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6화 2. 비룡 연구가 (1) >
가까이서 본 흑발의 소년들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앳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안보다 약간 작은 키에, 십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 얼굴.
그리고 그런 외모와 무게 잡는 말투는, 뭔가 상당히 언밸런스하였다.
때문에 새어 나오려던 실소를 가까스로 삼킨 이안이 두 소년에게 물었다.
“암천의 시험관이라……. 그게 뭐 하는 건데?”
이어서 기다렸다는 듯, 마카론과 다카론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시험관에게 반말을 하는 수험자라니, 제법 건방지군.”
“시험관에게 예를 갖추라, 인간!”
나름 노기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안을 추궁하는 두 소년.
쉬지 않고 사냥하는 이안 탓에 덩달아 피폐해진 두 시험관은 나름의 화풀이(?)를 해 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안에게, 그런 것이 통할 리가 없었다.
이안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어 대꾸하였다.
“대충 봐도 동생처럼 보이는데, 존댓말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
“그게 무슨……!”
“게다가 꼬꼬마 주제에 할배 말투 흉내 내는 너희가 더 건방지거든?”
이안의 반격에 적잖이 당황한 두 소년의 동공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단언컨대 머리털 나고 지금까지, 두 소년은 이런 종류의 인간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분노(?)에 부들부들 떨며 이안을 향해 대꾸하였다.
“하, 할배 말투라니! 이것은 근엄한 말투…….”
“감히 수험자가 시험관의 위엄을 해치려 들다니!”
하지만 이안에게 그런 말들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눈치 없는 뿍뿍이도 알 법한 사실이었다.
“시끄럽고, 암천의 시험관이 뭔지나 알려 달라니까? 나 바쁜 사람이야.”
이안의 말이 한마디씩 이어질 때마다, 점점 더 혼미해지는 두 소년의 표정.
가까스로 멘탈을 재정비한 마카론이 이안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우리의 역할은…… 그대가 우리 암천의 동료가 될 자격이 있는지, 그것을 심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옆에 있던 다카론도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수험자인 그대는 지금 엄청나게 실수하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오호.”
둘의 말에, 처음으로 살짝 놀란 표정이 된 이안.
그리고 드디어 이안에게서 원했던(?) 반응을 얻어 낸 두 드래곤은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이제야 상황파악이 되었나 보군, 인간.”
“후후, 잘못을 반성한다면 이번 한 번 정도는 용서해 주도록 하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이어진 이안의 말에, 두 시험관은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시험관이라……. 그럼 너희 둘이, 날 합격시키거나 탈락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거야?”
“그, 그건……!”
“역시 아닌가 보네.”
“크윽……!”
“아까도 말했지만 나 바쁜 사람이니까 할 말 있으면 얼른 해 줘.”
이안에게 다시 주도권을 뺏긴 두 드래곤은 약이 오르는지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이게 아닌데…….’
‘강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무슨 말로 반격을 해야 이 건방진 인간으로부터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을지 머릿속에 떠오르질 않았다.
게다가 이안은,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뭐야, 할 말도 없는데 나타나서 무게 잡은 거야? 나 그럼 일 보러 간다?”
“자, 잠깐!”
“기다려!”
지금 이안을 이대로 보낸다면, 둘은 언제 또 그의 앞에 나타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두 번의 기회가 더 있기는 하지만, 이안의 생명력이 언제 또 절반 밑으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다급해진 두 시험관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용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어쨌든 루가릭스와 약속한 게 있으니, 그로부터 받은 임무(?)는 수행해야 했으니 말이다.
“큼, 커흠……!”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마카론은 이안이 도망갈 새라 빠르게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그대의 활약상을 지켜 본 바, 우리 시험관들은 그대의 뛰어난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뜬금없이?”
“그리하여 우리들은, 특! 별! 히! 그대에게 이 암천곡의 비밀을 몇 가지 알려 주려 한다.”
“오오.”
생각지도 못했던 마카론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 이안.
그리고 그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질수록, 이안의 동공은 점점 더 확대되었다.
* * *
마카론과 다카론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 이안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갑자기 나타나더니 이런 꿀 같은 정보를 그냥 주고 사라진다고?’
카일란에서 거의 대부분의 보상들은,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했을 때 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게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안에게 필요했던 정보들을 때맞춰 완벽하게 던져 주고 간 마카론 형제의 행위에는, 원인이랄 만한 것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물론 마카론이 그 이유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그리 명쾌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내 활약을 지켜봤고,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서 비밀정보를 주고 간다고? 아무리 봐도 엄청나게 허술한 이유잖아, 이건?’
루가릭스와 마카론 형제 사이에 있었던 모종의 협약에 대해 알 길이 없는 이안으로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것.
심지어는 함정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수준이었지만, 이안은 일단 마카론이 알려 준 스팟으로 움직여 보기로 하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굳이 저 시험관 형제가 자신에게 거짓을 이야기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동으로 1,279 북으로 250이라……. 그 어리버리한 친구 말에 의하면, 한 10분 정도만 더 이동하면 비룡의 군락을 찾을 수 있단 말인데…….’
이안은 최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미니 맵에 표시한 목적지를 향해 조심스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일행의 가장 앞에서 길을 여는 것은, 언제나 카카의 몫이었다.
포롱- 포롱-.
작은 날개를 열심히 움직이며, 험준한 협곡의 지형을 뚫고 움직이는 카카의 든든한 뒷태.
그리고 잠시 후, 카카의 수정구를 통해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확인한 이안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헐, 진짜였잖아?”
* * *
암천곡의 지형은 무척이나 변화막측하다.
재질을 알 수 없는 시커먼 덩어리들로 만들어진 험준한 지형들이, 구불구불하게 계속 이어지는 형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듯 이안 일행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두 눈을 의심케 할 만한 것이었다.
“와……. 그 삭막한 협곡 사이에 어떻게 이런 곳이 존재하지?”
마치 어둠 속 한편에서 빛과 함께 등장했던 천비각처럼 어둠으로 가득 찬 협곡의 사이를 지나 모습을 드러낸, 새하얀 빛으로 뒤덮인 널따란 평원.
그리고 그 가운데 솟아 있는 거대한 황금빛의 나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위용을 뿜고 있었다.
“카카, 가까이 가서 확인해 봐. 아무래도 저기가 비룡의 군락인 것 같거든.”
이안의 명령에, 카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포롱포롱 날갯짓을 시작했다.
“알겠다, 주인. 잠깐만 기다려라.”
그리고 잠시 후.
카카의 수정구를 통해 전송된 군락의 광경은, 이안을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저 날렵하게 생긴 날도마뱀들이 비룡이겠지? 대체 저 안에 몇 마리가 있는 거야?’
온통 황금빛 비늘로 물들어 있는 멋들어진 비룡의 생김새는 차치하고라도, 군락 안에 모여 있는 비룡들의 숫자가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카카의 수정구를 통해 한 화면에 보이는 비룡들만 어림잡아도, 최소 스무 마리 이상은 되어 보이는 것.
그렇다고 초월 레벨이 드레이크들보다 월등하게 낮은 것도 아니었다.
-비룡/등급 : 영웅(초월)/Lv45(초월)
-비룡/등급 : 영웅(초월)/Lv51(초월)
……후략……
“하아, 저거 포획하려면,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한두 마리씩 유인해서 작업해야겠는데…….”
심지어 좀 더 깊숙이 들어간 카카가 나무 안쪽을 수정구로 비추자, 이안은 더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카카가 비춘 화면에는, 개당 용천주화 7만 5천냥 짜리라던 비룡의 알이, 수십 개도 넘게 널려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저 많은 비룡들을 처치하고 나무에 오를 수만 있다면, 단숨에 수십만 냥이 넘는 용천주화를 버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
두근- 두근-.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계산까지 끝낸 이안은, 벌렁이는 심장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제기랄. 여긴 노다지야. 위험해도 무조건 공략해 내야 해.’
그동안의 노가다로 충분히 많은 성장을 이뤘다고는 하지만, 지금 저 안에 들어간다면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10분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이 노다지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일단 저 둥지 안을 바로 공략하는 건 지금으로선 무리야.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서, 우선 한 마리라도 포획해 봐야겠어.’
마음을 굳힌 이안은, 비룡의 둥지 주변을 꼼꼼히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실수하여 다수의 비룡들이 끌려나와 위험한 상황에 빠지더라도 어떻게든 상대해 낼 수 있을만한 좁은 지형을 물색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용족 치고는 확실히 몸집이 작은 녀석들이지만, 날개는 몸체에 비해서 엄청 크단 말이지.’
멀리서 관찰한 비룡의 날개는, 양옆으로 펼쳤을 때 5미터도 넘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때문에 횡으로 협소한 공간을 찾아 잘 유인할 수만 있다면, 다수의 비룡들이 협공해 와도 능히 대처할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지형물색을 끝내고 머릿속으로 작전구상을 마친 이안이, 가신들과 소환수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카이자르, 헬라임.”
“왜 부르냐, 주군 놈아.”
“예, 폐하.”
“내가 저쪽에서 비룡들 몰아올 테니까 공격력 분산시키지 말고, 한 놈 한 놈 최대한 빨리 처치하는 게 관건이야. 알겠지?”
“걱정하지 마라. 저런 날도마뱀 따위 한 칼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한 놈은, 죽이지 말고 기절시켜 주면 좋겠어. 가능하겠지?”
“명을 받듭니다.”
“빡빡이는 도발 아꼈다가 도망치려는 놈 있으면 발동시켜서 퇴로 차단하고.”
-알겠다, 주인.
“토르, 너는 여차하면 이쪽 암벽 두들겨서 협곡 막아 버릴 준비하고 있어야 해.”
드륵- 드르륵-!
“엘이야 뭐 알아서 잘 서포팅해 줄 거라고 믿고……!”
“물론이죠, 아빠!”
모든 명령을 내린 이안은 머릿속으로 한차례 전투를 시뮬레이션해 본 뒤, 크게 심호흡하였다.
‘처음부터 둥지 안의 알을 노리는 건 안 돼. 일단 최대한 많은 비룡을 포획하는 걸 목표로 하자.’
알도 알이었지만, 어쨌든 지금 이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비룡’이라는 새로운 소환수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캐내는 것이었다.
이안이 가진 황금빛 안장은 단 한 개뿐이었고, 그 말인 즉 진화시킬 수 있는 비룡 또한 한 마리뿐이라는 말이었으니.
최대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단 한 마리의 비룡을 뽑아 내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인 것이다.
‘일차 목표는 비룡 전문가 칭호야. 그걸 얻고 나면 공략할 수 있는 길이 어떻게든 보이기 시작하겠지.’
한 종류의 소환수를 한계 이상으로 많이 포획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칭호인 ‘전문가’칭호.
처음 라이를 잡을 때 늑대를 연구했던 것처럼 바야흐로 이안의 ‘비룡’연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