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6화 5. 용들의 땅 (4) >
* * *
처음 중간계의 가신 콘텐츠가 오픈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하였을 때, 이안은 가신과 유저 들을 완전히 다른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가신들은 중간자의 위격과 무관하게 레벨 업을 계속할 수 있겠지?’
애초에 주인인 유저가 중간자를 얻기 전에는 중간계에 데려오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가신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가신 하나하나가 중간자와 관련된 제약에서 자유로울 줄 알았던 것이다.
게다가 처음 중간계에 카이자르와 헬라임이 도착했을 때, 그들의 정보 창에는 어디에도 중간자와 관련된 제약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원래 레벨 슬롯의 옆에 ‘최대 레벨 10’이라는 문구와 함께, ‘조건을 달성해야 11레벨 이상으로 레벨 업이 가능합니다.’라는 설명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 명시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가신은 ‘중간자’라는 시스템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안의 착각이었다.
“후후후, 봤냐, 주군 놈아! 내가 이 정도다!”
“핫핫, 보셨습니까, 폐하! 제가 저 카이자르 녀석보다 한 놈 더 잡았습니다!”
“웃기지 마라! 그럴 리가 없다!”
“핫핫,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
고작 1레벨에 불과했던 카이자르와 헬라임이 10레벨에 근접한 몬스터들을 썰고 다니는 것을 확인한 순간, 이안은 다시 두 가신들의 상태 창을 면밀히 살펴보았고, 그 결과 세부 정보 창에 들어 있던 한 줄의 문구를 발견한 것이었다.
-위격 : 중간자(초월자)
‘이 녀석들…… 이미 중간자였잖아?’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세부 정보창의 ‘추가 스텟’ 부분에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막대한 보너스 스텟이 생성되어 있었다.
-전투 능력 (세부)
생명력 : 950(+8,500)
힘 : 52(+170)
민첩 : 45(+170)
지능 : 27(+170)
체력 : 38(+170)
‘중간자 되면서 얻을 수 있는 추가 스텟은 올 스텟 20인데……. 나머지 150은 대체 어디서 난 거야?’
중간자의 위격을 얻으면서 상승하는 능력치는 모든 전투스텟 +20에, 생명력 3,500이었다.
이미 초월 35레벨인 이안에게야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가지는 능력치는 아니었지만, 1레벨이었던 카이자르와 헬라임에게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스텟인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막대한 수준의 스텟이 추가로 올라 있는 카이자르와 헬라임.
‘와, 이러니까 10레벨들을 썰고 다니지.’
그 비밀은 바로, 두 가신들이 보유한 ‘칭호’에 있었다.
-무력(武力)의 끝을 본 자
등급 : 영웅(초월)
일반 레벨 500레벨을 달성한 이에게 부여되는 칭호입니다.
모든 능력치가 +1,500만큼 상승하며, 생명력이 50,000만큼 증가합니다(중간계로 이동하여 초월 능력치로 환산될 시, 10퍼센트만큼만 적용됩니다).
*초월 레벨이 10레벨 오를 때마다 모든 능력치가 500씩 추가로 상승합니다(초월 능력치 기준 50).
*중복 착용이 불가능한 칭호입니다.
*유저는 획득할 수 없는 칭호입니다.
이안이 열심히 중간계의 콘텐츠들을 섭렵하는 동안, 카이자르와 헬라임은 지상계의 던전들을 끊임없이 휩쓸고 다녔다.
로터스 길드원들의 버스를 태워 주기 위해서 이안이 두 가신들을 길드 토벌대에 붙박이처럼 넣어 놓았기 때문.
하여 이안도 몰랐던 사이 두 가신들은 ‘만렙’인 500레벨을 달성했었고, 그 대가로 이러한 칭호까지 얻었던 것이다.
‘뭐 이런 사기적인 칭호가 다 있어?’
물론 중복 착용 가능한 이안의 칭호보다야 메리트가 떨어지는 칭호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갓 중간계에 입문한 두 가신들에게는 정말 사기적인 칭호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초월 레벨이 10만큼씩 오를 때마다 추가로 올스텟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영웅(초월)이라는 등급이 아깝지 않은 칭호라 할 수 있었다.
‘하아, 카이자르 좀 놀려먹어 보려 했는데…….’
지상계에서는 아직까지도, 소환수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상대하기 힘든 카이자르의 무력.
때문에 중간계에서 카이자르를 놀려먹어 보려 했던 이안의 꿈은,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 그래도 좋은 거지, 뭐. 이렇게 되면 둘 다 금방 30레벨까지 찍고, 같이 중천(中天)으로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방금 한 무리의 드락스들을 테러(?)한 것만으로, 이미 두 가신들의 초월 레벨은 7레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속도라면, 하루 정도만 투자해서 레벨 업 노가다를 해도 충분히 초월 30레벨 정도는 달성이 가능할 터였다.
“미안하다 카이자르, 헬라임, 내가 너희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네.”
이어진 이안의 빠른 사과에, 카이자르와 헬라임은 우쭐한 표정이 되었다.
“으하하핫, 역시 우리 주군 놈은 배포가 크다니까. 빠른 인정, 마음에 드는군.”
“후후, 앞으로 저만 믿으십시오, 폐하. 여기 있는 도마뱀들, 전부 멱을 다 따 버리겠습니다.”
다만 그런 두 가신들을 보며 이안은 더욱 스파르타식으로 굴려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곧바로 드라코우 서식지로 이동해야겠어. 이 정도 스텟이면, 40레벨대 드라코우들한테도 쉽게 죽지는 않겠지.’
그리고 그렇게, 헬라임과 카이자르의 지옥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 * *
이안과 로터스의 길드원들이 한차례 소르피스 내성 탐방을 마치고 떠난 뒤 대략 반나절 정도가 지나자, 이곳에도 사람이 바글거리기 시작하였다.
우연히 내성이 열린 것을 발견한 유저 하나가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고, 삽시간에 사람들이 들어찬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차원코인이 충분치 않은 대부분의 유저들은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마을 광장에 자리 잡았던 대부분의 유저들이 이 내성 안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 하나.
‘거래소’ 콘텐츠 때문이었다.
“오오, 드디어 중간계에도 거래소 건물이 생겼군!”
“후우, 잡템 판다고 지금까지 광장에서 개 고생했는데, 이젠 여기 올려놓고 사냥가면 되겠어.”
“흐, 용사의 마을 템은 팔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개꿀이네.”
용사의 마을에선 외부의 아이템들을 사용할 수 없다.
반대로 용사의 마을 콘텐츠를 진행하다가 얻은 아이템들을, 외부에서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때문에 유저들은 항상 아쉽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힘들게 파밍하고 대장간을 활용해 만들어 낸 각자의 아이템들이, 중간자가 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래시스템이 생겨난 이상, 용사의 마을 아이템들도 더 이상 무용하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용사의 마을에는 계속해서 신규 랭커들이 유입될 것이었고, 마을을 졸업한 유저들은 그들에게 자신의 아이템을 판매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다만 모든 거래가 차원코인으로 이뤄지고, 그 차원코인의 시세가 현재 무척이나 비싸다는 점이 쉽사리 거래가 이뤄지기 힘든 이유였다.
“와, 방금 환전소 보고 왔는데, 이거 차원코인 1코인당 거의 1만 골드로 책정되어 있네요.”
“거래소에 교환 비율이 가변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으로 봐선, 코인 풀릴수록 시세가 점점 떨어지긴 할 거에요.”
“아마 그렇겠죠?”
“네. 그럴 수밖에 없어요. 지금 여기 용병 길드에서 하급 용병 하나 고용하는 데 필요한 차원코인이 500코인 정도던데, 지금 시세대로면 500만 골드나 다름없는 미친 가격이에요.”
“하긴. 내성에 집 한 채 마련하고 싶어서 토지 분양소 기웃거려 봤는데, 무슨 평당 분양 가격이 1만 코인이더라고요.”
“평당 1만 코인이면……. 1억 골드?”
“커헉, 여기 무슨 뉴욕임? 평 단가가 일억이라고?”
“뭐, 조금만 기다려 보죠. 어차피 지금 시세로는 코인 아무도 안 사서, 금방 시세 내려갈 테니까요.”
소르피스 내성 안에 들어온 유저들은, 저마다 콘텐츠를 확인하며 의견을 공유하였다.
현재 유일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콘텐츠는 ‘거래소’였으나, 거래되는 가격의 수준은 무척이나 미비하였다.
올라오는 물건들의 가격이, 대부분 100차원코인을 넘지 못했으니 말이었다.
-견고한 용사의 대검/희귀(초월)/25코인
-용맹의 투구/희귀(초월)/19코인
-부실한 사슬갑옷/일반(초월)/3코인
-마력광석/일반(초월)/15코인
……후략……
대부분의 랭커들이 현재 차원코인의 가치가 고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싸구려 아이템밖에는 거래가 되지 않는 것이다.
희귀(유일) 등급 이상의 아이템들은 거의 몇백 코인부터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유저들이 환전을 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것.
그런데 날이 어두워질 무렵, 슬슬 조용해지던 내성의 광장 한편이 다시 웅성이기 시작하였다.
“뭐, 뭐야. 코인 가격이 오르고 있잖아?”
“뭐지? 대체 누가 1만 골드씩이나 주고 이걸 매입하고 있는 거야?”
분명히 1만대 1의 비율로 책정되어 있던 환전소의 ‘차원코인’ 가격이, 어느새 1만500원까지 올라 있었던 것이다.
고작 500골드 오른 것 가지고 왠 소란이냐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결코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차원코인을 골드로 환전하는 사람의 숫자보다, 골드로 차원코인을 매입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방증이었으니 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이게?”
“뭐야. 이거 이러다가 코인 떡상하는 거 아님?”
“헐, 지금이라도 빨리 매입해 둬야 하나? 이러다가 2만 골드 가면 어떡하지?”
“님들, 진정들 하셈. 그럴 리가 없음. 차원코인이 여기서 더 오르면 어떡함?”
“원래 주식도 그렇지만, 상장 직후에 반짝 올랐다가 떡락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괜히 물리지 말고 지켜보시죠.”
“크윽, 이제 하다 못해 게임에도 투기꾼이 들어오는 건가?”
유저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일부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분주히 소르피스 성을 돌아다녔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한 어떤 콘텐츠가 있지 않고서는, 코인이 오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하지만 소란이 시작된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내성에 있던 모든 유저들은 차원코인의 가격이 슬금슬금 상승하기 시작한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거래소의 ‘경매장’ 탭을 구경하던 어떤 유저의 외마디 비명(?)소리 때문이었다.
“미, 미쳤다! 이안갓이 용사의 마을에서 쓰던 장비들이 전부 다 코인경매장에 올라왔잖아!”
거래소의 안에 있는 경매장은, 평범한 거래소와 조금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거래소는 시스템 상으로 아이템마다 기본 가격이 설정되어 자동으로 등록되는 반면, 경매장에 등록되는 아이템들은 유저가 설정한 가격부터 경매가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경매장에는 이안이 용사의 마을에서 사용하던 초월 장비들이, 계정귀속 아이템들을 제외하고는 무더기로 등록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안이 설정해 놓은 경매 시작 가격은, 최소 가격인 ‘1차원코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