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3화 5. 용들의 땅 >
다른 유저들에게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들렸던 신의 목소리들.
하지만 이안에게 그 목소리들은, 당연히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또렷이 귀에 들어왔다.
심지어는 신탁이 끝난 뒤에 친절한 시스템 메시지들로 다시 한 번 설명되기까지 하였다.
띠링-!
-모든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중간자’의 위격을 획득하셨습니다.
-‘최초의 초월자’ 전설(초월) 등급의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초월 장비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가신들을 중간계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가신들의 초월 레벨은 1레벨부터 시작됩니다.)
-‘시공의 열쇠’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용사의 마을 ‘내성’에 있는 ‘시공의 탑’에서 시공의 열쇠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천군 진영에서 ‘중간자’가 탄생하였으므로, 이제부터 천군 진영의 용사의 마을 ‘내성’ 콘텐츠가 오픈됩니다.
-내성의 ‘거래소’ 건물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내성의 ‘용병 길드’ 건물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내성의……
……후략……
그리고 길게 이어진 이 모든 메시지들을 확인한 이안의 양 주먹에, 저도 모르게 불끈 힘이 들어갔다.
‘크……! 그래, 이거지. 이제야 중간계의 튜토리얼이 끝난 느낌이네.’
중간자가 되었다는 것.
이것은 현재 카일란에서, 무척이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지상계를 초월한 영혼’이라는 게임 세계관 상의 거창한 상징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 랭킹1위를 달성했다는 것?
그야 물론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중간계의 콘텐츠들을 선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용천에 서식하는 용족들만 테이밍해다 팔아도, 떼부자가 될 수 있겠지.’
이제까지도 이안은, 수많은 콘텐츠들을 빠르게 선점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제까지와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이제까지는 이안의 바로 뒤를 바짝 쫓아오는 후발 주자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사실상 너무 큰 격차가 벌어졌으니 말이다.
후발 주자들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 중간자가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이안이 생각할 때 못해도 보름 이상이었다.
그 사이에 이안은 중간계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을 생각이었고 말이다.
‘우리 루가릭스는 잘 있으려나? 이 형이 드디어 널 데리러 간다, 흐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많은 나머지, 뭐부터 해야 할지 잠시 갈등하던 이안.
하지만 이안의 생각은 그리 오래 이어질 수 없었다.
“이안, 이안이다!”
“저기 이안이 있어!”
“어디? 어디에?”
“이안갓! 사인 하나만 해 줘요!”
사람이 북적거리는 용사의 마을 공터.
그 한가운데 솟아 있는 ‘초월의 탑’에서 요란한 이펙트가 뿜어져 나왔으니, 그 앞에 있던 이안은 금세 발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랑해요 이안갓!”
“형님, 저 안 쓰는 아이템 하나만 주세요, 흑흑.”
“용사의 마을 히든 피스 하나만 알려 줘요!”
“거지들은 좀 저리 가! 이안갓 사인 받아야 된단 말이야!”
어지간한 몬스터 떼에 둘러싸인 것보다, 몇 배는 더 위급한(?) 상황에 처한 이안!
“……!”
하지만 이안은 세계 랭킹 1위가 된 랭커답게, 빛의 속도로 반응하여 위기를 모면하였다.
촤라락-!
순식간에 인벤토리에서 이동 스크롤을 꺼내어, 유저들이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그대로 찢어 버린 것이다.
위이잉-!
같은 맵의 랜덤한 위치에 무작위로 이동시켜 주는 랜덤이동 스크롤을 사용한 것.
‘위, 위험했어…….’
평소에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 이 스크롤이 인벤토리에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이안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한차례 훔쳐 내었다.
“휴우,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해야겠어. 이제 용사의 마을에서도 얼굴 다 팔려 버렸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이안은 평범한 복장으로 환복한 뒤 용사의 마을 내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새 콘텐츠가 열린 곳이기에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인적 없는 곳으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아직 나 말고는 내성이 열린 걸 아무도 모를 테니 편하게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겠지.’
이안은 길드 채팅을 열어, 함께 영웅의 협곡을 클리어했던 파티원들도 내성으로 불렀다.
‘차원 영웅 랜덤 상자’의 분배 또한, 이 내성에서 진행할 생각이었다.
스륵-!
누군가의 눈에 띌 새라 조심스레 성문의 앞에 다가선 이안은, 빠르게 그 안으로 진입하였다.
그러자 간결한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오른다.
띠링-!
-용사의 마을, ‘소르피스’성에 입장하셨습니다.
그리고 따라 들어온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그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 거기서 월드 메시지가 동네방네 광고를 할 줄은 몰랐네.”
하지만 위기(?)를 모면하고 나자, 이안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그럼 일단, 칭호부터 한번 확인해 볼까?”
오랜만에 칭호를 교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급격히 설레기 시작한 이안.
그리고 ‘최초의 초월자’ 칭호는, 전설(초월) 등급의 칭호답게 이안의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최초의 초월자
등급 : 전설(초월)
‘중간자’의 위격을 획득한 최초의 유저에게 부여되는 칭호입니다.
모든 초월 능력치가 +15만큼 상승하며, 보유한 초월 명성을 20퍼센트만큼 증가시켜 줍니다.
*다른 칭호와 함께 사용이 가능한, 중복 착용 가능 칭호입니다.
“응……?”
간결한 칭호 정보 창을 확인한 이안의 표정은, 시시각각 다이내믹하게 변화하였다.
처음 정보 창을 열었을 때에는 일그러졌던 얼굴에, 순식간에 함박웃음이 떠올랐으니 말이었다.
“중복 착용 가능? 이런 칭호도 있었어?”
사실 모든 초월 능력치 +15는 이안에게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옵션이었다.
물론 올 스텟 15가 그리 허접한 옵션은 아니었지만, 무려 전설(초월)이라는 등급에 어울릴 정도의 스펙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보 창의 마지막에 명시되어 있는, ‘중복 착용 가능’이라는 부가 옵션은 그 실망을 전부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 대박……!”
따로 중복 가능 숫자 제한도 없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것은 칭호와 별개로 영구히 올 스텟 15가 오른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시작부터 아주 좋고……!”
한껏 기분이 달아오른 이안은, 곧바로 인벤토리를 오픈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중간자 달성 보상으로 얻은 아이템인 ‘시공의 열쇠’ 정보 창을 오픈해 보았다.
-시공의 열쇠
등급 : 신화(초월)
분류 : 잡화
초월적인 업적을 달성한 이에게만 지급되는 신비로운 물건입니다.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시공의 탑’에 입장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열쇠로, ‘중간자’의 위격을 가져야만 사용가능한 아이템입니다.
이 열쇠를 가지고 시공의 탑에 입장한다면, 발견한 모든 중간계로 워프가 가능합니다.
*천군 진영 용사의 마을 내성(소르피스 성)에 있는 ‘시공의 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유저 ‘이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처음 정보 창을 오픈했을 때, 이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카일란이라는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등급 중, 최고의 등급이라고 할 수 있는 ‘신화(초월)’ 등급이, 잡화아이템에 불과한 이 열쇠에 부여되어 있었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 나열된 내용을 읽자, 이안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생각하기에 이 시공의 열쇠는, 앞으로 중간계의 콘텐츠들을 진행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아이템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뭐, 중간자를 달성한 모든 유저에게 지급될 아이템이기는 하겠지만, 이런 기능을 가진 물건이라면 최고 등급을 부여받을 만하네.’
그리고 길드원들이 도착하기 전, 이안이 마지막으로 오픈한 아이템은…….
-용암의 힘이 담긴 장비를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장비 상자입니다.
-오픈한 상자는 그 즉시 소멸됩니다.
-상자를 오픈하시겠습니까? (Y/N)
바로 어디에도 정보가 알려진 바 없는, ‘용암의 장비 상자’ 아이템이었다.
‘크으……! 이런 꿀 같은 히든 피스가 숨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야.’
영웅의 협곡은 카일란의 E-스포츠화를 위해 LB사에서 만들어낸 콘텐츠이다.
때문에 이 콘텐츠의 성향은, 일반적인 RPG게임과 많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경기 단위로 게임이 진행되어야 하니, 오히려 RTS게임이나 AOS게임에 더 가까운 장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해서 이안은, 영웅의 협곡을 재밌게 플레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협곡 안에서 아무리 치열하게 플레이해도, 그 판이 끝나고 나면 승리 외에는 남는 것이 거의 없었으니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웅의 협곡에서 ‘헥사 킬’에 성공하여, ‘믿을 수 없는 업적 – 6’을 달성하셨습니다.
-‘용암의 장비 상자’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용암 장비라면, 최소 영웅(초월) 등급 이상이겠지. 이거야말로 개꿀 보상이야.’
이미 이안은 영웅(초월) 이상의 장비들을 얻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안이 지금껏 얻었던 고급 장비들은 죄다 제한이 걸려 있는 것들이었다.
대장장이 티버가 만들어 준 죽창(?)부터 시작하여, 힘겹게 얻었던 천룡 군장 세트까지.
이 모든 아이템들이 용사의 마을에서만 사용 가능한 장비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용암의 장비 상자’는 달랐다.
용사의 마을 밖에서 사용하던 모든 아이템들과 다를 바 없는, 언제 어디서든 사용 가능한 아이템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한번 열어 볼까?’
이안은 두근거리는 마음이 되어, 타는 듯이 붉게 빛나는 장비 상자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그대로 상자를 오픈하였다.
우우웅-!
“……!”
강렬한 공명음과 함께, 열린 틈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줄기.
그것을 느낀 이안은 다시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이안의 눈앞에는 상자 대신 처음 보는 아이템이 나타나 있었다.
“어, 어어……?”
조금 당황했는지 두 눈을 깜빡이며 그 ‘아이템’을 살펴보는 이안.
“이건 내가 착용했던 4세트 중에도 없던 녀석인데……?”
처음 보는 용암장비를 확인한 이안의 두 눈에, 기대감과 불안감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아직 본 적 없는 아이템이라는 말은 기대보다 더 뛰어날 수도, 더 허접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용암의 마법 장화’ 영웅(전설) 등급의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불 위를 걷는 자’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동공이 확대되었음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