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695화 (705/1,027)

< 695화 1. 루가릭스의 제안 (5) >

* * *

암천곡의 깊숙한 어둠 속.

세 구의 그림자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앗, 루가릭스 님!”

“어엇, 근신 기간은 끝나셨나 보네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자식들아, 형이 도와주러 왔지.”

그림자들의 정체는, 마카론과 다카론. 그리고 방금 도착한 루가릭스.

하지만 마카론과 다카론은, 딱히 루가릭스가 반갑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해 보세요. 왜 오신 겁니까?”

“저흰 딱히 도움은 필요 없…….”

그리고 마카론 형제의 문전박대(?)에, 루가릭스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우씨, 아렌이 보내서 왔다. 아렌이 너희 도와주라고 했다고.”

하지만 더욱 표정이 나빠진 것은, 루가릭스보다 오히려 마카론 형제들이었다.

“하아, 아렌 누나는 대체 왜…….”

“이건 음모야…….”

“야, 마카롱, 너 자꾸 그러면 재미없을 줄 알아.”

“아니, 제 이름은 마카론이라구요. 지난번부터 왜 자꾸 마카롱이라고 부르시는 겁니까? 마카롱이 대체 뭔데요?”

“동그랗고 달달해서 맛있게 생긴 거 있어.”

“……?”

“예전에 하린이라는 인간이 만든 마카롱을 먹어 본 적이 있었지.”

“하아…….”

어쨌든 그렇게 잠시 동안 마카롱(?) 형제와 반가움을 나눈 루가릭스는 아예 그들의 옆에 자리를 잡고는 참견을 시작하였다.

사실 그가 여기 온 것은 아렌이 시켜서라기보다, ‘심심해서’라는 이유가 더 컸으니 말이었다.

‘혼자 돌아다녀 봐야 무슨 재미겠어? 얘들 따라다니는 게 훨씬 재밌겠지.’

“마카롱.”

“예, 루가릭스 님.”

“이 근방 어딘가에 암천궁의 시험을 치르고 있는 인간이 있는 거지?”

루가릭스의 물음에, 두 형제 드래곤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대답이 흘러나왔다.

“네, 맞습니다. 방금 전까지는 바로 요 앞에 있었고, 방금 저 협곡 안으로 들어갔죠.”

“맞습니다. 지금 그 인간 때문에 아주 골치예요.”

“골치?”

마카론의 대답에 흥미가 동한 루가릭스가 눈을 크게 뜨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인간에게 특별한 뭔가가 있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골칫거리면 너희가 탈락시켜 버리면 되지 않아? 그 정도의 권한은 있잖아.”

루가릭스의 물음에, 옆에 있던 다카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하였다.

“아뇨, 저희에게 그런 권한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의미에서의 골치가 아니에요.”

“그럼?”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어차피 이안을 지켜보는 일밖에 할 일이 없는 마카론과 다카론은 수험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에 대해 침을 튀기며 설명하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이야기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루가릭스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지고 있었다.

두 드래곤 형제가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수록, 루가릭스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길쭉한 황금빛 창을 쓰는데, 창술이 진짜 예술이에요. 카미레스 기사단장 보는 줄…….”

“맞아요. 대충 봐도 초월 능력은 아직 허접해 보이는데, 이 협곡에 있는 드레이크들을 창술 하나로 농락하듯 구워 삶더라니까요.”

“아니, 창술도 창술인데. 어떨 때는 갑자기 화살을 막 쏘기도 합니다.”

“와, 맞아. 나 연사 속도 그렇게 빠른 활은 처음 봤어. 무슨 화살 대여섯 개가 거의 붙어서 날아가더라니까요.”

두 형제의 묘사를 들은 루가릭스는 자꾸 누군가가 떠올랐지만 머릿속으로 부정하였다.

‘설마 이안은 아닐 거야. 그놈이 창도 잘 쓰고 활도 제법 잘 쏘지만, 어쨌든 녀석은 소환술사니까.’

머릿속으로 현실 부정을 시작한 루가릭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마카론을 향해 물었다.

뇌리에 자꾸 떠오르는 그 인간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대체 뭐 하는 놈인데? 창기사야? 아니면 궁수?”

하지만 이어진 마카론의 대답은 루가릭스의 기대를 산산이 부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분명히 자운곡에서 날아온 정보에는 소환술사라고 써 있었는데, 전투 스타일만 보면 절대로 소환술사가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싸우는 소환술사는 고대 사막부족 셀라무스 일족 말고는 처음 봤어요.”

“세, 셀라무스……!”

이안은 셀라무스 일족의 인정을 받은 소환술사이다.

루가릭스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쯤 되자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더 이상 그러기는 쉽지 않았다.

“후…….”

루가릭스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둘에게 묻기 시작하였다.

“야, 마카론.”

“예, 루가릭스 님.”

“혹시 그 인간, 요상하게 생긴 거북이 한 마리 끌고 댕기지 않디?”

그리고 루가릭스의 말에, 마카론 형제는 두 눈이 동그래져서 동시에 대답하였다.

“아, 아니 그건 대체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용족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상한 대두 거북이! 막 걸을 때마다 뿍뿍 소리도 나던데…….”

본인의 질문으로 인해 아예 확인사살까지 당한 루가릭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마카론 형제는 눈치 없이 계속해서 질문하였다.

“루가릭스 님, 혹시 아는 인간이세요?”

“그 거북이는 대체 어떻게 용족의 냄새가 나는 거죠? 생긴 걸로 봐서는 분명히 귀룡도 아니었는데…….”

그리고 체념한 듯한 루가릭스의 대답이 천천히 이어졌다.

“왜냐면 그 이상한 거북이가 바로 심연의 종족이거든.”

“에엑?”

“서, 설마. 어비스 드래곤……?”

루가릭스는 눈치 없는 두 형제를 한 대 때려 주고 싶었으나, 꾹 참기로 하였다.

‘후, 이렇게 되면 얘들한테 부탁할 게 있으니, 한 대 때려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떻게 하면 이안을 피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던 루가릭스는 두 형제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너희들.”

“예.”

“말씀하세요.”

“내가 너희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거든.”

“……!”

건방짐의 상징과도 같은 루가릭스의 입에서 ‘부탁’이라는 비현실적인 단어를 들은 두 형제는, 당황한 표정이 되어 반문하였다.

“부, 부탁을요?”

“지금 부탁이라 하셨습니까?”

그에 루가릭스는,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래, 부탁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중요한 부탁.”

“……!”

마카론과 다카론을 한 번씩 번갈아 응시한 루가릭스는, 전에 없던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일단 결론부터 먼저 말해 주자면, 저 인간을 어떻게든 시험에서 탈락시켜야 해.”

덩달아 진지한 표정으로 루가릭스의 말을 듣던 두 형제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어이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대체 왜요? 이런 인재를 다른 가문에 빼앗기면 천주께서 엄청 노하실 텐데요?”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루가릭스는 당황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걸 감수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래, 이것들아.”

“……!”

“책임은 내가 진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저 인간을 탈락시키기만 하면 돼.”

“아니,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희한테 수험자를 임의로 탈락시킬 권한은 없다니까요?”

답답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마카론을 한 대 쥐어박은 루가릭스는 인상을 팍 쓰며 다시 말을 이었다.

콩-.

“방법은 내가 알려 줄게. 그러니까 너희는 시키는 대로만 해.”

“우씨…….”

“이거 ‘부탁’이라는 단어가 맞는 겁니까?”

“성공하면 내가 갖고 있는 어둠의 보주 하나씩 나눠 줄게. 그러니까 얘기 좀 들어 봐.”

나름 달콤한 떡밥으로 두 드래곤의 반항을 겨우 진압시킨 루가릭스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내가 아는 그 인간은, 엄청 욕심이 많거든.”

“그, 그런가요?”

“특히 좋은 아이템이나 소환수를 얻을 수 있다고 하면, 아마 사족을 못 쓸 거야.”

“그……래서요?”

꿀꺽-.

한차례 침을 삼킨 루가릭스의 말이 천천히 이어졌다.

“너희가 저 인간 앞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몇 가지 정보를 좀 전달해 줘.”

“……?”

“드레이크 킹의 뼈가 무기를 만드는 데 훌륭한 재료가 된다는 사실이나, 협곡 북동쪽에 비룡의 군락이 있다는 사실 같은 거 말이야.”

* * *

한편 어둠 속에서 어떤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지 알 리 없는 이안은, 지금 기분이 무척 좋은 상황이었다.

띠링-!

-가신, ‘카이자르’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카이자르’의 레벨이 Lv. 35(초월)이 되었습니다.

-‘다크 드레이크’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최초 입장 버프가 적용됩니다.

-용천주화를 585만큼 획득하였습니다.

“크, 역시 최초 입장 보너스는 꿀 오브 꿀이란 말이지.”

암천곡에 들어온 지 이제 반나절 정도가 지났는데, 벌써 초월 2레벨이나 올린 데다 30레벨이었던 두 가신들의 경우 35레벨까지 레벨이 올랐으니, 이안으로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조금씩 이곳에서 사냥하는 것도 할 만해지는 느낌이 들고 말이야.’

마카론 형제는 이안이 드레이크들을 학살(?)하고 다닌다고 표현하였지만, 사실 이안의 기준에서 드레이크 사냥 속도는 답답할 만큼 느린 수준이었다.

한 대만 맞아도 생명력이 반 토막 날 만큼 강력한 위력의 공격들이 계속 들어오니, 공격적으로 전투 운용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드레이크를 여러 마리 만나기라도 하면, 하나씩 빼먹으면서 사냥해야 할 수준이었으니.

몰이사냥을 즐기는 이안으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드레이크가 몰이사냥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몬스터가 아니라는 기획 의도 따위는 이안에게 별로 의미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젠 가신들 레벨도 좀 올라왔고, 나도 패턴에 좀 더 익숙해졌으니……. 좀 더 사냥 스타일을 공격적으로 바꿔 봐야겠어.’

지금까지는 한 대도 맞아 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전투를 운용했다면, 이제부터는 한 대라도 더 때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움직여 보려는 것.

지금도 1초씩 지나가고 있는 버프 지속 시간이 아쉬운 이안은 가신들과 소환수들을 더욱 하드하게 굴리기 시작하였다.

“자 이제부터 카카는 드레이크 하나씩 모아서 이쪽으로 데려와.”

“괜찮겠냐, 주인아?”

“딱 세 놈 까지만 모아서 싸워 보자. 그 정도는 괜찮을 거야.”

그리고 그 결과,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투 양상이 이어졌다.

지금까지는 이안의 파티가 드레이크 한 마리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양상이었다면, 이제 대등한 상황에서 이안의 파티에도 제법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던 드레이크의 브레스조차 한두 번 맞아 주었으니 최대치에서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던 이안의 생명력도 팍팍 깎여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다크 드레이크’의 꼬리치기에 격중당했습니다.

-생명력이 10,498만큼 감소합니다.

-소환수 ‘뿍뿍이’의 고유 능력 ‘심연의 가호’가 발동합니다.

-생명력이 998만큼 회복되었습니다.

-생명력이 998만큼 회복되었습니다.

……후략……

하지만 한차례 드레이크들과의 격전을 끝낸 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어 있었다.

‘흐음, 스릴도 더 생기고 사냥 속도도 한 배 반은 빨라진 것 같고……. 조금 위험해도 이렇게 진행해야겠어.’

레벨이 오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한 움큼 쌓여 있는 경험치 게이지를 보자, 없던 힘도 생겨나는 것이었다.

“자, 그럼 생명력 다 회복하고, 엘카릭스 실드 쿨타임 돌아오면 다시 움직여 보자고.”

하지만 잠시 후.

모든 정비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곧바로 출발하지 못하였다.

우우웅-!

다시 사냥을 나서려던 이안의 앞에, 돌연 까만 균열이 생기며 누군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

온통 까만 갑주에 회색 빛깔의 망토를 두른, 마치 쌍둥이같이 닮은 생김새를 가진 두 명의 소년들.

그들 중 한 명이 이안을 향해 한 걸음 다가오며, 제법 묵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반갑다, 암천의 수험자여.”

“……?”

“나는 이곳의 시험관인 마카론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묵직한 분위기는, 이안의 뒤에 있던 뿍뿍이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뿍? 마카롱? 마카롱 맛있뿍!”

덕분에 무표정하던 마카론의 얼굴은 와락 구겨지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