 아니야?”
“뭐, 어차피 첫 번째 순위 결정전 성적만 가지고도 128위안에 들어가는 건 사실상 확정이니까,”
영웅의 협곡 순위 결정전.
사실상 이 순위 결정전에 참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매 시즌마다 한 번씩 열리는 카일란 E스포츠 대회에 참전하기 위함이다.
순위 결정전으로 1위~128 안에 들어간 팀들을 모아 월드컵처럼 카일란 컵을 개최하니, 결국 128위 안에만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으음, 뭐 큰 의미는 없긴 하지만, 2차 결정전에 기존 팀으로 참전하면 세계 랭킹 1위로 참전할 수 있을 텐데. 아쉽네.”
“뭐, 128위나 1위나 토너먼트식으로 동일선상에서 경쟁하게 되는 거니까.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자고.”
“맞아. 그리고 이안 형 없어도 이번이 두 번째 트라이니까 지난번보다 더 높은 스코어 기록할 수도 있어.”
“이번에는 이안이 대신 피올란 님 껴서 그럼 트라이해 보자.”
“오케이.”
로터스의 팀원들은, 지난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영웅의 협곡 전략을 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바쁘게 회의를 하고 있던 그 시점.
이 자리에서 자체 열외된 이안 또한, 그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진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새로운 소환수, ‘비천룡’을 획득하셨습니다!
-진화에 실패하셨습니다!
-소환수 ‘비룡’이 ‘진화 불가’ 상태가 되었습니다.
-진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진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진화에 실패하셨습니다!
총 다섯 마리의 비룡들.
그리고 다섯 개의 황금빛 비늘.
하여 다섯 번의 진화를 시도한 결과, 이안은 총 세 마리의 비천룡을 얻을 수 있었다.
잠재력이 높을수록 진화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설명처럼, 제법 높은 확률로 진화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 마리나 되는 비천룡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아직까지도 비룡의 둥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안의 노가다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안은, 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노가다를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비천룡들의 정보 창 중간에 떡하니 띄워져 있는 한 줄의 문구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진화 불가
‘후우……. 이런 함정이 있을 줄은 몰랐지.’
다섯 개의 황금빛 비늘을 전부 소모한 뒤.
이안의 노가다는 벌써 이틀째 더 이어지고 있었다.
다섯 마리의 비룡을 진화시켜 ‘진화 가능’한 비천룡을 얻는 데 실패했으니, 이제는 열 마리 이상 세팅해두고 한 번에 진화시켜 보려는 것이었다.
‘완전체가 아니라 진화 불가인 걸 보면, 분명이 여기서 한 번 더 진화 가능한 개체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인데…….’
만약 이안이 진화 시스템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더라면, 아마 여기서 노가다를 그만뒀을 것이었다.
진화시킨 세 마리의 비천룡이 전부 진화 불가인 것을 보고, 원래 비천룡은 더 이상 진화시킬 수 없는 개체라고 판단하여 황금빛 안장을 일반 비룡에 써 버렸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그 누구보다 진화 시스템에 빠삭한 유저.
그가 생각하기에 분명히 비천룡의 또한 진화 가능 개체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고, 그렇다면 끝장을 보기 전까지 노가다를 멈출 수는 없는 것이었다.
“후우, 비천룡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 보자.”
어차피 노가다하는 동안 포획 중인 수백 마리의 비룡들 또한, 쓸모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비록 진화 불가에 영웅 등급 정도의 소환수라고는 해도, 비슷한 수준의 소환수들이 경매장에서 1천 코인 언저리에는 낙찰이 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한 번에 이안이 가진 물량을 다 푼다면 몇백 코인 정도밖에 받을 수 없겠지만, 그가 그렇게 바보는 아니었다.
‘그리고 진화불가 뜬 전설 등급의 비천룡들은…… 아마 천룡 드라코우 정도의 가격에는 팔 수 있겠지.’
벌어들일 코인만 생각하더라도, 결코 헛된 노가다는 아니라는 것.
인벤토리에 쌓인 황금빛 비늘들을 한번 확인한 이안은, 더욱 마음을 다잡았다.
“딱 스무 마리 정도까지만 진화시켜 보자. 그중에 하나는 건질 수 있겠지.”
일반적으로 ‘진화 가능’ 소환수가 등장할 확률은 1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같은 소환수 100마리를 잡아도, 진화 가능한 소환수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안이 만들려고 하는 비천룡의 경우에는 달랐다.
애초에 비천룡으로 진화하는 비룡들은 잠재력 수치가 무척이나 높은 녀석들이었고, 잠재력이 높을수록 진화가능 옵션이 뜰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니 말이다.
‘전문가’칭호를 활용해 금빛으로 빛나는 소환수를 잡을 때 ‘진화가능’ 소환수가 뜰 확률이 훨씬 높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는 것.
여하튼 그러한 이유로, 이안은 스무 마리 정도 돌렸을 때 한 마리 정도는 충분히 진화 가능한 녀석을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고, 노가다의 강도를 더욱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닷새 정도 비룡의 둥지에 상주한 결과.
우우웅-!
이안은 드디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진화이펙트를 영접(?)할 수 있었다.
띠링-!
-‘황금빛 비늘’ 아이템을 사용하였습니다.
-소환수 ‘비룡’이 비늘을 탈피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제발……!”
-강렬한 바람의 힘이, 비룡의 주변에 깃들기 시작합니다.
“……?”
-소환수 ‘비룡’이, 황금빛 비늘의 힘을 완벽히 흡수하였습니다.
-비룡의 날개에 바람의 축복이 내립니다.
-진화에 대성공하셨습니다!
-새로운 소환수 ‘비천룡’을 획득하셨습니다!
비천룡을 얻었다는 마지막 메시지 자체는 다를 것이 없었으나, 이안은 허겁지겁 새로 얻은 비천룡의 정보창을 확인하였다.
‘대성공’이라는 문구 자체도 처음이었지만, 진화 이펙트 자체가 이전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비천룡의 정보 창에 떠 있는 한 줄의 문구를 확인한 순간.
-진화 가능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져 있던 황금빛 안장을 꺼내어 들었다.
“가자! 이 기운 받아서 2단 진화 가즈아!”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방금 진화한 비룡의 앞에서 곧바로 ‘황금빛 안장’ 아이템을 사용하는 이안.
파앗-!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황금빛 안장’ 아이템의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황금빛 안장’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황금빛 안장’을 사용하여, 소환수 ‘비천룡’의 진화를 시도하시겠습니까? (Y/N)
-사용된 ‘황금빛 안장’ 아이템은 소멸되며, 소환수의 진화가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단숨에 지난 일주일을 날려 버릴 수 있다는 서슬 퍼런 경고 문구가 떠올랐으나, 이미 마음을 정한 이안은 거칠 것이 없었다.
“못 먹어도 고! 아니, 못 먹을 리 없어. 무조건 먹을 거야!”
우우웅-!
이안이 오케이 사인을 넣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황금빛 안장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장식품처럼 작은 크기였던 안장이, 황금빛을 뿜어내며 거짓말처럼 비룡의 등에 꼭 맞게 안착하였다.
척- 처척- 척-!
마치 3D 영화에 등장하는 변신 로봇처럼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외형이 변화되는 비천룡.
하지만 이안은 그 멋들어진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센 척(?) 하며 지르기는 했지만.
막상 질러 놓고 나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 나머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후.
진화 이펙트로 인해 퍼져 나오던 요란한 소리가 잦아들고 나자, 이안은 조심스레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이안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노가다의 결실을 알리는 한 줄의 메시지였다.
-진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새로운 소환수, ‘철갑신룡(鐵甲神龍)’을 획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