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7화 6. 반가운 재회 >
용천에서의 사냥은 순탄하였다.
이안은 일전에도 소천(小天)에서 이미 초월 30레벨을 만들기 위한 사냥 노가다를 했던 경험이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순탄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안의 시점에서 이야기한 것일 뿐, 함께하는 두 가신들은 죽을상이 된 지 오래였다.
싸움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카이자르마저도 앓는 소리를 낼 정도였으니, 얼마나 혹독한 사냥이었는지 능히 짐작할 만하였다.
“주군 놈아, 잠은 좀 자면서 사냥하는 게 어떠냐?”
“30레벨 찍고 자러 가자니까?”
“후욱, 후욱……. 곧 있으면 25레벨입니다, 폐하.”
“그럼 5레벨만 더 힘내 보자고, 헬라임.”
“대체 소환수는 왜 소환 안 하는 거냐? 뿍뿍이랑 카르세우스가 보고 싶다, 주군 놈아.”
“걔들 있으면 레벨 업이 더 느려질 텐데. 좀 힘들더라도 빨리 30찍고 자는 게 낫지 않겠어?”
“크윽, 역시 악덕 주군 놈이다.”
카이자르의 불평에서도 알 수 있듯 이안은 단 하나의 소환수도 소환하지 않은 채로 사냥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안이 소환한 소환물이라고는 정령인 아그비와 노예인 카카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 파티(?)의 사냥 속도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자운룡 아시라스의 버스를 탈 때만큼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것 이상이야.’
사냥을 시작한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카이자르와 헬라임의 레벨은 25레벨에 육박하였으며, 이안 본인의 초월 레벨 또한 2레벨이나 올라 37레벨이 되었으니 이것은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빠른 사냥 속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역시나 새로 얻은 ‘전설(초월)’ 등급의 용암 장화였다.
‘거기에 세트로 얻은 칭호까지 화룡점정이지.’
‘용암의 마법 장화’아이템을 얻으면서 함께 얻은 칭호인 ‘불 위를 걷는 자’.
그것의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불 위를 걷는 자
등급 : 유일(초월)
‘용암의’ 세트 아이템 중 ‘신발’부위의 장비를 얻은 유저에게 부여되는 칭호입니다.
화염에 대한 강력한 내성을 부여해 주는 칭호입니다.
*불 위에서 느끼는 고통을 감소시켜 줍니다.
*화염 속성인 ‘자연물’로 인한 피해를 80퍼센트만큼 감소시켜 줍니다(인위적인 마법이나 몬스터의 공격으로 인한 화염 피해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화염을 밟을 시 이동속도가 2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화염을 밟을 시 화염 저항이 1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화염 위에서 도약할 시 도약 능력이 5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화염 위에서 적을 처치할 시 대상에게 3분 동안 입힌 피해의 15퍼센트만큼을 생명력으로 회복합니다.
*다른 칭호와 함께 사용이 가능한 중복 착용 가능 칭호입니다.
‘불 위를 걷는 자’는, 사실 사기적이라고 할 만한 칭호는 아니었다.
칭호에 전투 능력이라고는 조금도 붙어 있지 않았으며, 애초에 능력 구성 자체가 ‘용암의 마법 장화’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큰 의미 없는 것들이니 말이었다.
다만 ‘중복 착용 가능’ 옵션이 붙어 있는 데다 용암 장화와의 시너지가 엄청나다 보니, 이안의 마음에 쏙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이안의 전투 스타일에도 무척이나 어울리는 옵션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바로 이렇게 말이지.’
타탓- 화르륵-!
화염 장궁을 소환하여 움켜 쥔 이안이 지면을 박차고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그러자 이안의 걸음이 닿는 지면에 시뻘건 용암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화르르르.
-고유 능력 ‘용암의 발걸음’을 발동하였습니다.
-이동속도가 1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발밑으로 뜨거운 용암이 솟구칩니다.
-‘불의 힘’ 버프가 발동합니다.
-화염의 가호를 받아, 20초 동안 공격력이 3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현재 3퍼센트 누적)
-화염의 가호를 받아, 20초 동안 공격력이 3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현재 6퍼센트 누적)
……후략……
‘용암의 발걸음’ 고유능력은, 180초라는 짧지 않은 재사용 대기 시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안은 지금까지 12시간도 넘게 사냥하는 동안, 이 스킬이 비활성화 된 채로 사냥했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불의 힘 버프에 지속 시간이 있는 것과는 달리 사용 효과에는 지속 시간이 없으니 말이었다.
사용자가 사용 효과를 오프하거나 또는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효과는 계속해서 켜져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속 시간이 따로 없는 이 고유 능력에 온오프 기능이 뭐 하러 있으며, 180초라는 재사용 대기 시간은 대체 왜 만들어둔 것일까 하는 의문 말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답은 이안의 눈앞에 떠오르고 있는 시스템 메시지들을 본다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강렬한 용암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생명력이 70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70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용암의 발걸음 고유 능력으로 인해 이안이 지속적으로 생성시키는 바닥의 용암덩어리들.
아이러니하게도 이 용암으로 인한 대미지가 이안에게도 예외 없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물론 ‘불 위를 걷는 자’ 칭호 덕에 용암은 덜 뜨겁고 덜 아팠지만(?), 어쨌든 무한정 켜 뒀다가는 마을에서 게임 오버 화면을 만날 수도 있는 고유 능력이 바로 이 ‘용암의 발걸음’이었던 것이다.
‘사용해 보기 전까지는 이런 식의 능력일 줄 몰랐지만, 덕분에 발바닥도 따뜻하고 좋지, 뭐.’
0.3초당 70씩 감소하는 생명력은 무시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피해가 아니다.
1분만 지나도 1만4천 정도의 생명력이 감소하는 꼴이니, 가만히 있으면 이안도 몇 분 내로 사망할 수준의 피해량인 것이다.
그래서 이안은 사냥을 쉴 수 없었다.
끊임없이 몬스터를 처치해야만 계속해서 줄어드는 생명력을 복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용족 ‘어린 드라코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드라코우’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화염의 기운 위에서 대상을 처치하셨습니다.
-입힌 피해의 50퍼센트만큼을 회복합니다.
-생명력이 19,875만큼 회복되었습니다.
‘불 위를 걷는 자’ 칭호에 붙어 있는 ‘적 처치 시 회복’ 효과를 활용하여,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용암의 발걸음을 끄지 않고 사냥할 수 있었던 것.
간단히 정리하자면, 못해도 1~2분 안에 한 마리 이상은 처치해야만 지속될 수 있는 사냥을, 이안은 12시간이 넘도록 지속해 온 것이다.
그야말로 비상식적인 수준의 스파르타식 사냥이 아닐 수 없었다.
“카이자르, 적당히 피 뺐으면 다음 놈 치기 시작해! 헬라임은 후방 좀 계속 캐어해 주고!”
“후우……. 알겠다, 주군 놈아.”
“그리 하겠나이다, 폐하!”
이안은 불의 힘 버프 풀 스택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화염시를 쏘아 대었다.
피핑- 핑-!
그리고 적이 몰려 있다 싶으면, 여지없이 ‘용암의 대지’ 고유 능력을 발동시켜 한 방에 일망타진하였다.
콰르릉- 화라라락!
키에에엑-!
칭호의 이속 버프까지 받고 빨빨거리며 뛰어다니는 이안 탓에, 용암을 피해 발 디딜 틈조차 찾기 힘든 드라코우의 협곡.
어제까지만 해도 평화롭기 그지없던 이 협곡의 용족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이 재앙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크억, 신이시여, 어찌 저희 종족에게 이런 시련을……!”
“크아악! 온몸이 익어 가는 것만 같구나! 누가 제발 저 인간을 여기서 쫓아내 줘!”
그리고 그렇게 한나절 정도가 더 지났을까?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 불지옥 같은 사냥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두 가신들의 레벨 업과 함께 말이다.
띠링-!
-가신 ‘카이자르’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카이자르’의 레벨이 30레벨(초월)이 되었습니다.
-가신 ‘헬라임’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헬라임’의 레벨이 30레벨(초월)이 되었습니다.
“허억, 허억. 드디어……!”
“이제…… 자러 가면 안 되냐 주군 놈아…….”
오랜만에 느끼는 스파르타식 사냥 노가다 때문에 전신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카이자르와 헬라임.
아마 전사로서의 긍지와 자존심 그리고 뜨거운 바닥(?)이 아니었더라면, 둘은 일찌감치 태업을 선언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을 것이었다.
“휴우, 드디어 달성했군. 슬슬 눈이 감기던 차에 잘됐어.”
이안의 중얼거림에, 카이자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질린 목소리로 입을 연다.
“주군, 나 그냥 왕성으로 돌아가면 안 되냐?”
“왜?”
“그, 그냥……. 생각해 보니 내가 없으면 파이로 영지의 던전 토벌대가 허전할 것 같아서 말이지.”
“지상계에서 심심했었다며.”
“아니다. 사실 안 심심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재밌었던 것 같아.”
“흐음…….”
이안이 고민하듯 살짝 눈을 감자, 옆에서 가만히 있던 헬라임도 슬쩍 입을 떼었다.
“폐하. 생각해 보니 저도 왕실기사단의 막중한 책무들이 남아 있던 것 같습니다.”
“음?”
“아무래도 왕성으로 돌아가서 기사단 정비를 한번 해야…….”
“응, 걱정하지 마. 이미 폴린에게 기사단장 자리 맡겨 놨으니까.”
“크윽……!”
두 가신들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잠시 동안 그들을 놀려먹던 이안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한번 여기로 불러온 이상 다시 내려 보낼 일은 없을 테니까 헛된 기대 하지 말고……!”
“크윽…….”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진 쉬게 해 줄 테니까, 푹 쉬고 정비해서 집합하라고.”
이어서 이안은 귀환 스크롤을 사용하여 두 가신들과 함께 소르피스 성으로 복귀하였다.
그냥 로그아웃을 해도 NPC인 그들은 알아서 쉴 자리를 찾아 이동할 테지만, 지난 이틀 동안 쉴 새 없이 굴려먹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약간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뭐, 귀환 스크롤을 사용한 게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말이지.’
소르피스 내성으로 돌아온 이안은 긴장이 풀려서인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로그아웃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기에 어디론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입찰 시간이 48시간이니까, 이제 슬슬 경매가 끝날 때가 되었겠네.’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 거래소의 경매장에 등록해 놓았던 잡템(?)들.
그것들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 위해 거래소로 이동한 것이다.
‘제법 괜찮은 물건들도 올려놨으니, 꽤나 쏠쏠하게 벌었겠지?’
장비들이 입찰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최소 입찰가를 1코인으로 등록해 놓았으니 팔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 1천 코인 정도라도 벌렸으면 좋겠는데……. 그 정도면 용병 길드라도 한번 이용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말이 1천 코인이지, 이것은 결코 적은 금액이라 할 수 없었다.
골드로 환산하면 무려 천만 골드에 육박하는 액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계에서 쓰던 장비 하나만 팔아도 수천만 골드는 우습게 버는 이안에게, 이 정도는 사실 소박한(?) 기대라고 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녀석’ 덕에 한 2천 코인쯤 벌렸을지도? 아니, 나머지가 용사의 마을 전용 템이라 그 정도까진 무리이려나?”
이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거래소에 입장하였다.
기대감 때문인지, 쏟아지던 졸음도 거의 씻겨 나간 얼굴이었다.
“어디 보자. 역시나 제일 기대되는 ‘그 녀석’부터 한번 확인해 봐야겠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이안은 거래소의 판매 정보 창을 오픈하였다.
등록해 놓은 아이템만 수십 가지가 넘었지만, 가장 비싸게 팔렸을 만한 품목이 뭔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이안이 생각하기에도 이것은, 소환술사라면 누구나 눈이 돌아갈 만한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등록된 소환수 ‘드라코우(천룡)/Lv : 50(초월)’ 품목의 판매 여부를 확인합니다.
아시라스 덕에 운 좋게 포획하였으나, 너무도 많이 소모되는 통솔력과 애매한 성능 탓에 뭔가 계륵 같은 느낌이었던 천룡 드라코우.
그리고 다음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그 안에 담겨 있는 비현실적인 내용에 얼음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